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띠링-
[차민혁 : 내일 저녁에 만나. 할 얘기 있어.] 서윤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11년 동안 익숙했던 이름. 한때는 그 이름만 떠도 설렜는데, 이제는 가슴부터 답답해졌다. 서윤 : 우리 이미 끝났어. 답장을 보내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서윤은 잠시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너 언제까지 이럴 건데? “무슨 뜻이야?” — 화난 건 알겠는데, 11년을 만났으면서 이렇게 끝내는 게 말이 돼? 서윤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나 화나서 헤어진 거 아니야.” — 그럼 뭔데? “지쳤어. 더는 당신한테 사랑받으려고 애쓰고 싶지 않아.” — 서윤아, 너 지금 너무 예민해. 또 그 말이었다. 서윤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 “미안해. 난 할 말 없어.” 처음으로 민혁보다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띠링- [이준 : 누나, 자요?] [이준 : 답장 없으면 자는 걸로 알고 안 괴롭힐게요. ㅎㅎ]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서윤 : 아직 안 자요.] 답장은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준 : 와! 오늘 마지막으로 누나랑 얘기하는 사람 나예요?] [서윤 : 그게 그렇게 좋아요?] [이준 : 엄청요.] [이준 : 내일 아침 첫 번째도 제가 하고 싶은데.] “진짜 못 말린다.” 서윤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서윤 : 이준 씨, 원래 이렇게 애교 많아요?] [이준 : 아니요.] [이준 : 누나한테만요.] 순간 심장이 간질거렸다. 서윤은 얼른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정신 차려, 한서윤.’ 헤어진 지 겨우 사흘이었다. 그것도 아홉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설레다니. 그런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을 확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 -띠링- [이준 : 누나, 좋은 아침!] [이준 : 어제 약속했으니까 오늘 첫 인사는 제 거예요.] 서윤은 침대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서윤 : 이준 씨는 잠도 없어요?] [이준 : 누나한테 인사하려고 알람 맞췄어요.] [서윤 : 정말 별난 사람이네요.] [이준 : 별나게 좋아해 주시면 안 돼요?] 서윤은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이 남자, 정말 위험해.’ 점심시간. 서윤은 회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때 이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준 : 누나, 점심 먹었어요?] [서윤 : 네. 이준 씨는요?] [이준 : 아직요. 도면 수정 중이에요.] [서윤 : 밥부터 먹어요. 그러다 쓰러져요.] 잠시 후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편의점 삼각김밥이었다. [이준 : 누나 말 잘 듣는 중!] [서윤 : 그게 밥이에요? 제대로 먹어요.] [이준 : 그럼 다음에는 누나가 밥 사줘요.] 서윤은 피식 웃었다. [서윤 : 알겠어요. 다음에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준 : 약속했다! 캡처 완료!] “아, 진짜!” 서윤은 결국 소리 내어 웃었다. 옆에 있던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요즘 좋은 일 있으세요?” “왜?” “계속 웃으시잖아요.” 서윤은 얼른 표정을 정리했다. “그냥 웃긴 사람이 있어서.” 지민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웃긴 사람, 남자죠?” “김지민 씨. 점심시간 끝났어요.” “아, 네! 팀장님!”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가는 지민을 보며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입가에 번진 미소만큼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오후 6시 40분. 퇴근길에 접어든 서윤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준이었다. [이준 : 누나, 오늘 하루 힘들었어요?] [서윤 : 조금요.] [이준 : 그럼 집에 가서 푹 쉬어요.] [이준 : 나 오늘은 전화 안 할게요.]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온종일 장난스럽게 연락하던 남자가 의외로 쉽게 물러섰다. [서윤 : 왜요?] [이준 : 누나 피곤하잖아요.] [이준 : 보고 싶다고 자꾸 연락하면 귀찮을 수도 있으니까.] 그 문장을 바라보던 서윤의 마음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민혁과의 연애에서는 늘 자신의 서운함을 삼켜야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의 기분을 먼저 살폈다. 서윤은 잠시 망설이다 메시지를 보냈다. [서윤 : 이준 씨.] [이준 : 네!] [서윤 : 잠깐 통화할래요?]