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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사유: 대표님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1 - チャプター 30

40 チャプター

21화. 이사회 안건지

나는 참석 요청서 아래쪽까지 읽은 뒤 종이를 서류철에 넣었다.“그럼 제가 설명할 순서로 묶을게요.”“네.”“질문도 제가 먼저 답하고요.”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내게 온 질문은 내가 답하겠습니다.”나는 이사회실 위치가 적힌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모르는 길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디에 서야 하는지만 달라졌다.“이번에는 회의 시작해도 안 나가겠네요.”“끝날 때까지 계십시오.”나는 서류철을 내 쪽으로 당겼다.‘확인. 이번엔 내 자리도 있다.’«▲»7월 28일 화요일, 온빛타워 18층에 도착했을 때는 이사회실 문이 닫혀 있었다.나는 검정 재킷 앞자락을 펴고 가방에서 안경을 꺼냈다. 출입증이 재킷에 제대로 달려 있는지 확인하다가 손을 내렸다.방문증이었다.예전 출입증을 대는 자리에서 방문증을 받아 온 게 조금 낯설었다. 안내 직원은 내 회사 이름을 묻고 종이달이라고 적었다.그때부터 가방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선배님.”비서실 쪽에서 찬영이 나왔다. 서류 가방을 들지 않은 찬영은 처음 봤다. 대신 양손에 자료 묶음을 들고 있었다.“오셨습니까.”“네. 자료 받으셨어요?”“받았습니다. 참석자별로 배부했습니다. 발표용 파일도 열어 봤습니다.”“글자 깨진 데는요?”“없었습니다.”찬영은 손에 남은 자료를 내려다봤다.“선배님 것은 안쪽에 놓을까요?”“제가 들고 갈게요.”자료를 받아 들자 종이 모서리가 손바닥에 닿았다. 아침에 종이달에서 채 대표가 확인한 최종본이었다.채 대표는 마지막 장까지 넘겨 보고 내게 돌려줬다.우리 거 예쁘다는 말을 하려다가, 오늘은 예쁜 이유도 잘 말해 달라고 했다.나는 자료 위에 붙은 내 이름을 확인했다.『종이달 브랜드팀장 대행 원지유』찬영도 그 줄을 봤다.“직함 확인했습니다.”“긴가요?”“전부 읽었습니다.”“오늘도 그렇게 불러 주시면 돼요.”“네, 선배님.”나는 찬영을 봤다.찬영은 잠깐 멈췄다가 자세를 바로 했다.“공적인 자리에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됐다. 여기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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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협업 제안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해서 손을 뻗었다.문이 다시 열렸다. 나는 타고 나서야 휴대폰 화면을 껐다. 가방 손잡이를 잡은 손이 조금 미끄러졌다.‘이유. 물으면 말한다.’층수 표시가 내려갔다.방금은 내가 숫자를 설명했다. 다음에는 저 사람이 설명할 차례였다.나는 메시지 창을 다시 열었다가 닫았다. 복도에 서서 물을 얘기는 아니었다.종이달에 도착하자 채 대표가 내 가방보다 얼굴을 먼저 봤다.“어떻게 됐어요?”“매각 안건은 보류됐어요. 납품 진행 자료와 채권 검토 내용을 더 내야 해요.”채 대표의 어깨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채권이면…….”“계약서 원문부터 같이 봐야겠어요.”채 대표는 책상 서랍에 손을 넣었다. 안쪽을 더듬던 손이 한참 나오지 않았다.나는 가방에서 발표 자료를 꺼내 놓고 기다렸다.«▲»8월 4일 화요일, 채 대표가 3층 회의실에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왔다.모서리가 닳아 있었고, 투명 덮개에는 종이 가루가 붙어 있었다. 채 대표는 그걸 손바닥으로 털다가 그만뒀다.“찾는 데 오래 걸렸어요. 그때 서류를 따로 묶어 뒀더라고요.”나는 안경을 쓰고 서류철을 받았다.맨 앞에는 종이달 창업 둘째 해에 작성한 계약서가 있었다. 푸른연필 이름 옆에 지창모의 이름이 보였다.“이때 3억 원을 받으신 거죠?”“네. 첫 제품 팔고 다음 걸 만들 때였어요.”채 대표는 빈 의자를 당겼다. 앉고도 손을 무릎에 내려놓지 못했다.