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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Auteur: 적매화
순간 김단은 가슴이 철렁했다.

나인도 깜짝 놀란 듯 김단과 소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알겠사옵니다.”

나인은 곧장 떠났다.

소한은 김단에게 손짓했다.

“낭자, 가지요.”

김단은 어쩔 수 없이 소한과 함께 입구로 향했다.

오늘따라 궁궐 안의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무리 걸어도 커다란 궐문이 보이지 않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만 나아갔다.

둘 사이에는 신발 밑창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나는 소리만 있었다.

소한의 기억 속엔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던 그녀만 있었다.

종일 쉬지 않고 떠들었던 그녀이기에 이런 침묵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결국 참다못한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낭자 오라버니의 일은 나도 들었소. 어심이 어지러웠던 것은 사실이나 크게 노여워하시진 않으셨소.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자기를 위로하는 소한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임학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덕빈마마도 진산군댁의 안위를 위해 그리한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큰 마님 생각도 해야지 않겠소.”

덕빈의 의중도 그녀는 알고 있다.

이런 것은 그녀가 3년 전에 겪었던 고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소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단 낭자.”

순간,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3년이나 지난 뒤에도 자신을 불러주는 소한에게 심장이 반응할 줄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얼른 자기 감정을 억제했다.

소한은 조만간 임원의 낭군님이 될 사람이었고 명목상 그녀와 사돈이 될 사내였다.

그에게 감정을 품어서는 아니 되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소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말수가 준 것이오?”

소한은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싫었다.

그의 질문에는 항상 대답했던 김단이다. 하나, 오늘 김단은 인사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김단은 살짝 당황했다. 그녀는 뒤늦게 자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답방에선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었기에 자연히 말수가 줄었다.

게다가 나인들과 상궁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모함을 당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점점 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말수가 많아진다 하여 변하는 진실은 없었다.

그해, 중전과 공주자께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연신 말했음에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요 며칠 임학과 임원에게도 수없이 말했었다.

하지만 전부 쓸모없는 짓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김단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소한은 긴장한 눈빛으로 왜소한 몸집의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거대한 벽은 명확한 대비를 이루었다.

거대한 궁궐의 성벽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는 살짝 후회되었다.

갑작스레 말수가 줄어든 연유를 그도 잘 알고 있다.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처럼 고요한 환경이 적응되지 않았다.

“오늘 취양각에서 불꽃놀이를 한다오. 그 자리이니 오라비와 같이 와서 즐기게.”

취향각의 불꽃놀이.

김단은 살짝 놀란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진산군 관저로 돌아간 날이 28일이었고 오늘이 30일이다.

취향각의 불꽃놀이는 매년 음력 30일에 개최하는데 해시부터 자시까지 진행된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 도성의 사내들은 취향각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해둔다.

임학과 소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매년 취향각에서 가장 크고 넓은 방을 예약했다. 술시부터 술잔을 기울이며 불꽃놀이를 즐기다가 각자의 본가로 돌아갔다.

김단도 예전에는 임학과 소한을 따라가 그곳에서 그들과 불꽃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잠시 밝게 빛나던 그녀의 눈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김단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다만 불꽃놀이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와 관계를 회복할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가 좋아하는 매실주도 이미 주문했소.”

예전에 그녀가 좋아했던 매실주를 언급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옵니다.”

김단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차분하게 답했다.

소한은 살짝 풀린 눈빛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사실 소한도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입구에 당도할 때까지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궐문에 다다른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소한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준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걱정했다.

그녀는 소한에게 인사를 한 뒤 마차에 올라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마차에 채 앉기도 전에 소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도 가져가시오.”

그는 수정과를 건네주었다.

지난번 소한의 마차 안에 있던 수정과였다.

그녀는 의아한 기색으로 그것을 쳐다보다가 건네받았다.

김단은 자신의 손에 들린 수정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슴 한편이 찌릿하게 아팠다.

집으로 돌아간 그녀는 수정과를 몸종에게 건네며 매화당으로 가져가라고 일러준 뒤, 큰 마님이 계시는 안채로 향했다.

큰 마님은 오늘 기력이 좋아 보였다.

“궐에서 돌아오는 게냐?”

김단은 그녀의 곁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답했다.

“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다시 말했다.

“덕빈마마께서 소녀에게 잘못을 묻진 않으셨습니다.”

큰 마님은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다행이구나. 물에 빠졌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더냐?”

김단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소녀는 괜찮사옵니다. 숙희가 끓여준 영양 차도 마셨고 뜨거운 물에 목욕도 했습니다.”

게다가 수년간 찬물에 빨래를 했던 그녀는 물에 한 번 빠진 거로 고뿔에 걸릴 만큼 연약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큰 마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손녀딸을 안쓰러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오늘 밤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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