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 진짜 잘 꼬시거든요.]
한서윤은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남자, 진짜 뭐야?’ 어제 처음 만난 남자였다. 그것도 아홉 살이나 어린. 그런데 이틀 만에 좋아해도 되냐고 묻더니, 이제는 대놓고 자신을 꼬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서윤 : 자신감은 인정할게요.] 답장을 보내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준 : 그럼 가능성 있다는 뜻이죠?] [서윤 : 그런 뜻 아닌데요?] [이준 : 아쉽다. 그래도 답장은 해주시네요. ㅎㅎ] 서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튼 말은 잘해.” 그러면서도 입가의 미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서윤은 평소보다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주말 내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던 민혁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정확히는 일요일 밤, 메시지가 하나 왔었다. [민혁 : 이제 기분 좀 풀렸어?] 서윤은 답장하지 않았다. 11년의 연애를 끝낸 일을 단순히 기분이 상한 문제로 생각하는 남자. 그에게 더는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후배 지민이 밝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 오늘 회의 자료 준비됐어?” “네! 그런데 팀장님, 오늘 좀 달라 보이세요.” “뭐가?” “음…… 얼굴이 좋아 보이세요.” 서윤은 피식 웃었다. “주말에 푹 쉬어서 그런가 봐.” 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이준 : 누나, 좋은 아침!] [이준 : 월요일 싫죠?] [이준 : 그래도 오늘 예쁘게 웃기. 알았죠?]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옆에서 지민이 눈을 반짝였다. “어머, 팀장님!” “왜?” “누구예요? 남자친구?” 서윤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아니야!” “아닌데 왜 그렇게 웃으세요?” “일이나 해, 김지민.” 지민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서윤은 다시 화면을 켰다. [서윤 : 이준 씨는 월요일 아침부터 참 신나네요.] [이준 : 누나한테 연락할 수 있는데 당연히 신나죠.] [서윤 : 일 안 해요?] [이준 : 해요. 엄청 열심히.] [이준 : 누나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돈 버는 중.] “풋.” 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못 말리겠다.’ 오후 2시. 서윤은 회의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회사에서 추진하는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리뉴얼이었다. 브랜드 마케팅과 공간 디자인을 결합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서윤이 총괄 책임을 맡고 있었다. “팀장님, 건축 디자인 업체에서 도착하셨습니다.” “벌써?” 서윤은 서류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외부 디자인 스튜디오와 첫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상대 업체는 최근 업계에서 주목받는 신생 스튜디오였다. 젊은 대표들이 운영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했다. 서윤은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마케팅팀 한서윤입니다.” 그 순간. “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의 발걸음이 멈췄다. 회의실 창가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짙은 회색 정장에 단정하게 넘긴 머리. 주말의 편안한 니트 차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난기 어린 눈웃음만큼은 그대로였다. “누나?” 서윤의 눈이 커졌다. “……이준 씨?” 강이준이었다.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와, 우리 또 만나네요?” 서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뭐 하세요?” “일하죠.” 그가 태연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강이준. 아르코 디자인 스튜디오 공동대표. 서윤은 명함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오늘 미팅 업체가…….” “네. 저희 회사예요.” 이준이 싱긋 웃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 팀장님.” 서윤은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게 무슨 우연이야?’ 회의가 시작되자 이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태블릿에 준비한 설계 자료를 띄우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번 공간의 핵심은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브랜드의 가치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설명에 집중했다. 