“인쇄비를 내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요. 주문은 들어왔는데 입금은 뒤였고요. 종이는 먼저 사야 했어요.”“그래서 푸른연필에 가셨어요?”“지 대표가 먼저 연락했어요. 우리 디자인 좋다고. 같이 키워 보자고.”나는 첫 장의 금액을 확인하고 다음 장을 넘겼다.채 대표가 종이 끝을 붙잡았다가 놓았다.“그때는 빌리는 돈으로만 생각했어요. 갚으면 되는 줄 알았어요.”“전환 조항은 설명을 들으셨고요?”“들었어요. 못 갚으면 지분으로 바꿀 수 있다고.”채 대표가 입술을 눌렀다.“설명을 못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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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근로 계약서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나는 책상 위 협업 제안서를 바로 놓았다.전화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조건도 안 듣고요?”“말씀하신 조건 들었습니다. 저는 종이달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지창모가 짧게 웃었다.“생각 바뀌면 연락해요.”“네. 통화 마치겠습니다.”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펜을 들었다.문의 내용 마지막 줄에 납품 일정표 첨부라고 적었다. 쓰던 글자 뒤에 이어 쓰려니 간격이 조금 벌어졌다.‘연봉 두 배. 들었다. 거절했다. 이제 일정.’옆자리에서 은채가 의자를 돌렸다.“누구예요?”“푸른연필 지 대표님이요.”“왜요?”“오라고 하셨어요.”은채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제안서를 들고 일어났다.“안 간다고 했어요. 제품 자료 같이 확인할까요?”은채가 돌렸던 의자를 제자리로 붙였다.“네. 저 여기 색상별로 묶었어요.”나는 은채 모니터 옆에 섰다. 첫 장에는 다이어리 표지가 크게 들어가 있었다. 그 아래 납품 가능한 품목과 수량이 적혀 있었다.“이 수량은 대표님하고 확인했어요?”“네. 예쁜 것만 넣지 말라고 하셔서요.”“예쁜 건 맨 앞에 넣으라고 하셨잖아요.”“그래서 맨 앞에만 넣었어요.”우리는 첫 장을 그대로 두고 다음 장부터 고쳤다.«▲»8월 10일 월요일, 내 책상 위에 못 보던 물건이 있었다.작게 접은 두꺼운 종이였다. 앞면에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브랜드팀장 원지유』가방을 내려놓다가 멈췄다.유의 마지막 획이 조금 길었다. 팀의 받침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가까이 보니 아래에 눌러 쓴 자국도 남아 있었다.채 대표가 자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너무 작아요?”나는 명패를 들지 않고 몸을 숙였다.“아니요.”“책상에 놓으니까 생각보다 작아서. 더 크게 쓸까?”은채가 내 뒤에서 들여다봤다.“대표님, 이거 제가 다시 써 드릴까요? 글자 간격 맞춰서 출력하면 돼요.”채 대표가 자기 손을 봤다.“그럴까. 끝이 좀 삐뚤지?”나는 종이 양쪽을 잡고 책상 안쪽으로 옮겼다. 서류를 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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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비품 반납서

“제 물건이요?”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빌린 겁니다.”“언제요?”“입사 첫날입니다.”가방 끈을 고쳐 잡던 손이 멈췄다.첫날 가져간 물건을 마지막 근무일도 지나서 돌려주겠다는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었다.‘아니. 반납 기한. 한참 지났다.’“그걸 아직 갖고 계세요?”“네.”“뭔데요?”“토요일에 보여 드리겠습니다.”나는 출입문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지금 말씀하시면 토요일까지 덜 궁금할 텐데요.”“그럼 지금 말씀드릴까요?”대답이 너무 빨랐다.나는 잠깐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 토요일에 보여 주겠다는 말을 붙잡고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바로 선택권이 돌아왔다.