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우리 애가 너를 골랐다: Chapter 61 - Chapter 70

77 Chapters

# 61화. 내가 사는 집

# 61화. 내가 사는 집민서가 처음 보러 간 집은 학교 정문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였다.건물 외벽은 새로 칠한 듯 깨끗했고, 부동산 중개인은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다.“학생 혼자 살기 딱 좋아요. 밤에도 이쪽 길은 밝고요.”현관문이 열리자 작은 원룸이 나타났다.침대 하나를 놓으면 걸어 다닐 공간이 거의 남지 않을 크기였다. 창문을 열자 바로 옆 건물의 회색 벽이 보였다.태건은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가자마자 현관 잠금장치부터 확인했다.“이거 오래된 거 아닙니까?”“작동은 잘해요.”“창문 잠금장치도 없는데.”“그건 입주 전에 달아 드릴 수 있고.”태건은 욕실 문을 열었다.“환풍기는요?”“태건아.”민서가 불렀다.그가 돌아봤다.“집 보러 온 거지 시설 점검하러 온 거 아니야.”“네가 살 곳이잖아.”“그러니까 내가 볼게.”중개인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남자 친구분이 꼼꼼하시네요.”민서는 어색하게 웃은 뒤 방 안을 다시 살폈다.월세는 예산 안이었다.학교와 가까웠고 버스 정류장도 멀지 않았다.하지만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책상을 놓을 자리도 애매했다.민서는 방 가운데에 서서 자신이 이곳에서 아침을 맞고, 과제를 하고, 부산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답답했다.“다른 집 볼게요.”민서가 말했다.중개인이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조건에 비해 월세가 정말 괜찮은 곳인데.”“창문 앞이 너무 막혀 있어서요.”“학생들은 낮에 학교에 있으니까 크게 신경 안 써요.”“저는 집에서도 일해야 해요.”민서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건물 밖으로 나오자 태건이 물었다.“왜 싫어?”“방금 말했잖아.”“잠금장치 때문은 아니고?”“그건 고치면 되지.”태건은 자신의 걱정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해한 얼굴이었다.“그럼 뭐가 제일 중요해.”“햇빛.”“햇빛?”“응. 창문 열었을 때 벽만 안 보였으면 좋겠어.”“월세는.”“관리비까지 합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62화. 초대받아 들어가는 집

#62화. 초대받아 들어가는 집민서가 이사한 뒤 처음 맞는 토요일.태건과 도윤은 약속한 시간보다 십 분 일찍 청년주택 건물 앞에 도착했다.도윤은 작은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장난감 자동차 두 대와 색연필, 여벌 양말, 공룡 그림책이 들어 있었다.“양말은 왜 가져왔어?”태건이 묻자 도윤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누나 집에서 자려고.”“오늘 잔다고 한 적 없어.”“집 있으니까 자도 되잖아.”“집이 있다고 아무 때나 자는 거 아니야.”도윤의 입술이 조금 내려갔다.“누나가 싫대?”“아직 물어보지도 않았어.”태건은 공동 현관 앞에서 민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도착했어.]잠시 뒤 민서가 직접 내려왔다.편한 티셔츠에 머리를 대충 묶은 모습이었다. 집에서 나온 사람다운 차림을 처음 본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누나 잠옷 입었어?”“이거 잠옷 아니야.”“아빠는 집에서 비슷한 거 입어.”“그건 아빠가 아무거나 입는 거고.”민서는 도윤의 가방을 발견하고 물었다.“뭐 가져왔어?”“내가 잘 거.”도윤이 가방을 열려고 하자 태건이 손을 막았다.“오늘 자도 되는지 먼저 물어.”도윤은 민서를 올려다봤다.“누나, 나 여기서 자도 돼?”민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오늘은 안 돼.”아이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왜?”“누나가 아직 도윤이 자는 데 필요한 걸 준비하지 않았어.”“나 바닥에서도 자.”“바닥에서 재울 생각 없어.”“아빠도 자면 돼.”민서와 태건의 시선이 마주쳤다.태건은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아빠도 오늘은 집에 갈 거야.”“왜?”“민서 누나가 놀러 오라고 한 시간이 저녁까지니까.”도윤은 공동 현관문을 바라봤다.“여기 누나 집인데.”“응.”민서가 대답했다.“그래서 누나가 언제까지 있을지 정하는 거야.”도윤은 입술을 내민 채 생각했다.“그럼 다음에는 자?”“다음에 다시 약속하자.”“언제?”“오늘 놀고 나서.”민서는 확실하지 않은 약속을 하지 않았다.도윤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63화. 오래 일하기 위한 선택

