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폭군 전하, K-탑스타는 처음이시죠?: Capítulo 1 - Capítulo 10

33 Capítulos

1. 대한민국 톱스타요

“강은하 대상 확정.”시상식 레드카펫 뒤편, 대기실 모니터 아래로 실시간 댓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누군가는 드레스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오늘도 얼굴이 미쳤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당연히 또 강은하냐며 질린다는 듯 악플을 달았다.은하는 그 모든 글자를 한 번에 훑고는 립스틱이 묻지 않게 조심스럽게 빨대를 물었다.“또 욕먹네.”옆에서 스타일리스트가 거의 울상으로 말했다.“언니, 보지 말라니까요. 오늘 같은 날 왜 굳이 댓글을 봐요?”은하는 어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웃었다.“내 욕이 실시간 1위면 아직 안 죽었다는 뜻이잖아.”“그걸 그렇게 해석해요?”“그럼 울어? 마스카라 번지게.”거울 속 강은하는 완벽했다. 어깨선이 드러나는 은빛 드레스, 카메라가 가장 좋아하는 각도의 턱선, 웃을 때마다 계산처럼 반짝이는 눈. 대한민국이 사랑하고, 질투하고, 씹고, 결국 다시 클릭하는 여자.미스코리아 진 출신.국민 첫사랑으로 데뷔.지금은 가수이자 배우, 광고계의 여왕.그리고 오늘, 대상 유력 후보.대기실 문이 열리고 후배 배우 하나가 거의 창백한 얼굴로 들어왔다. 같은 소속사의 신인 배우였다. 손에 든 큐카드가 바들바들 떨렸다.“선배님… 저 진짜 토할 것 같아요.”“토하면 기사 제목 좋아지겠다. 대상 시상식서 신인 배우 긴장 끝 실신.”“선배님!”은하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나 후배의 어깨선을 바로 잡아주었다. 손끝은 빠르고 정확했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서야 덜 떨려 보이는지, 어디를 보면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지, 손은 어디에 둬야 어색하지 않은지. 은하는 그런 걸 몸으로 알았다.“숨을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천천히 빼. 기자들 눈 보지 말고 카메라 렌즈 위쪽 봐. 그리고 실수해도 웃어. 어차피 내 기사에 묻힐 거야.”후배가 멍하니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선배님은 진짜… 이상하게 위로해요.”“효과 있잖아.”그때 스태프가 문을 두드렸다.“강은하 씨, 무대 대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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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쫄면 끝이라는 십 년 차 연예인의 살벌한 본능

