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교수님, 맞선은 근무 외입니다: Chapter 31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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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상견례가 아닙니다

# 31화. 상견례가 아닙니다토요일 오후 다섯 시 오십 분.한소이는 식당 입구에 서서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확인했다.“엄마.”“왜?”“오늘 그냥 반찬통 돌려받고 밥 먹는 자리 맞지?”김정숙은 딸의 원피스 주름을 손으로 펴 주며 대답했다.“맞아.”“상견례 아니고?”“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무슨 상견례야.”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의 차림은 평소 가족 외식 때와 달랐다.미용실에서 머리까지 하고, 아껴 두던 진주 귀걸이를 착용했다. 손에는 포장된 과일 바구니도 들려 있었다.“그건 뭔데?”“빈손으로 처음 뵙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반찬통만 돌려받는다면서.”“밥도 먹는다고 했지.”“그럼 과일 바구니는 식사비야?”김정숙이 딸의 팔을 꼬집었다.“말 좀 예쁘게 해.”“엄마가 자꾸 이상하게 행동하니까 그렇잖아.”“이상한 건 너지.”“내가 뭘?”“윤 선생 이야기만 하면 목소리가 올라가.”소이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안 올라가.”오른쪽 눈썹이 따라 올라갔다.김정숙은 딸의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거짓말할 때 눈썹 올라가는 건 아직도 못 고쳤네.”“엄마까지 왜 이래?”“윤 선생도 알더라.”소이의 걸음이 멈췄다.“교수님이 엄마한테 그걸 말했어?”“윤 선생 어머니가 그러시던데.”두 집안 사이에서 자신의 습관이 이미 공유되고 있었다.소이는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다.“나 병원에서 호출 왔다고 하고 갈까?”“거짓말하지 마.”“이번에는 눈썹 안 올라가게 할 수 있어.”“예약금 냈어.”김정숙은 단호하게 식당 문을 열었다.안내받은 방의 문이 열리자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윤재혁과 그의 어머니였다.윤재혁은 병원에서 보던 정장보다 조금 편한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넥타이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소이는 잠깐 시선을 빼앗겼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윤재혁의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소이 씨 어머니시죠? 저는 윤재혁 엄마입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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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모르는 척의 한계

# 32화. 모르는 척의 한계월요일 아침 회진은 지나치게 평온했다.윤재혁은 한소이에게 필요한 질문만 했고, 소이는 필요한 대답만 했다.“최광식 환자 상태는?”“활력징후 안정적입니다. 어제부터 연식 시작했고 복통이나 오심은 없습니다. 오전 검사 결과 확인한 뒤 일반 병동 전동 예정입니다.”“김복순 환자는?”“배액량은 전날보다 감소했습니다. 배액액 빌리루빈 수치도 떨어지는 추세이고 발열은 없습니다.”“항생제는?”“배양검사와 감수성 결과에 맞춰 변경했습니다.”“알겠습니다.”끝이었다.추가 질문도, 눈썹이 올라갔다는 지적도 없었다.소이는 차트를 넘기며 다음 환자 상태를 보고했다.윤재혁은 한 번도 그녀의 말을 끊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은 박민우에게 물었고, 처방 수정도 정유라를 통해 전달했다.완벽하게 공평하고 정확한 회진이었다.그래서 더 이상했다.회진이 끝난 뒤 박민우가 소이의 옆으로 다가왔다.“두 사람 싸웠어?”“누구랑요?”“윤 교수님.”소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안 싸웠습니다.”“그럼 왜 두 사람이 오늘 처음 본 사람처럼 행동해?”“원래 교수님과 레지던트 관계입니다.”“그 말을 하는 표정이 헤어진 사람 같은데.”소이의 발이 멈췄다.“사귄 적도 없습니다.”“그러니까 더 이상하지.”박민우는 앞서 걷는 윤재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교수님도 오늘 이상해.”“평소보다 조용하셔서 편하지 않습니까?”“조용해서 무서운 거야.”박민우가 목소리를 낮췄다.“아침부터 내 보고는 네 배로 물어봤어.”“잘못 보고하셨나 보죠.”“한소이 선생.”“네.”“그렇게 냉정하게 말하면 윤 교수님 닮아.”소이는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식당 앞에서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지금 따라오시면 근무 외의 일로 받아들일 겁니다.윤재혁은 따라오지 않았다.그것은 그가 소이의 의사를 존중했다는 뜻이었다.당연히 고마워해야 했다.그런데 병원에서도 이렇게까지 물러설 줄은 몰랐다.그가 자신을 신경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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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근무 외의 첫 키스

