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중궁전의 신발을 닦는 일은 본래 윤해원의 몫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소령은 아침 문안이 끝나기도 전에 최상궁을 불러, 그날 왕을 맞이할 때 신을 비단 신발을 해원에게 직접 닦게 하라고 명했다. 신발은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 비단함에 보관되어 있었으므로 굳이 닦을 필요도 없었지만, 중궁은 해원이 궁녀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해원은 그 뜻을 짐작하면서도 아무 말 없이 대야를 가져왔다.
최상궁은 궁녀들이 오가는 앞마루에 방석을 놓고 신발을 내려놓았다. 곁에는 깨끗한 수건과 물그릇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해원이 수건을 집어 들자 상궁은 그것을 빼앗아 옆으로 치웠다.
“손으로 닦거라.”
해원이 잠시 머뭇거리자 최상궁은 신발을 그녀의 무릎 앞으로 밀었다.
“중전마마의 신발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아야지. 무엇을 망설이느냐?”
해원은 차가운 마루에 무릎을 대고 앉아 물에 적신 손끝으로 신발의 앞코를 문질렀다. 비단에는 이미 은은한 광택이 돌고 있었으므로 닦을수록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상궁은 작은 얼룩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같은 자리를 다시 닦으라고 재촉했다.
그녀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궁녀들이 걸음을 늦추었다.
“어젯밤에도 전하의 침전에 들었다면서?”
누군가 속삭이자 다른 궁녀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밤에는 전하의 품에 있다가 아침에는 중전마마의 신발을 닦으니, 저 아이도 제 신분을 잊을 수는 없겠네.”
해원은 못 들은 척 신발을 돌려 잡았다.
새벽에 마신 피자탕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고, 차가운 물에 젖은 손끝은 오래전부터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뒤축에 남아 있다는 보이지 않는 얼룩을 찾으려고 고개를 더 숙였다.
그때 민소령이 처마 아래로 나왔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느냐?”
해원이 예를 올리자 중궁은 신발을 가져오라고 손짓했다. 최상궁이 신발을 들어 올렸지만, 민소령은 살펴보지도 않고 다시 해원 앞에 내려놓게 했다.
“뒤축까지 닦아라. 전하를 맞이할 때 신을 것이니 흠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중궁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다가 문득 해원의 손을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네 손에 상처가 나지 않게 하라 하셨다지?”
해원의 손끝이 멈추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래서 오늘은 물을 긷는 대신 내 신발을 닦게 하였다. 거친 밧줄을 잡지 않으니 손이 더 상할 일도 없겠구나.”
민소령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전하께서 아시면 내 배려를 기뻐하시겠지.”
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중궁은 왕의 명을 어기지 않았다. 해원의 손에 새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릴 수 있었고, 그 일을 자신이 베푸는 은혜로 바꾸어 말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행차가 중궁전에 도착했다.
해원은 신발을 내려놓고 엎드리려 했지만, 민소령은 그녀를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왕이 뜰에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뒤 신발 한 짝을 들어 해원 앞으로 내밀었다.
“전하께서 오셨다고 하던 일을 그만두어서는 아니 된다. 마저 닦거라.”
이경원은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낮은 마루에 무릎을 꿇은 해원은 한 손으로 중궁의 신발을 받치고 있었다. 어제 약을 발랐던 손등에는 여전히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젖은 손가락은 추위 때문에 조금씩 떨렸다.
왕은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민소령이 웃으며 다가왔다.
“소첩의 신발을 닦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이 아이의 손을 염려하시기에 오늘은 거친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았지요.”
왕은 중궁을 돌아보았다.
“그랬소?”
“물을 긷거나 장작을 나르면 상처가 깊어질까 염려되어, 이렇게 가벼운 일만 맡겼사옵니다.”
해원은 고개를 숙인 채 왕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가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왕의 눈앞에서 중궁의 신발을 닦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주기를 바랐다.
