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현은 눈을 반짝이며 궁금한 표정으로 안세린을 바라봤다.“그건 그 사람이 할아버지를 구했고 오늘 우리 안씨 가문도 구했으니까 예의상 그런 거지.”안세린은 담담하게 해명했다.“서현아, 내가 얼마나 남자 싫어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난 세린 언니 말 믿어. 언니는 거짓말 안 하잖아.”안서현은 새근새근 웃었다.하지만 이어진 한 마디에 안세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세린 언니가 진서준 오빠 안 좋아한다면 그럼 나 언니 눈치 안 볼래.”“서현아,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안세린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나 진서준 오빠 좋아해. 그날 날 구해준 순간부터 이미 진서준 오빠에게 푹 빠졌어.”“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베푼 은혜에 감동한 거야. 서현아, 좋아하는 거랑 고마운 거는 다른 거야.”안세린은 곧장 바로잡았다.“으응...”안서현은 이해한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같은 시각.진서준은 안가인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안가인은 손을 뻗어 진서준을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진 신의님, 앉으세요. 제가 차 한 잔 갖고 올게요.”“안가인 씨,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진료만 보고 바로 갈 거니까요.”진서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진 신의님은 저랑 있는 게 그렇게 싫으세요?”안가인은 억울하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제가 세린이나 서현처럼 젊진 않아도 외모는 절대 안 밀리는데요?”“안가인 씨, 저는 안가인 씨가 싫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진서준은 급히 해명했다.“근데 행동이 다 말해주잖아요?”안가인이 집요하게 밀어붙이자 진서준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후후... 농담이에요. 진 신의님,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안가인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표정을 확 바꿨다.안가인의 감정 변화는 책장 넘기는 수준보다도 빨랐다.진서준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런 스타일은 진서준이 대응하기 제일 피곤한 타입이었다.“안가인 씨, 진찰 시작하죠.”진서준이 안가인을 재촉했다.“네.”안가인은
피가 흥건한 바닥 위에서 벌레들이 꿈틀대며 기어다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진서준은 손바닥을 뒤집어 내리치더니 벌레들을 단숨에 박살 냈다.“이런 독충을 조종하려면 주술사가 최소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즉...”진서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안진해를 죽인 범인은 바로 이 연회장 안에 있단 말이죠.”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연회장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살인범이 아직도 연회장에 있을 줄은 몰랐다.안국성 역시 얼굴이 일그러졌다.“이 자리에 있는 건 전부 안씨 가문의 손님입니다. 하나하나 조사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일단 연회를 계속 진행합시다.”“좋습니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가짜 안진해가 죽은 건 어쩌면 범인이 이미 도망쳤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이 상태에서 전면 조사를 하면 오히려 안씨 가문의 체면만 구길 뿐이다.이 사건으로 인해 안씨 가문의 연회는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괜히 본인에게 불똥 튈까 봐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안국성은 즉시 아들과 딸들을 불러 모았다.“지금 당장 셋째를 찾아. 살아 있으면 얼굴이라도 봐야 하고 죽었으면 시체라도 데려와야 해.”안국성의 표정은 짙은 살기로 가득했다.“그리고 그 용왕이라는 놈에게 안씨 가문이 무릎 꿇게 허락할 수 없어. 안씨 가문은 오직 용주만을 따를 뿐,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용왕 따위는 필요 없어.”“네, 알겠습니다.”형제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눈빛을 교환했다.아버지가 이번엔 제대로 화난 것 같았다.“진서준 씨, 오늘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서준 씨가 없었다면 우리 안씨 가문은 진작에 멸문당했을 겁니다.”안국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앞으로도 안씨 가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걱정 마십시오. 안씨 가문은 진서준 씨를 전력으로 도울 것입니다.”안국성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더 단호했다.진서준의 등에는 오조금용의 문신이 있었