끼이이익.관객의 함성이 아주 잠깐, 이상하게 멀어졌다. 은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조명 장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떨어질 것처럼, 아니 이미 떨어지기 시작한 것처럼.누군가 비명을 질렀다.“은하 씨, 피하세요!”은하는 몸을 틀었다. 그러나 드레스 자락이 무대 장식에 걸렸다. 한 번의 찰나. 긴 인생에서 수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견뎌낸 그녀에게도, 그 순간만은 너무 빨랐다.빛이 쏟아졌다.소리가 무너졌다.바닥이 사라졌다.그리고…차가웠다.가장 먼저 느낀 것은 차가운 흙냄새였다. 그다음은 젖은 풀잎이 뺨에 닿는 감촉, 머리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그리고 낯설게 진한 피 냄새.은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뭐야.”네온사인도, 카메라도, 객석의 함성도 없었다. 대신 어둠 속에서 횃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무 냄새, 진흙 냄새, 말발굽이 멀어지는 소리.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드레스 자락이 축축하게 젖어 다리에 달라붙었다.은하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멈췄다.눈앞에 칼이 있었다.정확히는, 칼끝이 그녀의 목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비에 젖은 검날 위로 붉은 것이 흘렀다. 조명도 아닌 횃불빛에 반짝이는 그 색을 보고, 은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진짜 피였다.‘미쳤다. 몰래카메라야? 아니, 요즘 몰카를 이렇게까지 한다고?’숨이 턱 막혔다. 심장은 이미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은 심장보다 먼저 움직였다.“저기요.”칼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그 칼을 든 남자가 은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검은 곤룡포. 젖은 머리카락. 피가 묻은 손. 창백할 만큼 고운 얼굴에, 너무 오래 사람을 믿지 않은 눈.비현실적으로 잘생겼다.그런데 더럽게 위험해 보였다.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누구냐.”은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에 닿을 듯 말 듯한 칼끝 때문에 고개도 제대로 돌릴 수 없었다.“그쪽은요?”남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뭐라?”“아니, 보통은 먼저 자기소개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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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릎 꿇고 빌면 살려줄 거냐는 뻔뻔한 되물음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요.”“그게 살고 싶은 자의 태도냐.”“무릎 꿇고 빌면 살려주실 거예요?”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거봐.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예의 찾는 건 좀 불공평하잖아요.”빗소리가 거세졌다.남자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분노라기엔 조금 달랐다. 흥미라기엔 아직 위험했고, 당황이라기엔 너무 깊었다.은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전하라고 했죠?”“…….”“좋아요. 전하. 제가 지금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되고, 머리도 깨질 것 같고, 드레스는 망했고, 목에는 칼이 있고, 솔직히 말해서 기절하기 직전인데요.”그녀는 목 바로 앞의 칼끝을 힐끗 보았다.“그래도 제가 자객은 아니거든요. 자객이면 최소한 신발부터 편한 걸 신었겠죠.”은하의 발끝에는 반짝이는 하이힐 한 짝만 남아 있었다. 다른 한 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뒤쪽에서 누군가 아주 작게 웃음을 삼켰다.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웃음을 삼킨 군사는 즉시 영혼까지 빠져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은하는 그 장면을 보고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안도했다.‘그래. 사람들은 여기서도 웃긴 건 웃기구나.’그러나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남자가 칼끝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왔다.“네 말투가 수상하다.”“제가 원래 말투로 오해를 좀 사요.”“옷차림도 수상하다.”“그건 스타일리스트한테 따지셔야 하는데, 지금 연락이 안 되네요.”“네가 어디서 왔는지 말해라.”은하는 입술을 다물었다.‘어디서 왔냐고?’서울. 시상식장. 생방송 무대. 대상 후보석. 플래시. 팬들. 매니저. 회사. 악플. 광고. 대기실. 그 모든 것이 방금 전까지 그녀의 세계였다.그런데 이제 눈앞에는 피 묻은 왕이 있고, 목에는 칼이 있으며,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이상한 말을 할 때마다 곧 죽을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었다.은하는 처음으로 진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입안이 말랐다. 그러나 울 수는 없었다. 울면 끝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배워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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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왕궁 분실물 센터를 찾는 맨발의 뻔뻔함

은하는 끌려가듯 일어서다 한쪽 발에 하이힐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진흙 위에서 비틀거리자, 왕이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순간 은하가 본능적으로 말했다.“잠깐만요.”왕의 시선이 돌아왔다.“왜.”은하는 맨발인 한쪽 발을 들어 보였다.“저 신발 한 짝 잃어버렸는데요.”“…….”“왕궁이면 분실물 센터 같은 거 없어요?”이번에는 정말로, 누군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숨을 터뜨렸다.왕의 눈매가 사납게 휘었다. 주변이 다시 얼어붙었다. 그런데 은하는 보았다. 아주 찰나였지만, 그 남자의 입가가 분명 흔들렸다.‘웃으려다 참은 것이다.’조선의 폭군인지 뭔지 모를 저 남자가 은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봤다. 너 방금 웃참했다.’그리고 그 순간, 이혁 역시 깨달았다.그는 이 이상한 여자를 당장 죽일 수 있었다.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피 냄새 가득한 밤.비에 젖은 궁궐.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해 숨조차 죽이는 이곳에서.처음으로, 누군가 그의 앞에서 말대꾸를 했다.그것도 아주 뻔뻔하게.이혁은 다시 칼을 거두며 물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은하는 잠시 멈췄다.‘강은하.’그 이름을 말하려던 순간, 멀리서 누군가 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횃불을 든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전하! 윤 참판 댁 규수, 윤설화 아씨가 사라졌사옵니다!”은하의 눈이 커졌다.‘윤설화?’그 이름을 듣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다. 젖은 드레스, 낯선 말투, 수상한 등장. 그리고 하필 사라졌다는 양반가 규수.이혁은 천천히 은하를 바라보았다.차갑고 깊은 눈. 그 안에 위험한 호기심이 번졌다.“윤설화라.”은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지금 대답을 잘못하면 죽는다.’그런데 대답하지 않아도 죽을 것 같았다.왕이 한 걸음 다가왔다.“네가 그 이름을 훔친 것이냐.”은하는 마른침을 삼켰다.비는 계속 내렸다.횃불은 흔들렸고, 목숨은 여전히 칼끝 근처에 있었다.그리고 대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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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궁녀? 제가요?