“아니요. 토요일에 볼게요.”“알겠습니다.”“대신 제가 두고 온 물건도 가져올게요. 서랍에 개인 서류철 하나 남겼어요.”“같이 찾으시면 됩니다.”시환이 내 손에서 가방으로 시선을 옮겼다.“오늘 계약서는 잘 넣으셨습니까?”“네. 안 구겨졌어요.”“그럼 들어가세요.”나는 출입문을 열었다가 돌아봤다.“토요일에 봬요.”“내일도 봅니다.”‘맞다. 출근한다. 월요일이었다.’나는 문을 잡은 채 웃었다.“내일도 봬요.”«▲»8월 15일 토요일, 온빛타워 18층 복도는 평일보다 조용했다.안내 데스크에서 방문 확인을 마치고 올라오니 비서실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문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익숙한 책상에 익숙하지 않은 등이 앉아 있었다.찬영이었다.서류 가방을 옆에 세워 두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내 구두 소리에 고개를 든 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선배님, 오셨습니까.”“오늘도 출근하셨어요?”“대표님이 오신다고 하셔서 출근했습니다.”내 뒤에서 시환이 들어왔다.“오지 말라고 했는데.”찬영이 자세를 바로 했다.“그 말은 명령이 아니라 권고로 들렸습니다.”나는 입술을 눌렀다.시환은 찬영의 책상 앞에 멈췄다.“안찬영 씨.”“네, 대표님.”“오늘 근무 없습니다. 퇴근하세요.”찬영이 화면 오른쪽 아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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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매각 검토 보고서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 번 더 읽었다.어머니.손등에 붙였던 빨간 탭보다 그 세 글자가 더 오래 눈에 남았다. 가방 안의 빈 통을 만지다가 손을 뺐다.‘아니. 반납만 받으러 갔는데. 참석할 일이 늘었다.’괜찮다고 답을 보내고 화면을 껐다. 건물 앞에서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이번에는 참았다.빈 통도 받았고, 첫날부터였다는 말도 들었다. 나머지는 직접 들으면 됐다.그때는 기다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8월 19일 수요일, 출시 일정표를 펼친 채 거래처의 회신을 확인하고 있었다.은채가 내 책상 옆으로 와서 종이를 내려놓았다. 수정한 다이어리 속지였다.“팀장님, 이쪽 여백 봐 주세요.”나는 안경을 올리고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여기는 괜찮아요. 날짜 들어가는 칸만 조금 넓히면 될 것 같아요.”“제가 봐도 그랬어요.”“그럼 넓혀서 다시 보여 주세요.”“네. 제 눈이 맞았다는 확인이 필요했어요.”은채가 종이를 가져가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저장된 이름을 보고 손이 멈췄다.손창배 전무.온빛을 나온 뒤 처음 받는 전화였다.나는 서류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었다. 창가 책상에는 시환이 없었다. 오늘 오전은 온빛 일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네, 전무님.”“원지유 씨. 잘 지내나?”“네. 무슨 일이십니까?”“통화부터 딱딱하네. 자리 바뀌었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나는 종이 끝을 맞춰 놓았다.“업무 중이라서요.”“그래. 업무 얘기야. 오늘 온빛에 잠깐 올 수 있나?”“어떤 건으로요?”“종이달 매각 검토 건. 지난 이사회 이후로 내가 자료를 좀 더 봤어.”안경 너머로 일정표가 보였다.지난 발표 때 손창배가 펼쳐 놓았던 안건지부터 떠올랐다. 매각은 보류됐다. 끝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채 대표님과 함께 가면 될까요?”“아니. 원지유 씨 혼자. 먼저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래.”나는 화면 아래 시간을 확인했다.“제가 답할 수 있는 범위는 브랜드팀 업무입니다.”“그건 만나서 얘기하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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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반려 통지서

