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화리를 청했더니, 정왕이 미쳤다: Chapter 1 - Chapter 10

23 Chapters

1화

“어디 보자. 정왕비마마의 손은 얼마나 고우신가.”쉰을 훌쩍 넘긴 사내가 윤소율의 손목을 움켜쥐더니, 그녀가 미처 몸을 피하기도 전에 제 앞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은 기름으로 닦아 놓은 듯 번들거렸고, 비단 허리띠 위로 불거진 배는 앉은 자세에서도 무릎에 닿을 만큼 거대했다. 굵은 손가락마다 금가락지를 낀 사내는 소율의 손바닥을 뒤집어 보다가 이미 터진 물집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렀다.“허어, 이것 좀 보게. 손에 물집이 잡혔어. 정왕비께서 빨래라도 하셨단 말인가?”날카로운 통증에 소율의 손끝이 움찔했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높이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가 배를 흔들며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술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던 손님들도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장 대인, 저 여인이 사흘 동안 청홍루의 빨랫감을 도맡아 씻었다 하오. 어제는 술상까지 치웠다던데, 정왕부에서 귀하게 자란 왕비마마께서 제법 일을 잘하시는 모양이오.”“정왕비가 빨래를 하고 술상을 치운다니, 이런 구경을 어디 가서 또 하겠는가. 정왕께서 참으로 재미있는 선물을 보내 주셨구먼.”장만석은 흡족한 듯 웃으며 소율의 손목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금가락지의 모서리가 살갗을 짓누르자 소율은 이를 악물었지만, 사내의 얼굴에는 오히려 그녀가 아파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손을 놓으십시오.”소율은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애쓰며 말했으나, 장만석은 못 들은 척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았다.“손이 이리 작고 고운데, 사내를 모시는 일은 얼마나 잘하실지 궁금하군. 정왕께서는 이런 여인을 곁에 두고도 어찌 다른 계집에게 빠지셨을까?”그가 능글맞게 웃으며 소율의 턱을 향해 손을 뻗자 그녀는 재빨리 얼굴을 돌렸다.“제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십시오.”그 순간 장만석의 눈빛이 사나워졌다.“아직도 정왕부 안채에 앉아 계신 줄 아시는 모양이군.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투를 쓰시는가?”사내는 소율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당겼고, 그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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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화려한 자줏빛 비단옷을 입은 월향은 금비녀가 여럿 꽂힌 머리를 가볍게 기울이며 소율을 훑어보았다. 짙은 연지를 바른 입술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소율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저는 술을 따르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그러시겠지요. 마마께서는 원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시는 분이라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밤은 다를 것입니다.”월향은 소율의 부어오른 뺨을 살피다가 손님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장 대인, 아직 손대시면 곤란합니다. 오늘 밤 이 여인의 하룻밤은 가장 높은 값을 부르시는 분께 드리기로 하였으니까요.”대청에 술렁임이 번졌고, 장만석은 방금 전의 분노도 잊은 듯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소율을 바라보았다.“값을 매긴다고? 정왕비의 하룻밤을?”“그러하옵니다. 정왕 전하께서 직접 허락하신 일이옵니다.”소율은 월향을 돌아보았다.“거짓말입니다. 전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실 리 없습니다.”월향은 기다렸다는 듯 소매 안에서 접힌 문서를 꺼냈다. 문서 끝에 찍힌 붉은 인장을 보는 순간 소율의 숨이 턱 막혔다.삼 년 동안 정왕부의 장부와 명령서에서 수없이 보아 온 이태겸의 인장이었다. 혼례 날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혼인 문서에도 찍혀 있었던 바로 그 인장을 소율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월향은 문서를 펼쳐 보이며 명령을 읽어 내려갔다.“윤씨가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 청홍루의 처분에 맡긴다. 손님을 받게 하여도 무방하다.”소율의 입술이 하얗게 질리자 월향은 문서를 다시 접으며 비웃었다.“이제 믿으시겠습니까? 마마께서 그리 기다리시던 전하의 답이 왔으니 기뻐하셔야지요.”주위에서 웃음소리가 터졌지만 소율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그녀의 눈앞에는 오직 붉은 인장만이 남아 있었다.혼례 날에는 두 사람의 인연을 맺는 표식이었던 그 인장이 이제는 자신을 다른 사내에게 내주는 증표가 되어 있었다.남편은 자신을 지켜 주기는커녕, 다른 사내가 값을 매기도록 허락한 것이었다.***청홍루에 끌려온 첫날만 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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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채령은 힘겹게 눈을 뜨는 척하다가 이태겸의 손등에 뺨을 기댔다.