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도하는 다시 걸음을 옮겼고 소율은 그의 뒤를 따라 대청을 벗어났다.
청홍루의 안쪽 객실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붉은 비단 휘장이 침상을 둘러싸고 있었고 향로에서는 달콤한 향이 피어올랐다. 침구에는 금실로 수놓은 모란이 가득했으며, 탁자 위에는 술병과 과일이 놓여 있었다.
소율은 문턱을 넘자마자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 어떤 방인지 모를 리 없었다.
백 냥을 낸 손님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마련된 방이었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문 쪽을 돌아보자 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문을 열어 둘까요?”
소율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내 사람들이 밖에 있습니다.”
도하는 문밖의 호위에게 의원을 부르고 따뜻한 물과 음식을 준비하라고 명했다.
호위가 물러가자 그는 객실 안으로 들어와 향로의 뚜껑을 덮었다. 향이 너무 진하다고 중얼거린 뒤에는 침상으로 가지 않고 창가의 의자를 문 가까이 옮겨 놓았다.
그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의자 위에 올려놓으며 추우면 걸치라고 말한 뒤, 물잔을 가져와 탁자 끝에 놓았다.
소율은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물잔을 들었다.
물을 마시자 목구멍이 아팠다. 나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몸은 작은 물 한 모금에도 반응했고, 그녀는 물잔을 내려놓은 뒤 마른 입술을 닦았다.
도하는 그녀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나리, 언제…… 제게 다가오실 생각이십니까?”
그 질문을 하는 동안 소율은 두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백 냥을 내셨으니, 오늘 밤은 나리의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도하는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잠시 침묵했다.
“부인, 오늘 밤을 샀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부인을 산 것은 아닙니다.”
소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그는 침상이 아니라 문을 바라보았다.
“내가 산 것은 이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권리입니다. 오늘 밤 부인께서는 쉬시면 됩니다. 내가 문을 지키겠습니다.”
소율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바라보았다.
“왜…… 어찌 그런 일을 하십니까?”
도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율의 손목에 남은 자국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부인을 그냥 두고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면 이유가 되겠습니까?”
소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삼 년 동안 남편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였고, 마지막에는 기루에 팔리는 굴욕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내가 자신을 위해 백 냥을 내고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친절이 오히려 두려웠다.
언제 마음을 바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하는 그녀의 경계심을 알아차린 듯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의원이 오면 먼저 상처를 보이십시오. 그 뒤에는 원하시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소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가 이 방에서 주무시지 않을 것이냐고 물었다.
도하는 같은 방에 있을 것이지만 문가에 앉아 있겠다고 대답했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은 채 의자를 문 가까이 옮겨 놓았다.
잠시 후 의원이 도착하자 도하는 소율에게 상처를 보이겠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방 밖으로 나갔다.
의원은 소율의 손바닥에 박힌 작은 사기 조각을 빼내고 약을 발랐다. 부어오른 뺨에는 차가운 찜질을 하도록 했으며,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몸에는 따뜻한 죽부터 먹이라고 당부했다.
진료가 끝난 뒤 도하가 다시 들어와 음식을 바꾸도록 명하자 잠시 후 따뜻한 쌀죽과 맑은 국이 들어왔다.
소율은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바라보다가 숟가락을 들었지만 곧 내려놓았다.
도하가 입맛에 맞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렇게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이…… 나흘 만이라서요.”
도하의 눈빛이 달라졌지만 그는 놀란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천천히 드십시오.”
소율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첫 숟가락을 삼키자 목이 메었고, 두 번째 숟가락을 뜨려는 순간 눈물이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율은 그 침묵이 고마웠다.
