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같은 날 오전 10시 20분, 해담지사 포장실 앞 복도.소율이 생산자와 통화를 마치자 권 지사장이 다가왔다. 손에는 종이컵 두 개가 들려 있었다."아이고- 한 차장,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자, 이거라도 마셔요.""감사합니다."소율이 컵을 받자 그가 옆에 섰다. 포장실 안에서는 직원들이 오늘 보낼 물량을 다시 나누고 있었다."어젯밤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물건을 다 옮겼으니 큰불은 끈 셈이고. 이런 날은 좀 쉬어야지요.""오후에 확인할 게 조금 남아서요.""흠... 서울에 다녀오는 건 어떻습니까? 여기서는 잠깐 눈 붙여 봐야 직원들이 계속 찾을 텐데. 하루 이틀 비우셔도 저희가 알아서 합니다. 허허허-"권 지사장이 부드럽게 웃었다."차 과장도 같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두 분 다 밤새셨으니..."소율은 컵의 온기를 손바닥으로 받았다. 현장에서는 자료를 보존하겠다고 한 참이었다. 바로 서울로 자리를 비우라는 권유가 곱게 들리지는 않았다.그녀도 작게 웃으며 포장실을 가리켰다."직원분들도 똑같이 밤새셨어요. 제가 오늘 서울로 가면, 여기 일은 이제 상관없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잖아요?""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그냥, 선의의 뜻으로 쉬라는 얘기였습니다.""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급한 확인부터 마치고 직원분들도 교대로 쉴 수 있게 하겠습니다. 저도 그때 쉬고요."소율은 포장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차 과장님께 부탁드린 일도 있어서요. 오늘은 둘 다 여기 있어야겠네요."권 지사장은 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소율이 먼저 인사하고 들어가자 복도에 남은 그의 웃음이 천천히 가셨다.포장실 문 옆에서 직원이 작은 상자를 들고 소율을 불렀다."한 차장님, 이건 확인 대기 품목으로 빼 둘까요?""네. 출고 상자하고 떨어진 곳에 놓아 주세요. 기다리는 거래처에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직원이 상자를 다른 선반으로 옮겼다. 소율도 앞치마를 받아 걸치고 포장대로 다가갔다.같은 날 오전 11
같은 날 오전 8시 15분, 관사 2층 복도.201호 문을 연 소율 앞에 윤해나가 서 있었다. 출근 가방을 멘 해나는 벽에 기대 하품하다가 급히 입을 가렸다."하아으어어얽! 죄송해요. 눈은 떴는데 정신이 아직 안 왔어요.""저도 그래요. 윤 대리님, 조금 늦게 나오셔도 됐는데.""그럴까 했는데, 이걸 먼저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해나가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려는 순간 202호 문이 열렸다. 도현이 뚜껑을 닫은 보온컵을 들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보고 멈췄다.아침 일찍 자기 방으로 건너가 씻고 출근 준비까지 마친 참이었다. 반지도 이미 목걸이에 걸어 둔 상태였다."좋은 아침입니다."그의 인사에 소율이 컵을 봤다."따뜻한 물 드셨어요?""네. 한 차장님도 손은 좀 괜찮으십니까?"소율이 손가락을 폈다가 가볍게 쥐어 보였다."이제 괜찮아요. 어젯밤에 잘 쉬었거든요."마주 선 두 사람의 입가가 함께 풀렸다. 해나는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밤새 같이 뛰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잘 잤는지만 궁금한 모양이었다."저는요?"도현이 그녀를 봤다."윤 대리님도 잘 주무셨습니까?""네. 그래도 10분만 더 자도 된다고 해 주시면 더 좋겠네요."해나가 눈을 비비자 소율이 웃으며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오늘 급하지 않은 일은 미뤄요. 우선 아침부터 먹고 가요."해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좋아요. 열쇠표 관련 기록인데, 밥 먹고 보여 드릴게요. 일 시작하면 또 끼니 놓칠 것 같아요."같은 날 오전 9시 5분, 해담지사 소형 회의실.해나가 문을 닫고 종이 두 장을 테이블에 나란히 놓았다. 한 장은 비품 분실 기록, 다른 한 장은 열쇠 재제작 요청서였다."어제 주운 표, 이거 맞아요. 지사장실 예비 열쇠에 달려 있던 거예요."작은 투명 봉투 안에는 한쪽 고리가 끊어진 열쇠표가 들어 있었다. 소율이 밤에 사진을 남긴 뒤 따로 보관한 것이었다.해나가 분실 기록의 날짜를 손끝으로 짚었다.
