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맞선은 근무 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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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6
Por:  RionhaActualizado ah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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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교수와 살아남아야 하는 레지던트. 병원 밖에서는 서로의 가족과 맞선 취향까지 알아버린 남자와 여자. 연애보다 수술이 쉬운 외과 교수와, 교수의 마음보다 환자의 상태를 먼저 알아보는 레지던트의 살벌하고 엉큼한 병원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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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 1화. 맞선 상대가 교수님

# 1화. 맞선 상대가 교수님

한소이는 병원에서 사람의 목숨보다 무서운 것이 딱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응급 호출.

두 번째는 어머니에게서 걸려 오는 부재중 전화 일곱 통.

그리고 오늘, 그 두 번째 것이 결국 사고를 쳤다.

“소이야, 오늘만 나가 봐. 진짜 마지막이야.”

마지막이라는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김정숙 여사가 말하는 마지막 맞선은 계절마다 돌아왔다. 봄에는 벚꽃처럼, 여름에는 장마처럼, 가을에는 환절기 감기처럼 찾아왔다. 겨울이 되면 이번 해만 넘기지 말자는 절박함까지 더해졌다.

소이는 호텔 레스토랑 입구에 서서 휴대전화를 노려봤다.

[엄마: 상대방 벌써 도착했대.]

[엄마: 사진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하더라.]

[엄마: 말실수하지 말고.]

[엄마: 직업도 안정적이야.]

[엄마: 의사래.]

마지막 문장을 읽은 소이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

의사?

같은 업종은 피하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병원에서는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의사들 틈에 끼어 살았다. 쉬는 날까지 의사와 마주 앉아 간 수치, 콜레스테롤, 당직 횟수 따위를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연애할 때가 아니었다.

청명대학교병원 인턴 생활도 막바지였다. 일반외과 레지던트 지원서는 이미 제출했고, 며칠 뒤면 면접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인턴보다 더 지독하다는 외과 레지던트 생활이 눈앞이었다.

운이 나쁘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사랑도 못 한다.

아니, 사랑은 지금도 못 하고 있었다.

소이는 한숨을 삼키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이 창가 쪽 자리를 안내했다. 하얀 테이블보와 반짝이는 와인 잔, 지나치게 차분한 클래식 음악까지 모두 부담스러웠다.

상대는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소이는 의자에 앉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냈다. 상대방의 사진을 확인하려 했지만 어머니가 보낸 파일은 이미 대화창 아래로 한참 밀려 있었다.

굳이 찾지 않았다.

오늘의 목적은 간단했다.

예의를 지키며 식사를 마치고, 서로 좋은 분 만나시라는 덕담을 건넨 뒤, 최대한 빠르게 귀가하는 것.

결혼은 근무 외였다.

연애도 근무 외였다.

지금 한소이에게 근무 외 시간은 수면을 위해 존재했다.

“한소이 씨?”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소이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든 순간, 입가에 걸어 두었던 영업용 미소가 그대로 굳었다.

키가 큰 남자였다.

검은 정장 위로 반듯하게 떨어지는 코트, 흐트러짐 없이 넘긴 머리, 상대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사소한 실수까지 찾아낼 것 같은 눈.

소이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저 얼굴을 모르는 청명대학교병원 인턴이 드물었다.

간담췌외과 부교수 윤재혁.

수술 실력은 국내 최고 수준.

성격은 국내 최악 수준.

회진 중 전공의에게 질문을 던진 뒤 대답을 기다리는 삼 초 동안 병동의 실내 온도를 낮춘다는 사람.

한 번은 수술 준비가 늦었다는 이유로 레지던트 한 명을 눈빛만으로 울렸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 전설의 주인공이 지금 소이의 맞은편 의자를 빼고 있었다.

소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

윤재혁이 의자에 앉다 말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안 앉습니까?”

그 한마디에 무릎이 자동으로 접혔다.

소이는 의자에 바르게 앉았다. 손은 허벅지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병원에서 교수와 면담할 때 나오는 자세였다.

윤재혁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손으로, 다시 얼굴로 천천히 움직였다.

“인턴 한소이.”

“네, 교수님.”

대답이 튀어나온 뒤에야 소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다.

맞선 자리에서 상대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윤재혁의 한쪽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여기 병원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교수님이라고 합니까?”

“습관입니다.”

“나랑 대화한 적도 없는데?”

“멀리서 많이 뵀습니다.”

“내가 연예인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교수님께서 워낙 유명하셔서요.”

소이는 입을 다물었다.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습관이 또 튀어나왔다.

그의 유명세 중 절반 이상이 악명이라는 설명까지 보탤 뻔했다.