# 33화. 근무 외의 첫 키스윤재혁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로 내려갔다.한소이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다.복도 끝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누군가 내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희미한 기계음이 멀어지고 나자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다.윤재혁은 여전히 손을 들고 있었다.닿지 않은 손끝이 뺨 가까이 머물렀다.“한소이 선생.”“네.”“지금이라도 싫다고 하면 멈춥니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심장을 세게 두드렸다.소이는 그를 올려다봤다.언제나 정답을 요구하던 사람이 지금은 자신에게 선택권을 넘기고 있었다.싫으면 멈추겠다고.거절하면 즉시 물러나겠다고.그 사실을 알면서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제가 싫다고 말할 것 같습니까?”“확신하면 안 되는 관계니까요.”“그럼 확신하지 마세요.”윤재혁의 눈빛이 흔들렸다.소이는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확인하세요.”그 말이 끝나자 그의 손이 뺨에 닿았다.손바닥의 온기가 조심스럽게 피부를 감쌌다. 수술실에서 수없이 환자의 생명을 붙잡았을 손이 지금은 작은 충격에도 깨질 것을 다루듯 움직였다.윤재혁이 천천히 몸을 숙였다.소이는 눈을 감지 못했다.가까워지는 얼굴과 흔들림 없는 시선을 끝까지 바라봤다.입술이 닿기 직전 그가 다시 멈췄다.“마지막으로 묻습니다.”소이는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교수님.”“네.”“질문이 너무 많습니다.”그녀가 그의 셔츠 깃을 잡아당겼다.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았다.처음은 짧았다.닿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의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소이가 붙잡고 있던 셔츠 자락에 힘을 주자, 멀어지던 윤재혁의 입술이 다시 내려왔다.이번에는 조금 더 깊었다.그의 손이 뺨에서 목덜미로 천천히 움직였다. 소이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윤재혁의 입술은 예상과 달리 다정했다.차갑고 단정한 말투처럼 감정까지 절제할 줄 알았는데, 오래 참았던 사람의 숨은 생각보다 뜨거웠다.소이의 손이 그의 가슴 위로 올라갔다.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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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평가에서 빠지는 이유

# 34화. 평가에서 빠지는 이유“제가 타이밍을 굉장히 잘못 잡은 것 같은데요.”정유라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한소이는 반사적으로 윤재혁의 소매를 놓았다.윤재혁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방금 전까지 맞닿아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교수와 레지던트 사이의 간격으로 돌아갔다.너무 빠르게 떨어진 것이 오히려 수상해 보일 것 같았다.소이는 입술을 한번 눌렀다.윤재혁의 시선이 그 움직임을 따라왔다.그것까지 본 정유라의 눈이 가늘어졌다.“무슨 일입니까?”윤재혁이 먼저 물었다.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마치 새벽 복도에서 레지던트와 입을 맞춘 적도, 셔츠 깃을 잡힌 적도 없는 사람처럼 태연했다.정유라가 들고 있던 차트를 들어 보였다.“김복순 환자 배액관이 갑자기 안 나옵니다. 세척해도 저항이 있고요.”윤재혁의 표정이 즉시 바뀌었다.“활력징후는?”“안정적입니다. 복통은 조금 심해졌다고 합니다.”“초음파 먼저 확인하고 영상의학과 연락하세요.”“네.”정유라는 대답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윤재혁이 시선을 들었다.“더 할 말 있습니까?”“업무상 질문은 끝났습니다.”“그럼 가세요.”“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궁금한 게 생겨서요.”소이의 어깨가 굳었다.정유라는 윤재혁의 흐트러진 셔츠 깃을 바라본 뒤 소이에게 시선을 옮겼다.“제가 뭘 본 겁니까?”“아무것도 아닙니다.”소이가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오른쪽 눈썹이 올라갔다.정유라의 시선이 정확히 그곳에 닿았다.“그 눈썹은 아무것도 아닐 때 올라가는 게 아닌 것 같은데.”“원래 긴장하면 올라갑니다.”“거짓말할 때 올라간다는 소문이 있던데.”소이는 속으로 박민우의 이름을 불렀다.의국 안에서 자신의 습관을 모르는 사람이 더 적을 지경이었다.윤재혁이 차분하게 끼어들었다.“개인적인 추측으로 후배를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정유라의 눈썹이 이번에는 윤재혁에게 향했다.“제가 한소이 선생을 곤란하게 한 겁니까?”“지금은 환자부터 봐야 할 시간입니다.”“그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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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화. 첫 데이트는 실패입니다