“잊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최상궁마마의 명으로 숯을 가지러…….”“내가 묻는 것은 그 일이 아니다.”왕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대군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해원은 당황하여 고개를 저었다.“아무 일도 없었사옵니다. 그저 넘어져 있는 소인을 보고 중궁전 사람을 불러 주셨을 뿐이옵니다.”왕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손을 잡아 주었느냐?”“아니옵니다.”“부축하였느냐?”“그런 일도 없었사옵니다.”“그렇다면 어찌하여 네 이름까지 물었다는 것이냐?”해원은 대답하지 못했다.대군이 이름을 물은 이유를 자신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다만 다친 사람을 보고 지나치지 않았고, 바람을 막아 주었으며, 중궁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람을 불러 주었을 뿐이었다.그러나 왕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갔다.“대군은 본래 남의 일에 그리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다.”왕은 낮게 말하며 해원의 턱을 들어 올렸다.“그런데 너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지.”해원은 눈을 내리깔았다.“소인은 대군마마께 폐를 끼쳤을 뿐이옵니다.”“그 말은 내가 판단할 것이다.”왕은 그녀의 턱을 놓고 창가로 걸어갔다.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내관을 불러 중궁전으로 보낼 말을 전했다.“윤해원이 앞으로는 동쪽 창고에도 가지 못하게 하라. 필요한 물건은 다른 궁녀가 가져오게 하고, 저 아이는 중궁전 안에서만 일하도록 하여라.”해원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전하, 그러하시면…….”왕이 돌아보았다.“무엇이냐?”해원은 입술을 다물었다.왕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왔다.“대군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냐?”“아니옵니다.”“그렇다면 아무 문제도 없지 않으냐.”왕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손길은 다정했지만 해원은 몸을 움츠렸다.그가 그 움직임을 느끼고도 손을 거두지 않자, 해원은 더는 피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너는 내 곁에 있으면 된다. 다른 사내의 친절을 받을 필요도 없고, 그들이 네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 이유도 없다.”왕은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
해원은 입술을 깨물었다.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대군은 자신의 겉옷을 벗으려다가 해원이 본능적으로 물러서는 것을 보고 손을 멈추었다. 대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눈발을 막아 주었다.해원은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뒤늦게 알아차렸다.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바람을 막아 주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중궁전에서 최상궁이 달려왔다.그녀는 이태겸을 발견하자 놀란 얼굴로 예를 올렸다.“대군마마를 뵈옵니다.”이태겸은 해원을 돌아보았다.“이 아이가 눈길에서 넘어졌다. 숯은 내 사람이 들고 있으니 받아 가거라.”최상궁은 해원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지만, 대군이 보는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송구하옵니다. 소인이 미처 살피지 못하였사옵니다.”“의관을 보내도록 하였다. 다친 곳을 살피게 하라.”이태겸의 말에 최상궁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그리하겠사옵니다.”해원은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최상궁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중궁전에 돌아가면 어떤 말을 듣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태겸은 떠나기 전에 해원에게 다시 물었다.“이름이 무엇이냐?”해원은 잠시 망설였다.관비가 된 뒤 누군가가 이름을 묻는 일은 거의 없었다.“윤해원이옵니다.”“윤해원.”대군은 그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오늘은 더 이상 일을 시키지 마라.”그는 최상궁을 향해 분명하게 말했다.“이 아이가 길에서 쓰러졌다는 사실을 내가 직접 보았다. 의원이 살피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게 하라.”최상궁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명심하겠사옵니다.”이태겸은 그제야 발걸음을 돌렸다.해원은 그가 멀어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눈발 사이로 검은 겉옷이 사라진 뒤에야 최상궁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네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아느냐?”해원은 놀라 상궁을 바라보았다.“소인은 그저 길에서 넘어졌을 뿐이옵니다.”“하필 대군마마의 눈에 띄어 중궁전의 일을 밖에 알렸단 말이냐. 네가 일부러 그 앞에서
