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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9 10:56:26

도현은 허리를 받쳐 박자가 흐트러지지 않게 맞춰 줬다.

"그러니까 그렇게 급하게 올 필요 없었습니다."

"급하게 안 왔어요."

"샴페인잔 내려놓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습니다."

"잔이 조금 무거웠어요."

"그렇군요."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소율은 그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주변에는 춤을 시작한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두 사람을 힐끗거리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전무님이야말로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한 팀장이 먼저 손을 내민 적은 없으니까요."

소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자벨이 도현의 넥타이에 손을 대려 했던 날에는 자신도 모르게 사이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때도 다른 여자를 의식한 행동에 가까웠지, 모든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도현에게 먼저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도현은 소율의 침묵을 답으로 받아들였다.

"나중에 모른 척하지 마십시오."

"뭘요?"

"오늘 한 팀장이 먼저 저를 선택한 것 말입니다."

"첫 곡을 신청한 것뿐이에요."

"그게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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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8화

    "파리에는 도현 씨 옷이 이만큼 있어요. 서울에도 제 공간을 똑같이 만들어 줘요."– 드레스룸 절반 비워 둘게."절반까지는 필요 없어요."– 필요해."저는 아직 파리에서 근무하잖아요."– 당신 자리라는 표시가 있어야 해."옷 몇 벌이면 충분해요."– 절반.도현은 협상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소율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대신 파리 드레스룸도 절반씩 써요. 도현 씨가 한쪽 구석에 출장용 옷만 걸어 두는 건 싫어요."– 이번 주 안에 더 보내."옷장을 채우려고 항공 화물까지 쓰려고요?"– 당신이 옷장을 열 때마다 내 옷이 보여야 하니까."지금도 충분히 보여요."– 더 보여야 해.소율은 말릴 수 없다는 듯 웃었다.두 사람은 욕실 용품과 실내화, 충전기처럼 매번 가방에 넣었다 뺐다 하던 물건도 양쪽 집에 따로 두기로 했다. 파리에는 이미 소율이 쓰는 머그잔 옆에 도현의 검은 잔이 놓여 있었고, 성수동 주방에는 소율이 좋아하는 연한 헤이즐넛 커피를 채워 두기로 했다.주소는 달라도 어느 집에서든 상대를 기다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었다.남은 문제는 침실이었다.도현은 성수동 침실을 비추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는 내가 정할게."왜 침실만 도현 씨가 정해요?"– 주방, 식탁, 서재까지 전부 당신 의견대로 했잖아."같이 정한 거죠."– 그럼 침실도 내 의견을 우선해서 같이 정해.소율은 화면 너머로 현재 침대를 바라봤다."뭘 바꾸고 싶은데요?"– 침대를 더 크게."지금도 충분히 커요."– 당신이 자다가 멀리 가."도현 씨가 가운데까지 오니까 제가 밀리는 거예요."– 그래서 더 큰 게 필요해."침대가 넓어지면 도현 씨도 더 멀리 따라올 것 같은데요."도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침대 양쪽에 조명도 따로 두고, 당신이 책 읽을 수 있게 등받이도 바꿀 거야. 커튼은 완전 차광으로 하고."그건 좋아요."– 침대는?"조건이 있어요."– 말해."침대 크기보다 퇴근 시간부터 지켜요. 아무리 좋은 침대를 놓아도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7화

    "그럼 나란히 놓아요."– 마주 보는 게 집중하기 좋지 않아?"도현 씨 얼굴 보면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그러니까 같은 방향을 보자고요."– 옆에 있으면 더 가까운데."회의 중에 손잡지 않으면 돼요."– 그 조건은 동의 못 해.소율이 웃자 도현의 입가도 느슨해졌다.두 책상 사이에는 작은 수납장을 하나 두기로 했다. 절반은 도현의 서류, 나머지 절반은 소율이 서울에서 사용할 자료를 넣을 공간이었다. 충전기와 필기구도 각각 준비하되, 둘이 함께 쓰는 다이아몬드 만년필은 중앙 서랍에 두자는 의견까지 나왔다.자산관리 담당자는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신규 주택 후보 검토는 전부 중단할까요?도현은 휴대전화 화면 속 소율을 바라봤다.– 당신 결정은 확실해?"네. 성수동 집을 고쳐서 같이 살고 싶어요."– 후회 안 해?"새집에는 우리 기억이 없잖아요."소율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저 집에서 처음 같이 밥을 먹었고, 가짜 커플 사진도 찍었어요. 비 오는 날 도현 씨 셔츠를 입고 밤을 보냈고요. 그때는 둘 다 그 집에서 진짜 연인이 될 줄 몰랐지만, 지금은 알잖아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 없어요. 우리가 시작한 집을 우리답게 바꾸면 돼요."도현은 말없이 거실을 둘러봤다.오래전 소율이 어색하게 서 있던 자리, 카메라를 놓았던 소파 앞, 세탁한 셔츠와 메모를 발견했던 식탁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알겠어.그가 담당자를 향해 말했다.– 신규 주택 검토는 중단해 주세요. 성수동 펜트하우스 내부 공사 범위만 다시 산정해 주십시오.담당자가 바로 물었다.– 예산 기준은 어떻게 잡을까요?도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소율이 즉시 끼어들었다."필요한 만큼의 상한부터 정해 주세요. 집을 한 채 더 살 돈으로 식탁을 사면 안 돼요."담당자는 누구의 말을 최종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몰라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도현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한 팀장 의견을 우선해 주세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6화

