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 왕은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그는 해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누구의 명을 따라야 하는지, 어떤 약을 마셔야 하는지까지 정해 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거두어 달라는 청을 들으면서도,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해원은 천 조각을 다시 접어 소매 안에 넣었다.그때 문밖에서 최상궁의 발소리가 들렸다.“윤해원, 돌아왔으면 어서 나오너라.”해원은 벽을 짚고 일어났다.문을 열자 최상궁은 물통과 걸레가 놓인 쪽을 가리켰다.“중전마마께서 쓰실 물을 먼저 길어 오고, 안채의 마루를 닦아라. 밤에 전하의 침전에 들었다고 해서 낮의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해원은 고개를 숙였다.“분부 받들겠사옵니다.”“그리고 오늘 밤에도 부름이 있을 수 있으니, 몸은 깨끗이 해 두어라. 전하께서 손에 상처가 나는 것을 싫어하시니 조심하고.”최상궁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해원은 물통을 들고 우물가로 향했다.얼어붙은 두레박 줄을 잡자 손바닥의 상처가 쓰라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물을 길어 올렸다. 차가운 물이 손등을 타고 흘렀고, 갈라진 피부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통증이 올라왔다.물을 가득 채운 뒤 잠시 숨을 고르던 해원은 문득 어젯밤 왕의 목소리를 떠올렸다.'내가 너를 버리겠느냐.'그 말은 한때 그녀가 가장 듣고 싶었던 약속이었다.그러나 이제는 달랐다.왕은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고통을 거두어 주지 않았고, 떠나고 싶다는 말에는 손목을 움켜쥐었다.해원은 물통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그때 중궁전 안쪽에서 최상궁이 그녀를 불렀다.“윤해원, 약사발을 가져오너라.”해원은 물통을 내려놓고 약을 보관하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선반 위에는 어제 깨뜨린 것과 똑같이 생긴 사발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행랑으로 돌아왔다.최상궁은 약탕을 사발에 따르며 해원을 바라보았다.“전하께서 어젯밤에도 너를 찾으셨다지?”“그러하옵니다.”“그렇다면 더욱 조심해야겠구나. 전하께
Last Updated : 2026-10-2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