“전하…… 소첩은 괜찮사옵니다. 다만 정실마마께서…….”그녀의 시선이 소율에게 향하자 이태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윤소율, 네가 보낸 탕약이라 하더구나.”소율은 허리를 숙이며 사실대로 대답했다.“그러하옵니다. 채령의 몸이 허하다기에 의원에게 처방을 받아 보냈습니다.”“그 약에 독이 들었다.”순간 소율은 말을 잃었다.채령은 이태겸의 손을 붙잡고 가늘게 고개를 저었다.“전하, 정실마마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시옵니다. 소첩이 무엇이라고…….”그녀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소첩이 전하의 총애를 받는 것이 마마께 죄송하기는 하였으나, 설마 소첩을 이리 미워하실 줄은…….”이태겸의 얼굴이 굳어지자 소율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전하, 결코 아닙니다. 탕약은 의원이 직접 달였고 제 시비가 가져다주었습니다. 의원과 시비를 불러 확인하시면 사실을 아실 수 있습니다.”그러나 이태겸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네가 보낸 약을 마시고 채령이 쓰러졌다. 그런데도 변명을 늘어놓을 셈이냐?”“변명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저를 믿지 않으셔도 좋으니, 부디 사실만은 확인해 주십시오.”그 순간 채령이 가늘게 신음하자 이태겸은 곧장 몸을 돌렸다.“어디가 아프냐?”채령은 그의 팔을 붙잡고 애처롭게 웃었다.“전하께서 소첩 때문에 마마와 다투시는 것이 더 아프옵니다. 소첩이 조금만 덜 욕심을 부렸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그녀가 눈물을 한 방울 흘리자 이태겸은 손끝으로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느냐.”채령은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였다.“전하께서 이리 다정하시니 소첩이 어찌 욕심을 버릴 수 있겠사옵니까.”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율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짧은 눈빛에 담긴 차가운 조롱을 소율은 분명히 보았지만, 이태겸은 이미 채령을 품에 안아 일으키고 있었다.“윤씨를 끌어내라. 채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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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그럼 무엇이냐? 정왕비라 하였느냐? 그렇다면 정왕께 사람을 보내 달라 해 보거라. 그분이 오시면 나도 기꺼이 무릎을 꿇겠다.”월향은 비웃음을 남기고 돌아섰다.소율은 차가운 우물물에 손을 담갔다. 초겨울의 물은 살을 에는 듯했고, 처음에는 손끝만 아프던 것이 시간이 지나자 손가락 전체의 감각이 둔해졌다.비단에 묻은 술 얼룩을 문지르는 동안 손바닥이 벗겨졌고, 나무통의 거친 가장자리에 손등이 긁혔다. 해가 중천에 올랐을 무렵 잠시 허리를 펴자 등줄기가 뻣뻣하게 굳어 있었으며, 젖은 손을 치맛자락에 닦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그때 지나가던 기녀 하나가 그녀를 보며 혀를 찼다.“정왕비도 별수 없네. 그래도 얼굴은 곱지 않니? 저런 얼굴이면 손님들이 좋아하겠어.”소율은 그 말을 듣지 못한 척 다시 빨랫감을 집어 들었지만, 손가락이 떨려 비단을 제대로 움켜쥘 수 없었다.셋째 날에는 술상을 치우게 했다.청홍루의 대청은 밤이 지나도 술 냄새가 가시지 않았고, 바닥에는 엎질러진 술과 음식 찌꺼기가 뒤섞여 있었다. 손님들이 벗어 놓은 신발과 비단 허리띠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소율은 그것들을 하나씩 치우며 빈 술병을 모았다.그때 한 사내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너, 새로 들어온 아이냐?”소율이 비켜 달라고 하자 사내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어라? 정왕비 아니신가? 정왕비께서 이런 곳에서 술상을 치우시다니, 정왕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이시란 말인가?”그는 웃으며 손에 든 술잔을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그럼 내게 술 한 잔 따라 보시오.”소율은 술잔을 바라보다가 자신은 손님을 모시는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사내는 그녀의 침묵을 재미있어하며 술잔을 흔들었다.“그럼 여기는 왜 왔소? 정왕께서 버리셨다더니 사실인가 보군.”소율은 대답하지 못했다.그날 밤 그녀는 다시 정왕부로 서찰을 보냈다. 자신이 독을 넣지 않았다는 사실과 이곳에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적었으며, 끝에는 단 한 줄을 덧붙였다.*전하, 소첩을 이곳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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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같은 날 오후, 정왕부의 채령당에는 달콤한 침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민채령은 거울 앞에 앉아 검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고 있었다. 비단처럼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머리칼 사이로 희고 가는 목덜미가 드러났고, 얇은 연분홍 저고리는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주름졌다.그녀는 일부러 비녀를 꽂지 않은 채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었다. 