“그럼 어디 한번 증명해 보아라.”이혁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말끝이 빗속에 젖어 사라졌는데도, 은하의 귓가에는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남았다. 증명하라니. 생방송 무대에서도, 오디션 심사장에서도, 광고주 프레젠테이션 앞에서도 그녀는 수없이 증명하며 살아왔지만,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기소개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은하는 젖은 드레스 자락을 움켜쥔 채 왕을 올려다보았다. 피 묻은 곤룡포, 빗물에 젖어 더 서늘해 보이는 얼굴, 그리고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물건의 쓰임새를 가늠하는 듯한 눈.‘얼굴은 진짜 사극 남주인데, 성격은 제작진이 악역으로 잘못 캐스팅한 수준이네.’입 밖으로 내뱉지 않은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었다.내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이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이는 쉰쯤 되었을까. 얼굴에는 궁궐 월급쟁이의 비애가 묻어 있었다. 밤중에 왕이 사람을 베고, 정체 모를 여자를 주워 오고, 그 여자가 왕에게 협상을 제안하는 상황까지 목격한 사람의 표정이었다.“전하, 우선 이 여인을 별감청으로 옮기심이 어떠하옵니까. 비를 오래 맞으면…”“죽을까 걱정되느냐.”내관은 아주 잠깐 말을 잃었다.“그, 죽으면 심문도 곤란하옵고…”은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와. 이분 사회생활 잘하시네.’이혁은 은하를 한 번 훑어보았다. 은빛 드레스는 진흙과 빗물에 엉망이 되었고, 한쪽 발은 맨발이었다. 그 꼴이 우스운지 처량한지 판단하기도 전에, 은하는 먼저 말했다.“저도 별감청인가 뭔가 거기 찬성이요. 일단 너무 춥고요, 그리고 아무리 왕궁이라도 손님을 비 맞히는 건 서비스가 좀…”“손님?”이혁의 눈썹이 꿈틀했다.은하는 곧장 말을 고쳤다.“아니, 포로. 임시 포로. 귀빈 포로 정도로 합의 보시죠.”내관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군사들은 숨을 삼켰다. 이혁은 아무 말 없이 은하를 바라보았다.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 그 침묵이 더 무서웠지만, 은하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숙이면 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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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레드카펫보다 복잡한 조선식 의복 시스템

별감청으로 향하는 길은 길고 어두웠다. 궁궐은 은하가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컸다. 화려한 세트장처럼 반짝이지 않았고, 바닥은 불친절했으며, 담장은 사람을 감싸기보다 가두는 쪽에 가까웠다. 횃불이 지나갈 때마다 기와 그림자가 검은 물결처럼 흔들렸다.은하는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카메라는 없어. 스태프도 없어. 휴대폰도 없고, 매니저도 없고, 여긴 진짜…뭐야..? 꿈이겠지? 악몽이겠지?’하지만, 진짜 조선일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완성되자마자 속이 울렁였다. 하지만 울렁이는 속을 붙잡기도 전에, 앞서가던 내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여인, 전하 앞에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좋소.”“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상황이 자꾸 말을 시켜요.”“전하께서 한 번 노하시면…”“많이 무서우세요?”내관은 주변을 한 번 살피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무서운 정도가 아니오. 이 궁에서 전하의 심기를 거스르고도 멀쩡한 사람은 거의 없소.”“저 방금 꽤 거슬리게 한 것 같은데요.”“그러니 내가 지금 속이 타는 것이오.”은하는 그제야 내관을 제대로 보았다. 눈가에는 피곤이 깊게 내려앉았지만, 목소리에는 악의가 없었다. 이 사람은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 때문에 벌어질 후폭풍까지 포함해 걱정하는 얼굴이었다.“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나는 장 내관이라 하오.”“장 내관님.”“내관에게 님이라니. 참으로 괴이한 여인이오.”“전 원래 서비스직 분들 존중합니다.”“서, 서비스직?”장 내관의 표정이 또다시 무너졌다. 은하는 설명을 포기했다. 현대어를 하나 꺼낼 때마다 상대의 영혼이 반쯤 빠져나갔다. 조선에서 살아남으려면 말부터 고쳐야 할 것 같았다.별감청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왔다. 은하는 거의 쓰러지듯 안쪽에 앉았다. 다행히 방 안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마른 천과 물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궁녀 둘이 들어와 은하의 옷차림을 보고 동시에 굳었다.“어머…”“세상에…”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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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왕에게 작명권을 요구하는 톱스타의 당돌함