    소율은 사진을 끝까지 본 뒤 도현에게 물었다."마음에 들어요?"– 조건은 좋아."살고 싶어요?"도현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소율은 그 침묵에서 답을 읽었다. 숫자와 조건으로는 부족한 점이 없지만, 도현에게도 저 집은 아직 주소와 평면도에 불과했다."설마... 계약부터 한 건 아니죠?"– 안 했어.도현의 대답이 단호하게 돌아왔다.– 후보만 준비했어. 당신이 싫다고 하면 전부 없던 일로 할 생각이었고.소율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예전의 도현이었다면 가장 좋은 집을 먼저 계약한 뒤 소율에게 열쇠부터 건넸을 것이다. 그녀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더 비싸고 더 큰 집을 찾았을지도 몰랐다.지금은 결정을 멈춰 두고 소율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저는 새집 싫어요."– 이유를 말해줘."지금 성수동 집이 좋아요."도현이 거실을 둘러봤다.– 생활감이 없잖아."그럼 만들면 되죠."소율은 노트북 옆에 있던 휴대전화를 들었다."영상통화로 바꿔요. 집 안을 보여줘요."– 지금?"네. 새집 보러 갈 필요 없이 우리가 살 집부터 제대로 볼래요."도현은 담당자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뒤 휴대전화로 통화를 전환했다. 화면이 흔들리다가 성수동 펜트하우스의 거실을 비췄다."우선 창가로 가요."– 왜?"햇빛 확인하려고요."도현은 순순히 창가로 걸어갔다. 서울의 오후 햇빛이 통유리창을 통과해 거실 바닥 위로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저기 작은 식탁을 놓으면 좋겠어요."– 지금 식탁이 있는데?카메라가 8명이 앉아도 넉넉한 긴 식탁을 비췄다. 도현이 혼자 살 때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식사보다 서류를 펼쳐 놓는 날이 더 많았다."저건 회의용 같아요. 아침에 둘이 마주 앉으면 거리가 너무 멀어요."– 내 옆에 앉으면 되잖아."그러면 작은 식탁이면 더 가깝죠."도현은 반박하지 못했다.소율은 창가를 다시 보여 달라고 했다. 햇빛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를 확인한 뒤 2명이 앉을 수 있는 둥근 식탁을 놓자고 제안했다. 도현은 바로 자산관리 담당자에게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5화

    [파리 센강 프러포즈로부터 약 4개월 2주 후, 결혼식 약 6주 전]서울 시각 일요일 오후 3시.한소율은 파리 펜트하우스 거실에서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화면 속 차도현은 서울 성수동 펜트하우스의 긴 식탁 끝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부동산 자산관리 담당자가 두꺼운 서류철 4개를 가지런히 펼쳐 놓고 있었다.서류 표지에는 서울의 최고급 단독주택과 펜트하우스 주소가 적혀 있었다."이게 다 뭐예요?"소율이 묻자 도현은 첫 번째 서류철을 카메라 앞으로 밀었다.– 서울 신혼집 후보."우리 서울 집은 지금 도현 씨가 앉아 있는 곳이잖아요."– 혼자 살 때 고른 집이야. 당신하고 같이 살기에는 부족한 게 많아.소율은 화면 너머로 익숙한 거실을 살폈다.무채색 소파와 낮은 테이블, 벽면을 채운 책장, 장식 하나 없이 정돈된 넓은 공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사람의 체온보다 모델하우스의 냉기가 먼저 느껴지던 집이었다.계약 연애 4일 차, 도현은 저 거실에 삼각대를 세우고 다정한 연인의 집 데이트를 연출하려 했다. 배달 음식까지 반듯하게 옮겨 담은 남자가 웃는 표정은 준비하지 못해 몇 번이나 사진을 다시 찍었다.폭우가 내리던 밤에는 젖은 소율에게 자신의 셔츠를 내줬고, 침실을 양보한 채 거실 소파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소율은 세탁한 셔츠와 짧은 메모만 식탁에 남기고 먼저 출근했다.차갑고 완벽하던 집에는 이미 두 사람의 서툰 시작이 남아 있었다."어떤 점이 부족한데요?"– 우선 주방이 좁아."도현 씨 혼자 살 때는 넓다고 했잖아요."– 혼자 쓸 때 기준이지."파리에서는 둘이 잘 쓰고 있는데요."– 당신이 요리할 때 내가 옆에 서면 자꾸 비키라고 하잖아."칼 쓰는 사람 옆에서 계속 집어 먹으니까 그렇죠."– 그걸 막으려면 조리대가 더 넓어야 해.도현은 진지했다.소율은 웃음을 삼키며 물었다."그 이유로 집을 새로 사려고요?"– 그것만은 아니야. 당신 물건을 둘 공간도 부족하고, 서재 책상도 하나뿐이야.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4화