이태겸은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민 모습보다 이렇게 조금 흐트러진 차림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채령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살피다가 시비에게 물었다.“전하께서는 아직도 서재에 계시느냐?”시비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채령은 빗을 내려놓고 입술에 연지를 덧발랐다.“윤씨가 아직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지? 참으로 고집스러운 여자야.”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전하를 모셔 오너라. 몸이 좋지 않아 뵙고 싶다 전해.”시비가 물러가자 채령은 침상에 기대앉아 옷깃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잠시 후 이태겸이 들어오자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어지러운 척 이마를 짚었고, 이태겸은 재빨리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받쳤다.“아직 몸이 성치 않다 하지 않았느냐. 어찌 무리하느냐?”채령은 그의 품에 기대어 수줍게 웃었다.“전하께서 오셨는데 누워서 맞을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소첩이 얼마나 기다렸는데요.”이태겸은 그녀를 침상에 앉히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이 없다는 말을 듣자 채령은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전하께서 오시니 병이 나은 모양이라고 속삭였다.그녀는 그의 손끝을 놓지 않은 채 요 며칠 처소에 오래 계시지 않아 서운했다며 눈을 내리깔았다.이태겸이 정왕부에 일이 많았다고 대답하자 채령은 잠시 망설이는 척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정실마마 때문이겠지요?”이태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확인한 채령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소첩이 괜한 말을 하였습니다. 마마께서 소첩 때문에 기루에 가 계신다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편치 않사옵니다. 차라리 소첩이 벌을 받았더라면…….”이태겸은 그녀의 손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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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이태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다.채령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그런데 전하, 정실마마께서는 기루에서도 계속 전하의 이름을 부르신다 하옵니다. 전하께서 자신을 데리러 오실 것이라 믿고 계신다 하니 소첩도 마음이 아프옵니다.”이태겸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채령은 그의 손등을 가볍게 쓸었다.“다만 마마께서 한 번쯤은 전하의 노여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래야 다시는 소첩에게…….”그녀는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고, 이태겸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그만 울라고 달랬다.채령은 그의 품에서 낮게 흐느끼며 전하께서 마마를 벌하시는 것조차 괴롭다고 속삭였다.이태겸은 한참 동안 그녀를 달래다가 문밖의 호위를 불렀다.“청홍루에 전하라. 윤씨가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곳의 처분에 맡기겠다.”채령의 손가락이 그의 옷깃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이태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그는 자신이 내리려는 명령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청홍루는 기루였고, 그곳의 처분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를 리 없었다.그러나 윤소율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를 더욱 오만하게 만들었다.그녀는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다.남편이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 것이다.그는 그렇게 믿었다.“손님을 받게 하여도 좋다.”호위의 얼굴이 굳었다.“전하, 정실마마이십니다.”이태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내 명을 다시 묻게 하지 마라.”호위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간 뒤 채령은 조심스럽게 이태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전하…… 정말 그리하셔도 괜찮겠사옵니까? 소첩은 그저 전하께서 후회하실까 두렵사옵니다.”이태겸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윤소율이 먼저 고개를 숙이면 끝날 일이라고 말했다.채령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이태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아주 작게 웃었다.***청홍루의 대청에는 어느새 손님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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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월향이 기뻐하며 값을 외치는 동안 소율은 장만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대인께서는 딸이 있으시지요. 