이준은 단순히 디자인이 예쁜 공간이 아니라, 고객 동선과 브랜드 이미지, 매출 효율성까지 고려한 제안을 내놓았다. “한 팀장님께서 제안하신 브랜드 방향성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준이 화면을 넘겼다. “특히 체험 공간을 입구 가까이에 배치하면 신규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이네요. 다만 저희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고객 접근성도 고려해야 해요.” “맞습니다.” 이준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두 가지 방향으로 준비했습니다.” 다음 화면이 나타났다. 서윤은 조금 놀랐다. 자신이 우려한 부분까지 이미 검토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유능하네.’ 주말에 장난스럽게 웃던 남자와는 완전히 달랐다. 회의 내내 이준은 진지했고,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다. 두 시간 후. “오늘 제안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준이 발표를 마쳤다. 서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준비 많이 하셨네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준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정리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한 팀장님.” 회의가 끝난 뒤. 직원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나갔다. 서윤은 남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이준이 다가왔다. “팀장님.” “네, 강 대표님.” 이준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 서윤이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이준 씨!” “네?” “회사에서는 누나라고 부르지 마요.” 그가 웃음을 참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 팀장님.” “그리고 업무와 사적인 일은 확실히 구분해 주세요.” “물론이죠.” 이준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곧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럼 업무 끝나면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강이준 씨!” 그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 누나. 화내는 것도 귀엽네.” “지금 장난해요?” “조금요.” 서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준 씨는 정말…….” “잘생겼죠?” “뻔뻔하네요.” “그것도 제 매력인데.” 그가 씩 웃었다. 서윤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귀찮아야 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오후 6시 20분. 퇴근 준비를 마친 서윤은 회사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누나!” 서윤이 고개를 돌렸다. 건물 입구 옆에 이준이 서 있었다. 손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이 들려 있었다. “이준 씨?” “퇴근해요?” “네. 그런데 아직 안 갔어요?” “근처에서 업무 보고 왔어요.” 그가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이거 누나 거.” “제 거요?” “하린 누나한테 물어봤어요. 바닐라 라테 좋아한다면서요?” 서윤은 놀란 얼굴로 커피를 바라보았다. “그걸 왜 물어봤어요?” “누나 좋아하는 거 하나씩 알아두려고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서윤의 가슴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이준 씨.” “네.” “저한테 이렇게 잘해줄 필요 없어요.” 이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왜요?” “저 아직 연애할 생각 없다고 했잖아요.” “알아요.” “그런데 왜 자꾸…….”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누나.” “…….” “제가 지금 사귀자고 조르는 건 아니잖아요.” 서윤은 말을 멈췄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커피 한 잔 마시고 웃었으면 좋겠어요.” 이준은 그녀의 손에 커피를 건넸다. “부담스러우면 다음부터 안 할게요.” 그 말에 서윤은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아니에요.” “네?” “커피는 잘 마실게요.” 이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오늘도 성공!” “뭐가요?” “누나 웃게 만들기.” 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못 말린다니까.” 이준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누나, 오늘 저 좀 멋있었죠?” “언제요?” “회의할 때요.” 서윤은 잠시 고민하는 척했다. “음…….” 이준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요.” “조금?” “네. 아주 조금.” 이준은 과장되게 가슴을 움켜쥐었다. “와, 누나. 너무하다.” “왜요?” “나 오늘 누나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엄청 노력했는데.” 