“참 곱다…”은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고마워요.”“예?”“칭찬한 거잖아요.”궁녀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쳤다.“소, 소인이 어찌 감히…”“칭찬은 감히 해도 돼요. 사람 기분 좋아지는 건데.”그 말에 궁녀가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혼나는 줄 알았는데, 도리어 웃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아이처럼. 은하는 그 표정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조금 이상하게 내려앉았다.이곳은 참 피곤한 세상이었다. 웃는 것도, 말하는 것도, 칭찬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곳.그때 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전하 납시오.”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궁녀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장 내관도 허리를 깊게 숙였다. 은하만 반 박자 늦게 주변을 보고 따라 하려다, 치마폭에 발이 걸려 거의 넘어질 뻔했다.이혁이 문 안으로 들어서다 그 장면을 보았다.은하는 엎드리다 말고 어정쩡하게 멈춰 있었다. 무릎은 꿇었는데 허리는 반쯤 떠 있고, 손은 어디 둬야 할지 몰라 공중을 헤매는 중이었다.이혁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은하는 이를 악물고 속삭였다.“이게 맞아요?”장 내관이 거의 들리지 않게 말했다.“고개를 더 숙이시오.”“이러다 목 나가요.”“나가는 것이 목이면 다행이오.”은하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이혁이 천천히 걸어와 상석에 앉았다. 피 묻은 곤룡포는 갈아입었는지 검은 비단 도포 차림이었다.피 냄새는 사라졌지만, 위험한 느낌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오히려 마른 옷을 입으니 얼굴이 더 또렷해져서 짜증 날 정도였다.“고개를 들어라.”은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이혁의 시선이 그녀의 옷차림에 닿았다. 현대 드레스를 입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조선의 옷을 걸쳤는데도, 이 계집은 조선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빛이 달랐다. 허리를 숙이는 법은 몰라도, 사람을 보는 법은 너무나 또렷했다.“이제야 사람 꼴이 되었군.”은하는 입꼬리를 눌렀다.“전하도 아까보다 피가 덜 묻어서 보기 좋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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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중전 오디션이라는 미친 판에 뛰어든 톱스타

궁 밖은 모른다. 이 시대에서 혼자 살아남을 방법도 모른다. 돈도 없고, 신분도 없고, 말투도 이상하다. 하지만 궁 안에는 적어도 먹을 것과 잠잘 곳이 있으며, 왕이라는 미친 권력자가 눈앞에 있다.위험하지만 가장 안전한 곳.은하는 아주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말했다.“그럼 제가 그 윤설화라는 사람이면요?”방 안의 모두가 굳었다.이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방금은 네 이름도 모른다 하더니.”“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기억이 좀 왔다 갔다 할 수도 있죠.”“편리한 기억이군.”“살다 보면 편리한 게 최고예요.”이혁은 비웃듯 입꼬리를 움직였다.“네가 윤설화라면, 내일 간택 예비 심문에 나가야 한다.”“간택이요.”“그래.”“그거 혹시…”은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최대한 담담한 척 물었다.“중전 뽑는 오디션 같은 거예요?”“오디션?”이혁이 그 낯선 단어를 되풀이했다. 은하는 곧장 설명을 바꿨다.“그러니까, 여러 후보 중에 한 명 뽑는 거잖아요.”“대강은 그렇다.”은하의 눈빛이 달라졌다.지금까지는 살아남기 위해 버텼다. 그런데 목표가 생기는 순간, 그녀는 달라졌다. 무대가 주어지면 본능적으로 계산이 돌아갔다. 관객이 누구인지,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경쟁자가 몇 명인지, 어떤 콘셉트로 먹힐지.중전 간택.이건 미친 소리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그녀가 이 조선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생존 카드였다.은하가 조용히 물었다.“거기서 뽑히면 제일 안전해요?”이혁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말을 멈췄다.“안전?”“네. 죽을 확률 낮아지냐고요.”장 내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궁녀들도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보통 여인이라면 중전의 명예나 가문의 영광을 물었을 자리에서, 이 여자는 너무 노골적으로 목숨을 물었다.이혁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이 계집은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뻔뻔하고 시끄럽게, 그러나 누구보다 빠르게 판을 읽으며.“중전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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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죽을죄보다 살고 싶어 마주하는 무대의 리허설

