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정왕 이태겸의 정실로 살아온 윤소율에게 남은 것은 모욕과 상처뿐이었다. 남편은 측실을 품에 안고 그녀에게 술을 따르게 했고, 억울한 누명에도 정실인 아내를 벌했다. 끝내 소율이 화리서를 내밀자 태겸은 그것을 찢으며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는 넌 절대 떠나지 못한다.” 목숨을 걸고 정왕부를 벗어난 소율을 구한 이는 상단주 백도하. 그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선택할 자유를 주었다. 소율이 도하의 곁에서 웃기 시작하자, 아내를 버렸다고 믿던 정왕은 미쳐 갔다. 이제 그는 목숨도 걸고 그녀를 되찾으려 한다. 음모가 드러나고 후회가 시작되어도 태겸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도하마저 위험에 빠뜨리는 광기 앞에서 소율은 선택해야 한다. 소율이 원하는 것은 그의 후회가 아니라, 빼앗기지 않을 삶과 사랑이었다.
View More하인은 난처한 얼굴로 총관을 바라보았다.총관이 눈을 감았다가 뜨며 가져가라고 명하자 하인은 결국 보자기 끝을 붙잡았다.소율은 놓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서 연분홍 비단이 팽팽하게 당겨졌다.그 순간 오래된 자수실 하나가 끊어졌다.툭.소율은 그 소리에 숨을 멈추었다.어머니가 직접 수놓은 흰 매화의 꽃잎 하나가 풀어지고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했다.하인은 그 틈을 타 보자기를 빼앗아 함 안에 넣었다.소율은 빈손을 내려다보았다.청홍루에서는 낯선 사내들이 어머니의 은비녀를 빼앗았고, 정왕부에서는 남편의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마지막 유품까지 가져갔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전하께 전하십시오.”총관이 허리를 숙였다.“제가 어머니의 유품을 돌려받기 위해 화리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총관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함을 들고 물러났다.***연목은 총관이 떠난 뒤에야 울음을 터뜨렸다.“마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사옵니까. 전하께서 어찌 마마께 이리까지…….”소율은 창가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롱에는 붉은 봉인이 붙어 있었고, 방문 밖에는 호위들이 서 있었다.정왕부에 들어온 뒤 삼 년 동안 그녀가 정성껏 가꾸었던 방이 이제는 감옥이 되어 있었다.“연목아.”소율이 조용히 부르자 연목은 급히 눈물을 닦았다.“예, 마마.”“내가 오늘 전하께 화리를 청하였다.”연목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소율은 천천히 돌아섰다.“전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 혼수를 빼앗고 이곳에 가두셨지.”연목은 입술을 떨었다.“마마, 이제 어찌하시려 하옵니까?”소율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청홍루의 대청에서 자신을 구해 주던 백도하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는 은자 백 냥을 내고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자신에게 어디로 갈지 결정하라고 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라고 말했다.소율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녀는 연목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내가 부탁할 일이 있다.”연목이
“그 이름으로 저는 삼 년 동안 기다렸고, 끝내 기루에서 다른 사내에게 값을 매겨졌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돌려드리겠습니다.”소율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화리를 허락해 주십시오.”이태겸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밖의 호위들에게 명했다.“정실을 안채에 가두어라.”소율이 고개를 들었다.“전하?”“내 허락 없이는 처소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하라. 시비들의 출입도 제한하고, 서찰을 주고받는 일도 금한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소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특히 백도하에게 사람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소율의 눈빛이 흔들렸다.이태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그 사내를 믿고 화리를 청한 것이라면 큰 착각을 한 것이다. 백도하가 아무리 권세가 있다 한들 내 아내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네가 정왕부의 문을 나서려 한다면, 그 사내부터 죄를 물을 것이다.”소율은 그를 바라보았다.자신을 기루에 보낸 사람이 이제는 자신을 구해 준 사내를 해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백 공자께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이태겸의 입가가 일그러졌다.“그러니 네가 얌전히 있으면 된다.”그는 호위들에게 다시 명했다.“데려가라.”***소율이 안채로 돌아왔을 때 연목은 마당에서 빨랫감을 걷고 있었다.정왕부에 들어온 뒤 줄곧 소율을 모셨던 시비는 주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광주리를 떨어뜨렸다.“마마!”연목은 달려와 소율 앞에 무릎을 꿇었다.“마마, 정말 돌아오셨사옵니까? 소인은…… 소인은 다시는 마마를 뵙지 못할 줄 알았사옵니다.”소율은 연목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일어나거라.”그러나 연목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녀는 소율의 부어오른 뺨과 손목에 감긴 붕대를 보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어찌 이리되셨사옵니까? 누가 감히 마마께 이런 짓을…….”소율은 연목을 일으켜 세우며 조용히 말했다.“울지 마라. 나는 살아 돌아왔다.”연목은 눈물을 닦으면서도 소율의