그녀가 두려운 것은 더 이상 중궁의 벌만이 아니었다.왕이 자신에게 내리는 모든 고통을 사랑과 법도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사실이었다.---사흘 뒤, 궁에는 다시 눈이 내렸다.해원은 중궁전 뒤뜰에서 마른 장작을 정리하고 있었다. 매를 맞은 자리는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았지만, 최상궁은 그녀가 오래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왕이 명한 이동 제한도 그대로였다.해원은 중궁전 밖으로 함부로 나갈 수 없었고, 소담과 잠시 말을 나누는 일조차 최상궁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그날도 새벽부터 피자탕을 마신 뒤 물을 긷고 마루를 닦았으며, 오후에는 저녁에 쓸 장작을 옮기고 있었다.눈은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했지만 오후가 되자 바람까지 거세졌다. 손끝이 얼어붙어 장작을 제대로 붙잡기 어려웠고, 매를 맞은 자리의 통증 때문에 몇 번이나 벽에 기대어 숨을 골라야 했다.그때 최상궁이 뒤뜰로 나왔다.“윤해원, 중궁마마께서 쓰실 숯이 부족하다. 동쪽 창고에 가서 가져오너라.”해원은 장작을 내려놓았다.“마마, 전하께서 중궁전 밖으로 나가지 말라 명하셨사옵니다.”“동쪽 창고는 중궁전 물품을 보관하는 곳이다. 내가 직접 명하는데도 가지 않겠다는 것이냐?”해원은 잠시 망설였다.“그런 뜻이 아니옵니다.”“그렇다면 서둘러라. 중궁마마의 화로가 식기 전에 가져와야 할 것이다.”최상궁은 빈 광주리를 그녀에게 건넸다.해원은 그것을 받아 들고 동쪽 창고로 향했다. 창고는 중궁전 담장을 따라 이어진 좁은 길 끝에 있었는데, 눈이 쌓인 돌길이 미끄러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숯을 담아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더욱 거세졌다.해원은 광주리를 품에 안고 걸었지만, 차가운 눈발이 얼굴을 때릴 때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담장 모퉁이를 돌아서던 순간 발이 미끄러지면서 광주리가 기울었고, 그녀는 숯이 쏟아지는 것을 막으려다 그대로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매를 맞은 자리에 충격이 전해지자 숨이 턱 막혔다.광주리는 겨우 붙잡았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그때 멀리
“마루를 닦아라. 중전마마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끝내야 한다.”해원은 걸레를 받아 들었다.허리를 굽히는 순간 통증이 밀려와 눈앞이 흐려졌지만, 최상궁은 그녀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일을 거두지 않았다.“전하께서 스무 대나 벌하신 까닭을 잊지 말거라. 네가 죄를 인정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해원은 고개를 숙였다.“명심하겠사옵니다.”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천천히 걸레를 움직였다.그때 소담이 물그릇을 들고 들어왔다.소담은 해원의 모습을 보자 놀란 얼굴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최상궁이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물그릇을 내려놓았다.잠시 뒤 최상궁이 다른 방으로 들어가자 소담은 해원 곁에 앉았다.“언니,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요.”해원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너까지 벌을 받으면 안 되니 어서 가.”소담은 해원의 손을 잡으려다가 상처를 보고 멈추었다.“밤에 전하의 침전에 들면 말씀드려 보세요. 이렇게까지 벌을 받았는데…….”해원은 잠시 걸레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소담은 왕이 직접 형벌을 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밤의 왕은 다를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듯했다.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그날 밤, 왕은 평소보다 늦게 해원을 침전으로 불렀다.궁녀들이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해원은 아직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녀는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침전으로 향했다.이경원은 서안 앞에 앉아 문서를 읽고 있었다.해원이 예를 올리려 하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움직임이 느리구나.”해원은 무릎을 굽히려다가 통증 때문에 몸을 움츠렸다.왕은 그 모습을 보고 문서를 내려놓았다.“아직도 아프냐?”“조금 그러하옵니다.”“스무 대를 맞았으니 당연히 아프겠지.”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는 해원의 팔을 잡아 일으킨 뒤 얼굴을 살폈다.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고, 입술에는 핏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그리 아픈데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 수는 있었다. 