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 결혼은 끝냈어야 했다
"대공, 나는 당신의 아이를 원해요." 첫 만남부터 돌직구였다. 전생, 모든 것을 잃고 죽었던 황녀 지빌라. 이번 생, 가장 위험한 남자를 직접 골랐다. 북부의 냉혈 대공, 프레데리크. 이 위험한 황궁을 빠져나가고, 그를 살리고, 제국의 폐망을 막는 것. 사랑 없는 결혼 정도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부, 처음부터 어긋났다. 첫날밤을 거부하던 신랑은 끝내 그 밤을 강행하고, 아이를 낳겠다던 신부는 몰래 피임약을 준비한다. 서로를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고 믿었던 정략결혼. 왜, 자꾸만 선을 넘는 걸까. 전생의 남편 용병왕 카이사르 집요하게 따라붙고, 누이를 놓아줄 생각 없는 일황자가 발톱을 드러낸 사이, 거래였어야 할 남편의 손끝이 어느새 너무 뜨거워졌다. 정략결혼은, 말 그대로 거래로 끝냈어야 했다.
Basahin
Chapter: 147화 그 믿음이, 제일 위험하죠147화지빌라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응접실에는 둘뿐이었다. 샤를로트가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지빌라는 알고 있었다.“황후께서 많이 바쁘시겠어.”샤를로트의 손이 찻잔 가장자리를 스쳤다. 잡고 있던 잔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바쁘시죠. 요즘은… 특히요.”지빌라는 그 대답의 끝에 묻어 있는 피로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라는 말 하나에, 이미 너무 많은 의미가 들어 있었다.“이황자의 정략혼 이야기 때문이겠지.”샤를로트의 시선이 또 다시 흔들렸다.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못한 채 잠시 침묵이 흘렀다.“…황후 폐하께서는, 빠르게 정리하고 싶어 하세요. 약혼까지는… 아마.”지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이 속도는 늘 ‘약혼’까지였다. 결혼식장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남기는 상처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충분히 깊었다.“샤를로트, 도망쳐 온 거겠지… 북부까지.”그 말에 샤를로트의 손이 멈췄다. 잠시 후 짧게, 웃음 같은 숨을 내쉬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숨을 내쉬는 소리에 가까웠다.“역시… 다 알고 계시는군요.”“델보 후작이 가만히 있
Huling Na-update: 2026-11-06
Chapter: 146화 가장 달콤한 찻잎146화금속 세공 장인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손끝이 레오노라의 소매를 건드렸다. 거의 들리지 않는 숨소리와 함께, 짧은 속삭임 하나가 남았다. 일황자의 이름이었다.레오노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둑한 복도의 끝,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야 쪽지를 펼쳤다.「봄에는 흙을 고르고,여름에는 씨앗을 쌓아 두어라.뿌리지는 말 것.아직은 때가 아니다.가을이 오면, 문이 열린다.그때가 개시다.북풍은 움직여서는 안 된다.발이 묶여 있어야만, 숲이 타지 않는다.꽃이 만개할수록,향은 더 멀리 퍼진다.그러니 기억하라.가장 달콤한 찻잎은, 잠을 부른다.」지빌라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수도의 기류는 북부에 닿아 있었다.***며칠 후, 서부 변경백 조프루아 몸므와 그의 여동생 클로리스 몸므가 북부에 도착했다.마차에서 내리자마자, 클로리스는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앞으로 달려왔다.“대공비 전하!”지빌라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클로리스는 예전처럼 치맛자락에 매달리지 않았다. 대신 정확한 거리에서 멈춰 서서,
Huling Na-update: 2026-11-05
Chapter: 145화 농염해지셨어요145화겨울의 끝자락을 밀어내듯, 대공성의 정원에는 이른 봄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눈 사이로 새싹이 고개를 들고, 성 안에는 분주한 기척이 감돌았다.황실의 전령단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친서를 전달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은 관찰의 시작이었다.마차 행렬 맨 앞에서, 샤를로트 델보 후작 영애가 가볍게 내렸다. 한겨울의 수도에서 막 건너온 사람답지 않게, 그녀의 표정은 유난히 생기가 넘쳤다.“와―북부도 봄은 오는군요.”그녀가 감탄하듯 말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계단 아래에는 지빌라가 서 있었다.“샤를로트.”지빌라의 부름에, 샤를로트는 잠시 말을 잊었다. 그러고는 곧, 눈썹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어라.”그 짧은 감탄 하나에, 지빌라는 이유를 알아차렸다.“왜 그렇게 봐.”샤를로트는 그녀를 위아래로 가늠하듯 훑어보았다.“그냥… 생각보다 훨씬.”“훨씬?”“농염해지셨어요.”지빌라는 무심코 어깨를 바로 세웠다. 황녀 시절에도 종종 듣던 말이었지만, 지금은 어딘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북부 공기가 그런가… 공기만은 아니겠죠