손가락을 천천히 펴 보고 손바닥까지 감쌌다. 창고에서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이제 좀 괜찮아?""네. 아까보다는요.""아까보다 말고, 아직 많이 차가운데."도현은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소율이 그의 손가락을 만지다가 눈썹을 모았다."도현 씨 손도 차갑네요.""나는 괜찮아.""저도 그 말 했어요. 창고 앞에서요."남편이 대꾸하지 못하자 소율이 담요를 더 당겨 그의 무릎까지 덮었다."그때 제 말 안 믿으셨죠? 저도 안 믿을래요. 이쪽으로 와요."도현이 가까이 붙어 앉았다. 소율은 맞잡은 손을 담요 안에 넣고 그의 어깨에 기댔다. 두 사람이 함께 덮으니 담요 끝이 조금 모자라, 그가 아내 쪽으로 몸을 더 돌렸다."발도 넣어."소율이 발을 소파 위로 올리자 도현이 담요 자락을 눌러 줬다. 그제야 둘 다 테이블의 물건에서 눈을 뗐다.째깍. 째깍.벽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낮부터 이어졌던 전화벨도, 경보음도 없었다.째깍. 째깍. 째깍.둘은 가만히 서로를 느꼈고, 귀에 들어오는 소음을 한동안 받아들였다.소율은 남편의 팔에 이마를 가만히 붙이며 말을 했다."물건 다 옮겨서 다행이에요.""응.""마지막 차에서 연락 올 때까지, 혹시 수량 안 맞는다고 할까 봐 계속..."소율이 입술을 꾹 눌렀다. 아까는 숫자를 한 번 더 읽는 게 먼저였는데, 말을 꺼내고 나니 비로소 숨이 길어졌다.도현이 맞잡은 손을 살짝 눌러 줬다."맞았잖아. 전부 들어갔어.""네. 우리 다 했어요."그 말을 하고서야 소율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났다. 도현도 아내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 줬다."수고했어.""도현 씨도요."소율이 고개를 들었다. 남편은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왜요? 아직 추워 보여요?""문 닫혔을 때."도현이 잠깐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당신이 선반 뒤에 있어서 안 보였잖아. 몇 초였는데, 그게 싫더라."소율도 웃음을 거뒀다. 자동문이 쿵 닫히고, 남편이 이름을 불렀던 순간이
다음 날 수요일 새벽 0시 8분, 온담 협력 냉동창고 앞.냉동창고 출입문 옆의 온도 표시판에 영하 20도가 찍혀 있었다. 그 앞 인수대에서 한소율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소율이 인수표에 마지막 확인 표시를 하다가 펜 끝을 길게 끌었다. 손가락에 힘을 줬는데도 종이 위에서 선이 비뚤어졌다.차도현의 시선이 그 손에 꽂혔다."한 차장님, 잠깐만요."소율이 고개를 들기도 전에 그가 주머니에서 마른 작업 장갑을 꺼냈다. 현장을 떠날 때 챙겨 온 자기 예비 장갑이었다."장갑이 젖었습니다. 이걸로 바꾸시겠습니까?""곧 끝나요. 이것만..."펜을 다시 쥔 손끝이 잘게 떨렸다. 소율도 이번에는 말을 멈췄다.도현은 펜을 빼앗는 대신 책상 빈 곳에 장갑을 내려놓았다. 옆에는 포장을 뜯은 핫팩도 놓였다."손부터... 녹이시면 좋겠습니다."한쪽에 서 있던 창고 담당자가 의자를 당겨 줬다."어휴, 장갑이 흠뻑 젖었네. 여기 앉으세요. 서류는 제가 앞으로 가져올게요."소율은 짧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앉았다. 젖은 장갑을 벗으려니 손가락 끝에 안감이 달라붙었다. 도현의 손이 움찔했지만, 소율은 스스로 장갑을 빼 책상 위에 놓았다.도현은 손을 거두고 인수표를 제 쪽으로 돌렸다."여기 받은 물량부터 확인하겠습니다."그가 상품 이름을 읽자 담당자가 입고 수량과 보관 위치를 답했다. 소율은 핫팩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하나씩 대조했다. 다른 보관처에서 온 확인 사진도 이미 받아 둔 상태였다.186상자 전부 냉동 보관에 들어갔다. 상품별 상태를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 출고를 막아 둔 것도 맞았다."네. 인계는 여기까지 할게요. 아침에 품목별 확인 시간만 다시 잡아 주세요. 늦은 시간에 받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온담 쪽에서도 연락 왔어요. 확인하실 때 저희 담당자 붙여 드릴게요."소율이 인수표를 내려놓자 도현도 그제야 재고 목록을 접었다.해나는 창고 밖에서 귀가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오자 그녀가 문을 잡아 줬다."확인 다 됐죠?