나는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냈다.말할 순서를 정하느라 하루를 썼는데, 결국 적어 둔 그대로 읽게 됐다.“손창배 전무님을 만났어요. 어제 온빛에서요.”시환은 펼친 다이어리를 보지 않고 내 얼굴을 봤다.“온빛 비서실장으로 돌아오면 종이달 매각 안건을 접겠다고 했어요. 전환사채도 온빛이 인수하고요.”골목 안쪽에서 창고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다이어리 아래를 받친 손에 힘을 줬다.“안 가면 의장님 평판이 어떻게 될지 아느냐고도 했고요.”시환의 시선이 잠깐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거절했죠?”“네.”“그럼 끝입니다.”나는 다음 말을 하려고 벌렸던 입을 닫았다.‘아니. 끝? 내 하루는.’“종이달 문제까지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그건 따로 해결합니다.”“전무님은 자꾸 하나로 묶어서 말씀하셨어요.”“다릅니다.”시환이 짧게 잘랐다.“당신이 어디서 일할지 정하는 일에 종이달 매각을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나는 다이어리를 내려다봤다. 어제부터 여러 번 읽은 문장이었다. 시환은 한 번 듣고 떼어 냈다.“그 말을 전하면 의장님이 움직일 거잖아요. 그러면 또 저 때문에 그랬다고 할까 봐…….”“내 평판은 내가 책임집니다.”시환이 내 손에 들린 다이어리를 가리켰다.“그 기록,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네. 통화한 시간도 적어 뒀어요. 서면으로 달라고 했는데 받지는 못했고요.”“잘하셨습니다.”“확인할 자료가 없다고 하실 수도 있어요.”“그래서 확인부터 할 겁니다.”나는 다이어리를 덮었다.시환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집으로 가는 길이 다시 정면에 보였다.“종이달에서 준비한 상환안은요?”“내일 계약하기로 했어요. 직원들 납입 확인도 끝났고, 온빛몰 계약서는 채 대표님이 마지막으로 보고 계세요.”“그대로 진행하세요.”“이번 일 때문에 조건이 달라지면 안 돼요.”“달라지지 않습니다.”시환은 곧바로 답했다.“당신이 확인한 조건 그대로입니다.”나는 가방에 다이어리를 넣었다. 지퍼가 중간에서 걸려 다시 당겼다.이번에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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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가족 행사 참석 신청서

“친분까지 확인서에 적을 필요는 없겠네요.”나는 열어 둔 문을 조금 더 밀었다.지창모가 내 얼굴을 보더니 가방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내 말 뜻은 알았을 텐데.”“글벗과의 계약은 따로 확인하겠습니다.”지창모는 더 말하지 않고 복도로 나갔다. 채 대표가 뒤따라 인사를 했다.나는 회의실에 남은 서류를 모았다. 상환 확인서는 맨 위에, 입금 내역은 그 아래에 놓았다. 두 장의 모서리를 맞추고 나서야 손을 뗐다.시환이 옆으로 왔다.“지금 글벗에 연락할 겁니까?”“아니요. 계약부터 다시 볼 거예요.”“알겠습니다.”시환은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의자에 걸린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걸 잡아 올렸다.나는 가방을 받았다.“오늘까지 할 일은 끝났어요.”“그럼 다음 주 토요일 약속은 그대로입니까?”나는 가방 끈을 잡은 채 시환을 봤다.상환하느라 잊고 있던 일정이었다. 빨간 인덱스 탭을 돌려받은 날, 시환은 어머니를 만나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었다.‘아니. 회사 빚은 갚았다. 내 대답은 남아 있었다.’“네. 그대로예요.”“장소는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제가 준비할 게 있을까요?”시환이 잠깐 생각했다.“질문이 있으면 하시면 됩니다.”“그 준비 말고요.”“식사할 겁니다. 식사는 하고 오지 마세요.”준비물이 배고픔이었다.