3월 3일 오후 6시 57분.해원은 라비앙호텔 37층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세 개의 숫자가 익숙했다.37층.오후 7시.창가에서 세 번째 테이블.선우도하는 8번 모두 같은 장소에서 청혼했다. 계절 장식과 꽃의 종류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가 고른 반지와 첫마디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직원이 해원을 알아보고 허리를 숙였다.“윤해원 고객님, 선우 전무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해원은 그대로 돌아설 수도 있었다.그러나 도망치듯 불참하면 선우가와 윤가는 해원의 거절을 일시적인 감정으로 처리할 것이다. 몸이 아팠다거나, 긴장했다거나, 언론 노출이 부담스러웠다는 이유를 붙여 약혼 발표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았다.이번에는 직접 말해야 했다.자신의 입으로.연회장 문이 열리자 현악 4중주가 멈췄다. 넓은 공간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유리창 너머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지고, 바닥에는 흰 장미와 은빛 초가 길을 만들고 있었다.선우도하는 그 끝에 서 있었다.짙은 남색 정장, 반듯하게 넘긴 머리, 긴장을 숨기지 못한 눈.해원을 보자 그의 표정이 풀렸다.“안 올 줄 알았어.”“왜요?”“어제부터 연락을 피했잖아.”도하는 가까이 다가오다가 해원의 굳은 얼굴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 강제로 손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가 좋아하던 무탄산수를 테이블 위로 밀어 주었다.“몸이 안 좋은 거야?”8번의 삶 동안 수없이 들었던 목소리였다.밤새 곁을 지켜 준 적도 있었다. 해원의 생일을 누구보다 먼저 기억했고, 재단 일로 지친 날이면 한강을 돌아 집까지 데려다줬다.그 모든 순간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해원은 지금도 그를 미워하는 일보다 사랑했던 자신을 떼어 내는 일이 더 어려웠다.“할 말이 있다면서요.”도하는 해원의 존댓말에 눈썹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우리끼리 있는데 왜 그래.”그가 웃으며 분위기를 풀려 했다.“앉아서 얘기하자. 오늘은 좋은 이야기만 하려고 준비했어.”“전 서 있는 게 편해요.”도하는 더 묻지
최신 업데이트 : 2026-09-3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