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 누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에 서윤이 웃었다. “왜 이렇게 신났어요?” — 누나가 먼저 전화하자고 했잖아요. “그게 뭐라고요.” — 저한테는 엄청 중요한 일인데요? 서윤은 대답 대신 웃었다. — 누나. “네?” —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는 안 물어볼게요. “…….” — 대신 웃고 싶으면 나한테 전화해요. 별 재미없는 얘기도 잘 들어줄게요. 서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이준 씨는 왜 이렇게 잘해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좋아하니까요. “…….” — 누나가 웃으면 나도 좋거든요.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이준이 다시 장난스럽게 말했다. — 아, 근데 누나. “왜요?” — 나 오늘 칭찬받을 일 하나 했어요. “뭔데요?” — 누나 보고 싶었는데 꾹 참았어요. 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잘했네요.” — 그럼 상 주세요. “무슨 상이요?” — 내일도 연락해도 되는 상. 서윤은 입술 끝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네. 연락해요.” 수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 누나, 진짜요? “네.” — 그럼 내일 아침에도 내가 첫 번째? “그건 자신 없는데요?” 이준이 환하게 웃었다. — 괜찮아요. 내가 더 일찍 일어나면 되니까. 전화를 끊은 서윤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녀는 아직 몰랐다. 자신이 조금씩 그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다음 날 점심. 서윤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남자 동료와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유리창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강이준. 반갑게 손을 흔들던 그가 서윤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발견했다. 순간 그의 미소가 멈췄다. 그리고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준 : 누나.] [이준 : 저 남자는 누구예요?] 서윤은 창밖의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든 채 그녀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이준 : 나 지금 질투해도 되는 사이예요?] 서윤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아니, 이 남자 정말…….’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어이없는 상황인데, 입가의 미소가 자꾸만 커졌다. 서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이 남자의 귀여운 질투가 앞으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얼마나 달콤하게 뒤흔들어 놓을지.수요일 아침.[이준 : 누나아! 좋은 아침!][이준 : 어제 멋있었다는 말, 아직 유효하죠?][서윤 : 칭찬에도 유효 기간이 있어?][이준 : 누나 칭찬은 평생 보관하려고요.]서윤은 웃음을 삼켰다. 휴대전화가 울리면 그를 떠올렸다.아홉 살 어린 남자. 연애할 마음도 없는데 자꾸 기다리게 됐다.[서윤 : 오늘도 잘하고 와, 이준아.][이준 : 충성! 오늘 업무 성과 두 배로 내겠습니다!]서윤이 혼잣말했다.“큰 강아지 같아, 정말.”토요일 오전, 플래그십 스토어 조사를 위해 찾은 꽃시장.서윤은 입구에서 이준을 발견했다. 베이지색 재킷에 도면 가방을 멘 그가 그녀를 보자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한 팀장님! 여기요!”직원들이 앞서가자 이준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누나, 오늘 예쁘네요.”“강 대표님. 업무 중이거든요?”“그래서 작게 말했잖아요.”그가 옷깃을 매만졌다.“저도 오늘 꽤 신경 썼는데, 칭찬 없어요?”“응. 잘 어울려.”“아싸. 오전 목표 달성!”해맑은 미소에 서윤은 결국 웃었다.점검이 시작되자 이준은 달라졌다. 진열대 높이를 재고, 조명 때문에 꽃잎의 색이 달라 보이는 문제를 바로 짚었다.“입구는 낮은 화기를 세 구역으로 나누죠. 고객 동선도 넓어집니다.”“좋네요. 월요일 회의에 반영해 주세요.”“네, 한 팀장님.”그가 메모하는 모습을 보니 믿음직스러웠다.조사가 끝날 무렵, 안쪽 통로로 손수레가 들어왔다.“지나갑니다! 비켜주세요!”사람들이 움직이자 서윤이 옆으로 밀렸다.“어!”이준이 재빨리 서윤의 손을 잡아 중심을 잡아 주었다. 손이 닿은 건 잠깐. 그는 그녀의 손을 자기 팔꿈치 부근 소매로 옮겼다.“자, 여기 잡아요.”“응?”“제 소매요. 누나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내가 무슨 어린애야?”“맞아요. 이렇게 큰 누나 잃어버리면 큰일이죠.”“강이준!”“하하! 자, 출발합니다. 한서윤 어린이!”서윤은 웃으며 그의 팔꿈치 부근 소매를 살짝 움켜쥐었다.그렇게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툭.
