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강은하. 미스코리아 진 출신에 가수와 배우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그녀가 어느 날 조선으로 떨어진다. 눈을 뜬 곳에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몰락한 양반가 규수 윤설화라는 낯선 이름 하나뿐. 살아남기 위해 윤설화가 된 은하는 얼떨결에 왕비 간택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조선에서 가장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와 마주친다. 사람을 믿지 않고, 웃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면 칼부터 드는 왕.
Lihat lebih banyak다음 날 아침, 문답 과제가 열리는 서연당은 어제의 앞뜰과 분위기가 달랐다. 향낭처럼 손끝으로 고르는 시험이 아니라, 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규수들은 각자 준비한 답을 속으로 되뇌며 긴장했고, 상궁들은 한층 더 엄격한 눈으로 후보들을 살폈다.은하는 전날 밤 외운 구절들을 머릿속으로 흥얼거렸다. 입 밖으로 내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이혁이 하지 말랬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게 문제였다.매화가 뒤에서 속삭였다.“아씨, 노래는 아니 되옵니다.”“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얼굴에 쓰여 있사옵니다.”“진짜 표정 관리 시급하네.”그때 별당 안으로 백시윤이 들어섰다. 그는 오늘도 완벽하게 다정한 얼굴이었다. 은하와 눈이 마주치자, 아주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은하도 짧게 고개를 숙였다.그 모습을 상석에 앉은 이혁이 보았다.백시윤은 웃었다.은하도 웃었다.이혁의 손끝이 서책 위에서 멈췄다.또 웃는다.그 생각이 들자마자 이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후원에서 이미 들었다. 사회생활. 무기. 진심이 아니다. 그러니 신경 쓸 일이 아니다.그런데 신경이 쓰였다.대비마마가 문답을 시작했다.“중전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첫 번째 규수는 순종이라 답했다. 두 번째 규수는 효라 답했다. 세 번째 규수는 가문의 화합이라 답했다. 답들은 모두 모범적이고, 아름답고, 안전했다.은하는 속으로 생각했다.‘다들 정답지만 외웠네.’마침내 은하의 차례가 왔다.“윤설화.”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대비마마가 물었다.“그대는 중전의 가장 큰 덕목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은하는 잠시 침묵했다. 준비한 답은 있었다. 장 내관이 밤새 외우게 한 무난한 답도 있었다. 그러나 그 답을 말하면, 그녀는 이 방의 다른 규수들 사이에 묻힐 것이다.‘그럼 죽는다.’‘정확히는, 조용히 사라진다.’은하는 고개를 들었다.“버티는 힘이라 생각하옵니다.”서연당 안이 조용해졌다.대
“전하, 사람 살려두는 이유가 너무 취향 위주인데요.”“문제 있느냐.”“아니요. 제 입장에선 굉장히 감사한 취향입니다.”이혁의 입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아주 작았다. 하지만 이번엔 은하도, 매화도, 장 내관도 동시에 보았다.전하께서 웃으셨다.‘정말로. 그것도 아주 잠깐.’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은 동시에 굳었다. 이혁은 그 반응을 보고 곧장 표정을 지웠다.“무엇을 보느냐.”매화는 고개를 바닥에 박을 듯 숙였고, 장 내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아무것도 보지 못하였사옵니다.”은하는 차마 말을 참지 못했다.“저는 봤는데요.”이혁의 눈빛이 그녀에게 꽂혔다.“무엇을.”“전하 웃으신 거.”방 안이 다시 얼어붙었다.장 내관은 ‘끝났다’는 얼굴이었고, 매화는 거의 울상으로 은하를 보았다. 그러나 은하는 이상하게 겁이 덜 났다. 이혁의 웃음이 너무 짧고 어색해서, 그가 조금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이혁은 한동안 은하를 보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착각이다.”“아닌데요.”“네가 잘못 본 것이다.”“제가 표정 보는 직업이었습니다.”“그 직업 이야기 그만해라.”“부끄러우세요?”이혁이 한 걸음 방 안으로 들어왔다.은하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공기가 달라졌다. 장난스럽던 분위기가 얇은 실처럼 팽팽해졌다. 이혁은 은하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늘이 그녀의 무릎 위로 떨어졌다.“윤설화.”“예, 전하.”“내가 웃었다는 말을 밖에 흘리면.”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그 입을 다시는 노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말은 살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은하는 그 안에서 아주 희미한 민망함을 읽었다. 협박이라기보다 들키기 싫은 사람의 방어에 가까웠다.은하는 최대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비밀로 하겠습니다.”“믿을 수 없군.”“전하 웃음 1호 목격자로서 책임감을 갖겠습니다.”“윤설화.”“예. 입 다물겠습니다.”이혁은 그녀를 한참 보았다.그녀가 정말 입을 다물겠다는 얼굴인지, 아니면 이미 머릿속으로 궁