# 35화. 첫 데이트는 실패입니다토요일 오후 네 시 오십 분.한소이는 약속 장소 앞에서 휴대전화 화면을 세 번째로 확인했다.윤재혁이 보낸 메시지는 짧았다.[토요일 오후 5시. 세림미술관 정문.]장소와 시간만 있을 뿐,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나 식사는 어디서 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소이는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연한색 니트와 검은색 치마를 골랐다. 하지만 병원에서 늘 가운과 수술복만 입던 사람이 평범한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지나치게 신경 쓴 것처럼 느껴졌다.“이게 맞나.”첫 맞선보다 더 긴장됐다.그때는 잘 보일 생각이 없었다.오늘은 달랐다.좋아하는 사람과 처음으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그것도 교수와 레지던트가 아닌 관계로.“한소이 선생.”익숙한 목소리에 소이가 돌아봤다.윤재혁이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짙은 회색 코트 안에는 검은색 니트가 보였다. 병원에서 늘 보던 정장보다 부드러운 차림이었지만 표정은 평소처럼 단정했다.소이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오늘도 선생이라고 부르십니까?”윤재혁이 그녀 앞에 멈췄다.“그럼 뭐라고 부릅니까?”“이름이 있잖아요.”“한소이 씨?”“그건 맞선 때 같고요.”“소이 씨.”낮은 목소리로 불린 이름에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소이는 괜히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그것도 조금 어색하네요.”“그럼 한소이.”“처음부터 그렇게 부르시면 되잖아요.”윤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한소이.”이번에는 성까지 붙였지만 목소리가 조금 달랐다.병원에서 업무를 지시할 때와 달리 부드러웠다.소이는 얼굴이 뜨거워져 먼저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표는 예매하셨습니까?”“했습니다.”“전시는 알아보고 정하신 거고요?”“네.”“후기도 읽으셨습니까?”“평점과 관람 시간을 확인했습니다.”소이가 그를 돌아봤다.“데이트도 수술 준비하듯 하십니까?”“준비 없이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그건 맞는데 너무 교수님답습니다.”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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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비밀 연애 규칙

# 36화. 비밀 연애 규칙연애를 시작한 다음 날 아침.한소이는 평소보다 삼십 분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잠을 충분히 자고 오라는 윤재혁의 말을 들은 탓에 전날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문제는 잠들기 직전까지 나눈 메시지였다.[도착했습니다.][문 잠갔습니까?][네.][씻고 바로 자요.][교수님은요?][집에 가는 중입니다.][운전 중에 답장하신 건 아니죠?][신호 대기 중입니다.][그것도 하지 마세요.][알겠습니다.]여기까지는 평범했다.마지막 메시지만 아니었다면.[잘 자요, 소이야.]짧은 문장 하나 때문에 소이는 새벽 두 시까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병원 밖에서 이름을 부르기로 한 것은 자신이었다.그런데 글자로 보니 목소리보다 더 낯설고 간지러웠다.소이는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다.눈 밑이 평소보다 조금 어두웠다.“잠을 충분히 자기는 했는데.”심장이 계속 뛰어서 깊이 자지 못했을 뿐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윤재혁이 스테이션 앞에서 환자 기록을 확인하고 있었다.검은 정장과 반듯한 흰 가운.어젯밤 차 안에서 자신의 손을 잡고 사귀자고 물었던 사람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소이는 괜히 걸음을 늦췄다.그때 윤재혁이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두 사람 모두 잠시 움직이지 않았다.“안녕하십니까, 교수님.”소이가 먼저 허리를 숙였다.“일찍 왔군요.”“환자 기록 미리 확인하려고 왔습니다.”“좋습니다.”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윤재혁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소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컴퓨터 앞에 앉았다.옆에서 처방을 확인하던 박민우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뭔가 이상한데.”소이의 손이 멈췄다.“뭐가요?”“두 사람이 오늘 유난히 정상적이야.”“정상적인 게 왜 이상합니까?”“평소에는 윤 교수님이 한소이 선생 보고부터 확인하고, 한소이 선생은 눈썹부터 긴장하잖아.”박민우가 윤재혁 쪽을 흘끗 바라봤다.“오늘은 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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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도시락은 근무 외입니다