#63화. 오래 일하기 위한 선택[현장 보조 활동 연장 및 차기 학기 계약 전환 면담 안내.]태건은 메일에 첨부된 근무 조건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계약 기간은 다음 학기까지 여섯 달.근무일은 주 이틀에서 사흘로 늘어났다. 단순 보조 업무뿐 아니라 사례 관리 교육과 외부 기관 연계 회의에도 참여하게 된다.급여도 오르고, 활동이 끝난 뒤에는 센터 채용 지원 시 실무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좋은 조건이었다.그런데 태건은 곧바로 수락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센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기회를 얻는 것만 생각했다. 이제는 그 기회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 따져야 했다.다음 학기 수업 시간.도윤의 어린이집과 대학 보육실 운영 시간.구청 아이돌봄서비스 이용 가능 횟수.근무일이 늘어나면서 달라질 생활비.태건은 식탁 위에 종이를 펼쳤다.“아빠 또 시간 계산해?”도윤이 의자를 끌고 옆에 앉았다.“응.”“이번에는 무슨 시간?”“아빠가 일하는 시간.”“더 일해?”“그럴 수도 있어.”도윤은 종이 위의 요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그럼 나 또 늦게 와?”“일주일에 하루는.”“선생님이랑 기다려?”“보육실에 있을 수도 있고, 돌봄 선생님이 올 수도 있어.”도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아빠는 하고 싶어?”태건은 아이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예전에는 도윤이 불편해할 가능성이 있으면 하고 싶은 마음부터 접었다.지금은 반대였다.자신의 일을 선택하면서 아이가 감당해야 할 변화까지 없는 일처럼 여기고 싶지 않았다.“하고 싶어.”태건이 말했다.“그런데 도윤이가 너무 힘들지 않게 방법을 찾아야 해.”“내가 싫다고 하면 안 해?”태건은 아이를 바라봤다.“왜 싫은지는 들을 거야.”“그러면?”“도윤이 마음도 생각하고, 아빠가 해야 할 일도 생각해서 정할 거야.”도윤은 민서에게 들었던 대답을 기억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어른들은 맨날 자기가 정해.”“어른들이 책임져야 하니까.”“나는 책임 없어?”“도윤이는 싫으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64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믿는 법

#64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믿는 법“엄마랑 둘이 있어 봐도 될까?”하연의 질문에 도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하연의 손을 잡은 채 태건을 올려다봤다.“아빠는 어디 가?”“근처에 있을 거야.”태건이 대답했다.“안 보여?”“도윤이가 원하면 보이는 데 있을 수도 있어.”하연은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두 시간은 길어?”도윤이 물었다.“길면 한 시간만 해도 돼.”하연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도윤이가 싫으면 오늘은 안 해도 되고.”도윤은 기차박물관 출구 옆에 있는 작은 휴게 공간을 바라봤다. 창가에는 기차 모형을 조립할 수 있는 체험대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음료를 파는 매점이 있었다.“엄마랑 저거 해도 돼?”도윤이 조립 체험대를 가리켰다.“응.”“아빠는?”“아빠는 밖에서 기다릴게.”태건의 대답에 도윤의 손가락이 하연의 손 안에서 움직였다.“한 시간만.”아이가 말했다.“알았어.”하연은 더 길게 있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태건은 휴대전화 알람을 한 시간 뒤로 맞췄다.“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응.”“도윤이가 나 찾으면.”“바로 연락할게.”하연은 태건의 불안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간식은 먹었고, 물은 가방 옆에 있어.”“알고 있어.”“화장실은.”“태건아.”하연이 낮게 불렀다.태건의 말이 멈췄다.“내가 모르는 게 생기면 물어볼게.”하연은 차분하게 말했다.“도윤이한테도.”태건은 가방 끈에서 손을 뗐다.“알았어.”도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태건에게 다가왔다.“아빠 진짜 근처 있어?”“응.”“전화하면 와?”“응.”“그럼 가도 돼.”도윤이 먼저 하연의 손을 잡고 체험대 쪽으로 걸어갔다.태건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몇 걸음 가지 않은 도윤이 뒤를 돌아봤다.태건은 손을 흔들었다.아이는 그제야 다시 앞을 봤다.태건은 박물관 건너편의 카페로 들어갔다.창가에 앉으면 출입구가 보이는 자리였다. 하연과 도윤이 밖으로 나오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그는 커피를 주문하고 휴대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65화. 같은 아침, 다른 집

