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네.”“내일 초간택에서 죽지 않으시려면, 오늘 밤 배워야 할 것이 많소.”은하가 책자를 보았다.“그거 다요?”“이건 아주 일부요.”“장 내관님.”“말씀하시오.”“저 혹시 중전 말고 다른 안전한 직업 없어요? 예를 들면… 궁중 전속 가수라든가.”“가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궁에서 안전한 직업은 없소.”“냉정하시네.”“사실이오.”은하는 한숨을 쉬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좋아요. 해봅시다.”그날 밤, 은하는 조선식 자기소개를 배웠다.“소녀 윤설화, 감히 전하와 대비마마의 은혜를 입어…”“잠깐만요. 감히가 너무 자주 나오는데요.”“궁에서는 감히가 자주 필요하오.”“자존감 떨어지는 단어네요.”“자존… 무엇?”“아니에요. 계속하세요.”그다음은 걷는 법이었다. 은하는 치마폭을 밟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다 썼고, 매화는 옆에서 거의 숨을 죽이며 따라왔다. 세 번째 걸음에서 은하가 비틀거리자 장 내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아씨, 궁의 규수는 발소리가 크면 아니 됩니다.”“제가 원래 무대에서 힐 신고도 소리 안 나게 걷거든요. 근데 이 치마가 너무 길어요.”“치마가 문제가 아니라 걸음이 문제요.”“팩트 폭력은 조선에도 있네요.”“팩트…?”매화는 이제 은하가 이상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해석을 포기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은하는 계속 배웠다. 절하는 법, 대답하는 법, 시선을 내리는 법, 차를 받는 법, 웃지 않고 웃는 법.가장 어려운 건 마지막이었다.“웃지 않고 웃는 건 대체 뭐예요?”장 내관이 아주 진지하게 설명했다.“입꼬리는 조금 올리되 마음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오.”은하는 기가 찼다.“그거 완전 연예계 미소인데요.”“연예계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아씨께서는 그것만큼은 잘하실 듯하오.”“인정하기 싫은데 맞아요.”밤이 깊어질수록 은하는 점점 조선 규수의 껍질을 뒤집어썼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말투는 자꾸 삐끗했고, 걸음은 묘하게 당당했으며, 눈빛은 절대 다소곳해지지 않았다. 그
최신 업데이트 : 2026-10-08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