누군가 자신이 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끝내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죽을 먹었고, 그릇이 반쯤 비었을 때 비로소 손끝의 떨림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인은 난처한 얼굴로 총관을 바라보았다.총관이 눈을 감았다가 뜨며 가져가라고 명하자 하인은 결국 보자기 끝을 붙잡았다.소율은 놓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서 연분홍 비단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그 순간 오래된 자수실 하나가 끊어졌다.툭.소율은 그 소리에 숨을 멈추었다.어머니가 직접 수놓은 흰 매화의 꽃잎 하나가 풀어지고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했다.하인은 그 틈을 타 보자기를 빼앗아 함 안에 넣었다.소율은 빈손을 내려다보았다.청홍루에서는 낯선 사내들이 어머니의 은비녀를 빼앗았고, 정왕부에서는 남편의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마지막 유품까지 가져갔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전하께 전하십시오.”총관이 허리를 숙였다.“제가 어머니의 유품을 돌려받기 위해 화리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총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함을 들고 물러났다.***연목은 총관이 떠난 뒤에야 울음을 터뜨렸다.“마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 전하께서 어찌 마마께 이리까지…….”소율은 창가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롱에는 붉은 봉인이 붙어 있었고, 방문 밖에는 호위들이 서 있었다.정왕부에 들어온 뒤 삼 년 동안 그녀가 정성껏 가꾸었던 방이 이제는 감옥이 되어 있었다.“연목아.”소율이 조용히 부르자 연목은 급히 눈물을 닦았다.“예, 마마.”“내가 오늘 전하께 화리를 청하였다.”연목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소율은 천천히 돌아섰다.“전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 혼수를 빼앗고 이곳에 가두셨지.”연목은 입술을 떨었다.“마마, 이제 어찌하시려 하옵니까?”소율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청홍루의 대청에서 자신을 구해 주던 백도하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은자 백 냥을 내고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자신에게 어디로 갈지 결정하라고 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라고 말했다.소율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연목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내가 부탁할 일이 있다.”연목이
“그 이름으로 저는 삼 년 동안 기다렸고, 끝내 기루에서 다른 사내에게 값을 매겨졌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돌려드리겠습니다.”소율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화리를 허락해 주십시오.”이태겸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밖의 호위들에게 명했다.“정실을 안채에 가두어라.”소율이 고개를 들었다.“전하?”“내 허락 없이는 처소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하라. 시비들의 출입도 제한하고, 서찰을 주고받는 일도 금한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소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특히 백도하에게 사람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소율의 눈빛이 흔들렸다.이태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그 사내를 믿고 화리를 청한 것이라면 큰 착각을 한 것이다. 백도하가 아무리 권세가 있다 한들 내 아내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네가 정왕부의 문을 나서려 한다면, 그 사내부터 죄를 물을 것이다.”소율은 그를 바라보았다.자신을 기루에 보낸 사람이 이제는 자신을 구해 준 사내를 해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백 공자께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이태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그러니 네가 얌전히 있으면 된다.”그는 호위들에게 다시 명했다.“데려가라.”***소율이 안채로 돌아왔을 때 연목은 마당에서 빨랫감을 걷고 있었다.정왕부에 들어온 뒤 줄곧 소율을 모셨던 시비는 주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광주리를 떨어뜨렸다.“마마!”연목은 달려와 소율 앞에 무릎을 꿇었다.“마마, 정말 돌아오셨사옵니까? 소인은…… 소인은 다시는 마마를 뵙지 못할 줄 알았사옵니다.”소율은 연목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일어나거라.”그러나 연목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녀는 소율의 부어오른 뺨과 손목에 감긴 붕대를 보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어찌 이리되셨사옵니까? 누가 감히 마마께 이런 짓을…….”소율은 연목을 일으켜 세우며 조용히 말했다.“울지 마라. 나는 살아 돌아왔다.”연목은 눈물을 닦으면서도 소율의
소율은 숨을 멈추었다.“나는 너를 밀지 않았다.”그러나 채령은 이미 울고 있었다.“마마를 원망하지 않사옵니다. 다만 아이만은…… 부디 아이만은 무사해야 하옵니다.”그녀는 이태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전하, 소첩이 아이를 잃으면 어찌 살아가겠사옵니까?”이태겸은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이 소율에게 향했다.“윤소율.”소율은 그 눈빛을 알아보았다.나흘 전 채령이 독이 든 탕약을 마셨다고 쓰러졌을 때와 똑같은 눈빛이었다.이미 모든 죄가 자신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의 얼굴이었다.“전하, 저는 채령을 밀지 않았습니다.”이태겸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네가 끝내…….”그는 이를 악물었다.“내 아이까지 해치려 한 것이냐?”***의원이 도착하기까지 정청은 소란스러웠다.채령은 이태겸의 품에 안겨 자신의 처소로 옮겨졌고, 소율은 호위들에게 둘러싸인 채 그 자리에 남겨졌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채령이 넘어지던 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채령은 분명 자신에게 다가왔다.소율은 손을 잡히지 않으려고 물러섰을 뿐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손끝 하나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가 있었다.그런데 채령은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린 사람처럼 계단 아래로 넘어졌다.소율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독이 든 탕약.청홍루.그리고 이제는 아이.채령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을 이용해 소율을 죄인으로 만들었다.잠시 후 이태겸이 정청으로 돌아왔다.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채령의 몸이 좋지 않다.”소율은 고개를 들었다.“의원께서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놀라서 태기가 불안정해졌다고 한다.”소율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그렇다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습니까?”이태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지금 무엇을 의심하는 것이냐?”“사실을 묻는 것입니다. 의원께서 직접 확인하셨는지…….”“그만!”이태겸의 고함에 소율은 입을 다물었다.그는 그녀
