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4화

작가: 운명의결
호연은 트로피를 품에 안은 채, 나리에게 건네줄 기색은커녕 오히려 입술을 꼭 깨물며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팀장님이 트로피를 언니한테 가져다드리라고 했어요. 이 상 정말 권위 있는 상이잖아요. 언니 진짜 대단해요.”

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 언니, 제가 정말 두꺼운 얼굴로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이런 상을 한 번도 못 받아 봤거든요. 이 트로피를 며칠만 저한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빌려 달라고? 트로피를?’

나리는 처음 들어보는 황당한 부탁에 잠시 말을 잃었다.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녀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참 얼굴도 두껍다. 그런 부탁은 나에게 안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정말 받고 싶으면 네가 직접 대회에 나가서 받아.”

그 말을 마치자마자, 나리는 손을 뻗어 호연 품에 있는 트로피를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나리의 단호한 태도에 호연의 얼굴이 금세 새파랗게 질렸다.

호연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얼굴로 말했다.

“언니, 왜 그렇게까지 말씀하세요? 제가 트로피를 뺏으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집에 잠깐 두고 스스로 동기부여 좀 하겠다는데, 그것도 안 돼요?”

나리가 손을 뻗자, 호연은 트로피를 더욱 꽉 안았다.

호연의 표정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듯했다.

‘뭐야, 이제는 아예 주지도 않겠다는 거야?’

나리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트로피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트로피는 호연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유리로 만든 트로피는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마침 그때 석진과 은후가 집으로 돌아와 이 장면을 목격했다.

두 사람은 순간 멈칫하더니, 곧장 달려와 호연을 품에 안았다.

“호연아!”

두 사람의 얼굴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둘은 호연이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며 호연의 몸을 살폈다.

그러다 석진이 호연의 치맛자락을 살짝 올리자, 그녀의 종아리에는 깨진 유리 조각이 박혀 있었다.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본 석진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굳었다.

“병원으로 데려갈게.”

그는 단호하게 말하며 호연이 고개를 흔들며 거부해도 상관하지 않았고, 곧바로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집을 나섰다.

나리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서 있었다.

‘참 우습네. 호연이는 저렇게 걱정해 주면서 왜 정작 내가 다친 건 아무도 모를까?’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자리를 지켰다.

바닥에 흩어진 유리 파편을 보며, 은후의 얼굴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는 차갑게 나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리야, 너는 이미 모든 걸 다 가졌잖아. 그런데 왜 호연이랑 트로피를 두고 싸우는 거야?”

‘싸우다니? 내가 트로피를 두고 싸웠다고?’

그 말을 듣자 나리는 순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건 내 트로피야. 내가 석 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얻어낸 성과라고. 내 명예야. 그런데 저 애는 불쌍한 척하면서 안 내놓고 있잖아. 그리고 이제 와서 나보고 싸웠다고?’

나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이 떨리면서 바닥의 깨진 트로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트로피는 내 거야. 내가 뼈 빠지게 노력해서 받은 결과물이라고. 그런데도 너는 내가 마치 호연이랑 이걸 두고 다툰 것처럼 말하네. 지금 이걸 깨뜨린 것도 저 애잖아. 이번만큼은 꼭 호연이에게 사과받아야겠어. 호연이는 나한테 사과해야 해.”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충분히 상황을 설명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후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은후의 얼굴이 더 검게 변하더니,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겨우 그 트로피 하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 너는 원하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잖아. 그런데 그깟 트로피 때문에 호연이가 다쳤잖아. 사과를 받아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네가 호연이에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는 더 이상 나리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다친 호연을 확인하러 서둘러 나가버렸다.

나리는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나더러 사과하라고?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에게 사과하라고?’

그녀의 머릿속에서 은후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지은후, 정말 대단하다. 내가 이 꼴을 겪으면서도 아직도 네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나 보네.’