혼례 날 제게 따님을 소개하셨습니다. 올해 열여덟이라 하셨지요.”장만석의 얼굴이 굳었다.소율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대인의 따님이 제 자리에 서 계신다면, 다른 사내가 은자 서른 냥을 내놓았다고 기뻐하시겠습니까?”객석에서 누군가 헛기침을 하자 장만석의 얼굴이 붉어졌다.“감히 내 딸을 입에 올려?”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월향이 재빨리 소율의 팔을 붙잡았다.“입을 다물어라! 네가 경매를 망칠 셈이냐?”소율은 월향의 손을 뿌리쳤다.“처음부터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월향은 수하들에게 눈짓했고, 두 사내가 소율에게 다가왔다.소율은 뒷걸음질 치며 소매 안에 감춰 둔 은비녀를 움켜쥐었다.청홍루에 끌려온 날 다른 패물은 모두 빼앗겼지만, 어머니가 남긴 이 비녀만은 옷의 안감에 감추어 두었던 것이다.수하 하나가 그녀의 팔을 붙잡자 소율은 비녀를 뽑아 그의 손등을 그었다.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고, 소율은 피 묻은 비녀를 쥔 채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그러나 월향이 붙잡으라고 고함치자 사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소율은 비녀를 휘두르며 버텼지만, 나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몸으로는 오래 저항할 수 없었다.수하 하나가 그녀의 팔을 비틀자 비녀가 바닥에 떨어졌고, 다른 사내가 어깨를 짓눌렀다.소율은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결국 두 무릎이 마룻바닥에 닿고 말았다.객석에서는 정왕비가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는 웃음소리가 터졌다.소율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끝내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월향은 바닥에 떨어진 은비녀를 집어 들고 손끝에서 빙글 돌렸다.“이까짓 물건 하나 믿고 버틴 것이냐? 귀한 물건인가 보구나.”소율은 비녀를 바라보았다.“돌려주십시오. 어머니의 유품입니다.”월향은 비웃으며 비녀를 소매 안에 넣었다.“그럼 더더욱 잘 보관해야겠네.”소율은 마지막 남은 어머니의 유품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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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대청 입구에는 짙은 남색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허리에는 장식이 거의 없는 검집이 걸려 있었다. 도포 자락에는 먼지 한 점 묻어 있지 않았고, 사람들을 둘러보는 눈빛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그는 대청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무릎을 꿇고 있는 소율에게 시선을 멈추었다.백도하였다.장만석이 얼굴을 찌푸렸다.“어느 집 자제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먼저 값을 불렀소.”도하는 그를 바라보았다.“경매라 하지 않았습니까. 더 높은 값을 부르면 되는 일이지요.”장만석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백 냥이나 낼 만큼 이 여인에게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비아냥거렸다.도하는 잠시 소율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뺨은 부어 있었고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으며, 치마 끝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두 사내가 아직도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사람의 값을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상한 것 아닙니까.”장만석의 얼굴이 굳었지만 도하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월향을 향해 걸어갔다.“은자 백 냥을 내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월향이 무엇이든 말씀하시라고 하자 도하는 소율을 붙잡고 있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저 여인의 손을 놓으십시오.”월향은 조금 전 소율이 손님에게 상처를 입혔다며 변명하려 했지만, 도하는 그 손님이 먼저 손을 댄 것을 보았다고 낮게 대답했다.“내가 본 것을 다시 설명해야 합니까?”월향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그녀가 수하들에게 손짓하자 소율의 팔을 붙잡고 있던 사내들이 물러났고, 소율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곧 어지러움이 밀려와 기둥을 붙잡아야 했다.도하는 그녀에게 다가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부인,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소율은 낯선 사내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차분했지만 그녀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은자 백 냥을 낸 사내였으니 장만석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그녀가 대답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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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하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소율은 그의 뒤를 따라 대청을 벗어났다.