그녀는 이태겸의 얼굴을 살폈다.정왕의 표정에는 분노뿐 아니라 불편한 죄책감이 떠올라 있었다.채령은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이태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전하…… 사실 소첩이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 있사옵니다.”이태겸이 고개를 숙였다.“무슨 일이냐?”채령은 눈을 내리깔았다.“혹시나 전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 두려워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그녀는 이태겸의 손등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었다.“하지만 이제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사옵니다. 소첩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일이어서…….”이태겸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채령아, 대체 무슨 일이냐?”채령은 대답 대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전하께서 소첩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조해 주시면 말씀드리겠사옵니다.”이태겸은 그녀를 끌어안았다.“내가 너를 어찌 버리겠느냐.”채령은 그의 품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소첩의 몸에…… 전하의 아이가 들었사옵니다.”이태겸의 움직임이 멈췄다.“아이?”채령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의원에게도 조심스레 물었사오나, 소첩의 몸이 달라진 것이 분명하옵니다. 전하께서 기뻐하실까 두려우면서도…… 소첩은 너무도 행복하였사옵니다.”이태겸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채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전하, 소첩이 아이를 낳으면 전하께서는 더욱 소첩을 사랑해 주시겠사옵니까?”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소첩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사옵니다. 그저 전하의 아이를 품고, 전하의 곁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을 뿐이옵니다.”이태겸은 그녀를 끌어안았다.“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내 아이를 품었다면 더욱 귀히 여길 것이다.”채령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그녀의 입가에는 아무도 보지 못할 만큼 작은 미소가 번졌다.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다.***채령은 이
아니, 오히려 윤소율이 자신을 해치려 했다는 증거만 생긴다면 그녀를 정왕부에서 완전히 쫓아낼 수도 있었다.채령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이제 가 보자꾸나.”***정청의 문이 열리자 민채령은 문턱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소율의 얼굴을 보는 순간 놀란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마마…… 어찌 얼굴이 이리되셨사옵니까?”채령은 황급히 다가오려다가 어지러운 척 몸을 흔들었다.이태겸이 곧장 그녀를 붙잡았다.“채령아, 아직 몸이 성치 않은데 어찌 이곳까지 왔느냐?”채령은 그의 품에 기대어 힘겹게 웃었다.“정실마마께서 돌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겠사옵니까. 소첩 때문에 그리 고생하셨다 하니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사옵니다.”그녀는 이태겸의 가슴에 손바닥을 얹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전하, 소첩이 오지 말았어야 했사옵니까?”이태겸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대답했다.채령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소첩은 그저 전하께서 보고 싶었사옵니다. 몸이 좋지 않아도 전하의 얼굴을 뵈면 나을 것 같아서…….”그녀는 이태겸의 옷깃을 가볍게 붙잡았다.“오늘은 소첩의 곁에 조금 더 계셔 주시면 아니 되옵니까?”이태겸의 얼굴이 누그러졌다.“네 몸이 먼저다. 무리하지 말거라.”채령은 수줍게 웃으며 그의 품에 더욱 가까이 기대었다.소율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삼 년 동안 수없이 보아 온 광경이었다.채령은 언제나 이태겸이 자신에게 화를 내려고 할 때면 눈물을 흘렸고, 그가 다른 일에 마음을 쓰려 하면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그리고 이태겸은 언제나 그녀의 말을 믿었다.채령은 소율의 시선을 느끼자 뒤늦게 놀란 듯 몸을 떼어 냈다.“마마 앞에서 소첩이 무례를 범하였사옵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였다.“마마, 정말 죄송하옵니다. 소첩이 조금만 더 조심하였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소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채령은 그녀의 침묵을 확인하더니 다시
“그것도 혼수에 포함된 물건이 아니더냐?”“그러하오나 재물로 셈할 물건이 아닙니다.”“그렇다면 더욱 왕부에 두어야겠구나.”소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전하…….”“네가 화리를 거두어들이면 돌려주마.”그는 마치 당연한 조건을 내건 사람처럼 말했다.“정실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약조하면 네 물건을 모두 돌려줄 것이다. 하지만 끝내 나가겠다고 고집한다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소율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청홍루에서 어머니의 은비녀를 빼앗겼을 때보다 더 깊은 절망이 밀려왔다.그때는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유품을 빼앗았지만, 지금은 남편이 그것을 볼모로 삼고 있었다.“전하께서는 제가 어머니의 유품 때문에 화리를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네게 소중한 물건이라 하지 않았느냐.”“그러하옵니다. 제게 남은 가장 소중한 물건입니다.”소율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시 전하의 아내로 살 수는 없습니다.”이태겸의 얼굴이 굳었다.그는 총관에게 명했다.“정실의 처소를 봉하고, 혼수와 패물은 모두 내 허락 없이는 꺼내지 못하게 하라.”소율은 눈을 감았다.어머니가 수놓은 매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러나 그녀는 끝내 화리를 거두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민채령은 정청에서 벌어진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시비가 달려와 정실마마께서 화리를 청하셨다고 전하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화리?”채령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윤소율이 스스로 정왕부를 떠나겠다고 한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도 없었다.그러나 시비가 이태겸이 화리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자 그녀의 웃음이 사라졌다.“전하께서 거절하셨다고?”“그러하옵니다. 정실마마께서 거듭 청하셨으나 끝내 허락하지 않으셨고, 몹시 노하셨다 하옵니다.”채령은 손가락으로 찻잔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문질렀다.이상했다.이태겸은 늘 윤소율을 귀찮아했다. 정실이 무엇을 하든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녀가 울며 매달려도 냉정하게 돌아섰다.그런데 정작 윤소율이 떠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