#65화. 같은 아침, 다른 집아침 여섯 시 사십 분.태건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낯선 천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고개를 돌리자 민서가 침대 안쪽에서 잠들어 있었다. 느슨하게 풀린 머리카락이 베개 위에 흩어져 있었고,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은 태건의 티셔츠 끝을 가볍게 쥐고 있었다.전날 밤 두 사람은 오래 이야기했다.센터에서 있었던 일.하연과 도윤의 첫 단독 시간.민서의 프로젝트.앞으로 더 바빠질 일정.그러다 말이 끊겼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먼저 입을 맞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민서의 집이라는 사실을 의식해 몇 번이나 멈췄고, 민서는 그때마다 태건의 손을 다시 잡았다.결국 두 사람은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거창하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태건은 여전히 민서의 집 비밀번호를 몰랐고, 민서는 여전히 침대 한쪽을 혼자 쓰던 습관대로 차지하고 있었다.달라진 것이 있다면, 눈을 떴을 때 서로의 체온이 아주 가까이 남아 있다는 사실뿐이었다.태건은 민서의 손에서 티셔츠 자락을 천천히 빼냈다.침대가 흔들리자 민서가 눈을 떴다.“몇 시야?”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여섯 시 사십 분.”“알람 안 울렸는데.”“깼어.”“왜.”태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민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봤다.“불편했어?”“아니.”“그럼.”“네가 침대 다 써서.”민서가 이불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내 침대잖아.”“알아.”“불만이면 다음에는 바닥에서 자.”“다음에도 되는 거야?”민서가 대답 대신 베개를 집어 던졌다.태건은 어렵지 않게 받아 냈다.“아침부터 말 많아.”민서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태건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첫 수업 아홉 시잖아.”“알아.”“여덟 시에는 나가야 하고.”“알아.”“씻어.”“여기 내 집인데 왜 네가 깨워.”“지각할 것 같으니까.”민서는 못마땅한 얼굴로 이불을 걷어 냈다.침대에서 내려오다 바닥에 놓인 태건의 신발을 보고 멈췄다.“신발 왜 안에 있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66화. 일 년 반 뒤의 우리

#66화. 일 년 반 뒤의 우리[그때쯤에는 너랑 어디서 살고 싶은지도 같이 말하려고.]민서는 태건의 메시지를 한동안 바라봤다.일 년 반.짧다고 하기에는 많은 일이 달라질 수 있었고, 멀다고 하기에는 달력에 적을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시간이었다.민서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그날은 부산 후속 프로젝트의 첫 정식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실에서 회의 자료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태건이 보낸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어디서 살고 싶은지.같이 살 수 있는지 묻는 말과는 조금 달랐다.태건은 자신이 먼저 정한 집으로 민서를 부르지 않았다.도윤이 원하니까 함께 살자고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각자의 일을 마친 뒤 선택할 수 있는 장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회의가 끝난 뒤 민서는 답장을 보냈다.[그때 만나서 말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조금씩 말해.]태건의 답이 곧 도착했다.[왜.][일 년 반 동안 생각 안 하다가 마지막 날 결정할 거야?]잠시 뒤 전화가 걸려 왔다.“회의 끝났어?”“응.”“그럼 언제부터 말하면 돼.”“지금부터.”“전화로?”“오늘은 네 진로 상담부터 듣고.”태건은 마침 교수 연구실 앞이었다.“끝나고 갈게.”“우리 집?”“가도 돼?”민서는 잠시 뜸을 들였다.“저녁만 먹고 가.”“자고 가는 건?”“오늘은 안 돼.”“알았어.”이번에는 아쉬워하는 기색도 짧았다.태건은 전화를 끊고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교수의 책상 위에는 졸업 예정 학기와 현장 경력 인정 심사 결과가 놓여 있었다.“앉게.”태건이 맞은편에 앉자 교수는 남은 학점을 하나씩 확인했다.필수 전공 두 과목.현장 실습 대체 인정.교양 학점.졸업 논문 대신 제출할 수 있는 실무 사례 분석 보고서.“일정대로 하면 일 년 반 뒤 졸업이 가능하네.”“센터 일과 병행해도요?”“자네가 무리해서 과목을 더 넣지만 않으면.”교수는 수강 계획표에서 마지막 학기를 가리켰다.“문제는 졸업 이후야.”“센터 공개 채용에 지원할 생각입니다.”“그곳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 67화. 한 시간을 채운 뒤

