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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Penulis: 모소치
김단은 덕빈궁의 뜰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세답방에는 3년 있었지만 덕빈궁은 처음이다. 그러나 덕빈궁은 세답방과 느껴지는 기운이 비슷했다. 숨 막힐 듯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3년 전처럼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얼마나 서 있었을까,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발가락은 점점 감각을 잃었다.

그때 덕빈궁의 나인이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문을 열자, 따듯한 공기가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김단은 코끝이 찡해냈다.

“과연 빨래를 잘했더군.”

덕빈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고 김단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춰 말했다.

“마마,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

덕빈은 가볍게 웃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과연, 자네 모친 말대로군.”

그녀가 말하는 모친은 임씨 부인이었다.

김단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덕빈은 방안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방문이 닫히자 따뜻한 기운이 그녀를 감쌌지만 김단은 마냥 편안하지는 않았다. 알 수 없는 불길함만 들었다.

덕빈은 섬섬옥수 같은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부드러운 덕빈의 목소리가 이질적으로 들렸다.

김단은 어리둥절해서 덕빈의 손을 잡았다.

그녀를 자리에서 일으킨 덕빈의 시선이 동상에 걸린 김단의 손에 머물렀다.

“어제 빨래를 하라 명한 것에 속상하진 않았소?”

덕빈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어투에 김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세답방에서 3년간 겪었던 수모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김단을 자기 옆에 앉힌 덕빈이 계속해서 물었다.

“본궁을 탓하지 말게. 세답방 궁녀들이 누구의 명 때문에 그리 한 것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하나, 낭자의 오라비가 충동적으로 군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오. 본궁이 낭자를 벌하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진산군댁을 가만두진 않았을 것이오.”

김단도 이해했다.

진산군댁의 지위는 예전 같지 않았다. 그들의 생사는 덕빈이나 다른 후궁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될 정도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3년 전에 공주자가의 유리잔을 깼다는 연유로 세답방의 무수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상전하께서 진산군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였다.

친딸도 아닌 수양딸에게 황명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본궁도 낭자의 억울함을 알고 있소.”

덕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얼어붙은 김단의 마음을 녹이려 했다.

그러나 김단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3년 전에 공주의 유리잔을 깨뜨린 게 정말로 그녀였다면 그녀는 순순히 무수리가 되어 마땅히 처벌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억울한 심정을 이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김단을 쳐다보던 덕빈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의 빨래는 본궁이 낭자에게 빚진 것으로 하겠소. 나중에 원하는 것이 생기면 본궁에게 말하시오. 내 빚을 갚겠네.”

김단의 마음이 비로소 흔들렸다.

덕빈이 이번 일로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봐왔던 정 때문에 그녀에게 죄책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잠시 고민하던 김단이 입을 열었다.

“세답방에 류 나인이라는 자가 있사온데 덕빈마마께서 이 나인을 품어주실 수 있사옵니까? 청소 같은 허드렛일이라도 되오니 덕빈궁의 나인으로 써주십시오.”

덕빈의 은혜를 한낱 궁녀에게 베푸는 일에 쓰는 김단이다.

덕빈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나인과 친하시오?”

김단은 고개를 저었다.

“세답방에서 친하게 지내진 않았지만 유일하게 소녀를 괴롭히지 않은 나인이옵니다. 성정이 워낙 연약하여 그곳에서 소녀 대신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되옵니다.”

자신이 겪었던 고초를 다른 사람까지 겪게하고 싶지 않았다.

덕빈은 단단한 김단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좋소. 그 나인을 이곳으로 데려오겠소.”

덕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읍하옵니다.”

김단은 예를 갖춰 인사했다.

덕빈은 안쓰러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

“낭자는 바라는 게 없소?”

3년간 겪었던 고초에 대한 보답을 묻는 것이다.

김단은 은혜를 베푸는 덕빈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살짝 미소 지었다.

보기 드문 미소였다.

“조모님의 곁을 지키고 싶사옵니다. 그것 외엔 바라는 것이 없사옵니다.”

그녀의 발언에 덕빈은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김단이 물러간 뒤에도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상궁 하나가 그녀의 어깨에 겉옷을 덮어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보다 더 말수가 적어지신 것 같사옵니다.”

“그런 것 같구나.”

덕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고난을 겪었기에 명랑하고 밝았던 아이가 저리도 변할 수 있단 말인가?’

덕빈은 오래전에 봤었던 김단의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덕빈궁에서 나온 김단은 길을 인도하는 나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이 궁궐에 한시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인을 놓쳐서 또다시 궐에 몇 년이고 묶이게 될까 봐 빠르게 걸었다.

그녀가 조급해할수록 온전하지 못했던 걸음걸이는 꼬였고 문턱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어떤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기가 그녀의 콧등을 간지럽혔다.

“장군님! 죽여주시옵소서!”

길을 안내하던 나인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말했다.

김단은 황급히 자신을 안고 있는 소한의 품에서 나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송구하옵니다.”

소한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는 뒷짐을 지고 김단의 발목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낭자의 발목은 아직도 불편하오?”

약왕곡의 약을 준 지도 벌써 사흘이 되었다. 약효가 탁월한 약을 줬으니 완치되는 게 정상이었다. 그녀가 약왕곡의 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알아차린 소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녀의 팔로 향했다. 긴 옷소매로 손등까지 가린 거로 보아 약을 사용하지 않은 게 확실시 되었다.

소한을 이곳에서 마주칠 줄 몰랐던 그녀는 살짝 당황했다.

게다가 자기 건강까지 챙겨주는 그의 낯선 모습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말을 섞어서는 안 될 정도로 신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소한은 이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무심한 눈길로 바닥에 몸을 엎드린 나인을 쳐다보았다.

“가서 일 보거라. 낭자는 내가 모시고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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