전송 버튼을 누른 지 십 초도 지나지 않았다.[서윤 : 응. 나도 보고 싶네.]화면에 적힌 자신의 문장을 바라보던 서윤은 뒤늦게 얼굴을 감쌌다.‘내가 왜 그랬지?’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강이준.“여보세요?”— 누나. 방금 문자, 진짜예요?“뭐가?”— 나 보고 싶다는 거요.“빵 갖다준다니까 그렇지.”— 아, 크루아상이 보고 싶은 거였구나.목소리가 금세 축 처졌다. 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반반.”— 네?“크루아상 반, 이준이 반.”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이준아?”— 괜찮아요. 너무 좋아서 책상에 무릎 좀 박았어요.“어휴, 조심 좀 해.”— 누나가 또 이준이라고 불렀다. 오늘 잠은 다 잤네.전화기를 붙든 채 웃던 서윤은 문득 생각했다. 민혁과 통화할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은 게 언제였더라.다음 날 오전 여덟 시 사십 분.[이준 : 누나! 빵집 도착!][이준 : 크루아상이 세 종류인데 긴급회의 필요해요.]함께 온 사진에는 플레인, 아몬드, 초콜릿 크루아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서윤 : 플레인 하나면 돼.][이준 :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임질게요!]‘세 개 다 사겠다는 뜻이네.’서윤은 웃으며 옷장 문을 열었다. 편한 청바지에 흰 니트를 골랐다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 내렸다.일부러 꾸민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예뻐 보이고 싶었다.오전 열 시, 회사 근처 작은 광장.멀리서 이준이 손을 흔들었다. 회색 후드티 위에 가벼운 재킷을 걸친 모습이었다. 한 손에는 빵 봉투, 다른 손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누나아!”달려오던 이준이 그녀 앞에서 멈췄다.“왜 뛰어? 넘어지겠다.”“빨리 보고 싶어서요.”그는 환하게 웃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왜?”“오늘…… 예쁘네요.”“어제도 그랬잖아.”“어제도 예뻤는데 오늘은 조금 달라요.”“뭐가?”“오늘은 저 보러 나온 거잖아요.”서윤은 대답 대신 커피를 받아 들었다. 괜히 손끝이 따뜻해졌다.두 사람은 광장 옆 벤
월요일 오전 7시 31분.-띠링-[이준 : 누나, 좋은 아침!][이준 : 어제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1분도 안 늦었어요.]서윤은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뜬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서윤 : 잘했네, 이준아.][이준 : 칭찬받았다! 오늘도 힘내서 돈 벌게요.][서윤 : 그 돈으로 밥 제대로 챙겨 먹고.][이준 : 네! 누나도요. 사랑... 아니, 좋은 하루요!]서윤은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사랑이라니.’웃음이 났다가, 금세 마음이 복잡해졌다.점심시간, 사무실 탕비실.“팀장님, 주말에 소개팅 나가셨죠?”커피를 타던 지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즘 휴대전화만 보면 웃으시잖아요.”서윤이 대답을 망설이자 지민이 눈을 반짝였다.“진짜 누구 있어요?”“그런 사이 아니야. 그냥 알아가는 사람이야.”“몇 살인데요?”“서른.”“우와, 아홉 살 연하?”지민의 탄성에 서윤이 얼른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쉿. 회사에서 소문낼 일 아니야.”“죄송해요. 근데 팀장님, 나이는 왜요? 잘 맞으면 좋은 거죠.”지민은 가볍게 웃고 나갔다.혼자 남은 서윤은 식어가는 커피를 내려다봤다.지민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잘 맞으면 좋은 것.하지만 서윤은 서른아홉이었다. 이준은 이제 서른이었다.그가 서른다섯이 되는 날, 자신은 마흔넷이다.‘그때도 지금처럼 웃어줄까?’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서윤은 스스로에게 쓴웃음을 지었다.아직 사귀지도 않는 남자와 오 년 뒤를 걱정하다니.오후 5시 50분.퇴근하려던 서윤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오늘도 고생했어요!“이준아. 너는 퇴근했어?”— 네. 오늘은 도현이가 저녁 사준대요. 제가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고요.“좋겠네.”— 누나도 같이 올래요? 아, 아니에요. 갑자기 오라면 부담스럽죠.평소 같으면 웃으며 받아쳤을 말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이준아.”— 네?“너는 왜 나를 좋아해?”잠깐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면접이에요?“장난 말고.”이준
일요일 오전 8시 36분.서윤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기를 세 번째 반복했다.어젯밤 이준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내일은 누나가 먼저 연락해 주면 안 돼요?’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보냈을 인사가 오늘은 유난히 어려웠다.‘먼저 연락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서윤은 마침내 메시지를 적었다.[서윤 : 이준아, 잘 잤어?]전송.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가 곧 다시 집어 들었다.아직 읽지 않았다.‘설마 자고 있나?’그때 화면에 부재중 전화가 떴다. 이준이었다.곧 메시지가 쏟아졌다.[이준 : 누나!!!, 저 지금 너무 좋아서 전화 잘못 눌렀어요.][이준 : 아침부터 심장 공격하면 반칙인데요?]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어제 먼저 연락해 달라면서.][이준 : 그랬죠. 근데 진짜 해줄 줄은 몰랐죠.][서윤 : 그럼 내일부터 안 할게.][이준 : 안 돼요! 취소! 제가 잘못했어요!]뒤이어 두 앞발을 모으고 있는 강아지 이모티콘이 도착했다.‘정말 귀여워.’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웃었다.오전 열한 시.서윤은 집 근처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주말의 작은 계획이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나, 뭐 해요?“서점 왔어.”— 책 좋아해요?“응.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 읽었지만.”— 그럼 오늘은 책 많이 봐요. 방해 안 할게요.잠깐 망설이던 서윤이 물었다.“이준이는 뭐 해?”— 저요? 도현이랑 사무실에서 모형 만들고 있어요.“일요일인데?”— 금요일에 누나한테 멋있어 보였으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요.“또 그 얘기야?”— 근데 누나, 방금 ‘이준이는’이라고 했죠?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와, 나 오늘 진짜 복권 당첨된 기분이에요.“그 정도야?”— 네. 누나가 먼저 연락해 주고, 지금은 제 얘기도 궁금해하고.서윤은 책등을 손끝으로 쓸었다.그저 안부를 묻는 일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수도 있구나.“점심은 먹었어?”— 아직요.“삼각