나리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문득, 그녀는 다리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져서 고개를 숙여 보았다. 자기 종아리에 길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가 고이고 상처는 호연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웃기지. 정작 내가 더 다쳤는데 아무도 몰랐네.’

나리는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았다.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하나씩 치우고, 겨우 마무리를 끝낸 뒤 방으로 들어가 혼자 상처를 처리했다.

저녁이 되자, 나리의 핸드폰에 어머니 장혜정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장혜정은 결혼식에서 입을 웨딩드레스를 골라 사진을 열 장 넘게 보내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고 했다.

나리는 하나씩 사진을 넘겨보다가 전화를 걸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장혜정은 나리의 지친 목소리를 듣고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딸, 무슨 일 있니? 목소리가 피곤해 보여.]

오늘 하루 겪은 일들이 떠오르자, 나리의 눈가가 뜨겁게 젖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히 화제를 돌렸다.

“엄마, 여기 일은 아마 일주일 정도면 정리될 것 같아요. 결혼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그 순간, 집으로 돌아온 석진과 은후가 나리의 마지막 말을 듣고 멈춰 섰다.

둘은 동시에 물었다.

“결혼? 무슨 결혼?”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최신 챕터

  • 그리움에 남은 생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제29화

    석진은 뉴스와 온라인 매체에서 나리의 호화로운 결혼식 소식을 보았다. 화려하게 장식된 현장 사진과 예성의 웃는 얼굴이 화면에 가득했다. 그는 핸드폰 화면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건 분명 구예성 짓이야, 그렇지? 은후를 저렇게 만든 것도 분명 그놈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한영수와 주미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오늘이 구예성과 나리의 첫날밤이라면... 그놈도 방심하고 있겠지.’ ...구씨 저택. 신혼 첫날, 예성과 나리는 침실에서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포근한 이불 속, 둘은 서로를 감싸 안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창밖으로는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가 가득했지만, 두 사람에게는 지금 서로의 존재만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가 이 고요를 깨뜨렸다. 딩동! 딩동! 딩동! 예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시간에 대체 누가...?’ 그는 대충 잠옷을 걸치고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석진의 주먹이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것이다. 퍽! 예성은 빠르게 몸을 틀어 주먹을 피한 뒤, 석진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예성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문 앞에 선 석진의 몰골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눈 밑은 검게 멍들었고, 턱엔 깔끔하게 면도하지 못한 상태로 수염이 약간 자라나 있었다. 한때의 냉철하고 완벽했던 석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구예성, 너는 나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은후를 건드렸어?!” 석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은후가 병실에 누워 있어. 다리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몰라! 이 모든 게 네 짓이지. 네가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진은 예성에게 달려들었다. 예성은 석진의 거친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내며, 한숨을 내쉬듯

  • 그리움에 남은 생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제28화

    축하 영상이 끝난 후, 화면은 나리와 예성의 실제 결혼식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신랑과 신부는 현재 S 시 근교에 있는 고풍스러운 왕족의 저택 옛터에서 전통 혼례를 올리고 있었다. 정교하게 조각된 궁궐 같은 건물은 붉은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피리와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현장을 감도는 축제의 분위기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화면 속에서 예성은 고풍스러운 전통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위엄 있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말을 타고 있었고, 뒤로는 붉은 보자기로 둘러싸인 전통 가마가 따랐다.그 뒤에는 전통 혼례의 격식에 따라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리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혼례 행렬은 마을 곳곳을 지나며, 순금으로 제작된 동전과 한지로 포장된 떡, 한과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길가에 모인 사람들은 금화와 전통 과자를 받으며 환호했다.“행복한 가정 꾸리세요!”“나리 씨, 예성 씨, 복 많이 받으세요!”...같은 시각, 혼례가 생중계되고 있던 저택 안에서는 하객들에게도 정교하게 제작된 기념품과 다양한 전통 한식 디저트가 제공되고 있었다.‘...이건 차원이 다르잖아.’저택 안에 있는 모든 하객은 이 결혼식의 호화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석진과 은후 역시 화면 속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화면 속에서 예성은 왕족 저택 앞에서 부드럽게 말에서 내렸다.그는 우아하면서도 확신에 찬 움직임으로 나리가 타고 있는 가마의 문을 열었다.그 안에는 붉은 혼례복을 입고, 곱게 단장한 나리가 있었다.예성은 그녀를 살며시 품에 안아 올렸고, 단호한 걸음으로 왕족 저택의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언제 이런 완벽한 결혼식을 준비했지?’석진의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서고,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신랑과 신부는 모든 하객과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천천히 한옥 안으로 사라졌다.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전설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 듯, 완벽하고도 황홀했다.석진은 분노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

