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연하남이 자꾸 선을 넘는다: Chapter 1 - Chapter 10

11 Chapters

제1화. 11년 연애의 마지막 밤

사랑이 식어가는 데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연락이 뜸해지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사랑한다는 말이 사라질 뿐이었다. 그리고 한서윤은 그 모든 변화를 11년이라는 이름으로 견뎌왔다. 오후 7시 30분. 서윤은 레스토랑의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차민혁과 연애를 시작한 지 정확히 11년째 되는 날이었다. 테이블 옆에는 며칠을 고민해 고른 선물이 놓여 있었다. [서윤 : 어디쯤이야?] 한참 뒤 도착한 답장은 짧았다. [민혁 : 회의 길어져. 먼저 먹어.] 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윤 : 오늘 기념일이잖아. 기다릴게.]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오후 8시. 결국 서윤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 “민혁아, 언제 와?” — 아직 식당이야? “응. 기다리고 있어.” — 아, 왜 아직도 거기 있어? 먼저 먹으라니까. 짜증 섞인 목소리에 서윤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잖아.” — 서윤아. 우리 나이에 무슨 기념일을 그렇게 챙겨? 스무 살도 아니고. 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냥 같이 밥 한 끼 먹고 싶었어.” — 그럼 주말에 먹으면 되잖아. “주말엔 당신 골프 약속 있잖아.” — 그럼 다음 주에 먹든가. 나 지금 바빠. 끊어. 뚝. 전화가 끊겼다. 서윤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된 것이. 밤 9시 30분. 민혁의 아파트. “뭐야, 아직 안 갔네.” 퇴근한 민혁이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우리 얘기 좀 하자.” “또 뭐가 서운한데?” 또. 서윤은 그 한마디에 씁쓸하게 웃었다. “민혁아. 우리 마지막으로 제대로 데이트한 게 언제야?” “갑자기 그건 왜?” “내 생일에도 바빴고, 아플 때도 연락 한 통 없었잖아.”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면 되잖아.” “항상 내가 말해야 해?” 민혁이 한숨을 쉬었다. “서윤아, 우리 11년이나 만났어. 아직도 연애 초반처럼 해줘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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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누나, 저도 남자인데요?

오전 9시 17분 띠링 늦잠을 자던 한서윤은 휴대전화 진동에 눈을 떴다. [하린 : 야, 일어났어?] [하린 : 어제 그 잘생긴 연하남 기억나?] 서윤은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겼다. 어젯밤 와인바에서 만났던 남자. 강이준 서른 살이라고 했던가. [서윤 : 왜?] [하린 : 걔가 너 남자친구 있냐고 묻더라.] [서윤 : 뭐?] [하린 : 나이 차이도 알고 있던데?] 서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서윤 : 어제 처음 본 사람이잖아.] [하린 : 그러니까 웃기지.]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하린 : 근데 걔 괜찮은 애야. 잘생겼지, 능력 있지. 성격도 좋고.] [서윤 : 관심 없어.] [하린 : 누가 뭐래?] [하린 : 근데 너 지금 웃고 있지?]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를 손으로 눌렀다. ‘내가 웃긴 뭘 웃어.’ 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침실은 고요했다. 평소 토요일 아침이면 민혁에게서 연락이 왔는지 확인하곤 했다. 연락이 없으면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잘 잤어? 오늘 뭐 해?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윤은 습관적으로 민혁과의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어제저녁에 멈춰 있었다. 11년이라는 시간이 고작 몇 줄의 문자 뒤에 남겨져 있었다. 가슴 한쪽이 묵직해졌다. 그때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하린 : 오늘 점심 먹으러 와. 어제 파스타 제대로 못 먹었잖아. 서윤은 잠시 생각하다 답장을 보냈다. [서윤 : 알았어. 한 시쯤 갈게.] 더 이상 집에서 혼자 우울해하고 싶지 않았다. 오후 1시 12분. 와인바 ‘라비앙’의 문을 열자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다. 딸랑. “어서 와!” 하린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은 좀 괜찮아?” “응. 어제보다는.” “눈은 왜 이렇게 부었어?” “밤에 조금 울었어.” 하린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서윤이 파스타 하나 부탁해요!” 서윤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바로 어젯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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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우연을 가장한 재회