방 안의 공기가 다시 이상해졌다. 매화는 설렘과 공포가 섞인 얼굴이었고, 장 내관은 오늘도 자신의 수명이 줄어드는 소리를 듣는 표정이었다.은하는 잠시 고민했다.여기서 거절하면 이상하다. 하면 더 이상하다. 하지만 이혁은 이미 흥미를 보였다. 왕이 흥미를 보인 순간, 무대는 열렸다.은하는 책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조금 전 붙였던 선율로 구절을 읊었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그러다 리듬이 붙자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맑아졌다. 조선식 창도 아니고, 기생의 노래도 아니고, 현대 발라드의 호흡이 섞인 이상한 시문이었다.짧은 구절이 끝났을 때, 방 안은 조용했다.이혁은 말이 없었다.은하는 살짝 민망해져서 먼저 말했다.“이상하죠.”“이상하다.”“너무 바로 인정하시네요.”“그러나 기억에는 남는다.”은하가 고개를 들었다.그건 분명한 칭찬이었다. 이혁답지 않게 돌려 말하지도 않았다. 은하는 잠시 멍해졌다가, 곧 입꼬리를 올렸다.“드디어 칭찬하셨다.”“칭찬이라 하지 않았다.”“방금은 맞습니다. 제가 압니다.”“네가 무엇을 안다는 것이냐.”“칭찬 받을 때 느낌이 있어요. 제가 원래 많이 받아봐서.”이혁은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매화가 아주 작게 웃음을 삼켰고, 장 내관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떨지 않으려 애썼다.이혁이 그 둘을 보자, 두 사람은 즉시 굳었다.은하는 그 장면을 보고 웃음을 참다가 입술을 깨물었다.“전하, 다들 무서워하잖아요.”“무서워해야지.”“왜요?”“왕이니.”“왕이면 무조건 무서워야 해요?”질문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혁은 순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평생 그렇게 배웠다. 왕은 두려움으로 질서를 세운다. 약하면 물어뜯기고, 웃으면 얕잡히며, 믿으면 배신당한다. 왕이 무서워야 사람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그런데 이 여자는 마치 이상하다는 듯 묻고 있었다.‘왕이면 무조건 무서워야 하냐고.’이혁은 그 물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편했다. 그러나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햇빛 아래 궁궐은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안쪽에서 누군가는 향낭 하나로 사람을 죽이려 했다. 겉은 고운 비단인데 속은 칼밭. 조선 궁궐은 생각보다 연예계와 닮아 있었다.“오늘 밤엔 좀 자도 되겠지?”은하가 묻자, 매화는 애매한 표정으로 눈을 피했다.“아씨, 장 내관께서 저녁에 다시 예법을 보아야 한다 하셨사옵니다.”“또?”“내일은 시서와 문답이 있을 예정이라…”은하의 얼굴이 굳었다.“시서라면 시랑 글 말하는 거지?”“예.”“나 큰일 났네.”매화가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예. 많이 큰일이옵니다.”이제는 매화도 은하를 조금 닮아가고 있었다.저녁이 되자 장 내관은 정말로 두툼한 책자와 죽은 눈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이미 이틀 만에 십 년쯤 늙은 얼굴이었다.“아씨.”“장 내관님, 저 혹시 글을 못 읽는 척하면…”“간택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소.”“그럼 읽을 줄 아는 척하면?”“들킬 가능성이 높소.”“둘 다 별론데요.”“그래서 오늘 밤 외우셔야 하오.”은하는 책자 더미를 보았다. 한문, 시문, 궁중 문답. 현대에서 광고 콘티도 외웠고, 대본도 외웠으며, 일본어 가사도 발음만 따서 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글자가 그림처럼 보였다.“장 내관님.”“말씀하시오.”“저 조선 기준으로 문맹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장 내관이 눈을 감았다.“그 말씀은 내일 절대 하시면 아니 되오.”“알겠습니다. 속으로만 생각할게요.”“속으로도 크게 생각하지 마시오. 얼굴에 다 드러나오.”매화가 조심스럽게 웃음을 삼켰다. 은하는 억울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나 그렇게 티 나?”“많이 나옵니다.”“아씨께서는 전하 앞에서도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실 때가 있사옵니다.”“그건 좀 위험한데.”“많이 위험하옵니다.”은하는 한숨을 쉬고 책자를 펼쳤다.“좋아요. 해봅시다. 대신 제가 아는 방식으로 외울게요.”“아씨가 아는 방식이란…”“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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