나는 가방 끈을 어깨에 올렸다.“그건 잘할 수 있어요.”«▲»8월 29일 토요일, 나는 온빛타워 앞에서 손목시계를 봤다.약속 시각까지 조금 남아 있었다. 시환은 이미 출입문 옆에 서 있었다. 걷어 올린 셔츠 소매가 먼저 보였다.나는 검정 재킷의 앞섶을 한 번 펴고 다가갔다.“많이 기다렸어요?”“아닙니다.”시환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종이가방으로 내려갔다.종이달 다이어리를 넣어 온 가방이었다. 채 대표에게 어머니를 만난다고 말했더니, 포장까지 직접 해 줬다. 묶은 끈이 느슨해질까 봐 오는 내내 가방을 세워 들었다.“준비할 것 없다면서요.”“없습니다.”“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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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사내 규정 개정안

나는 컵을 든 채 홀 반대편을 봤다.시환은 서랍을 닫고 있었다. 란희는 옥수수차 봉지를 찬장 안에 넣었다.“지금 물어봐도 될까요?”“그 애한테요?”“네.”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지유 씨가 궁금한 거니까요.”시환이 돌아오자 나는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란희는 빈 냄비를 들고 개수대 쪽으로 갔다.“어머님이 커피를 안 마시는 이유를 의장님한테 들으라고 하셨어요.”시환이 어머니의 등을 잠깐 봤다.“네.”“듣고 싶어요.”시환은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 앉기 전에 내 컵이 가장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지 확인했다.“어머니가 비서일 때 커피를 하루에 30잔씩 타셨습니다.”나는 컵에서 손을 뗐다.“혼자요?”“네. 아버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손님 것, 임원들 것. 회의가 길어지면 다시.”개수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시환은 그쪽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일정표를 만드는 중에도 불렀다고 합니다. 계약서 찾다가도 가야 했고요.”나는 란희가 적어 둔 식단표를 봤다. 납품 날짜 옆에 반찬 이름이 빼곡했다.“그래서 커피를 안 드시는 거예요?”“내 비서에게는 시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커피만 안 시키시면 됐잖아요.”“내가 마시면 누군가는 준비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요.”나는 대표실 문 옆에 있던 작은 찬장을 떠올렸다. 시환이 직접 컵을 꺼내던 모습도.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컵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시환은 일정표를 먼저 달라고 했었다.그 뒤로 나는 차 대신 일정을 내밀었다.“저, 커피를…….”말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컵 손잡이를 만졌다.5년 동안 대표실에서 커피를 탄 적이 없었다.회의실에 음료를 옮긴 적은 있었다. 손님이 오면 준비된 것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시환이 마실 커피를 타서 가져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아니. 없었네. 정말 한 번도.’“옥수수차는 집에서 마시던 거라 골랐습니까?”“네.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겁니다. 내가 끓이기도 어렵지 않았고요.”란희가 씻은 냄비를 엎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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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신제품 기획안