[나 진짜 잘 꼬시거든요.] 한서윤은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남자, 진짜 뭐야?’ 어제 처음 만난 남자였다. 그것도 아홉 살이나 어린. 그런데 이틀 만에 좋아해도 되냐고 묻더니, 이제는 대놓고 자신을 꼬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서윤 : 자신감은 인정할게요.] 답장을 보내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준 : 그럼 가능성 있다는 뜻이죠?] [서윤 : 그런 뜻 아닌데요?] [이준 : 아쉽다. 그래도 답장은 해주시네요. ㅎㅎ] 서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말은 잘해.” 그러면서도 입가의 미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서윤은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주말 내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던 민혁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정확히는 일요일 밤, 메시지가 하나 왔었다. [민혁 : 이제 기분 좀 풀렸어?] 서윤은 답장하지 않았다. 11년의 연애를 끝낸 일을 단순히 기분이 상한 문제로 생각하는 남자. 그에게 더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후배 지민이 밝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오늘 회의 자료 준비됐어?” “네! 그런데 팀장님, 오늘 좀 달라 보이세요.” “뭐가?” “음…… 얼굴이 좋아 보이세요.” 서윤은 피식 웃었다. “주말에 푹 쉬어서 그런가 봐.”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이준 : 누나, 좋은 아침!] [이준 : 월요일 싫죠?] [이준 : 그래도 오늘 예쁘게 웃기. 알았죠?]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옆에서 지민이 눈을 반짝였다. “어머, 팀장님!” “왜?” “누구예요? 남자친구?” 서윤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아니야!” “아닌데 왜 그렇게 웃으세요?” “일이나 해, 김지민.” 지민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서윤은 다시 화면을 켰다. [서윤 : 이준 씨는 월요일 아침부터 참 신나네요.] [이준 : 누나한테 연락할 수 있는데 당연히 신나죠.] [서윤 : 일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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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연락해도 돼요, 누나?

-띠링-[차민혁 : 내일 저녁에 만나. 할 얘기 있어.]서윤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11년 동안 익숙했던 이름.한때는 그 이름만 떠도 설렜는데, 이제는 가슴부터 답답해졌다.서윤 : 우리 이미 끝났어.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서윤은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 너 언제까지 이럴 건데?“무슨 뜻이야?”— 화난 건 알겠는데, 11년을 만났으면서 이렇게 끝내는 게 말이 돼?서윤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나 화나서 헤어진 거 아니야.”— 그럼 뭔데?“지쳤어. 더는 당신한테 사랑받으려고 애쓰고 싶지 않아.”— 서윤아, 너 지금 너무 예민해.또 그 말이었다.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 그렇게 생각해.”—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미안해. 난 할 말 없어.”처음으로 민혁보다 먼저 전화를 끊었다.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그때였다.-띠링-[이준 : 누나, 자요?][이준 : 답장 없으면 자는 걸로 알고 안 괴롭힐게요. ㅎㅎ]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서윤 : 아직 안 자요.]답장은 순식간에 도착했다.[이준 : 와! 오늘 마지막으로 누나랑 얘기하는 사람 나예요?][서윤 : 그게 그렇게 좋아요?][이준 : 엄청요.][이준 : 내일 아침 첫 번째도 제가 하고 싶은데.]“진짜 못 말린다.”서윤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서윤 : 이준 씨, 원래 이렇게 애교 많아요?][이준 : 아니요.][이준 : 누나한테만요.]순간 심장이 간질거렸다.서윤은 얼른 휴대전화를 뒤집었다.‘정신 차려, 한서윤.’헤어진 지 겨우 사흘이었다.그것도 아홉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설레다니.그런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을 확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다음 날 오전 7시 30분.-띠링-[이준 : 누나, 좋은 아침!][이준 : 어제 약속했으니까 오늘 첫 인사는 제 거예요.]서윤은 침대에서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이준 씨는 잠도 없어요?][이준 : 누나한테 인사하려고 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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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연하남의 첫 번째 질투

