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13#. 교실 한가운데저녁 식사가 시작된 뒤에도 방 안은 지나치게 시끄러워지지 않았다. 낮은 식탁 위에는 계절 생선과 맑은 국, 작은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은은한 조명 아래로 옻칠된 젓가락 끝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나는 등을 너무 세우지도, 그렇다고 흐트러뜨리지도 않은 채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마사노리가 낮은 목소리로 직원에게 짧게 무언가를 물었고, 옆자리의 사에코는 특별히 말을 많이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요시코는 자연스럽게 다음 반찬 접시를 정리하고 있었고, 노리코만이 가끔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두지 않으려는 듯 짧은 말을 덧붙였다.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요시노리는 평소처럼 조용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누구보다 이 집 공기에 익숙한 사람처럼.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조용함이 전처럼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젓가락이 그릇 가장자리에 아주 작게 닿는 소리와, 멀리 복도 쪽에서 직원들이 오가는 기척만이 얇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아주 조금만 내린 채, 국그릇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김을 바라봤다. 도쿄에서 누군가와 식사를 할 때는 대부분 말이 훨씬 빨랐다. 분위기가 끊기지 않도록 웃음이 이어졌고, 누군가는 계속 다음 화제를 꺼냈다. 침묵이 길어지면 괜히 어색해지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말이 잠깐 멈추는 순간에도 아무도 굳이 서둘러 그 공백을 메우려 하지 않았다.“…오늘 수업은 어떠셨습니까.”잠시 뒤, 마사노리가 낮고 안정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시선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운 쪽에 가까웠지만,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로잡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마사노리는 나의 예비 시아버지로, 평상시에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옅은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그는 굳이 목소리를 높이거나 분위기를 주도하지 않아도, 식탁 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주변 공기를 정리하는 쪽에 가까웠다. 직원들도 그 앞에서는 괜히 움직임이
Zuletzt aktualisiert: 2026-06-16
Chapter: 012#.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란코는 문이 닫힌 뒤에도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방 안에는 방금 전까지 남아 있던 인기척이 아주 희미하게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다다미 위에 조용히 앉은 채, 그녀가 소매 끝을 한 번 천천히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작은 체구인데도 이상하게 자세가 흐트러져 보이지 않는 사람. 란코는 언제나 그랬다. 굳이 시선을 강하게 두지 않아도, 방 안 공기를 자연스럽게 정리해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잠시 뒤 그녀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오늘은 걷는 것부터 다시 보겠습니다.”나는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란코는 바로 설명을 이어가지 않았다. 대신 잠깐 시선을 내린 채, 내가 앉아 있는 자세와 발끝 방향을 조용히 바라봤다.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복도 너머에서 직원들이 지나가는 기척이 아주 희미하게만 들렸고, 이른 햇빛은 다다미 위에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몇 초 뒤, 란코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스카 씨는.” 아주 잠깐 멈췄다. “생각보다 먼저 시선을 움직이는 편입니다.”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한 번 천천히 깜빡였다. 란코는 나를 곧바로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방 안 공기를 정리하듯, 조용한 속도로 말을 이었다.“걷는 자세 자체는 많이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런데.” 그녀는 아주 미세하게 시선을 들었다. “누군가를 의식하는 순간, 먼저 반응을 확인하려는 쪽으로 몸이 조금 빨라집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아주 조금만 내린 채, 손끝을 가볍게 모았다. 이상하게도, 그 말은 생각보다 부정하기 어려웠다.나는 시선을 내린 채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다미 위로 아침 햇빛이 아주 얇게 번지고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란코 역시 굳이 다음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조금 전 노리코가 했던 말이 아주 희미하게 다시 떠올랐다. 굳이 먼저 확인하지 않게 된 느낌. 나는 눈을 한 번 천천히 깜빡였다. 그런데 란코의 말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 확인하지 않게 되었다기보다
Zuletzt aktualisiert: 2026-06-09
Chapter: 011#.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손끝에는 아주 미세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린 채, 그대로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문 너머로는 불빛이 아주 희미하게만 들어오고 있었다. 아까까지 귀 가까이에 닿아 있던 숨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완전히 끝난 느낌은 아니었다.나는 시선을 천천히 내렸다. 반쯤 접힌 종이가 아직 그대로 놓여 있었다. 손가락 끝이 그 모서리를 아주 약하게 눌렀다가 멈췄다. 굳이 다시 펼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치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나는 등을 소파에 아주 천천히 기댔다. 방 안 공기는 아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시계 초침 소리도 그대로였고, 창문 바깥의 불빛도 여전히 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침묵이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전화에서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말이 멈추는 간격이나 숨을 고르는 소리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나는 눈을 한 번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아마도요.”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다시 이어졌다. 나는 입꼬리를 아주 조금만 올렸다가, 다시 지웠다. 이상한 사람이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 말이 전처럼 가볍게 정리되지는 않았다.나는 시선을 천천히 옆으로 흘렸다. 창문 유리에는 희미하게 어두운 실내만 비치고 있었다. 문득, 몇 달 전 도쿄의 밤공기가 아주 짧게 떠올랐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와, 늦은 시간까지 열려 있던 가게 불빛. 사람들 웃음소리와 음악이 섞여도 이상하지 않던 거리. 그 안에서는 대부분의 말이 빠르게 지나갔고, 대부분의 관계도 오래 멈춰 있지 않았다.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있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시선을 끌고, 분위기를 읽고, 어느 순간에는 먼저 자리를 떠나는 것까지 포함해서.나는 눈을 한 번 천천히 깜빡였다. 방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멀리 어디선가 아주 희미하게 바람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다다미