토요일 오전 9시 12분.-띠링-[이준 : 누나아아! 일어났어요? 나 어제 잠 못 잤어요.]서윤은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서윤 : 왜요?][이준 : 누나가 이준아~ 하고 불러준 거 자꾸 생각나서요.][서윤 : 별게 다 좋네요. ㅎㅎ][이준 : 누나가 좋으니까 별게 다 좋아요.]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아침부터 또 시작이네.’그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부스스한 머리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이준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한쪽 머리가 잔뜩 뻗친 채 입술을 삐죽 내민 모습이었다.[이준 : 누나, 나 오늘 좀 귀엽죠?]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머리는 왜 그래요?][이준 : 누나 생각하다 이렇게 됐어요.][서윤 : 머리랑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이준 : 모르겠어요. 누나가 책임져요.]“푸하하!”서윤은 한참을 웃었다.서른 살이나 먹은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천연덕스러울까.그런데 귀여웠다.아주 많이.오후 2시.서윤은 하린의 와인바에 들렀다.“어머, 우리 한 팀장님. 오늘 얼굴에 꽃이 폈네?”“무슨 꽃.”“연애하는 여자 얼굴?”“오하린!”하린은 깔깔 웃으며 커피를 내밀었다.“강이준이랑 어제 밥 먹었다며?”“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도현이한테 자랑했대. 누나가 자기 이름 불러줬다고.”“……뭐?”“그것도 엄청 좋아하면서.”서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아니, 이름 한 번 부른 게 뭐라고!”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딸랑.“하린 누나!”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서윤이 돌아보자 이준이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어? 서윤 누나!”그의 얼굴이 환해졌다.꼭 산책하러 나왔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한 강아지 같았다.“이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하린 누나한테 부탁받은 거 가져왔어요.”그는 봉투를 카운터에 내려놓더니 서윤에게 다가왔다.“누나, 나 보고 싶어서 왔어요?”“아니거든요?”“에이, 난 보고 싶었는데.”이준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누나는 맨날 나만 좋
금요일 오전 7시 15분.한서윤은 거울 앞에서 세 번째 블라우스를 갈아입고 있었다.‘그냥 밥 한 끼 먹는 건데.’아이보리색을 입었다가 벗고,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꺼냈다. 이준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데이트가 아니라 지난번 약속한 식사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띠링-[이준 : 누나아! 드디어 금요일! 오늘 저 멋있게 하고 갈 거예요.][서윤 : 업무 미팅이잖아요.][이준 : 미팅 끝나면 누나랑 데이트잖아요. ㅎㅎ]서윤은 웃음을 참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누가 데이트래.’그런데도 립스틱을 바르는 손길은 평소보다 신중했다.오후 세 시.회의실 문이 열렸다.“안녕하세요, 한 팀장님.”서윤은 고개를 들었다가 잠시 멈칫했다.짙은 네이비색 정장에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 평소의 장난스러운 이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눈이 마주치자 그가 살짝 웃었다.‘뭐야, 왜 저렇게 입고 왔어….’"안녕하세요, 강 대표님."서윤은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이준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누나, 오늘 예쁘네요."서윤의 눈이 커졌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서윤은 어이없는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저 남자, 진짜…….'이준은 발표가 시작되자 고객 동선과 공사 일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서윤이 조명에 관해 질문하자 준비해 온 대안 시안을 곧바로 띄웠다.“꼼꼼하게 준비하셨네요.”“감사합니다, 한 팀장님.”그는 정중하게 답했다.그러나 잠시 후 서윤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이준 : 누나, 방금 저 좀 멋있었죠?]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를 흘겨봤다.이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넘겼다.오후 다섯 시 사십 분.회의가 끝났다.마지막 직원이 나가자 이준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누나, 이제 밥 먹으러 가요!”“방금까지 강 대표님이더니.”“업무 끝났으니까요. 지금은 누나랑 밥 먹을 강이준.”서윤은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오늘 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