    그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쇼룸 책임자였다."그러면 예정된 하객 규모에 맞춰 드레스 동선도 그대로 준비하겠습니다."도현이 낮게 덧붙였다."대신 신부 대기실 경호는 늘려 주십시오.""도현 씨.""선택은 존중했어. 협상은 별개야.""협상도 끝났어요.""그건 아직 합의 안 했는데."이 회장이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신랑 출입 금지에 이어 신랑 발언 금지도 붙이기 전에 조용히 앉아 있어라."최종 피팅은 11시 40분에 끝났다.소율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피팅룸에서 나왔다. 도현은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었고, 이번에는 화면도 정상적으로 넘기고 있었다.그는 소율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끝났어?""네. 이제 회장님과 점심 먹고 회사로 가면 돼요.""드레스는 확정했고?""확정했어요. 결혼식 날까지 변경 없음. 사전 공개도 없음."도현이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이 회장이 먼저 가방을 들었다."나는 먼저 내려가마. 소율아, 10분 뒤에 식당으로 와라.""네, 회장님."회장은 도현을 한 번 바라본 뒤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수행비서도 눈치를 살피다 결재된 태블릿을 챙겨 뒤따랐다.도현은 빈 쇼룸 입구를 확인했다."왜 당신만 남으래?""저만 남으라고 하신 적 없는데요.""10분을 줬잖아.""회장님이 도현 씨한테 주신 시간일 수도 있죠. 드레스 못 본 충격에서 회복하라고요."소율은 태연하게 말한 뒤 복도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지나도 도현이 따라오지 않자 뒤를 돌아봤다."안 와요?"그제야 도현이 움직였다.소율이 멈춘 곳은 공식 피팅룸과 떨어진 작은 쇼룸이었다. 문에는 예약 중이라는 표시가 걸려 있었고, 안쪽 조명은 모두 켜져 있었다."여긴 왜 왔어?""회장님이 준비하신 두 번째 드레스가 있어요. 본식 드레스보다 간소해서 저녁 행사 때 입을지 고민 중이에요.""그것도 결혼식 날까지 못 봐?""이건 보여주려고 데려왔어요."도현의 표정이 달라졌다.소율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

  • 14일간의 계약 연애   183화

    첫 번째 드레스는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묵직했다.직원 3명이 치맛자락을 펼치고 허리선을 맞췄다. 소율은 높은 단상 위에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거울 속에는 어깨선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천과 길게 이어진 스커트가 한꺼번에 담겼다.이 회장은 소율의 뒤에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회장님, 이상한가요?""이상해서 보는 게 아니다."회장은 거울 속 소율과 눈을 맞췄다."잘 골랐구나. 네가 드레스를 입은 건데, 드레스보다 네 얼굴이 먼저 보인다."소율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도현 씨는 드레스만 볼 수도 있어요. 가격이 얼마인지, 움직일 때 위험한 부분은 없는지부터 확인할 사람이잖아요.""그 녀석이 오늘 가격을 물으면 내가 성북동 결혼식 비용까지 전부 청구할 게다.""그러면 결혼식을 비공개로 바꾸자고 할지도 몰라요.""설마 거기까지 가겠느냐."커튼 밖에서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합니까?"회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커튼을 바라봤다."아직 7분밖에 안 지났다.""안에서 제 이름이 들렸습니다.""네 흉을 보고 있었다. 들어올 명분으로 쓰지 마라.""소율아."이번에는 부르는 대상이 바뀌었다."왜요?""불편한 데 없어?""네, 괜찮아요.""정말 괜찮아?""도현 씨가 밖에서 계속 말 거는 것만 빼면요."커튼 너머가 조용해졌다.소율은 거울을 보다가 문득 장난기가 생겼다. 결혼식 날까지 온전한 모습을 숨기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기다리는 도현의 표정도 궁금했다.그녀는 직원에게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잠시 뒤, 커튼 아래로 하얀 드레스 자락이 천천히 밀려 나갔다. 자수와 작은 비즈가 조명 아래서 잔잔하게 반짝였다.바깥에서 움직이던 기척이 멎었다."...한소율.""왜요?""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자락만 보여주는 거.""커튼이 조금 짧은가 봐요."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소율은 드레스 자락을 거둬들였다가 몇 초 뒤 다시 내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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