같은 날 밤 11시 12분, 해담지사 하역장.마지막 차량에서 도착 확인이 왔다.186상자.반출 수량과 임시 보관처에서 받은 수량이 모두 맞았다. 상태 확인이 필요한 물건은 따로 표시해 뒀고, 적합 여부가 확인되기 전에는 출고하지 않기로 했다.시한까지 12분이 남아 있었다. 소율은 재고표의 마지막 빈칸에 확인 표시를 했다. 펜을 놓으려니 손가락이 뻣뻣해서 쉽게 펴지지 않았다.해나는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고 소율을 봤다."다 받으셨대요. 냉동고 안에 넣은 것까지 확인했어요. 차장님, 다 옮겼어요!"마지막 말에서 해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금 전까지 전화를 붙들고 쏘아붙이던 사람이 이제는 웃을 것처럼 입꼬리를 올렸다.하역장 한쪽에서 직원이 주저앉듯 빈 팔레트에 앉았다."살았다... 진짜 다 버리는 줄 알았는데."옆에 있던 생산자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그러게 누가 먼저 버린대? 사람 기운 빠지게."직원은 웃지도 못하고 권 지사장 쪽을 슬쩍 봤다. 생산자도 입을 다문 뒤 헛기침했다.소율도 두 사람을 보며 작게 웃었다. 흠뻑 젖은 장갑을 무릎에 올려놓고서야 직원도 따라 웃었다. 더는 누구를 탓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은 얼굴들이었다.준호가 장갑을 벗으며 다가왔다."차는 보관처에 대기시키겠습니다. 옮긴 물건 다시 확인할 때도 필요하실 테니까요.""감사합니다. 물건 상태는 보관처 담당자와 제가 다시 확인할게요. 기사님들은 교대해서 쉬실 수 있게 부탁드려요.""한 차장님도 쉬어요. 아까부터 손이 굳었잖아요."소율이 장갑 낀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마지막 확인만 마칠게요."그때 도현이 기록을 담은 휴대전화를 들고 왔다."한 차장님, 확인된 내용이 있습니다."소율은 도현과 함께 하역장 구석으로 이동했다. 해나가 목적지 목록을 정리하며 곁에 섰다.도현이 제어 기록과 영상 목록을 나란히 띄웠다."냉각기가 멈춘 시간대만 CCTV 영상이 지워져 있습니다. 전산 담당자가 삭제 기록도 확인했습니다."그가 삭제된 영상의 시간대를 짚고 냉각
기사가 임시 냉각 장비를 연결하자 창고 안으로 다시 찬바람이 들어갔다. 온도가 더 오르는 걸 막을 장비였다. 이미 확보한 보관처로 물건을 옮기는 작업은 계속했다.수협에 먼저 보낸 차에서 입고 완료 연락이 왔다. 이어 식품공장 담당자도 물량을 받았다고 답했다.소율은 도착 확인을 받은 수량에 줄을 그었다. 그사이 직원들이 다음 물량을 차에 실었다. 마지막으로 안쪽 선반의 16상자만 꺼내면 됐다.같은 날 밤 10시 47분, 냉동창고 안쪽 보관실.도현과 소율은 하역장에서 나눠 준 방한 장갑을 끼고 창고에 들어갔다. 바깥 출입문을 지나자 작은 대기 공간이 나왔고, 그 안쪽에 보관실로 통하는 자동문이 있었다.도현은 자동문 바로 밖에 운반대 두 개를 세웠다. 소율은 안쪽 선반의 상품 번호를 읽었다."위쪽 8상자는 이 운반대에 실어 주세요. 아래쪽 8상자는 옆에 놓고요. 품목이 달라요."소율이 번호를 짚으면 도현이 상자를 옮겼다. 차가운 포장을 안아 나르는 사이 코트와 셔츠 소매에 물기가 묻었다.밖에서 냉동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도현은 마지막 상자를 운반대 위에 올린 뒤 소율이 있는 안쪽으로 돌아왔다. 소율은 비어 있는 선반 아래까지 조명을 비췄다. 작은 상자가 뒤에 남으면 목록상으로만 출고되고 실제 물건은 놓칠 수 있었다.그때 자동문이 움직였다.드르륵. 쿵!열려 있던 문이 닫히자 도현이 얼른 작동 버튼을 눌렀다. 문은 덜컥거리기만 할 뿐 열리지 않았다.선반 뒤로 들어간 소율이 잠깐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현은 문에서 고개를 돌렸다."소율아, 잠깐만. 문이 안 움직여."낮게 부른 목소리에 소율이 선반 옆으로 나왔다. 손전등 불빛이 문 쪽으로 돌아왔다."밖에 불러 볼까요?""내가 부를게. 거기서 잠깐만 기다려."쿵쿵!도현이 장갑 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밖에 있는 직원에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안쪽 문이 멈췄습니다. 운반대는 그대로 두시고, 설비 기사님께 알려 주십시오.""네! 기사님, 이쪽 문 좀 봐 주세요!"직원이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