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바퀴가 복도를 따라 조용히 굴러갔다.서진은 마지막으로 침실을 돌아봤다.3년 동안 사용한 방이었다.그런데 자신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침구도, 커튼도, 벽에 걸린 그림도 그대로였다.마치 처음부터 혼자 살지 않았던 사람처럼.계단을 내려가자 집사가 다가왔다.“사모님, 외출하십니까?”“네.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집사의 표정이 굳었다.“부회장님께서는…….”“알고 계세요.”서진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감사했어요.”집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사모님.”“네.”“정말 가시는 겁니까?”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한도윤이었다.그의 시선이 캐리어에 멈췄다.“벌써 나가?”“응.”“차는?”“불렀어.”“김 실장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괜찮아.”도윤은 미간을 좁혔다.“굳이 그렇게까지 선을 그어야 해?”서진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이제는 내가 알아서 해도 되잖아.”그 말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서진은 현관으로 향했다.“서진아.”발걸음이 멈췄다.“나중에 얘기하자.”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응. 서류 보고 연락해.”문이 닫혔다.도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서진이 떠나는 모습은 생각보다 조용했다.울지도 않았고, 원망하지도 않았다.그게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잠시 뒤 집사가 다가왔다.“부회장님.”“왜.”“사모님께서 이것을 두고 가셨습니다.”작은 반지였다.도윤은 손을 뻗었다.3년 전 자신이 골랐던 결혼반지.반지를 끼워주던 날, 서진은 환하게 웃었다.그는 그 얼굴을 기억했다.하지만 그날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반지가 손바닥에서 차갑게 식어갔다.“다른 건?”“예?”“서진이가 두고 간 물건.”“대부분 그대로입니다.”“예물도?”“네.”도윤은 반지를 쥐었다.서진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재산도, 선물도, 자신이 누리던 생활도.그 사실이 도윤을 처음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녀는 정
Last Updated : 2026-11-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