서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회의 준비도 저 때문에 했다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원래 열심히 해요.” 그가 웃었다. “근데 오늘은 누나가 있어서 조금 더 신경 썼죠.” 서윤은 그를 바라보다 조용히 웃었다. “오늘 정말 멋있었어요.” 이준의 표정이 멈췄다. “……진짜요?” “네. 일할 때는 꽤 믿음직하던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이준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누나.” “왜요?” “나 지금 엄청 기분 좋아요.” “그렇게 좋아요?” “네.” 그가 장난스럽게 몸을 숙였다. “한 번만 더 칭찬해 주면 안 돼요?” “안 돼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저녁 거리로 퍼졌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서윤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이준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준 : 누나, 집 잘 들어갔어요?] [서윤 : 네. 이준 씨도요?] [이준 : 네!] [이준 : 근데 누나.] [서윤 : 또 왜요?] [이준 : 오늘 회사에서 저 멋있었다고 한 거.] [이준 : 진심이죠?] 서윤은 피식 웃었다. [서윤 : 네. 진심이에요.] 잠시 후. [이준 : 그럼 나 조금은 남자로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서윤의 손가락이 멈췄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저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까. 그녀가 한참 망설이는 사이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준 : 누나, 대답 안 해도 돼요.] [이준 : 대신 나 하나만 약속할게요.] [서윤 : 무슨 약속이요?] [이준 : 앞으로 누나가 나 때문에 웃는 날이 더 많아질 거라는 거.] 서윤은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준 : 그리고 누나.] [이준 : 나 생각보다 포기 잘 안 하는 남자예요.] 서윤의 심장이 작게 뛰었다. 그 순간. 띠링.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차민혁 : 서윤아. 우리 언제까지 이럴 건데?] 서윤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도착한 다음 메시지. [차민혁 : 내일 저녁에 만나. 할 얘기 있어.] 11년의 과거가 다시 그녀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수요일 아침.[이준 : 누나아! 좋은 아침!][이준 : 어제 멋있었다는 말, 아직 유효하죠?][서윤 : 칭찬에도 유효 기간이 있어?][이준 : 누나 칭찬은 평생 보관하려고요.]서윤은 웃음을 삼켰다. 휴대전화가 울리면 그를 떠올렸다.아홉 살 어린 남자. 연애할 마음도 없는데 자꾸 기다리게 됐다.[서윤 : 오늘도 잘하고 와, 이준아.][이준 : 충성! 오늘 업무 성과 두 배로 내겠습니다!]서윤이 혼잣말했다.“큰 강아지 같아, 정말.”토요일 오전, 플래그십 스토어 조사를 위해 찾은 꽃시장.서윤은 입구에서 이준을 발견했다. 베이지색 재킷에 도면 가방을 멘 그가 그녀를 보자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한 팀장님! 여기요!”직원들이 앞서가자 이준이 슬쩍 고개를 숙였다.“누나, 오늘 예쁘네요.”“강 대표님. 업무 중이거든요?”“그래서 작게 말했잖아요.”그가 옷깃을 매만졌다.“저도 오늘 꽤 신경 썼는데, 칭찬 없어요?”“응. 잘 어울려.”“아싸. 오전 목표 달성!”해맑은 미소에 서윤은 결국 웃었다.점검이 시작되자 이준은 달라졌다. 진열대 높이를 재고, 조명 때문에 꽃잎의 색이 달라 보이는 문제를 바로 짚었다.“입구는 낮은 화기를 세 구역으로 나누죠. 고객 동선도 넓어집니다.”“좋네요. 월요일 회의에 반영해 주세요.”“네, 한 팀장님.”그가 메모하는 모습을 보니 믿음직스러웠다.조사가 끝날 무렵, 안쪽 통로로 손수레가 들어왔다.“지나갑니다! 비켜주세요!”사람들이 움직이자 서윤이 옆으로 밀렸다.“어!”이준이 재빨리 서윤의 손을 잡아 중심을 잡아 주었다. 손이 닿은 건 잠깐. 그는 그녀의 손을 자기 팔꿈치 부근 소매로 옮겼다.“자, 여기 잡아요.”“응?”“제 소매요. 누나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내가 무슨 어린애야?”“맞아요. 이렇게 큰 누나 잃어버리면 큰일이죠.”“강이준!”“하하! 자, 출발합니다. 한서윤 어린이!”서윤은 웃으며 그의 팔꿈치 부근 소매를 살짝 움켜쥐었다.그렇게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툭.
전송 버튼을 누른 지 십 초도 지나지 않았다.[서윤 : 응. 나도 보고 싶네.]화면에 적힌 자신의 문장을 바라보던 서윤은 뒤늦게 얼굴을 감쌌다.‘내가 왜 그랬지?’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강이준.“여보세요?”— 누나. 방금 문자, 진짜예요?“뭐가?”— 나 보고 싶다는 거요.“빵 갖다준다니까 그렇지.”— 아, 크루아상이 보고 싶은 거였구나.목소리가 금세 축 처졌다. 서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반반.”— 네?“크루아상 반, 이준이 반.”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이준아?”— 괜찮아요. 너무 좋아서 책상에 무릎 좀 박았어요.“어휴, 조심 좀 해.”— 누나가 또 이준이라고 불렀다. 오늘 잠은 다 잤네.전화기를 붙든 채 웃던 서윤은 문득 생각했다. 민혁과 통화할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웃은 게 언제였더라.다음 날 오전 여덟 시 사십 분.[이준 : 누나! 빵집 도착!][이준 : 크루아상이 세 종류인데 긴급회의 필요해요.]