  • 그리움에 남은 생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제27화

    ‘이대로 포기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 지켜온 감정은 대체 뭐가 되는 거지?’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추억들은 다 뭐가 되는 거야?’ ‘설마 만난 지 몇 주 되지도 않은 그 남자보다 우리가 부족하다는 거야?’ 석진과 은후의 눈엔 절대 꺼지지 않을 듯한 불꽃 같은 집념이 가득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동시에 말했다. “같이 움직이자. 이후엔 각자 실력으로 해결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둘은 서로의 생각을 읽은 듯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은후는 한영수와 주미애에게 도움을 요청해 나리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집 안을 뒤져 찾아낸 사진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리가 이걸 다 태워버렸구나.’ 남은 건 두 사람의 어린 시절 단독 사진뿐이었다. 비록 아쉬웠지만, 은후는 만족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한편, 석진은 구씨 가문에 사람을 심거나, 구씨 가문의 사람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우린 아직 시간이 있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해.’ ‘결혼식까지는 이제 3일... 준비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아.’ 그 시각, 나리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석진과 은후가 끊임없이 그녀를 찾아오자, 나리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녀는 긴장했는지 무의식적으로 예성의 셔츠 소매가 구겨질 정도로 꽉 쥐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한 행동을 깨달았다. “예성 씨...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한 번에 끝낼 수 있을까요? 더 이상 그 두 사람과 얽히고 싶지 않아요.” 나리는 이미 석진과 은후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우린 친구도 될 수 없어.’ 그녀는 과거의 소중했던 추억은 이미 끝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웠던 추억은 그걸로 끝나면 되는 거야. 깨진 거울을 다시 억지로 붙인다고 해서 거울이 다시 멀쩡해지지 않잖아.’ 예성은 나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그리움에 남은 생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제26화

    은후의 두 눈이 충혈될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떨리는 두 주먹을 꽉 쥐며, 예성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왜 하필 그 사람이어야 해? 난 인정 못 해! 나리야,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널 데리고 도망칠게! 해외로 가도 좋고, H 시로 돌아가도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 하지만 예성은 은후의 주먹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저 고개를 약간 돌리는 것으로 끝냈다. 은후의 주먹은 예성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지만, 예성의 뺨엔 붉은 흔적이 남았다. “아...!” 예성은 살짝 다친 뺨을 손으로 감싸며 숨을 들이쉬었다. 얼굴은 고통으로 찡그려졌지만, 그럼에도 예성의 잘생긴 외모는 여전했다. 나리는 예성의 상처를 보자마자 마음이 아파서, 다급히 그의 손을 붙잡고 상처를 확인하려 했다.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안 아파요.” 예성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런 예성을 보자 나리는 더욱 초조해졌다. 예성이 끝까지 손을 풀어주지 않자, 나리는 은후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지은후! 왜 이 사람한테 손찌검한 거야? 너, 언제부터 이렇게 충동적이고 화를 못 참는 사람이 됐어?” 그런 나리의 책망은 은후의 멘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내가 한 말은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거야? 구예성만 걱정하는 거냐고!?’ 방금 자기 주먹에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은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성이 이렇게까지 과장하며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몰랐다. 은후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난 제대로 때리지도 않았어! 저 사람, 안 다쳤어! 송나리, 나랑 가자! 저 자식은 믿을 만한 놈이 아니야.” 그는 나리의 손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나리는 단호하게 남자의 손을 뿌리쳤다. “지은후, 이게 지금 네가 나에게 할 만한 행동이야?” 그 순간, 은후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왜 항상 나만 나쁜놈이 되는 거지?’“여긴 우리 집이야. 내