나는 메시지를 다 읽고 휴대폰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컵에 따른 옥수수차에서 김이 났다. 냄비에 남은 차를 식히고, 펼쳐 둔 다이어리를 내 쪽으로 당겼다. 내일 확인할 인쇄 일정 아래에 빈칸이 있었다.거기에 새 제품 이름을 적으려다가 손을 멈췄다.책상 서랍에는 아직 이름이 없는 표지 견본이 들어 있었다. 내년 날짜가 찍힌 속지, 은채가 고른 표지 색, 채 대표가 몇 번이나 만져 본 모서리.시환에게 답할 말 대신, 내일 회사에서 할 일이 먼저 떠올랐다.나는 휴대폰를 뒤집어 놓고 견본을 꺼냈다.«▲»9월 9일 수요일, 은채는 출근하자마자 내 책상 위에 표지 견본을 펼쳤다.“팀장님. 오늘은 골라야 해요.”“어제도 골랐잖아요.”“햇빛에서 보셨잖아요. 사무실 불 아래에서도 봐야 해요.”나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안경부터 꺼냈다.견본의 색은 가까이서 봐야 차이가 났다. 푸른 기가 조금 더 있는 것, 회색이 조금 섞인 것. 은채는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오른쪽.”“이유는요?”“날짜 글씨가 더 잘 보여요. 책상 위에 오래 놓고 쓰기에도 편하고요.”은채가 오른쪽 견본을 내 앞으로 밀었다.“저도요. 왼쪽은 예쁜데, 조명에 따라 글씨가 묻혀요.”“대표님은요?”“지금 오시면 처음 고르는 척해 주세요.”“왜요?”“어제 고르신 걸 잊으셨어요.”계단에서 채 대표의 발소리가 들렸다. 은채는 견본 두 개를 다시 나란히 놓았다.채 대표는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책상 앞으로 왔다.“어떡해. 둘 다 예쁜데.”은채가 나를 봤다.‘아니. 재심이다. 매일 재심.’나는 오른쪽 표지를 손끝으로 짚었다.“실제로 쓰는 건 이쪽이 좋겠어요. 글씨가 또렷하고, 안쪽 종이 색하고도 맞아요.”채 대표가 안경을 머리 위로 올렸다. 표지를 들어 창가 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책상 위에 놓았다.“그러네. 이걸로 하자.”은채는 바로 견본 뒷면에 날짜를 적었다.『9월 9일. 표지 색 최종 확정.』그 아래에 채 대표가 서명했다. 은채는 종이를 말리듯 잠깐 들고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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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품질 검수서

“뭘 물었는데요?”나는 전송이 끝난 화면에서 손을 뗐다. 창가에서 가방을 들던 시환도 걸음을 멈췄다.“인쇄가 어디까지 됐냐고. 종이 들어간 건 봤고, 표지는 언제 끝나냐고 하더라고.”“출고 날짜는 저한테 확인하시면 되는데요.”“그래서 그렇게 말했지. 계약한 수량 다 찍는지도 물었어.”나는 책상 위 기획안 첫 장을 들었다. 글벗문구 출고 물량에 표시해 둔 선이 보였다.“다른 이야기는 없었어요?”“없었어. 그냥 둘러보고 갔어.”“다음에 오시면 제게 연락 주세요. 인쇄 일정은 예정대로 부탁드리고요.”“알았어요. 검수 날 봅시다.”전화를 끊고 휴대폰를 내려놓았다. 시환이 내 책상 옆에 서 있었다.“무슨 일입니까?”“추 부장님이 인쇄소에 가셨대요. 수량하고 진행 상황을 물으셨고요.”시환은 잠깐 기획안을 봤다.“원래 직접 확인합니까?”“이전 물량 때는 안 그러셨어요.”나는 글벗문구 본계약서를 꺼내 기획안 아래에 끼웠다. 지금 추만철에게 전화를 걸어도 인쇄가 잘되는지 보러 갔다는 답을 들을 것 같았다.“검수하고 출고 전 확인할게요.”“네.”시환은 더 묻지 않았다. 내가 가방을 닫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9월 16일 수요일, 솔숲인쇄 작업대에 도담이 쌓여 있었다.은채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채 대표는 모덕규 사장에게 인사하다 말고 표지부터 만졌다.“어떡해. 색 잘 나왔다.”“보내 준 견본하고 맞췄어요. 속지도 한번 봐요.”나는 안경을 쓰고 작업대 끝에 검수서를 펼쳤다.『품질 검수서』그 아래에는 표지 색, 제본 상태, 인쇄 누락, 날짜 확인 칸이 있었다. 은채가 미리 정해 둔 색 견본을 꺼내 책 옆에 놓았다.“대표님, 아직 감상하시면 안 돼요.”“보고 있는 거야.”“예쁘다는 말 말고요.”채 대표가 입을 다물었다. 손은 표지 위에 그대로였다.‘아니. 제일 어려운 검수 항목이다.’나는 상자마다 꺼낸 책을 펼쳤다. 앞쪽과 뒤쪽을 눌러 제본을 확인하고, 달력과 날짜를 대조했다. 은채는 표지를 빛 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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