함께 온 사진에는 플레인, 아몬드, 초콜릿 크루아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서윤 : 플레인 하나면 돼.][이준 :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임질게요!]‘세 개 다 사겠다는 뜻이네.’서윤은 웃으며 옷장 문을 열었다. 편한 청바지에 흰 니트를 골랐다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풀어 내렸다.일부러 꾸민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 예뻐 보이고 싶었다.오전 열 시, 회사 근처 작은 광장.멀리서 이준이 손을 흔들었다. 회색 후드티 위에 가벼운 재킷을 걸친 모습이었다. 한 손에는 빵 봉투, 다른 손에는 따뜻한 커피 두 잔.“누나아!”달려오던 이준이 그녀 앞에서 멈췄다.“왜 뛰어? 넘어지겠다.”“빨리 보고 싶어서요.”그는 환하게 웃다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왜?”“오늘…… 예쁘네요.”“어제도 그랬잖아.”“어제도 예뻤는데 오늘은 조금 달라요.”“뭐가?”“오늘은 저 보러 나온 거잖아요.”서윤은 대답 대신 커피를 받아 들었다. 괜히 손끝이 따뜻해졌다.두 사람은 광장 옆 벤
월요일 오전 7시 31분.-띠링-[이준 : 누나, 좋은 아침!][이준 : 어제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1분도 안 늦었어요.]서윤은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뜬 자신이 조금 우스웠다.[서윤 : 잘했네, 이준아.][이준 : 칭찬받았다! 오늘도 힘내서 돈 벌게요.][서윤 : 그 돈으로 밥 제대로 챙겨 먹고.][이준 : 네! 누나도요. 사랑... 아니, 좋은 하루요!]서윤은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사랑이라니.’웃음이 났다가, 금세 마음이 복잡해졌다.점심시간, 사무실 탕비실.“팀장님, 주말에 소개팅 나가셨죠?”커피를 타던 지민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왜 그렇게 생각해?”“요즘 휴대전화만 보면 웃으시잖아요.”서윤이 대답을 망설이자 지민이 눈을 반짝였다.“진짜 누구 있어요?”“그런 사이 아니야. 그냥 알아가는 사람이야.”“몇 살인데요?”“서른.”“우와, 아홉 살 연하?”지민의 탄성에 서윤이 얼른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쉿. 회사에서 소문낼 일 아니야.”“죄송해요. 근데 팀장님, 나이는 왜요? 잘 맞으면 좋은 거죠.”지민은 가볍게 웃고 나갔다.혼자 남은 서윤은 식어가는 커피를 내려다봤다.지민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잘 맞으면 좋은 것.하지만 서윤은 서른아홉이었다. 이준은 이제 서른이었다.그가 서른다섯이 되는 날, 자신은 마흔넷이다.‘그때도 지금처럼 웃어줄까?’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서윤은 스스로에게 쓴웃음을 지었다.아직 사귀지도 않는 남자와 오 년 뒤를 걱정하다니.오후 5시 50분.퇴근하려던 서윤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오늘도 고생했어요!“이준아. 너는 퇴근했어?”— 네. 오늘은 도현이가 저녁 사준대요. 제가 하루 종일 싱글벙글했다고요.“좋겠네.”— 누나도 같이 올래요? 아, 아니에요. 갑자기 오라면 부담스럽죠.평소 같으면 웃으며 받아쳤을 말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이준아.”— 네?“너는 왜 나를 좋아해?”잠깐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면접이에요?“장난 말고.”이준
일요일 오전 8시 36분.서윤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기를 세 번째 반복했다.어젯밤 이준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내일은 누나가 먼저 연락해 주면 안 돼요?’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보냈을 인사가 오늘은 유난히 어려웠다.‘먼저 연락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서윤은 마침내 메시지를 적었다.[서윤 : 이준아, 잘 잤어?]전송.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가 곧 다시 집어 들었다.아직 읽지 않았다.‘설마 자고 있나?’그때 화면에 부재중 전화가 떴다. 이준이었다.곧 메시지가 쏟아졌다.[이준 : 누나!!!, 저 지금 너무 좋아서 전화 잘못 눌렀어요.][이준 : 아침부터 심장 공격하면 반칙인데요?]서윤이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어제 먼저 연락해 달라면서.][이준 : 그랬죠. 근데 진짜 해줄 줄은 몰랐죠.][서윤 : 그럼 내일부터 안 할게.][이준 : 안 돼요! 취소! 제가 잘못했어요!]뒤이어 두 앞발을 모으고 있는 강아지 이모티콘이 도착했다.‘정말 귀여워.’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웃었다.오전 열한 시.서윤은 집 근처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주말의 작은 계획이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나, 뭐 해요?“서점 왔어.”— 책 좋아해요?“응.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 읽었지만.”— 그럼 오늘은 책 많이 봐요. 방해 안 할게요.잠깐 망설이던 서윤이 물었다.“이준이는 뭐 해?”— 저요? 도현이랑 사무실에서 모형 만들고 있어요.“일요일인데?”— 금요일에 누나한테 멋있어 보였으니까 더 열심히 하려고요.“또 그 얘기야?”— 근데 누나, 방금 ‘이준이는’이라고 했죠?서윤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와, 나 오늘 진짜 복권 당첨된 기분이에요.“그 정도야?”— 네. 누나가 먼저 연락해 주고, 지금은 제 얘기도 궁금해하고.서윤은 책등을 손끝으로 쓸었다.그저 안부를 묻는 일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쁜 일이 될 수도 있구나.“점심은 먹었어?”— 아직요.“삼각