중궁의 편을 들고 다시 중궁전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접 형벌을 명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왕은 해원이 굳어 있는 모습을 보고 덧붙였다.“전하께서 내리신 비단을 훼손하고도 허물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 벌은 받아야 마땅하다.”그는 중궁을 돌아보았다.“중전도 지켜보시오. 오늘 이 일을 분명히 바로잡아 두어야 궁의 법도가 서는 것이오.”민소령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전하의 뜻을 받들겠사옵니다.”해원은 내관들에게 이끌려 편전 앞뜰로 나갔다.차가운 돌바닥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었고, 형장을 준비하는 동안 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해원은 그들 앞에 엎드린 채 왕이 마음을 바꾸어 주기를 기다렸지만, 처마 아래에 선 이경원은 중궁과 나란히 서서 형벌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첫 번째 매가 떨어지자 해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켰지만, 몇 차례 매질이 이어지자 팔에 힘이 풀려 바닥을 짚은 손이 미끄러졌다. 아침부터 피자탕을 마신 탓에 속은 비어 있었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몸에서는 점점 감각이 사라졌다.최상궁은 처마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민소령은 왕에게 몸을 조금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전하, 저 아이가 견디지 못하는 듯하옵니다.”왕은 형장을 바라보았다.“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오. 지금 멈추면 제 잘못을 가벼이 여길 것이오.”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해원은 그 말을 들었다.자신을 향한 형벌이 중궁의 억지 때문이 아니라, 왕이 옳다고 믿는 판단에 따라 내려졌다는 사실을 그제야 분명히 깨달았다.열 대를 넘기자 해원은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엎드렸고, 형장을 집행하던 내관이 잠시 손을 멈추었다.“전하, 죄인이 기력을 잃은 듯하옵니다.”이경원은 눈썹을 조금 찌푸렸다.“아직 몇 대가 남았느냐?”“여섯 대가 남았사옵니다.”“마저 집행하라. 벌은 끝까지 받아야
해원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 궁녀는 며칠 전 중궁전 앞뜰에서 자신을 비웃던 사람이었다.“그런 일은 없었어. 나는 비단을 접어 놓기만 했는데…….”“마마 앞에서 감히 누구에게 반말을 하느냐?”최상궁의 호통이 떨어지자 해원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궁녀는 해원을 한 번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비단이 상할까 걱정되었사옵니다. 그러나 윤해원이 곧 물을 가지러 나갔기에 미처 말씀드리지 못하였사옵니다.”민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네가 잘못 본 것은 아닐 테지.”해원은 손끝을 꽉 쥐었다.그 궁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중궁은 이미 어느 쪽 말을 믿을지 정한 얼굴이었다.“마마, 부디 한 번만 확인하여 주시옵소서. 소인은 정말 비단을 찢지 않았사옵니다.”민소령은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죄를 인정하기만 하였다면 가벼이 넘기려 했거늘, 끝까지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구나.”중궁은 최상궁에게 손짓했다.“전하께서 내리신 물건을 훼손한 일이니 전하께 직접 아뢰어야겠다. 이 아이를 데리고 가거라.”해원은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중궁의 처벌도 두려웠지만, 왕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더 두려웠다.그녀는 최상궁에게 끌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비단을 돌아보았다.찢어진 부분이 위로 드러난 채 비단함에 놓여 있었다.자신이 손대지 않은 흠이었다.그러나 이제 그 흠은 해원의 죄가 되어 있었다.---왕은 편전에서 대신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중궁이 찾아왔다는 말을 들은 그는 회의를 잠시 멈추고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원은 문밖에 무릎을 꿇은 채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관의 부름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이경원은 중궁의 곁에 앉아 있었다.민소령은 찢어진 비단을 왕 앞에 펼쳐 놓고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해원이 물건을 거칠게 다루었다는 궁녀의 증언까지 덧붙였지만, 해원이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지막에 짧게 언급할 뿐이었다.왕은 비단을 살펴본 뒤 해원에게 물었다.“네가 맡았던 물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