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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s by holia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대공, 나는 당신의 아이를 원해요." 첫 만남부터 돌직구였다. 전생, 모든 것을 잃고 죽었던 황녀 지빌라. 이번 생, 가장 위험한 남자를 직접 골랐다. 북부의 냉혈 대공, 프레데리크. 이 위험한 황궁을 빠져나가고, 그를 살리고, 제국의 폐망을 막는 것. 사랑 없는 결혼 정도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 처음부터 어긋났다. 첫날밤을 거부하던 신랑은 끝내 그 밤을 강행하고, 아이를 낳겠다던 신부는 몰래 피임약을 준비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고 믿었던 정략결혼. 왜, 자꾸만 선을 넘는 걸까. 전생의 남편 용병왕 카이사르 집요하게 따라붙고, 누이를 놓아줄 생각 없는 일황자가 발톱을 드러낸 사이, 거래였어야 할 남편의 손끝이 어느새 너무 뜨거워졌다. 정략결혼은, 말 그대로 거래로 끝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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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1화 조심스러운 열기(1)
101화지빌라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을 위해 놓아둔 술 한 병이 눈에 들어왔다. 잔에 나누어 따르자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스며들었다.두세 잔을 연달아 비운 지빌라는 금세 볼이 붉게 물들었다.“하르트라라고 얕보면 안 돼.”“달콤해서 그만…….”프레데리크는 조용히 웃었다.사슴 젖으로 빚은 하르트라는 북부 사람들에게 익숙한 토속술이지만 지빌라에게는 생소했다. 그래서인지 은근한 단맛에 취기가 더 빠르게 올랐다.평소엔 보기 어려운, 유난히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스쳤다.“오늘 정도는 괜찮겠지.”그 말이 술보다 더 뜨겁게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그는 술잔을 기울이기보다 지빌라 곁에 조용히 앉았다. 평소라면 흐트러짐 하나 없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볼이 발갛게 물든 채 눈매가 살짝 풀려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낯섦이 싫지 않았다.풍경도, 축제도, 불꽃도―지금의 그는 단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다.“피곤하면 말해.”“아니에요. 괜찮아요.”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북부의 불꽃은 더 까만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도는 그보다도 더 솔직했다.
Last Updated: 2026-09-21
Chapter: 100화 기울어지는 밤
100화연날리기가 끝나고 마지막 춤까지 지나자, 축제는 서서히 밤의 정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에는 잔불처럼 흩어진 연의 불빛이 남아 있었고, 광장은 춤이 끝났다는 여운으로 들뜬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오늘 축제의 진짜 마지막은 불꽃축제였다. 랑베르를 주축으로 일행은 하튼 백작성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성은 대공 부부의 방문 소식으로 분주했다.사람들은 성의 가장 높은 곳, 불꽃을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를 꾸미느라 분주히 오르내렸고, 곳곳에서 바람에 실린 흙냄새와 횃불의 열기가 섞여 흘렀다.랑베르는 성문 앞에서 인파를 정리하며 마지막 준비를 챙기고 있었다. 그의 어깨 위로 밤이 내려앉았다. 곧 시작될 절정을 앞두고, 성 전체가 긴장을 모으는 듯했다.그때, 레오노라는 누군가를 발견하자마자 숨을 삼켰다.‘왜 하필… 지금?’어둠 속에서 끌려 들어간 그녀는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사내를 마주했다.하인 복장이었지만, 어둠에서도 드러나는 표식은 단 하나, 허리끈 안쪽에 숨긴 아주 작은 금빛 인장.황가의 비밀을 뜻하는 일황자의 인장.사내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 조용히,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레오노라에게 접근했다.“레오노라 양.”목소리는 낮고 절제돼 있었다.“일황자 전하께서 보내셨습니다.”그는 허리를 숙여 작은 검은 상자를 그녀의 손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99화 두 사람 사이의 온도