# 37화. 도시락은 근무 외입니다아침 다섯 시 사십 분.한소이는 현관문을 나서려다 휴대전화 진동에 걸음을 멈췄다.[병원 도착하면 지하 일 층 직원 휴게실 냉장고를 확인하세요.]보낸 사람은 윤재혁이었다.소이는 시계를 확인했다.[이 시간에 벌써 병원이세요?]답장은 곧바로 왔다.[가는 중입니다.][운전 중 아니죠?][주차했습니다.]짧은 대답 뒤에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차량 계기판이 꺼져 있는 사진이었다.소이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냉장고에는 뭐가 있는데요?][확인하면 압니다.][근무 중 개인 메시지 금지 규칙은요?][근무 시작 전입니다.]규칙을 만든 지 하루 만에 빈틈을 정확하게 찾아냈다.[이런 식으로 예외를 늘리시면 안 됩니다.][여섯 시 이후에는 보내지 않겠습니다.]소이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여섯 시 오 분이었다.윤재혁에게서 추가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정말 약속을 지킨 모양이었다.그 사실이 조금 아쉬웠지만, 소이는 병동으로 올라가기 전에 지하 휴게실로 향했다.이른 시간이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냉장고 문을 열자 두 번째 칸 구석에 회색 보냉 가방이 놓여 있었다.가방 손잡이에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한소이]병원 안에서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로 해 놓고 글자로는 너무 당당했다.소이는 메모지를 떼어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보냉 가방 안에는 반듯한 도시락통과 작은 보온병이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지는 않았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소이는 주변을 다시 확인한 뒤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냈다.[이거 직접 만드신 겁니까?]답장은 오지 않았다.여섯 시가 지났기 때문이다.“정말 철저하네.”소이는 가방을 들고 레지던트 휴게실로 올라갔다.아침 회진 준비가 시작되자 도시락 생각은 잠시 잊혔다.그날 소이는 오현석의 수술에 처음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대장암 환자의 복강경 수술이었다.윤재혁의 수술과는 기구 배치부터 진행 방식까지 조금씩 달랐다. 소이는 전날 밤 수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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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화. 도시락을 만든 사람

# 38화. 도시락을 만든 사람“그 도시락.”정유라가 앞서 걷는 윤재혁의 뒷모습을 한번 바라본 뒤 낮게 물었다.“정말 어머니가 싸 주신 거 맞아?”한소이는 대답하기 전에 자신의 오른쪽 눈썹부터 눌렀다.정유라의 시선이 그 손가락을 따라갔다.“그 행동이 더 수상한 건 알아?”“우리 엄마가 싸 준 거 맞습니다.”“눈썹 누르면서 말하지 마.”“이건 그냥 습관입니다.”“거짓말 들킬 때 나오는 습관이겠지.”소이는 차트를 가슴 앞으로 끌어안았다.“환자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지금은 회진 끝났어.”“처방 확인해야 하고요.”“한소이 선생.”정유라는 소이의 앞을 막아섰다.“내가 도시락 하나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소이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왜 그러십니까?”“요즘 네가 너무 티가 나니까.”“뭐가요?”“누군가에게 연락받으면 혼자 웃고, 갑자기 계단 운동을 시작하고, 어머니가 싸 줬다는 도시락은 보물처럼 끌어안고.”정유라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무엇보다 윤 교수님 앞에서 전보다 더 어색해.”소이는 최대한 침착한 얼굴을 만들었다.“교수님이 평가에서 빠지셔서 그런 겁니다.”“오현석 교수님이 네 평가를 맡은 게 왜 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어?”“평가 체계가 달라졌으니까 적응 중입니다.”“그런 것치고는 윤 교수님도 이상하던데.”소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교수님이 뭐가 이상하십니까?”“너한테 관심 없는 척을 너무 열심히 해.”정유라는 소이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관심이 없으면 그냥 안 보면 되는데, 안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달까.”소이는 입을 열지 못했다.정확했다.윤재혁은 병원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문제는 철저함에도 정도가 있다는 것이었다.평소라면 먼저 확인했을 보고를 박민우에게 물었다.소이가 다른 교수의 수술에 들어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시선을 거두는 대신 처음부터 보지 않으려 했다.그 모든 행동이 오히려 두 사람을 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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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십오분의 데이트