[이준 : 누나, 저 남자는 누구예요?][이준 : 나 지금 질투해도 되는 사이예요?]서윤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이 남자, 정말 못 말린다니까.’유리창 너머로 이준이 보였다.한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그녀를 바라보던 이준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그런데 서윤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다시 보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꼭 주인이 다른 강아지를 예뻐하는 걸 본 대형견 같았다.[서윤 : 회사 동료예요.]답장을 보내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이준 : 남자 동료요?][서윤 : 보면 몰라요?][이준 : 알아요. 그래서 질투 나요. ㅠㅠ]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팀장님,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으세요?”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태성이 물었다.태성은 같은 마케팅팀 차장으로, 서윤과 5년째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 아내와 일곱 살 딸이 있는 유부남이기도 했다.“아, 아니에요. 아는 사람이 장난을 쳐서요.”“누군데요?”“이번에 같이 프로젝트 하는 아르코 디자인 대표요.”서윤이 창밖을 가리키자 태성이 고개를 돌렸다.“어? 강 대표님이시네.”태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이준은 잠깐 놀란 얼굴이 되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그 순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이준 : 누나.][이준 : 저분 저도 아는 분이네요.][서윤 : 그러게요.][이준 : 근데 왜 두 분이 그렇게 다정하게 밥 먹어요?][서윤 : 업무 이야기 중이거든요?][이준 : 아아.][이준 : 그럼 나도 업무 이야기 하러 같이 앉으면 안 돼요?]서윤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서윤 : 안 돼요. 저희 거의 다 먹었어요.]유리창 밖 이준이 가슴을 움켜쥐었다.그러더니 한 걸음 뒤로 휘청거렸다.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아, 진짜 웃겨.’[이준 : 누나 너무해.][이준 : 나 지금 마음에 상처받았어요.][서윤 : 상처는 무슨..][이준 : 치료비는 누나랑 커피 한 잔이면 되는데.]서윤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하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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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밥 한 끼가 이렇게 설렐 일이야?

금요일 오전 7시 15분.한서윤은 거울 앞에서 세 번째 블라우스를 갈아입고 있었다.‘그냥 밥 한 끼 먹는 건데.’아이보리색을 입었다가 벗고,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꺼냈다. 이준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데이트가 아니라 지난번 약속한 식사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띠링-[이준 : 누나아! 드디어 금요일! 오늘 저 멋있게 하고 갈 거예요.][서윤 : 업무 미팅이잖아요.][이준 : 미팅 끝나면 누나랑 데이트잖아요. ㅎㅎ]서윤은 웃음을 참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누가 데이트래.’그런데도 립스틱을 바르는 손길은 평소보다 신중했다.오후 세 시.회의실 문이 열렸다.“안녕하세요, 한 팀장님.”서윤은 고개를 들었다가 잠시 멈칫했다.짙은 네이비색 정장에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 평소의 장난스러운 이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눈이 마주치자 그가 살짝 웃었다.‘뭐야, 왜 저렇게 입고 왔어….’"안녕하세요, 강 대표님."서윤은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이준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누나, 오늘 예쁘네요."서윤의 눈이 커졌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서윤은 어이없는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저 남자, 진짜…….'이준은 발표가 시작되자 고객 동선과 공사 일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서윤이 조명에 관해 질문하자 준비해 온 대안 시안을 곧바로 띄웠다.“꼼꼼하게 준비하셨네요.”“감사합니다, 한 팀장님.”그는 정중하게 답했다.그러나 잠시 후 서윤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이준 : 누나, 방금 저 좀 멋있었죠?]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를 흘겨봤다.이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넘겼다.오후 다섯 시 사십 분.회의가 끝났다.마지막 직원이 나가자 이준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누나, 이제 밥 먹으러 가요!”“방금까지 강 대표님이더니.”“업무 끝났으니까요. 지금은 누나랑 밥 먹을 강이준.”서윤은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오늘 정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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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누나, 나 오늘 좀 귀엽죠?