Zuletzt aktualisiert: 2026-06-08
Chapter: 010#. 전화선 너머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짧게, 숨을 고르는 쪽에 가까운 공백이 있었다. 나는 수화기를 쥔 손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가 멈췄다. 전화선 너머는 조용했다. 그런데. 끊어진 느낌은 아니었다.“…네.” 그가 천천히 말했다. “괜찮습니다.”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시선을 아주 조금만 내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가 보였다. 반쯤 접혀 있었다. 나는 그걸 몇 초 동안 그대로 바라봤다.“늦었는데도요?” 짧게 물었다. 그는 잠깐 멈췄다. “아직 안 자고 있었습니다.”나는 그 대답을 그대로 들었다. 몇 초. 굳이 바로 이어가지 않았다. 전화에서는, 공백이 조금 더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편하지는 않았다.“…교토는.”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원래 이렇게 조용해요?”그는 아주 미세하게 숨을 고르는 듯했다. “장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짧게. “지금은 그렇습니다.”나는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가, 다시 지웠다. “…요시노리 씨 답네요.”그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아주 짧은 공백. 그리고. “그렇습니까.”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시선을 천천히 옆으로 흘렸다. 창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네.” 짧게 말했다. “급하지 않은 쪽.”그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아주 미세한 숨소리만 이어졌다. 나는 시선을 그대로 두었다. 전화에서는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말이 멈추는 간격이 조금 더 또렷하게 남았다.“…아스카 씨는.”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쿄 쪽 같습니까.”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짧게 숨을 고르고, 수화기를 쥔 손을 조금만 고쳐 잡았다. 몇 초. 굳이 빨리 답할 필요는 없었다.“글쎄요.” 짧게 말했다. “원래는, 그런 쪽이 더 편했는데.” 그는 그 말을 끊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아주 조금만 내렸다. 반쯤 접힌 종이가 그대로 보였다.“…요즘은 잘 모르겠네요.”말이 끝난 뒤, 짧은 공백이 이어졌다. 나는 그 상태를 그대로 두었다. 굳이 설명을
Zuletzt aktualisiert: 2026-06-06
Chapter: 009#. 그대로 두었다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은 채로 이어져 있었다. 그 사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태는 이미 정리된 쪽에 가까웠다. 나는 그걸 따로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그건 과정이 된다. 과정이 되면, 흐름이 생긴다. 그건 필요 없었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다미 위에 무릎을 가지런히 두고, 허리를 세우고, 시선은 정면에 두고 있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 자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손끝의 위치도, 숨을 고르는 간격도, 이미 몸에 익은 범위 안에 있었다.익숙해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건 맞추려는 쪽에서 나오는 말에 가까웠다. 지금은, 그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쪽이었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시선을 아주 조금만 아래로 내렸다. 무릎 위에 놓인 손이 보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태를 굳이 바꾸지 않았다.…문득, 떠오르는 건 있었다. 로비의 조명, 유리문 너머의 공기, 손에 들고 있던 얇은 종이의 감촉.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 정도의 기억은, 붙잡지 않으면 흐려진다. 굳이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두었다. 사라지지 않는 쪽으로. 나는 시선을 다시 올렸다. 정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상태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이어가지 않았다. 그 상태가 그대로 이어졌다. 말이 없는 쪽이 더 안정적이었다. 굳이 하나를 덧붙이지 않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그대로 두었다. 정면, 아무것도 없는 쪽.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익숙하네. 짧게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걸 바로 지우지 않았다. 굳이 지울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으니까. 손을 무릎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 정도의 조정이면 충분했다.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조용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거의 없었다. 복도를 지나는 발소리, 문이 닫히는 소리. 그 사이를 채우는 건 별로 없었다. 그게 더 나았다.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 동작이 끝난 뒤에도, 공기는 그대로였다.…여기서는, 변하
Zuletzt aktualisiert: 2026-06-05
Chapter: 008#. 언젠가는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바뀔 이유가 없었으니까. 말이 길어지지도 않았고, 시선이 늦어지지도 않았고, 거리도 그대로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게 두는 쪽이 더 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보통은 이쯤에서 하나쯤은 어긋난다. 이유 없이 말이 끊기거나, 타이밍이 조금 늦어지거나. 그런 종류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끼어든다.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없었다. 나는 그걸 그대로 두고 있었다.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세하게. 어딘가 하나가 비어 있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나는 그 빈 자리를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확인하는 순간, 거기에 이름이 붙는다. 이름이 붙으면, 그쪽으로 기울어진다. 그건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두었다. 손을 무릎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가 멈췄다. 시선은 정면에 둔 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것처럼.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익숙해진 범위 안에 있었으니까.그런데. 아주 짧게, 그가 떠올랐다. 말이 이어지지 않던 간격, 굳이 덧붙이지 않던 태도. 나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 정도의 기억은, 붙잡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건드리지 않았다. 그대로 두는 쪽이, 아직은 더 편했다.그 상태가 계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은, 오래 가지 않는다. 나는 시선을 아주 조금만 옆으로 흘렸다. 거기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다. 몇 초.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오늘도, 갈까.나는 그 생각을 바로 붙잡지 않았다. 붙잡는 순간, 의미가 생긴다. 의미가 생기면, 선택이 된다. 선택이 되면, 이유가 따라온다. 그건 필요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흘려보냈다. 손을 한 번 더 정리하듯 움직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Zuletzt aktualisiert: 2026-06-04