청홍루의 안쪽 객실은 지나치게 화려했다.붉은 비단 휘장이 침상을 둘러싸고 있었고 향로에서는 달콤한 향이 피어올랐다. 침구에는 금실로 수놓은 모란이 가득했으며, 탁자 위에는 술병과 과일이 놓여 있었다.소율은 문턱을 넘자마자 걸음을 멈추었다.이곳이 어떤 방인지 모를 리 없었다.백 냥을 낸 손님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마련된 방이었다.그녀가 본능적으로 문 쪽을 돌아보자 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문을 열어 둘까요?”소율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그러면……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내 사람들이 밖에 있습니다.”도하는 문밖의 호위에게 의원을 부르고 따뜻한 물과 음식을 준비하라고 명했다.호위가 물러가자 그는 객실 안으로 들어와 향로의 뚜껑을 덮었다. 향이 너무 진하다고 중얼거린 뒤에는 침상으로 가지 않고 창가의 의자를 문 가까이 옮겨 놓았다.그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의자 위에 올려놓으며 추우면 걸치라고 말한 뒤, 물잔을 가져와 탁자 끝에 놓았다.소율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물잔을 들었다.물을 마시자 목구멍이 아팠다. 나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몸은 작은 물 한 모금에도 반응했고, 그녀는 물잔을 내려놓은 뒤 마른 입술을 닦았다.도하는 그녀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나리, 언제…… 제게 다가오실 생각이십니까?”그 질문을 하는 동안 소율은 두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백 냥을 내셨으니, 오늘 밤은 나리의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도하는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잠시 침묵했다.“부인, 오늘 밤을 샀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부인을 산 것은 아닙니다.”소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그는 침상이 아니라 문을 바라보았다.“내가 산 것은 이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권리입니다. 오늘 밤 부인께서는 쉬시면 됩니다. 내가 문을 지키겠습니다.”소율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바라보았다.“왜…… 어찌 그런 일을 하십니까?”도하는 잠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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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밤이 깊어지자 청홍루의 대청에서는 여전히 웃음소리와 악기 소리가 들려왔다.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질 때마다 소율은 몸을 움츠렸고, 문가에 앉아 책을 펼쳐 놓은 도하는 그 소리를 확인하듯 고개를 들었다.소율은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백 공자, 혹시…… 제가 잠들면 마음을 바꾸실 수도 있습니까?”그 질문을 하고 나서 소율은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말을 했는지 깨달았지만, 도하는 웃지 않았다.“아닙니다.”짧고 단호한 대답이었다.소율이 약조할 수 있느냐고 다시 묻자 도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본 그는 걸음을 멈추더니 자신의 검을 풀어 문가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내 검을 이곳에 두겠습니다. 내가 부인께 다가가려 한다면 소리를 지르십시오. 밖에 있는 내 호위가 들어올 겁니다.”소율은 한동안 검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정왕부에서는 남편의 명령이 곧 법이었다. 그가 화를 내면 하인들은 고개를 숙였고, 그가 자신을 벌하라 명하면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그런데 백도하는 자신을 막을 방법부터 알려 주고 있었다.소율은 천천히 침상에 누웠지만 쉽게 눈을 감을 수 없었다.붉은 휘장이 흔들릴 때마다 대청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사내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장만석의 거친 손과 월향의 웃음, 객석에서 올라가던 은전의 값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이태겸의 붉은 인장이었다.소율은 이불을 움켜쥐었다.숨이 가빠지면서 가슴이 조여 왔다.도하가 책을 내려놓고 그녀를 불렀지만 소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자 월향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정왕께서 직접 허락하셨다.*소율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아니야…… 전하께서 정말 저를…….”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쏟자 도하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가까이 가지 않았다.그는 물잔을 새로 채워 침상에서 조금 떨어진 탁자에 놓은 뒤, 물이 여기 있으니 필요하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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