윤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메뉴판을 펼쳤다.

“뭐 먹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저녁 시간에 식당까지 와서 안 먹겠다는 겁니까?”

“입맛이 조금 사라져서요.”

“나를 보고?”

“그건 아닙니다.”

너무 빨리 부정했다.

누가 들어도 그것 때문이었다.

소이는 물잔을 들어 입술에 댔다. 아직 물을 따르지도 않은 빈 잔이었다.

조용히 내려놓으려 했지만 유리잔 바닥이 테이블과 부딪치며 또각 소리를 냈다.

윤재혁의 시선이 빈 잔에 머물렀다.

소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메뉴판을 폈다.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맞선 상대가 윤재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소이는 일반외과에 지원했다.

합격하면 적어도 몇 달은 윤재혁이 있는 과에서 근무해야 했다. 최악의 경우 직속으로 배정될 수도 있었다.

오늘 맞선을 망치면 결혼만 망치는 게 아니었다.

레지던트 인생까지 함께 망칠 가능성이 있었다.

소이는 메뉴판 위로 조심스럽게 눈만 들었다.

윤재혁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조차 없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혹시 이미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던 걸까.

인턴 한 명의 이름을 저 사람이 어떻게 알았지?

지난달 응급 수술 때 혈액을 잘못된 엘리베이터로 옮긴 일 때문인가. 아니면 회진 중 환자 침대 뒤에 숨어 김밥을 먹다가 들킨 일 때문인가.

둘 다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직원이 다가와 물을 따르고 주문을 받았다.

윤재혁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소이는 가장 빨리 먹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파스타를 골랐다.

직원이 사라지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소이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 상황을 끝낼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교수님.”

윤재혁이 눈을 들었다.

“윤재혁 씨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죠?”

“내일 병원에서 마주치면 오늘 일을 떠올릴 것 같아서요.”

“이미 떠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정곡이었다.

소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 저는 오늘 맞선에 큰 뜻을 두고 나온 게 아닙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시군요.”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소이는 용기를 얻어 말을 이었다.

“서로 바쁘고, 같은 업종이고, 무엇보다 직장도 같으니까요. 괜히 불편한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윤재혁이 물잔을 들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맑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는 동작까지 지나치게 느긋했다.

소이는 그 짧은 침묵 동안 자신의 레지던트 지원서가 찢어지고, 이름 옆에 불합격 도장이 찍히며, 지방의 어느 병원으로 쫓겨나는 장면까지 상상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소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나도 이 자리가 편한 건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다만.”

역시 쉽게 끝날 리 없었다.

윤재혁이 테이블 위에 팔을 올렸다. 몸이 조금 앞으로 기울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볼 때도 위압적인 사람이었다.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검은 눈동자가 생각보다 더 깊었다.

소이는 자신도 모르게 등을 의자에 붙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떤...”

“인턴 한소이.”

그가 다시 정확하게 이름을 불렀다.

병원에서 교수에게 이름이 불렸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네.”

“일반외과에 지원했더군.”

소이의 손가락이 굳었다.

지원자 명단이 벌써 교수들에게 넘어간 모양이었다.

윤재혁은 그녀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묻는 겁니다.”

그의 시선이 소이에게 곧게 꽂혔다.

