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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Auteur: 월야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10-23 00:53:22

“소첩이 궁의 법도를 가르치고 있었사옵니다. 이 아이가 전하께서 명하신 피자탕을 마시다가 사발을 깨뜨리는 바람에 조금 엄히 타일렀지요.”

왕의 시선이 해원에게 돌아왔다.

“약을 엎질렀느냐?”

해원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손에 힘이 풀려 그만…….”

“다시 마셨느냐?”

“그러하옵니다.”

왕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남김없이?”

“예, 전하.”

그제야 왕은 해원의 손목을 놓았다.

“그렇다면 되었다.”

민소령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첩이 지나치게 엄하게 다스린 것은 아니온지요?”

왕은 중궁을 돌아보았다.

“아니오. 중전이 참으로 현명하오.”

해원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왕은 그 움직임을 보았으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궁의 기강을 세우는 일은 중전의 몫이니 앞으로도 그리하시오. 특히 저 아이는 제 신분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오.”

민소령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해원은 바닥에 놓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왕은 그녀가 약을 두 사발이나 마셨다는 사실을 들었고, 그 때문에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눈앞에서 보았다.

그런데도 중궁을 칭찬했다.

해원이 고개를 들자 왕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내관에게 손짓했다.

“저 아이의 손에 약을 발라 주어라.”

해원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뛰었다.

그러나 왕은 곧이어 중궁에게 말했다.

“오늘 밤에도 침전에 들일 것이니, 손에 상처가 더 생기지 않게만 하시오.”

그 말이 끝나자 민소령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해원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왕이 중궁에게 금한 것은 그녀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밤에 자신이 만질 손을 더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왕은 중궁과 함께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해원은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물통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에 난 상처가 다시 벌어졌지만, 이제 누구에게도 그것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

밤이 깊어지자 왕의 침전에는 따뜻한 향이 피어올랐다.

해원은 궁녀가 내민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고 문턱을 넘었다. 낮 동안 입었던 죄인복은 침전 밖 작은 방에 남겨 두었지만,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서 몸에 밴 찬 기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왕은 서안 앞에 앉아 문서를 읽고 있었다.

해원이 예를 올리자 그는 문서를 덮고 곁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손은 어떠하냐?”

해원은 두 손을 모은 채 대답했다.

“약을 발랐사옵니다.”

왕은 그녀의 손을 잡아 상처를 살폈다. 손등을 뒤집고 갈라진 손바닥을 살펴보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직도 붉게 부어 있다고 말했다.

해원은 왕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낮에 중궁의 처벌을 칭찬하던 손이 지금은 자신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어, 해원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그리 조용하냐?”

왕이 물었다.

해원은 고개를 숙였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하, 한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말해 보거라.”

왕의 손길이 느려졌다.

해원은 마른 입술을 적셨다.

“피자탕만은 거두어 주실 수 없겠사옵니까?”

왕은 그녀의 손을 놓았다.

해원은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자신의 청이 달갑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말을 꺼낸 이상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약을 마신 뒤에는 속이 뒤집히고 온몸에 힘이 풀리옵니다. 오늘은 두 사발을 마셨는데, 물을 길어 올리다가 몇 번이나 쓰러질 뻔하였사옵니다. 소인이 다른 것을 바라지는 않사오니, 부디 그 약만은…….”

“그 약을 누가 명하였느냐?”

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해원은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모았다.

“전하께서 명하셨사옵니다.”

“알면서도 내게 거두어 달라 청하는 것이냐?”

“명에 거역하려는 뜻은 아니옵니다. 다만 몸이 더는 견디지 못할까 두려워…….”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침전의 창호 너머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고, 뜰에 쌓인 눈이 등불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네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아느냐?”

해원은 고개를 들었다.

왕은 돌아서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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