“넌 연기력이 너무 딸렸거든. 진짜 중독된 사람은 너처럼 기운 넘치지 않아.”진서준이 싸늘하게 말했다.“하, 인정하지. 이번엔 내가 졌어.”가짜 안진해가 씁쓸하게 웃었다.“하지만 내가 죽는다 해도 다른 내가 또 올 거야. 안씨 가문이 전멸할 날이 머지않았어.”“이 개자식이 뭐라고 나불대는 거야?”안진천이 이성을 잃고 달려들며 따귀를 날렸다.“우리 셋째는 어딨어? 지금 어디 있냐고?”“알고 싶어? 그럼 날 풀어줘. 날 풀어주면 알려줄게.”가짜 안진해는 여유롭게 웃었다.“그럴 가능성은 하나도 없지.”진서준은 단숨에 가짜 안진해를 바닥에 내던졌다.그러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가짜 안진해는 온몸을 비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으아악!”가짜 안진해의 비명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내가 한의사인 거 잘 알지? 그럼 한의사 방식의 고문법도 잘 알고 있겠지?”진서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가짜 안진해를 내려다보았다.“안진해의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살아서 끔찍한 생지옥을 맞이하게 해줄게.”그 말에 가짜 안진해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너 적당히 해. 나한테 손대기라도 하면 용왕님이 절대 가만 안 있을 거야.”“용왕은 뭔데? 정말 강한 놈이면 직접 이 자리에 나왔겠지.”진서준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자기 실력이 바닥을 치니까 너 같은 허접하고 비겁한 놈을 대신 보낸 거잖아.”진서준의 비웃음에 가짜 안진해는 분노를 터뜨렸다.“감히 우리 용왕님을 모욕해? 너 진짜 어떻게 죽을지 기대되는구나.”“진서준 씨, 말 섞지 마시고 그냥 고문 시작합시다.”안진천이 급박하게 외쳤다.동생이 사라진 시간이 길면 길수록 동생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진서준은 바로 은침을 꺼내 가짜 안진해의 몸에 하나씩 꽂아 넣었다.몇 방 찌르자마자 가짜 안진해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너 뭐 하는 거야...”“혈액을 역류시키는 침이야. 봉쇄된 혈 자리가 3분 안에 폭주하겠지. 혈액이 다시 돌아가도 넌 그냥 껍데기만 남을 거야.”진서준의 아무
“봤지? 이 녀석 지금 화나서 본성이 드러났잖아?”안진해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근데 말이지, 네가 날 죽일 수는 있겠어? 여기 있는 사람 전부 우리 안씨 가문 사람이야.”안진해는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계속해서 진서준을 자극했다.안진해는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안진해는 안씨 가문의 직계 혈족인지라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면 온 가문의 공분을 사게 될 것이다.“죽이면 되지. 그게 어려울 것 같아?”진서준은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안진해의 목을 움켜쥐었다.엄청난 기운이 안진해를 순식간에 감쌌고 안진해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되었다.안진해의 얼굴은 극심한 고통에 벌겋게 달아올랐다.“진서준 씨, 안 됩니다.”안진천이 기겁했다.안진해가 막말을 한 건 사실이지만 결국은 안씨 가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죽이면 안씨 가문은 이 상황을 수습할 수도 없고 체면도 챙길 수 없었다.게다가 안진천은 진서준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진서준 씨, 제발 진정해 주십시오. 이 못난 자식은 제가 직접 혼내겠습니다. 부디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십시오.”안국성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아무리 한심해도 결국은 자기 친아들이었기에 눈앞에서 죽게 둘 수는 없었다.“진서준, 지금 당장 우리 셋째 형님을 풀어줘.”“안씨 가문 사람을 죽이면 오늘 넌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없어.”“지금 당장 그 손 놔. 내 말 들려?”안씨 가문 사람들 전부 격앙된 상태로 진서준을 둘러쌌다.다들 진서준이 격하게 반응하는 걸 보고 안진해의 추측대로 진서준이 진짜 독을 퍼뜨린 범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안진해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이제 전부 다 날 범인으로 몰아가게 되었네. 이거 네가 원하던 그림 맞지?”“내가 원하는 그림이 맞으면 어쩔 건데?”안진해가 쌀쌀하게 받아쳤다.“네가 다른 속셈을 품고 벌인 더러운 짓을 내가 까발린 거잖아. 더 이상 할 말이라도 있어?”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침착하게 입
“어르신, 과찬이 심합니다. 이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안씨 가문이 망한다고 해서 진서준에게 득 되는 일은 없었다.무엇보다 진서준은 남은 용맥의 일족을 찾기 위해 용의 호위대 겸 아홉 후손 가문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아버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그때, 잠자코 있던 안진해가 입을 열었다.“우리는 전부 중독됐는데 왜 저 사람만 멀쩡한 거죠?”“셋째야,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진서준 씨가 독을 뿌렸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안진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용자인 진서준이 안씨 가문을 해칠 이유 따윈 없었다.물론 안진해는 진서준의 정체를 모르니 의심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됐다.“내가 의심하는 건 단순해. 저 녀석의 정체가 수상하다는 거야.”안진해는 진서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안씨 가문 사람이거나 신원이 확실한 손님들이야. 하지만 저 녀석의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잖아.”