# 67화. 한 시간을 채운 뒤두 번째 단독 만남은 작은 어린이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지난번 기차박물관보다 조용했고, 출입구 옆에는 보호자들이 기다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따로 있었다.하연은 약속 시간보다 칠 분 먼저 도착했다.회색 카디건에 낮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도윤에게 줄 선물도, 눈길을 끌 만한 장난감도 없었다.“엄마.”도윤이 먼저 하연을 불렀다.하연은 그 자리에서 몸을 낮췄다.“왔어?”“응. 오늘 책 볼 거야.”“어떤 책?”도윤은 등에 멘 가방을 열어 공룡 그림책을 보여 줬다.“이건 집에서 가져왔어.”“엄마한테 읽어 주려고?”“엄마가 읽어.”도윤은 당연한 듯 책을 하연에게 건넸다.하연이 웃으며 받아 들었다.태건은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했다.오전 열한 시.지난번과 같은 한 시간이었다.“도윤아.”아이가 태건을 올려다봤다.“아빠는 저기 있을 거야.”태건이 유리문 너머 휴게 공간을 가리켰다.이번에는 박물관 건너편 카페가 아니었다. 아이가 원하면 바로 찾을 수 있지만, 책을 보는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리였다.“전화하면 와?”“응.”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하연의 손을 잡고 어린이 자료실 안으로 들어갔다.지난번에는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봤다.오늘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태건은 그 모습을 끝까지 보고 나서 휴게 공간으로 향했다.가방에서 수업 자료를 꺼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하연이 문을 열고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다만 이번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정도로 불안하지 않았다.도윤은 길을 알고 있었다.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하연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지켰다.믿음은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불안해도 약속한 자리에 머무는 일에 가까웠다.자료실 안에서 도윤은 낮은 책장 사이를 걸어 다녔다.“엄마, 공룡 찾아.”“어떤 공룡?”“목 긴 거.”하연은 책등을 하나씩 읽었다.도윤이 원하는 책을 바로 찾지 못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 68화. 같은 집의 조건

# 68화. 같은 집의 조건토요일 오후, 민서의 접이식 식탁 위에는 노트북 두 대와 계산기, 빈 종이 몇 장이 놓였다.태건은 민서가 보낸 문서를 다시 열었다.[함께 살기 전에 이야기할 것.]생활비.집의 위치.도윤의 방.민서의 업무 공간.집안일.하연과 도윤의 만남.서로 혼자 있는 시간.결혼 여부와 시기.“이거 진짜 다 오늘 말할 거야?”태건이 물었다.민서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오늘 결론 내자는 거 아니야.”“그럼.”“생각이 다른 게 있는지 확인하자고.”태건은 문서 첫 번째 항목을 눌렀다.“생활비부터?”“응.”“내가 더 낼게.”민서의 표정이 곧바로 굳었다.“얼마나.”“많이.”“그게 기준이야?”“도윤이도 있잖아.”태건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나랑 도윤이가 쓰는 돈이 더 많을 테니까.”민서는 그의 대답을 듣고 조금 누그러졌다.“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그럼 됐네.”“안 됐어.”민서는 빈 종이를 끌어와 가운데 선을 그었다.“공동생활비랑 도윤이 양육비를 나눠야 해.”태건의 눈썹이 움직였다.“어떻게.”“월세랑 관리비, 공과금, 같이 먹는 식비는 우리 둘이 수입에 맞춰 나누고.”민서는 오른쪽 칸에 적었다.[도윤 양육비: 태건 책임.]“어린이집, 병원, 옷, 장난감 같은 건 네가 부담하는 거야.”“당연하지.”“내가 가끔 사 주는 건 내가 원해서 하는 거고.”“응.”“생활비 냈으니까 도윤이 돌봄까지 반씩 해야 한다는 식으로 계산하면 안 돼.”태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나중에도 하지 말자는 거야.”민서는 자신이 쓴 문장을 돌려 보여 줬다.“같이 살게 되면 경계가 흐려질 수 있으니까.”태건은 펜을 들어 그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민서의 돌봄은 의무가 아니다.]민서가 문장을 읽었다.“너무 딱딱한가.”태건이 물었다.“아니. 그대로 두자.”다음 항목은 집의 위치였다.태건은 휴대전화 지도를 열었다.“학교랑 센터 중간이면 여기쯤이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 69화. 빠지지 않는 사람