“나를 보자마자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왜 내 과에 지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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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합격보다 무서운 배정“어젯밤에는 몇 시간 잤습니까?”면접이 끝난 지원자에게 할 질문은 아니었다.한소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윤재혁을 바라봤다.“그건 왜 물으십니까?”“눈 밑이 어둡길래.”“교수님을 다시 만날까 봐 긴장해서 못 잤습니다.”말을 내뱉은 뒤 소이는 아차 싶었다.병원에서는 모르는 사이로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복도 한복판에서 어젯밤 두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을 스스로 암시해 버렸다.다행히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윤재혁은 당황하기는커녕 차분하게 되물었다.“내가 면접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들어오실 줄 알았으니까요.”“그래서 몇 시간?”소이는 대답하지 않으려다 그의 시선에 밀려 입을 열었다.“두 시간 정도 잤습니다.”“그 상태로 면접을 봤고?”“네.”“외과에 들어오면 두 시간이라도 자는 날은 다행일 텐데.”“협박하시는 겁니까?”“정보를 주는 겁니다.”윤재혁은 소이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사람을 보는 눈이라기보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눈에 가까웠다. 소이는 괜히 허리를 똑바로 세웠다.“어지럽거나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고?”“괜찮습니다.”“아침은?”“먹었습니다.”“뭘?”소이는 입을 다물었다.윤재혁이 대답을 기다렸다.“커피요.”“그건 음식이 아닙니다.”“우유가 들어갔습니다.”“우유가 들어가면 식사가 됩니까?”“칼로리는 있습니다.”“그 논리면 수액 맞으면 하루 세끼 다 해결되겠군.”소이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자신도 커피가 아침 식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윤재혁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구내식당 아직 열려 있습니다.”“지금 가라는 말씀이십니까?”“그럼 저녁까지 굶을 겁니까?”“교수님께서 왜 제 식사까지 신경 쓰십니까?”질문을 받은 윤재혁이 잠시 멈췄다.소이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날카롭게 말했다는 걸 깨달았다.면접에서 빠져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따지고만 있었다.그녀가 사과하려는 순간 윤재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외과 지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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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특별히 더 싫어하는 사람
# 7화. 특별히 더 싫어하는 사람“한소이 선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박민우의 질문과 동시에 복도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소이는 투명한 커피잔을 든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얼음이 서로 부딪치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맞선 자리에서 자신이 주문했던 음료였다.병원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더구나 시럽을 넣지 않는다는 것까지 윤재혁이 알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소이는 재혁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아무 말이나 해요.호텔에서 봤다는 말만 빼고.윤재혁은 그런 소이의 다급함을 알아차렸는지 못 알아차렸는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보면 압니다.”박민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커피 취향이 얼굴에 쓰여 있습니까?”“박민우 선생은 따뜻한 것만 마시잖아요.”“그건 교수님이 저를 몇 년이나 보셨으니까 아는 거고요.”“한소이 선생도 아침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있었습니다.”소이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첫 회진 전 박민우에게 받은 커피가 아이스커피였던 것은 맞았다.완벽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넘어갈 만한 설명이었다.박민우는 기억을 더듬듯 고개를 기울였다.“그랬나?”“네. 그랬습니다.”소이가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동의했다.박민우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왔다.“근데 시럽 안 넣는 건?”소이의 입이 다시 다물렸다.윤재혁이 답했다.“외과 레지던트가 단 걸 찾을 표정은 아니던데.”“그건 무슨 표정입니까?”“피곤하고 예민한 표정.”소이는 발끈해서 그를 바라봤다.“저 안 예민합니다.”“방금 예민해졌는데.”“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요.”박민우의 눈동자가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소이는 뒤늦게 입술을 깨물었다.의심을 피하겠다고 해 놓고 평소처럼 말대꾸부터 해 버렸다.윤재혁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둘 다 한가합니까?”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박민우 선생은 수술 준비 확인하고, 한소이 선생은 김복순 환자 검사 결과 다시 정리해서 십 분 안에 내 방으로 가져오세요.”소이가 눈을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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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당직은 둘이서
# 8화. 당직은 둘이서윤재혁 교수가 한소이를 특별히 싫어한다는 소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졌다.오후 회진이 끝날 무렵에는 소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기만 해도 누군가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구내식당에 내려갔을 때는 모르는 선배가 요구르트까지 하나 더 얹어 주며 힘내라고 했다.소이는 요구르트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이게 다 뭐예요?”맞은편에 앉은 배하린이 빨대를 꽂으며 대답했다.“불쌍한 신입에게 보내는 병원 사람들의 온정.”“내가 왜 불쌍해?”“윤 교수님한테 찍혔다며.”“누가 그래?”“모두가.”하린은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목소리를 낮췄다.