토요일 오전 9시 12분.-띠링-[이준 : 누나아아! 일어났어요? 나 어제 잠 못 잤어요.]서윤은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서윤 : 왜요?][이준 : 누나가 이준아~ 하고 불러준 거 자꾸 생각나서요.][서윤 : 별게 다 좋네요. ㅎㅎ][이준 : 누나가 좋으니까 별게 다 좋아요.]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아침부터 또 시작이네.’그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부스스한 머리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이준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한쪽 머리가 잔뜩 뻗친 채 입술을 삐죽 내민 모습이었다.[이준 : 누나, 나 오늘 좀 귀엽죠?]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머리는 왜 그래요?][이준 : 누나 생각하다 이렇게 됐어요.][서윤 : 머리랑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이준 : 모르겠어요. 누나가 책임져요.]“푸하하!”서윤은 한참을 웃었다.서른 살이나 먹은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천연덕스러울까.그런데 귀여웠다.아주 많이.오후 2시.서윤은 하린의 와인바에 들렀다.“어머, 우리 한 팀장님. 오늘 얼굴에 꽃이 폈네?”“무슨 꽃.”“연애하는 여자 얼굴?”“오하린!”하린은 깔깔 웃으며 커피를 내밀었다.“강이준이랑 어제 밥 먹었다며?”“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도현이한테 자랑했대. 누나가 자기 이름 불러줬다고.”“……뭐?”“그것도 엄청 좋아하면서.”서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아니, 이름 한 번 부른 게 뭐라고!”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딸랑.“하린 누나!”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서윤이 돌아보자 이준이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어? 서윤 누나!”그의 얼굴이 환해졌다.꼭 산책하러 나왔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한 강아지 같았다.“이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하린 누나한테 부탁받은 거 가져왔어요.”그는 봉투를 카운터에 내려놓더니 서윤에게 다가왔다.“누나, 나 보고 싶어서 왔어요?”“아니거든요?”“에이, 난 보고 싶었는데.”이준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누나는 맨날 나만 좋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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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누나가 먼저 연락한 날

일요일 오전 8시 36분.서윤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기를 세 번째 반복했다.어젯밤 이준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내일은 누나가 먼저 연락해 주면 안 돼요?’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보냈을 인사가 오늘은 유난히 어려웠다.‘먼저 연락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서윤은 마침내 메시지를 적었다.[서윤 : 이준아, 잘 잤어?]전송.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가 곧 다시 집어 들었다.아직 읽지 않았다.‘설마 자고 있나?’그때 화면에 부재중 전화가 떴다. 이준이었다.곧 메시지가 쏟아졌다.[이준 : 누나!!!, 저 지금 너무 좋아서 전화 잘못 눌렀어요.][이준 : 아침부터 심장 공격하면 반칙인데요?]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어제 먼저 연락해 달라면서.][이준 : 그랬죠. 근데 진짜 해줄 줄은 몰랐죠.][서윤 : 그럼 내일부터 안 할게.][이준 : 안 돼요! 취소! 제가 잘못했어요!]뒤이어 두 앞발을 모으고 있는 강아지 이모티콘이 도착했다.‘정말 귀여워.’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웃었다.오전 열한 시.서윤은 집 근처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주말의 작은 계획이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나, 뭐 해요?“서점 왔어.”— 책 좋아해요?“응.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 읽었지만.”— 그럼 오늘은 책 많이 봐요. 방해 안 할게요.잠깐 망설이던 서윤이 물었다.“이준이는 뭐 해?”— 저요? 도현이랑 사무실에서 모형 만들고 있어요.“일요일인데?”— 금요일에 누나한테 멋있어 보였으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요.“또 그 얘기야?”— 근데 누나, 방금 ‘이준이는’이라고 했죠?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와, 나 오늘 진짜 복권 당첨된 기분이에요.“그 정도야?”— 네. 누나가 먼저 연락해 주고, 지금은 제 얘기도 궁금해하고.서윤은 책등을 손끝으로 쓸었다.그저 안부를 묻는 일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수도 있구나.“점심은 먹었어?”— 아직요.“삼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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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아홉 살이 뭐 어때서