Huling Na-update: 2026-11-04
Chapter: 144화 —이게 더 위험한데(2)144화“……잔인하네.”프레데리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아주 친절한 거죠.”그녀는 다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엔 정말로, 재우려는 사람처럼.“이 이상은 안 돼요,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고, 내일도 얌전히 있으면— 읏! 당신 정말!”프레데리크는 상기된 얼굴을 한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키스했다. 그러자 아래가 지르르 울렸다. 직접 관계를 맺지 않았는데도 내벽이 움찔거렸다.잠옷 안으로 손이 파고들었다.“안 돼요. 더는…….”“나만 좋은 순 없잖아.”지빌라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말이 안 됐다.“여기서 끝내요.”“금방이야.”그가 다정하게 입술을 겹쳤다. 지빌라는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몸에 난 상처가 걱정이 됐다. 그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사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음부를 문질렀다.그의 혀가 지빌라의 입안 여린 점막을 핥았다. 입안에는 비릿한 맛이 맴돌았고, 타액이 엉겨 혀끝이 부딪혔다.손가락이 밀고 들어왔다.“하아…….”그의
Huling Na-update: 2026-11-03
Chapter: 143화 —이게 더 위험한데(1)143화지빌라의 말이 끝나자, 프레데리크의 숨이 분명히 달라졌다. 잠깐의 정적 끝에 그가 고개를 들어, 지빌라의 입술을 찾았다.처음엔 조심스러웠다.확인하듯, 묻듯.그러다 점점 깊어졌다. 숨이 섞이고, 그녀의 손에 쥔 힘이 느껴질 만큼.프레데리크가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 한 순간, 지빌라는 그의 입술에서 천천히 물러났다. 이마를 맞댄 채, 낮게 말했다.“더 기대하는 거예요?”그의 숨이 멎었다.“그럼, 오늘 밤은—”그녀는 다시 한 번, 분명히 선을 그었다.“내가 허락한 것만 해요.”프레데리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제야 온몸에 퍼지는 얼굴이었다.지빌라는 이불을 걷어내며 그의 아래로 천천히 몸을 옮겼다.“……지빌라?”당황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그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이미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이 드러나자, 지빌라는 잠시 손을 멈췄다. 생각보다 크고, 단단했다. 매번 그를 받아들일 때마다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눈으로 마주하는 압도감이었다.문득 낯선 기억이 스쳤다. 이런 걸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손이, 그리고 다음에 무얼 해야 할지가 이상하게
Huling Na-update: 2026-11-02
Chapter: 142화 아래는 멀쩡해142화호흡은 한결 고르게 돌아와 있었다.신관은 그의 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손을 떼었다.“독은 이미 제거되었습니다.”차분한 목소리였다.“이제 안정을 취하면 됩니다. 오늘 밤만 넘기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프레데리크는 그 말을 들으며 옅게 눈을 떴다. 신관의 손이 닿기 전부터, 가슴 한쪽의 열기가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치료실에 감돌던 긴장이 조금 풀렸다. 랑베르는 작게 숨을 내쉬었고, 피엘은 굳게 다문 입술로 고개를 끄덕였다.“각하를 지키지 못한 점, 사죄드립니다.”“오늘 일은―저희의 불찰입니다.”“저희에게 벌하여 주십시오.”프레데리크는 눈을 감은 채,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움직였다.“괜한 일로… 다들 놀라게 했군. 그 정도면 됐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이동했다. 치료실에 모인 사람들, 시녀와 기사들,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지빌라에게로.에르나는 한 발짝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브 매듭은 느슨하게 풀려 있었고, 흐트러진 차림 그대로였다. 손끝은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프레데리크가 다정하게 말했다.&ldqu
Huling Na-update: 202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