Chapter: 6th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 장면이었다. 쉬는 시간이었다. 교실 안은 평소처럼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사이를 보고 있었다. 쿠미가 웃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다. 창가 쪽에서, 누군가와 말을 나누며— 평소보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얼굴에,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던 아이였다는 것을— 그 순간에야, 다시 떠올린 것 같았다. 그때였다. “쿠미.” 조용한 목소리였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치코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쿠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망설였다. 그건 정말로 짧아서, 다른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응.” 대답은 평소와 같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방금 전까지 나누고 있던 대화는 그대로 끊겼다.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도 굳이 붙잡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끝났다. 쿠미는 사치코 쪽으로 걸어갔다. 망설임 없이.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항상 저 타이밍일까. 쿠미가 혼자 있을 때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도 그 아이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다른 곳에 닿으려는 순간마다, 사치코가 불렀다. 나는 시선을 조금 늦게 거두었다. 아니— 거두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아니야. 그건,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 아이가 우연히 그 타이밍에 부른 것뿐일 수도 있고, 내가 괜히 그렇게 보았을 뿐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장면을, 몇 번 더 본 것 같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같은 흐름이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그걸 이제 와서야 떠올리고 있었다. 쿠미가 혼
Zuletzt aktualisiert: 2026-06-18
Chapter: 5th 교실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도 여전히 부드럽게 바닥을 스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 섞여 있으면서, 어딘가 어색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생각해보려 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평소와 같은 하루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으니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쿠미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것이다. 특별한 의미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그리고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거나, 아무 말이나 한마디 건넸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다. 쿠미는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 들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시선이 나를 향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그 이후의 시간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아이들은 공책 위에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누군가는 졸았고,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쿠미도 똑같이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한 번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이름이 불릴 때만 고개를 들었고, 질문을 받으면 짧게 대답했다. 그 외의 순간에는,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치—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처럼. 쉬는 시간이 되어도 쿠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면 대답은 했지만, 그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몇 마디 오가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그건 더 이상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아무 생
Zuletzt aktualisiert: 2026-06-17
Chapter: 4th 쿠미는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교실 안에는 더 화려한 아이들도 있었고, 말을 잘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쿠미는 언제나 한 걸음쯤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먼저 나서지 않았고, 굳이 시선을 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 번 눈에 들어오면 쉽게 잊히지 않는 아이였다. 머리는 일본인 표준이라기에는 조금 밝은 갈색이었고, 햇빛을 받으면 그 색이 더 옅어 보였다. 결이 고운 머리카락이 어깨 근처에서 부드럽게 떨어졌고, 움직일 때마다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전체적으로는 청초한 분위기의 미소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마치 봄바람에 스치는 제비꽃처럼, 특별히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얼굴선은 또렷하다기보다는 부드러운 쪽에 가까웠다. 눈은 크고 맑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힘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 시선이 완전히 닿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가끔씩 내가 혼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어딘가 조금 멀리 있는 사람처럼. 나는 그때의 쿠미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표정, 특별할 것 없는 말투. 그렇지만— 아주 미묘하게, 다른 아이들과는 어긋나 있는 느낌. 가까이 다가가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손을 뻗으면 조금 멀어져 있는 것 같은 거리. 그건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굳이 그 거리를 좁히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렇게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넘겨버렸다. 그런데 지금의 쿠미를 보고 있으면, 그때와 같은 이유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달라진 건 많지 않았다. 머리도, 표정도, 말투도— 겉으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비슷했다. 여전히 조용했고, 여전히 먼저 나서는 일은 없었다. 웃을 때의 얼굴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아이는 더 이상 시