월요일 오전 7시 31분.-띠링-[이준 : 누나, 좋은 아침!][이준 : 어제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1분도 안 늦었어요.]서윤은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뜬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서윤 : 잘했네, 이준아.][이준 : 칭찬받았다! 오늘도 힘내서 돈 벌게요.][서윤 : 그 돈으로 밥 제대로 챙겨 먹고.][이준 : 네! 누나도요. 사랑... 아니, 좋은 하루요!]서윤은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사랑이라니.’웃음이 났다가, 금세 마음이 복잡해졌다.점심시간, 사무실 탕비실.“팀장님, 주말에 소개팅 나가셨죠?”커피를 타던 지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즘 휴대전화만 보면 웃으시잖아요.”서윤이 대답을 망설이자 지민이 눈을 반짝였다.“진짜 누구 있어요?”“그런 사이 아니야. 그냥 알아가는 사람이야.”“몇 살인데요?”“서른.”“우와, 아홉 살 연하?”지민의 탄성에 서윤이 얼른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쉿. 회사에서 소문낼 일 아니야.”“죄송해요. 근데 팀장님, 나이는 왜요? 잘 맞으면 좋은 거죠.”지민은 가볍게 웃고 나갔다.혼자 남은 서윤은 식어가는 커피를 내려다봤다.지민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잘 맞으면 좋은 것.하지만 서윤은 서른아홉이었다. 이준은 이제 서른이었다.그가 서른다섯이 되는 날, 자신은 마흔넷이다.‘그때도 지금처럼 웃어줄까?’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서윤은 스스로에게 쓴웃음을 지었다.아직 사귀지도 않는 남자와 오 년 뒤를 걱정하다니.오후 5시 50분.퇴근하려던 서윤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오늘도 고생했어요!“이준아. 너는 퇴근했어?”— 네. 오늘은 도현이가 저녁 사준대요. 제가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고요.“좋겠네.”— 누나도 같이 올래요? 아, 아니에요. 갑자기 오라면 부담스럽죠.평소 같으면 웃으며 받아쳤을 말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이준아.”— 네?“너는 왜 나를 좋아해?”잠깐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면접이에요?“장난 말고.”이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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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한 번만, 남자로 봐줘요

전송 버튼을 누른 지 십 초도 지나지 않았다.[서윤 : 응. 나도 보고 싶네.]화면에 적힌 자신의 문장을 바라보던 서윤은 뒤늦게 얼굴을 감쌌다.‘내가 왜 그랬지?’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강이준.“여보세요?”— 누나. 방금 문자, 진짜예요?“뭐가?”— 나 보고 싶다는 거요.“빵 갖다준다니까 그렇지.”— 아, 크루아상이 보고 싶은 거였구나.목소리가 금세 축 처졌다. 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반반.”— 네?“크루아상 반, 이준이 반.”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이준아?”— 괜찮아요. 너무 좋아서 책상에 무릎 좀 박았어요.“어휴, 조심 좀 해.”— 누나가 또 이준이라고 불렀다. 오늘 잠은 다 잤네.전화기를 붙든 채 웃던 서윤은 문득 생각했다. 민혁과 통화할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은 게 언제였더라.다음 날 오전 여덟 시 사십 분.[이준 : 누나! 빵집 도착!][이준 : 크루아상이 세 종류인데 긴급회의 필요해요.]함께 온 사진에는 플레인, 아몬드, 초콜릿 크루아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서윤 : 플레인 하나면 돼.][이준 :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임질게요!]‘세 개 다 사겠다는 뜻이네.’서윤은 웃으며 옷장 문을 열었다. 편한 청바지에 흰 니트를 골랐다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 내렸다.일부러 꾸민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예뻐 보이고 싶었다.오전 열 시, 회사 근처 작은 광장.멀리서 이준이 손을 흔들었다. 회색 후드티 위에 가벼운 재킷을 걸친 모습이었다. 한 손에는 빵 봉투, 다른 손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누나아!”달려오던 이준이 그녀 앞에서 멈췄다.“왜 뛰어? 넘어지겠다.”“빨리 보고 싶어서요.”그는 환하게 웃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왜?”“오늘…… 예쁘네요.”“어제도 그랬잖아.”“어제도 예뻤는데 오늘은 조금 달라요.”“뭐가?”“오늘은 저 보러 나온 거잖아요.”서윤은 대답 대신 커피를 받아 들었다. 괜히 손끝이 따뜻해졌다.두 사람은 광장 옆 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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