소율은 숨을 멈추었다.“나는 너를 밀지 않았다.”그러나 채령은 이미 울고 있었다.“마마를 원망하지 않사옵니다. 다만 아이만은…… 부디 아이만은 무사해야 하옵니다.”그녀는 이태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전하, 소첩이 아이를 잃으면 어찌 살아가겠사옵니까?”이태겸은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의 눈빛이 소율에게 향했다.“윤소율.”소율은 그 눈빛을 알아보았다.나흘 전 채령이 독이 든 탕약을 마셨다고 쓰러졌을 때와 똑같은 눈빛이었다.이미 모든 죄가 자신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린 사람의 얼굴이었다.“전하, 저는 채령을 밀지 않았습니다.”이태겸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네가 끝내…….”그는 이를 악물었다.“내 아이까지 해치려 한 것이냐?”***의원이 도착하기까지 정청은 소란스러웠다.채령은 이태겸의 품에 안겨 자신의 처소로 옮겨졌고, 소율은 호위들에게 둘러싸인 채 그 자리에 남겨졌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채령이 넘어지던 순간을 이해할 수 없었다.채령은 분명 자신에게 다가왔다.소율은 손을 잡히지 않으려고 물러섰을 뿐이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손끝 하나 닿지 않을 만큼의 거리가 있었다.그런데 채령은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린 사람처럼 계단 아래로 넘어졌다.소율은 그 장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독이 든 탕약.청홍루.그리고 이제는 아이.채령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을 이용해 소율을 죄인으로 만들었다.잠시 후 이태겸이 정청으로 돌아왔다.그의 얼굴은 아까보다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채령의 몸이 좋지 않다.”소율은 고개를 들었다.“의원께서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놀라서 태기가 불안정해졌다고 한다.”소율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그렇다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습니까?”이태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지금 무엇을 의심하는 것이냐?”“사실을 묻는 것입니다. 의원께서 직접 확인하셨는지…….”“그만!”이태겸의 고함에 소율은 입을 다물었다.그는 그녀
그녀는 이태겸의 얼굴을 살폈다.정왕의 표정에는 분노뿐 아니라 불편한 죄책감이 떠올라 있었다.채령은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이태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전하…… 사실 소첩이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일이 있사옵니다.”이태겸이 고개를 숙였다.“무슨 일이냐?”채령은 눈을 내리깔았다.“혹시나 전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 두려워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그녀는 이태겸의 손등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었다.“하지만 이제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사옵니다. 소첩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일이어서…….”이태겸의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채령아, 대체 무슨 일이냐?”채령은 대답 대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전하께서 소첩을 버리지 않겠다고 약조해 주시면 말씀드리겠사옵니다.”이태겸은 그녀를 끌어안았다.“내가 너를 어찌 버리겠느냐.”채령은 그의 품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소첩의 몸에…… 전하의 아이가 들었사옵니다.”이태겸의 움직임이 멈췄다.“아이?”채령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확실하지 않아 의원에게도 조심스레 물었사오나, 소첩의 몸이 달라진 것이 분명하옵니다. 전하께서 기뻐하실까 두려우면서도…… 소첩은 너무도 행복하였사옵니다.”이태겸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채령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손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전하, 소첩이 아이를 낳으면 전하께서는 더욱 소첩을 사랑해 주시겠사옵니까?”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소첩은 다른 것은 바라지 않사옵니다. 그저 전하의 아이를 품고, 전하의 곁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을 뿐이옵니다.”이태겸은 그녀를 끌어안았다.“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내 아이를 품었다면 더욱 귀히 여길 것이다.”채령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그녀의 입가에는 아무도 보지 못할 만큼 작은 미소가 번졌다.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다.***채령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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