진서준은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내가 독을 퍼뜨렸다면 뭐 하러 이렇게 고생해서 너희를 살리겠어?”“그야 당연히 우릴 속여서 신뢰를 얻으려는 수작이지.”안진해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아마 나 빼곤 전부 너를 믿게 됐을 거야. 우릴 구해준 은인이니까 당연한 거지.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과연 진실일까? 모두가 바닥에 쓰러졌는데 너만 멀쩡했고 독의 출처도 너무 쉽게 찾아냈잖아.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은 바로 이 모든 게 네 각본대로 진행한 시나리오라는 거야.”그 말을 들은 사람들 일부가 슬금슬금 진서준을 주시하기 시작했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진해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진서준이 안씨 가문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다들 진서준에 관한 정보가 결핍했다.그나마 알려진 건 안국성을 치료해서 살려낸 것뿐이었고 다른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헛소리 작작 해.”안진천이 단단히 화가 난 듯 외쳤다.“셋째
“뭐라고? 중독됐다고? 그게 말이 돼?”안세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이번 연회에 나온 음식은 전부 여러 차례 검사를 거친 거야. 중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돼.”오늘은 안씨 가문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손님 중 한 명이라도 중독으로 사망하게 되면 안씨 가문은 체면이 바닥을 치게 될 것이다.안세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 사이에서 또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더니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입과 코에서 피를 쏟아냈다.두 명이 연달아 쓰러지자 현장 분위기는 금세 공포에 휩싸였다.아직 모두가 상황 파악도 못 한 그 순간, 가을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듯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쓰러져 똑같은 증상을 보였다.사람들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얼굴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에 참석한 대다수 손님이 중독되어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고작 5분 남짓한 시간에 떠들썩하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안씨 가문 사람들도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안국성도 바닥에 쓰러진 채 미간이 시커멓게 물들었고 입에서 피를 뿜고 있었다.안진천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할아버지! 아버지!”안세린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부축하려 했다.“진정해.”진서준이 그런 안세린을 붙잡았다.“왜 날 제지해? 우리 할아버지가 쓰러진 거 안 보여?”안세린은 분노로 눈을 부릅떴다.“공기 자체에 독이 있어. 바로 저 안쪽에서 퍼지고 있어. 넌 물러서 있어. 내가 다녀올게.”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뭐라고? 공기 자체에 독이 있다고?”진서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물이나 음식이 문제였다면 다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공기가 문제라면 어쩔 수가 없었다.숨을 안 쉬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일단 이 약부터 먹어요.”진서준은 흰색 알약 몇 개를 꺼내 안세린 일행에게 나눠주었다.이 약은 해독단이었고 해
“진서준 오빠, 우리 집 진짜 크죠?”안서현이 자랑스럽게 물었다.“진짜 크긴 해.”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랑 결혼하면 나중에 여기서 같이 살 수 있어요.”안서현은 눈웃음을 지으며 놀라운 얘기를 꺼냈다.그러자 진서준은 못 들은 척하며 슬쩍 화제를 돌렸다.“슬슬 연회장으로 돌아가자.”“그러죠...”안서현은 그 대답에 맥이 빠졌다.왜 진서준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지 안서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자기 얼굴 문제인지 몸매 문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연회장으로 막 돌아왔을 때, 익숙한 얼굴이 진서준의 눈에 들어왔다.“형님!”성용준이 진서준을 발견하고 허둥지둥 달려왔다.“또 만나네요.”성미영 역시 진서준을 발견했다.본래는 다가가서 진서준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안서현이 진서준의 팔을 꼭 끼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정말 바람둥이가 따로 없었다.“진서준, 여기가 무슨 자리인 줄 알아? 여자랑 팔짱 끼고 돌아다니는 게 말이 돼?”성미영은 다가와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진서준 오빠랑 팔짱 끼려고 한 건 저인데요?”안서현이 입을 삐죽이며 진서준을 감쌌다.“너...”성미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여자가 먼저 들이댔으니 성미영도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현아, 얼른 놔. 이러다 우리 안씨 가문 체면 다 구겨져.”안세린이 참다못해 한마디 하자 그제야 안서현은 아쉬운 얼굴로 진서준의 팔을 놓았다.“잘 들어, 또 이상한 짓 하면 내가 서지은 대신 널 제대로 혼내줄 거야.”성미영이 날이 선 목소리로 경고했다.“진서준 형님, 저쪽에 좋은 와인 있던데요? 우리 한잔하죠.”성용준이 민망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진서준은 고마운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용준과 함께 자리를 떴다.여자가 셋이면 드라마 한 편 나온다는데 지금 이 자리에 딱 여자 세 명이 있었다.여기 더 있다간 어떤 불똥이 튈지 예상할 수 없었다.“아까는 고마웠어, 성용준.”자리를 뜨자 진서준이 감사의