99화프레데리크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 이상했다. 아니, 낯설었다. 축제는 짧고, 대공성은 바로 코앞인데… 왜인지 오늘만큼은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그는 말없이 랑베르와 시선을 주고받더니 가볍게 턱짓했다.“짐은 하튼 백작성에 풀도록.”랑베르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지금… 말씀이십니까? 대공성까지는—”“오늘은 여기서 밤을 보낸다.”결정이 내려지자, 곁에 있던 피엘은 잠시 굳은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부임 이후 누구보다 빠르게 대공의 성품을 파악하려 애써온 사람이었다.‘대공께서 이렇게까지 표정이 밝았던 적이 있었던가…?’랑베르 또한 거의 감동에 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성에서 대공이 쉬겠다니 영광이었지만, 그보다 더 명확한 사실이 있었다.프레데리크의 시선이 자꾸, 너무 자주, 대공비를 따라갔다. 풍경을 바라보듯 부드럽고, 오랫동안 씌워졌던 어둠이 벗겨진 사람처럼 가벼워 보였다.랑베르는 그 모습을 오래 보지도 못하고 곧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준비해두겠습니다, 각하.”프레데리크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행렬은 여전히 움직였고, 축제의 열기와 노을빛이 뒤섞여 퍼지고 있었다. 그 모든 소리 속에서도 그는 지빌라의 숨결만 또렷하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98화 다산 케이크
98화레오노라는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프레데리크는 지금, 너무도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너무 명확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떨구었다.피엘이 낮게 말했다.“전하께서… 저렇게 누군가에게 맞춰 움직이시는 걸 처음 봅니다.”레오노라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그러게요. 아주… 철저하게 맞추셨네요.”살짝 눌린 목소리 속에는 놀람과 인정, 그리고 어쩌지 못하는 작은 서운함이 섞여 있었다.광장에 다시 아이들 웃음이 크게 터졌다. 하지만 레오노라의 귓가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정말로… 지빌라 전하를 위해 온 걸까? 아니면… 이제는 그럴 수밖에 없어진 걸까.’그 깨달음이 겨울 바람보다 더 서늘하게 스쳤다.축제는 무르익어갔다. 인파 속을 가로지르는 동안 누군가 뒤에서 밀치는 바람에 지빌라가 휘청였다.프레데리크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어 안정시켰다. 손가락이 감기는 순간 둘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레 좁혀졌다.“사람이 많군.”그의 짧은 말이 의외로 진정 효과를 냈다.“…고마워요.”지빌라는 잡힌 손에 신경이 쓰여 시선을 피했다.
Last Updated: 2026-09-18
Chapter: 97화 생명의 매듭, 떨림의 순간들
97화의식이 끝나자 아이들 무리가 광장을 뛰어다니며 작은 부적을 나눠주기 시작했다.흰 실과 파란 실을 엮어 만든 ‘생명의 매듭’.한 아이가 지빌라 앞에 다가와 매듭을 내밀었다. 작고 단단한 매듭은 손 위에 놓이자마자 따뜻한 숨결을 품은 듯했다.“요람에 걸어두면 복이 온대요!”아이의 밝은 목소리가 퍼졌다.지빌라가 대꾸하기도 전에 프레데리크가 손을 내밀어 대신 받아들였다. 짧은 순간, 그의 손가락이 지빌라의 손등을 스쳤다. 의도치 않은 접촉이었는데, 왜인지 지빌라는 숨을 들이켰다.프레데리크는 부적을 바라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대로 태어날 아이들을 위한 거지.”말이 끝나자, 그의 표정에 옅게 금이 갔다. 지빌라는 그 금이 어떤 감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문득 떠올랐다.북부를 지배해온 오래된 저주, 베라트 가문의 가주는 스물다섯이 되면 죽는다는 전승.프레데리크의 아버지는 스물다섯이 되던 해, 마치 사슬이 끊어지듯 급작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대공비의 운명은 더 잔혹했다. 프레데리크가 다섯 살이던 해, 한 잔의 독이 모든 것을 끝냈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결국 어린 프레데리크는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고, 그를 지켜낸 건 혈육이 아닌 북부 그 자체였다. 레오노라의 아버지, 동부의 클레브 백작이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그는 황실의 견제에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Last Updated: 2026-09-17
Chapter: 96화 은빛 큰뿔사슴
96화레오노라는 피곤이 비친 미소를 억지로 다듬어 올렸다.“아… 네. 잘 지내셨지요?”“그럼요. 어릴 적부터 두 분이 말을 보러 오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서로를 챙기며 다니시던 것이 엊그제 같았지요.”그 말에 레오노라의 입꼬리가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주인의 시선이 대공비의 마차 옆에 서 있는 흰 말로 옮겨갔다. 잠시 유심히 체형을 살피던 그는 낮게 감탄했다.“서부 말이군요. 씨말 중에서도 최상급 계통입니다. 한때 저도 들여오고 싶었지만… 서부 변경백 쪽이 워낙 귀하게 다루는 말인지라 결국 포기했습니다.”그 순간, 레오노라가 아주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 말은… 서부 변경백께서 대공비 전하께 선물로 드린 겁니다.”주인은 눈썹을 의아하게 치켜올렸다. 레오노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 덧붙였다.“서부에서는 암말을 상대에게 주는 건… 꽤 특별한 의미가 있지요.”짧은 정적.그리고 주인의 시선이 지빌라에게 아주 잠깐, 스치듯 머물렀다.“아마도… 큰 도움을 드린 모양입니다. 허허.”그 짧은 순간에 스친 인상은 곧 입에서 귀로, 다른 이의 입으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Last Updated: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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