  • 그리움에 남은 생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제25화

    나리는 예성과 손깍지를 낀 채, 석진과 은후를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리의 시선에는 확실히 석진과 은후에게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런 나리의 눈빛에 은후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리야... 우리가 어릴 때부터 쭉 함께였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이런 눈으로 볼 수 있어?’ 은후는 입술을 꽉 깨물며 억울함을 삼켰다. 하지만 나리는 은후의 그런 표정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쓸데없는 말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빨리 해.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여자의 담담한 태도에 은후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석진이 은후의 말을 막아섰다. 석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나리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눈에는 단단한 결심과 미련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리야, 인정할게. 우리가 잘못했어. 그땐 정말 어리석었고, 네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호연이를 이용하려 했던 거야.”“우린 호연이를 좋아한 적 없어. 그저 너를 질투하게 만들고, 네 마음을 깨닫게 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는 호연의 최후와 그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덧붙여 설명했다. “호연이는 결국 S 시에 와서 네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우리는 호연이를 다시 자기 집으로 돌려보냈어. H 시에 있던 집도 정리했고, 지금은 시골로 내려갔어. 호연이는 지금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충분히 대가를 치르고 있어.” 석진의 설명을 듣자, 나리는 순간적으로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서호연...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나를 찾아올 수 있었지?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를 제공한 사람이, 감히 내 도움을 바란다고?’ 나리는 호연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해질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제부터는 정말로 힘든 삶을 살겠지. 하지만... 호연이가 예전에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 사람을 동정할 이유가 없어.’ 그러나 나리의 마음을 더욱

  • 그리움에 남은 생을 가둘 필요가 있을까   제24화

    예성은 일부러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유석진과 지은후에 대한 감시를 잠시 느슨하게 해. 하지만 경계를 푸는 건 아니고. 오히려 두 사람이 움직일 틈을 주고, 거기에 더 철저히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해.” 부하들은 보스의 명령을 받자마자 재빨리 행동에 옮겼다. 예성은 이를 지켜보며, 별다른 감정의 변화 없이 차분히 준비를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예성은 일부러 석진과 은후가 S 시로 온다는 소식을 송진국과 장혜정에게 흘렸다. “뭐라고? 그 둘이 감히 나리 결혼식에 오겠다고?” 장혜정은 이 말을 듣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나리를 그렇게 괴롭힌 사람들이 결혼식에 온다고? 어림도 없어!’ 그녀는 과거에 석진과 은후를 멋지고 유능한 젊은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둘을 마음속에서 사윗감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리의 목숨을 걸고 장난처럼 다룬 둘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었다. 특히, 장혜정은 호연이 나리를 해치려 했을 때 나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항상 딸의 곁을 지켜줬던 소꿉친구들이, 호연 같은 여자에게 흔들려 나리를 외면했다는 사실은 장혜정에게는 더 큰 배신감을 남겼다. ‘그런 짓을 하고도 결혼식에 오겠다고? 절대 용납할 수 없어.’ 장혜정은 속으로 다짐하며, 시아버지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버님께서 우리 나리에게 정말 좋은 결혼 상대를 정해 주셨으니.’ 석진과 은후에 비하면 예성은 너무도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예성은 깔끔하고, 흔들림 없이 나리에게만 집중하며, 무엇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장혜정은 S 시에서 자라난 예성을 어릴 적부터 지켜봐 왔고, 예성의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생각에 장혜정의 마음은 더욱 단호해졌다. “절대로 그 둘을 나리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해야 해.” 그녀는 곧 송진국과 함께 주변 사람들에게 석진과 은후를 결혼식에 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S 시에

더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