# 69화. 빠지지 않는 사람“나는 같이 안 살아?”도윤의 질문에 태건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몇 시간 전 민서와 약속했다.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을 도윤에게 먼저 말하지 않기로.그런데 자신이 생각 없이 꺼낸 한마디가 아이에게 가장 먼저 불안을 만들었다.태건은 도윤 앞에 앉았다.“아빠가 말을 잘못했어.”“나는 누나 집 못 가?”“그 얘기가 아니야.”도윤은 손에 쥔 색연필을 내려놓았다.“아빠랑 누나만 살아?”“아직 아무도 어디서 살지 정하지 않았어.”“그런데 나중에 살 집 이야기했다며.”“아빠랑 누나가 언젠가 한집에서 살 수도 있을지 이야기한 거야.”도윤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태건은 아이가 듣고 싶은 대답을 서둘러 만들어 내지 않았다.“그런 날이 오면 도윤이 생활도 함께 생각해야 해.”“내 방도?”“방이 몇 개인지, 어디에서 사는지 아직 아무것도 몰라.”도윤의 입술이 다시 내려갔다.태건은 말을 바꿨다.“그래도 아빠가 도윤이 없이 살 집을 정하지는 않아.”“왜?”“아빠랑 도윤이는 지금도 한집에서 사는 가족이니까.”“민서 누나는?”“누나는 아직 자기 집에서 살아.”“나중에는?”태건은 잠시 숨을 골랐다.“누나가 원하고, 아빠도 원하고, 도윤이가 지내기에도 괜찮은 집을 찾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할 거야.”도윤은 태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내가 싫다고 하면?”이전에도 들었던 질문이었다.태건은 같은 말을 반복하기보다 아이가 묻는 이유를 먼저 생각했다.“싫을 것 같아?”“몰라.”“뭐가 걱정돼?”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바닥에 놓인 색연필을 손가락으로 굴렸다.“누나가 오면 내 장난감 버려?”“왜 버려.”“집 작으면.”태건은 그제야 도윤이 방의 유무보다 더 구체적인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자기 물건이 없어지는 일.익숙한 생활이 바뀌는 일.민서가 들어오는 대신 자신이 밀려나는 일.“장난감 때문에 싫은 거야?”“내 침대도.”“또.”“아빠가 누나랑만 자는 거.”태건의 입이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 70화. 우리가 고른 집 [본편완결]

# 70화. 우리가 고른 집 [본편완결]민서의 휴대전화가 아침 일곱 시에 울렸다.알람 제목은 짧았다.[다음 집 이야기.]정확히 일 년 전, 태건과 함께 달력에 저장한 날짜였다.민서는 침대에 누운 채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이 집에 들어온 뒤 계절이 한 바퀴 돌았다.혼자 월세를 냈고, 공과금을 확인했고, 새벽까지 프로젝트 자료를 보다가도 스스로 노트북을 닫았다.아픈 날에는 하린에게 죽을 부탁했고, 태건에게는 아프다는 사실만 알렸다. 태건은 약을 사 들고 오고 싶어 했지만 민서가 쉬고 싶다고 하자 현관문 밖까지 오지 않았다.혼자 사는 일은 생각보다 자유로웠고, 생각보다 귀찮았다.그래도 민서는 이 시간을 건너뛰고 싶지 않았다.혼자 살아 봤기에 이제는 누군가와 사는 것을 외로움의 해결책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태건이었다.“일어났어?”“응.”“알람 봤어?”“봤어.”“오늘 이야기할 거지?”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가 묻어 있었다.민서는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봤다.“저녁에.”“왜 저녁까지 기다려.”“나 수업 있어.”“나도 알아.”“너도 출근하잖아.”태건은 반년 전 공개 채용을 거쳐 청년가족지원센터의 계약직 사례관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현장 보조가 아닌 정식 실무자로 처음 받은 명함에는 이태건이라는 이름과 직책이 함께 적혀 있었다.졸업식은 두 달 뒤였다.남은 수업은 온라인 강의 하나뿐이었고, 실무 사례 분석 보고서도 제출을 마쳤다.“퇴근하고 네 집으로 갈게.”태건이 말했다.“도윤이는?”“유치원 끝나고 하연이가 데리고 있어.”민서의 눈빛이 조금 움직였다.하연은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정해진 만남을 아무 설명 없이 취소하지 않았다.도윤과 둘이 보내는 시간은 한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늘어났고, 석 달 전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유치원 하원도 맡았다.그날도 하연이 도윤을 유치원에서 데려와 저녁을 먹인 뒤 태건에게 인계하기로 한 날이었다.“도윤이 없이 이야기하려고?”“처음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Read more
PREV
1
...
34567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