토요일 오전 9시 12분.-띠링-[이준 : 누나아아! 일어났어요? 나 어제 잠 못 잤어요.]서윤은 이불 속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서윤 : 왜요?][이준 : 누나가 이준아~ 하고 불러준 거 자꾸 생각나서요.][서윤 : 별게 다 좋네요. ㅎㅎ][이준 : 누나가 좋으니까 별게 다 좋아요.]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아침부터 또 시작이네.’그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부스스한 머리에 회색 후드티를 입은 이준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한쪽 머리가 잔뜩 뻗친 채 입술을 삐죽 내민 모습이었다.[이준 : 누나, 나 오늘 좀 귀엽죠?]서윤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서윤 : 머리는 왜 그래요?][이준 : 누나 생각하다 이렇게 됐어요.][서윤 : 머리랑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이준 : 모르겠어요. 누나가 책임져요.]“푸하하!”서윤은 한참을 웃었다.서른 살이나 먹은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천연덕스러울까.그런데 귀여웠다.아주 많이.오후 2시.서윤은 하린의 와인바에 들렀다.“어머, 우리 한 팀장님. 오늘 얼굴에 꽃이 폈네?”“무슨 꽃.”“연애하는 여자 얼굴?”“오하린!”하린은 깔깔 웃으며 커피를 내밀었다.“강이준이랑 어제 밥 먹었다며?”“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도현이한테 자랑했대. 누나가 자기 이름 불러줬다고.”“……뭐?”“그것도 엄청 좋아하면서.”서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아니, 이름 한 번 부른 게 뭐라고!”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딸랑.“하린 누나!”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서윤이 돌아보자 이준이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어? 서윤 누나!”그의 얼굴이 환해졌다.꼭 산책하러 나왔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발견한 강아지 같았다.“이준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하린 누나한테 부탁받은 거 가져왔어요.”그는 봉투를 카운터에 내려놓더니 서윤에게 다가왔다.“누나, 나 보고 싶어서 왔어요?”“아니거든요?”“에이, 난 보고 싶었는데.”이준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누나는 맨날 나만 좋
금요일 오전 7시 15분.한서윤은 거울 앞에서 세 번째 블라우스를 갈아입고 있었다.‘그냥 밥 한 끼 먹는 건데.’아이보리색을 입었다가 벗고, 연분홍색 블라우스를 꺼냈다. 이준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데이트가 아니라 지난번 약속한 식사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띠링-[이준 : 누나아! 드디어 금요일! 오늘 저 멋있게 하고 갈 거예요.][서윤 : 업무 미팅이잖아요.][이준 : 미팅 끝나면 누나랑 데이트잖아요. ㅎㅎ]서윤은 웃음을 참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누가 데이트래.’그런데도 립스틱을 바르는 손길은 평소보다 신중했다.오후 세 시.회의실 문이 열렸다.“안녕하세요, 한 팀장님.”서윤은 고개를 들었다가 잠시 멈칫했다.짙은 네이비색 정장에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 평소의 장난스러운 이준과는 분위기가 달랐다.눈이 마주치자 그가 살짝 웃었다.‘뭐야, 왜 저렇게 입고 왔어….’"안녕하세요, 강 대표님."서윤은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하지만 이준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누나, 오늘 예쁘네요."서윤의 눈이 커졌다."……!"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서윤은 어이없는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저 남자, 진짜…….'이준은 발표가 시작되자 고객 동선과 공사 일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서윤이 조명에 관해 질문하자 준비해 온 대안 시안을 곧바로 띄웠다.“꼼꼼하게 준비하셨네요.”“감사합니다, 한 팀장님.”그는 정중하게 답했다.그러나 잠시 후 서윤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이준 : 누나, 방금 저 좀 멋있었죠?]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를 흘겨봤다.이준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넘겼다.오후 다섯 시 사십 분.회의가 끝났다.마지막 직원이 나가자 이준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누나, 이제 밥 먹으러 가요!”“방금까지 강 대표님이더니.”“업무 끝났으니까요. 지금은 누나랑 밥 먹을 강이준.”서윤은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오늘 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