Zuletzt aktualisiert: 2026-04-15
Chapter: 3rd 사치코는 특별한 아이였다. 그 사실을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교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가 자리에 앉으면, 주변의 소리는 아주 조금 가라앉았고, 누군가가 말을 꺼낼 때면— 이유 없이 한 번쯤 그 아이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그건 강요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처럼. 화족 중에서도 공작에 다음가는 작위, 소문에 따르면 지금도 전통 일본식 가옥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요코하마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형태의 집이었다. 그 집안에 걸맞은 교육,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태도까지— 그 아이는 처음부터, 우리와는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 말을 할 때의 속도, 시선을 두는 방식, 자리에 앉아 있는 자세 하나까지도— 어딘가 빈틈이 없었다. 과하게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도, 흐트러진 순간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있을 때면, 그 아이의 모습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 아래로 드러나는 얼굴에는 쓸데없는 감정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웃을 때조차, 크게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주 옅게, 필요한 만큼만. 그래서일까. 그 아이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다음 날, 쿠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교에 나왔다. 교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오는 그 아이의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조용한 걸음,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그리고— 늘 보아왔던 그 미소까지. 그것만 보면, 어제의 공백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Zuletzt aktualisiert: 2026-04-15
Chapter: 2nd 나는 한 발짝을 내딛으려다,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금방 보이지 않게 되었다. 따라가려면 지금이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도, 혼자 남는 것도 아닌 채로,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였던 두 사람의 흐름 속에서, 나만이 그 밖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겨우 실감했던 것 같다. 나는 결국 교실을 나섰다. 복도에는 아직 몇몇 아이들이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 뒤였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뭇잎 그림자가 조용히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소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도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이,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문을 열자, 낮은 공기가 조용히 밀려왔다. 도서실은 한산했다. 창가 쪽 자리에 몇몇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옮겼다. 창가에서 두 번째 자리. 그곳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사치코는 등을 곧게 편 채 책을 읽고 있었고, 쿠미는 그 옆에 앉아 같은 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도, 특별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는 틈이 없었다. 나는 책장을 넘기는 척하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종이 위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소리들이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그리고— 아주 짧게 오가는 몇 마디의 대화. “여기, 이거.” 사치코의 목소리였다. 쿠미가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책을 들여다보았다. “아…” 짧
Zuletzt aktualisiert: 2026-04-15
Chapter: 1st 나는 끝내 S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채, 그 아이가 남긴 유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얇은 종이 위에 적힌 글자는 놀라울 정도로 단정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아이답게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몇 번이나 그 문장을 되짚어 읽었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알아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지금도 나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거기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낸 것처럼, 글을 써내려가던 손을 멈췄다. * * * 푸른 하늘 아래,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우리들은 마치 5월의 햇살과도 같았다. 교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의 연둣빛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체육 수업이 한창이었고, 창문 사이로는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나는 하카마 치맛자락을 한 번 고쳐 잡고, 늘 다니던 복도를 따라 교실로 향했다. 나무 바닥을 밟을 때마다 규칙적인 발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이상할 정도로, 나는 그때 주변의 소리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실 문을 열자, 이미 몇몇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창가 쪽에는 햇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빛 속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아, 츠루.” 내 시선을 눈치챈 듯, 그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부드럽고 단정한 목소리였다. “왜 그렇게 서 있어?” 나는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냥.” 겨우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자, 교실 안의 소음이
Zuletzt aktualisiert: 202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