# 39화. 십오분의 데이트“도시락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정유라가 고개를 돌렸다.“병원 안에 있는 사람인 건 맞지?”한소이는 구겨진 메모를 손안에 감췄다.바로 아니라고 말하면 눈썹이 올라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대답할 수도 없었다.“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도시락 가방을 지하 냉장고에 두고 갔는데 금방 사라졌잖아.”“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르죠.”“너는 알고 있는 얼굴인데.”정유라는 소이의 오른쪽 눈썹을 바라봤다.소이는 이번에는 얼굴에 힘을 주지 않았다.“개인적인 일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거짓말은 아니었다.정유라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조금 사라졌다.“곤란한 관계야?”“그런 건 아닙니다.”“그러면 왜 이렇게 숨겨?”소이는 대답하지 못했다.정유라가 의심하는 대상이 윤재혁인지, 아니면 병원 안의 다른 누군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여기서 해명하려다 말을 보태면 오히려 범위를 좁혀 줄 수 있었다.“아직 말씀드릴 단계가 아닙니다.”정유라는 한참 소이를 바라봤다.“알았어.”예상보다 쉽게 물러난 대답이었다.“더 안 물어보실 겁니까?”“네가 말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캐낼 생각은 없어.”소이의 어깨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대신 하나만 기억해.”정유라는 휴게실 문을 열며 말했다.“좋아하는 사람을 숨기는 것과, 숨겨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다른 문제야.”소이의 표정이 굳었다.“그 사람이 너를 떳떳하게 대하지 못하는 관계라면 오래 끌지 마.”정유라는 더 묻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홀로 남은 소이는 손안의 메모를 펼쳤다.구겨진 종이 위에 윤재혁의 반듯한 글씨가 남아 있었다.오늘도 좋아합니다.숨겨야 하는 사람.그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윤재혁은 자신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먼저 평가에서 빠졌고, 관계 때문에 소이의 수련 환경이 바뀌지 않도록 절차도 밟았다.두 사람이 비밀로 하기로 한 이유는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소이가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받을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알고 있으면서도 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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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비밀을 아는 사람

# 40화. 비밀을 아는 사람“내일 저녁 시간 비워.”정유라가 보낸 메시지는 다음 날 오전까지도 한소이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밥 먹으면서 제대로 물어볼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농담으로 넘길 수 있는 말투가 아니었다.정유라는 이미 많은 것을 봤다.윤재혁과 지나치게 가까이 서 있던 새벽 복도.두 사람이 차례로 나온 비상계단.윤재혁이 직접 만든 도시락.그리고 ‘오늘도 좋아합니다’라고 적힌 메모까지.이제는 아니라고 잡아떼는 쪽이 더 이상했다.문제는 어디까지 말해야 하느냐였다.소이는 회진을 준비하면서도 몇 번이나 윤재혁을 바라봤다.그는 환자 기록을 확인하느라 고개도 들지 않았다.근무 중에는 개인적인 시선을 주고받지 않기로 했다.두 사람이 함께 정한 규칙이었다.그런데 오늘만큼은 그 규칙이 답답했다.“한소이 선생.”윤재혁이 갑자기 불렀다.소이는 놀라 차트를 떨어뜨릴 뻔했다.“네.”“김복순 환자 오늘 배액관 제거 가능합니까?”“오전 배액량 확인하고 영상의학과와 상의할 예정입니다. 발열 없고 복통도 호전됐습니다.”“배액액 상태는?”“담즙성 양상은 거의 사라졌고 빌리루빈 수치도 혈중 수치와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좋습니다.”윤재혁의 시선이 잠시 소이에게 머물렀다.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소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음 환자의 차트를 펼쳤다.회진이 끝난 뒤에야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무슨 일 있습니까?]정확히 알아챘다.소이는 복도 구석에 서서 답장을 입력했다.[오늘 저녁 정유라 선생님과 밥 먹기로 했습니다.][알고 있습니다.]소이의 손이 멈췄다.[어떻게 아세요?][아침에 정유라 선생이 오늘 당직 인계를 바꿀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그걸로 저랑 밥 먹는 걸 어떻게 압니까?]잠시 뒤 답장이 왔다.[한소이 선생도 같은 시간 근무를 조정했으니까요.]역시 사람을 지나치게 자세히 봤다.[제가 누구 좋아하는지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이번에는 답장이 늦었다.소이는 화면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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