“첫날부터 환자 맡기고, 퇴원 기록 몰아주고, 십 분 안에 보고서 가져오라고 했다며. 너 윤 교수님한테 뭐 잘못했어?”맞선 자리에 나간 것.빈 잔을 마시려 한 것.파스타를 흘린 것.결혼 상대로는 최악이라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것.생각해 보니 잘못한 일이 제법 많았다.“아무것도 안 했어.”소이는 요구르트 빨대를 세게 물었다.“그냥 나를 빨리 가르치고 싶으신가 보지.”“너 생각보다 긍정적이구나.”“긍정적인 게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거야.”“싫어하는 사람이 빨리 가르치려고 그럴까?”“입원한 환자가 나 때문에 잘못되는 것보다는 낫잖아.”하린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소이도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윤재혁이 자신을 특별히 싫어한다고 오해받는 편이 맞선 사실을 들키는 것보다는 나았다.그가 일부러 더 엄격하게 구는 이유도 같은 생각 때문일 것이다.다만 그 정도가 조금 지나쳤을 뿐이었다.정확히는 많이 지나쳤다.퇴원 환자 두 명의 경과 기록을 겨우 정리하고 김복순 환자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을 때는 오후 여덟 시가 넘어 있었다.소이는 병동 스테이션 의자에 앉아 목을 뒤로 젖혔다.첫날부터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자면 안 돼.”박민우가 차트로 책상을 툭 쳤다.소이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안 잤습니다.”“눈 감고 코로 숨 쉬고 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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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알레르기까지 아는 사이
# 9화. 알레르기까지 아는 사이“내 눈치 보지 말고 환자부터.”그 말을 남긴 윤재혁은 수술실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한소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손을 씻고 나온 사람들이 옆을 지나갔지만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잘했습니다.다음에도 오늘처럼 판단하세요.윤재혁에게 두 문장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슴 안쪽에 단단하게 뭉쳐 있던 것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소이는 양손으로 볼을 가볍게 눌렀다.“정신 차리자.”칭찬 한 번 받았다고 감동할 때가 아니었다.재수술을 마친 환자는 중환자실로 올라가야 했고, 자신은 경과 기록을 정리해야 했다.무엇보다 윤재혁은 칭찬보다 지적을 훨씬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오늘 잘했다고 내일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었다.소이가 중환자실로 올라갔을 때 박민우가 막 도착해 있었다.“수술 잘 끝났대?”“네. 출혈 부위 잡았고 지금은 안정적입니다.”“너 괜찮아?”“제가 왜요?”“얼굴이 하얘.”소이는 손등으로 뺨을 문질렀다.“피곤해서 그런가 봅니다.”“윤 교수한테 혼났고?”“아니요.”“안 혼났어?”박민우가 오히려 놀란 얼굴을 했다.“잘했다고 하셨습니다.”“윤 교수가?”“네.”“직접?”“그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칭찬하십니까?”“가끔 그런 일도 없진 않은데.”박민우는 소이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오늘 무슨 날이지?”“제가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그런 뜻이 아니라 윤 교수가 입으로 잘했다고 하는 날이 흔치 않다는 뜻이야.”그 말에 소이는 괜히 입꼬리를 눌렀다.웃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박민우는 그런 소이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좋냐?”“뭐가요?”“칭찬받아서.”“누가 안 좋아합니까?”“그렇긴 하지.”박민우가 차트를 넘기며 덧붙였다.“윤 교수한테 칭찬받으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어. 대신 다음 칭찬까지 두 달 걸릴 수도 있고.”소이는 곧장 현실로 돌아왔다.“그럼 한 달 뒤부터는 뭘로 버팁니까?”“카페인.”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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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반찬은 죄가 없다
# 10화. 반찬은 죄가 없다“윤 교수님하고 정말 아무 일도 없어?”정유라의 질문에 한소이는 입을 다물었다.오른쪽 눈썹이 또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하필이면 거짓말할 때마다 얼굴이 먼저 반응하는 체질이라니.소이는 억지로 눈썹에 힘을 주며 웃었다.“무슨 일이 있겠습니까?”“지금 눈썹 올라갔어.”“원래 비대칭입니다.”“아까까진 멀쩡했는데?”“회식 자리라 긴장해서 그렇습니다.”정유라는 팔짱을 낀 채 소이를 빤히 바라봤다.복도 끝에서는 직원들이 쟁반을 들고 오갔고, 문틈 너머로는 회식 자리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소이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여기서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끝이었다.맞선 사실이 드러나면 특혜 의혹부터 시작해 별별 소문이 다 붙을 게 분명했다.“윤 교수님이 네 커피 취향도 알고.”정유라가 손가락을 하나 폈다.“알레르기도 알고.”두 번째 손가락이 올라갔다.“너한테만 유독 일 많이 시키고.”세 번째 손가락까지 펴졌다.“이건 아무 일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조합이 아닌데.”“마지막은 오히려 저를 싫어한다는 증거 아닙니까?”“그게 더 이상해.”“뭐가요?”“윤 교수님은 싫어하는 사람한테 일을 많이 안 줘.”소이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그냥 아예 기대를 안 하지.”정유라는 목소리를 낮췄다.“일을 많이 시킨다는 건 계속 보고 있다는 뜻이야.”“신입이라서 보시는 거겠죠.”“다른 신입은 안 그래.”그 말이 묘하게 가슴에 걸렸다.소이는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고개를 저었다.“저랑 교수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맞선을 봤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하기로 했다.그러니 현재 기준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정유라는 쉽게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그럼 땅콩 알레르기는 어떻게 알았는데?”“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인턴 회식 때...”“윤 교수님 인턴 회식 안 왔어.”소이의 얼굴이 굳었다.정유라가 단호하게 덧붙였다.“나도 그날 있었거든.”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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