“와…”장 내관이 낮게 말했다.“여인.”“네?”“아니, 윤설화 아씨라 불러야겠군.”은하가 어색하게 웃었다.“아직 확정은 아닌 것 같은데요.”“방금 전하께서 그 이름으로 부르셨소. 이 궁에서는 그보다 강한 확정도 드물지.”그 말은 이상하게 무거웠다.궁녀들이 은하를 보는 눈빛도 달라져 있었다. 이상한 여자에서, 어쩌면 정말 윤설화일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혹은 왕이 직접 살려둔 수상한 존재로. 은하는 그 시선들을 느끼며 천천히 앉았다.“그럼 내일 그 예비 심문이라는 거, 뭐 하는 건데요?”장 내관은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가문, 예법, 시서, 언행, 몸가짐을 본다오. 간택에 오를 규수라면 반드시 익혀야 할 것들이지.”“시서?”“시와 글.”“예법?”“절하는 법부터 말하는 법, 걷는 법, 앉는 법까지.”은하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노래, 연기, 춤, 인터뷰, 광고 멘트, 팬서비스, 눈물 연기, 생방송 대처, 악플 대응. 그녀가 할 줄 아는 것은 많았다. 하지만 조선 양반가 규수의 예법은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장 내관님.”“말씀하시오.”“내일까지 그거 다 배울 수 있어요?”장 내관은 매우 솔직한 얼굴로 말했다.“불가능하오.”“그럼 가능하게 만들어야죠.”“어찌 말이오?”은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무대 전날 밤샘 리허설. 촬영장 대본 수정. 갑작스러운 라이브 요청. 생방송 사고. 그녀는 늘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버텨 결과를 만들어냈다.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다만 이번엔 실패하면 기사 제목이 아니라 부고가 뜰 뿐.은하가 치마폭을 걷어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절하는 법부터 알려주세요.”궁녀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아씨, 절은 고개를 이렇게 숙이시고…”은하는 따라 했다. 그런데 중심이 맞지 않아 옆으로 휘청였다. 궁녀가 놀라 손을 뻗었고, 장 내관은 한숨을 삼켰다.“다시.”은하는 이를 악물었다.“오케이. 다시.”“오… 무엇?”“아, 알겠습니다. 다시 하겠습니다.”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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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높은 자리에 앉아 거짓과 상처를 지켜보겠다는 선언

그리고 다음 날.예비 심문장에는 이미 규수들이 모여 있었다.비단옷을 곱게 차려입은 양반가 처녀들. 하나같이 고개를 알맞게 숙이고, 손끝을 가지런히 모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사이로 은하가 들어섰다.분홍 저고리와 남색 치마. 어젯밤 내내 연습한 걸음.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끌었다. 너무 곧고, 너무 당당하고, 너무 조선답지 않아서. 규수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번졌다.“저이가 윤설화라지?”“몰락한 윤 참판 댁 여식?”“어딘가… 기이하지 않니?”은하는 그 시선들을 전부 느꼈다.‘좋아. 관객 입장 완료.’상석 쪽 발이 걷혔다.그리고 이혁이 모습을 드러냈다.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은하도 따라 숙였다.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았다. 장족의 발전이었다.이혁의 시선이 잠시 그녀에게 닿았다.은하는 고개를 숙인 채, 아주 작게 입꼬리를 올렸다.‘봤죠? 연습했어요.’말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그 표정이 전해진 듯했다.이혁은 상석에 앉아 무심히 입을 열었다.“시작하라.”예비 심문이 시작되었다.첫 번째 규수는 가문을 또렷하게 밝혔다. 두 번째 규수는 고운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세 번째 규수는 바느질 솜씨를 칭찬받았다.모든 것이 조용하고 반듯했다. 은하는 점점 더 분명하게 깨달았다.이 판은 조용한 사람이 이기는 판이 아니다.조용한 사람들 사이에서, 기억나는 사람이 이기는 판이다.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왔다.“윤설화.”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마폭을 밟지 않으려 조심했고, 손끝을 가지런히 모았다. 어젯밤 배운 대로 고개를 숙였다.심문관이 물었다.“그대는 중전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예상 질문과 달랐다. 장 내관에게 들은 예법, 가문, 시서가 아니었다. 은하는 잠시 침묵했다.모두가 그녀를 보았다.이혁도 그녀를 보았다.은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중전은…”그녀는 아주 짧게 숨을 골랐다.“전하 옆에서 제일 잘 보여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심문장 안이 술렁였다.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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