“고모, 고모 몸에 아무 이상도 없잖아요. 지금 진서준 오빠한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죠?”안서현이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은 병아리를 감싸는 암탉 같았다.안가인은 조카의 모습에 깔깔 웃었다.“얘야, 뭔 소리니? 고모는 벌써 서른을 넘겼어. 내가 진짜 진 신의님을 꼬신다고 해도 진 신의님이 날 눈여겨보긴 하겠어? 진 신의님, 꼭 나중에 저를 진찰해 주세요.”안가인은 요염하게 웃으며 진서준 옆을 지나쳤다.그 순간, 향긋하고도 묘한 향기가 진서준의 코를 스쳤다.“아직도 보고 있어?”진서준이 안가인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본 안세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경고하는데 우리 고모한테 이상한 마음 품지 마. 가만 안 둘 거니까.”진서준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오해야. 난 그냥 저 사람 향기가 좀 특이해서 그런 거야.”“세린 언니, 요즘 남자들이 연상 좋아한다던데 진서준 오빠도 예외는 아닌가 봐.”안서현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진짜 오해라니까...”진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오해든 아니든 경고는 할게. 안가인은 우리 고모니까 절대 다른 생각 품지 마.”안세린이 단호하게 말했다.“진짜? 아무리 봐도 네 고모처럼 안 보이던데?”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말했다.안가인은 몸매도 완벽하고 언뜻 보면 안세린이랑 자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얼굴도 요염해서 기껏해야 20대 정도로 보였고 성숙한 매력이 철철 흘러넘쳤다.그러니 어린 남자든 나이가 든 남자든 이런 여자의 매력에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쓸데없는 잡담은 그만하자. 오늘 널 부른 건 중요한 일 때문이야.”안세린은 굳은 인상으로 말문을 열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어 하셔. 나 따라와.”진서준은 안세린을 따라가 안국성을 만났다.이틀 전 병색이 가득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의 안국성은 안색도 좋고 기력도 충만해 보였다.“할아버지, 이분이 며칠 전 할아버지를 살려주신 진 의사예요.”안세린이 진서준을
“그 사람은 잘생겼어. 그리고 옆에 미녀 셋이 같이 있었어.”성용준의 말을 들은 순간, 성미영의 머릿속에 딱 한 사람의 이름이 번쩍 떠올랐다.“대충 알겠어. 네가 말한 그 사람은 아마 진서준일 거야.”성미영의 목소리는 살짝 차가워졌다.“그 녀석은 여자 좀 밝히는 바람둥이야.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마.”“그래?”성용준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보아하니 진서준이라는 사람이 누나한테는 별로 좋은 인상을 못 준 모양이었다.“됐고, 너는 빨리 집에 들어가. 괜히 밖에서 또 사고 치지 말고. 며칠 뒤에 안씨 가문 연회도 가야 하잖아.”성미영은 다짜고짜 성용준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재촉했다....한편.이 정도 규모의 소동으로는 진서준 일행의 기분을 망칠 수 없었다.여유가 생기자 진서준은 허사연 일행과 함께 르벨 이곳저곳을 구경했다.르벨의 풍경 하나는 기가 막혔다.20세기 유럽풍 건축물과 현대식 중식 스타일 건물들이 뒤섞여 묘한 매력을 뿜어냈다.시간은 훌쩍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이틀이 지나버렸다.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진서준은 안세린의 전화를 받았다.“오늘 좀 일찍 와. 곧 안씨 가문 연회가 열릴 거야.”안세린의 목소리는 여전히 예전처럼 차가웠다.“알겠어.”진서준은 짤막하게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진서준, 이따가 나가야 해?”허사연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응. 점심쯤이면 돌아올 거야. 딱히 다른 일이 없으면 내일쯤 돌아가자.”진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진서준이 중요한 일을 보러 간다고 하자 허사연은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샤워를 마치고 다른 준비를 마친 뒤, 진서준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차를 몰아 안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저택에 도착하자 저택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수억 원짜리 슈퍼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남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았다.소탈한 차림의 진서준은 이 사람들 사이에서 단번에 눈에 띄었다.입구에서는 안세린이 진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오늘의 안세린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