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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돌아가야 하는데

Author: 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1 04:12:25

유진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수아의 온몸에 흉하게 들어차 있던 멍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원래의 하얀 피부를 되찾았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팔다리의 깁스를 완전히 푸는 날이었다.

“이제 거의 다 나았네요.”

의사의 말에 수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요?”

“네. 뼈도 잘 붙었고 상태도 좋습니다. 오늘은 깁스 풀어도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드디어였다.

사고 이후 몇 주 동안 자신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깁스를 오늘 드디어 풀 수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유진도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요. 얼마나 답답했어요.”

“그러게요.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잠시 후 깁스를 제거하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수아는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봤다.

“아…….”

생각보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팔도 다리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어색했다.

의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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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하그룹 본사, 38층 전략 회의실. 긴 테이블 위로 수십 장의 보고서와 태블릿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찬란한 서울의 도심 전경을 등진 채, 차도윤은 서류 검토에 몰두하고 있었다. 핏줄이 살짝 돋아난 길쭉한 손가락이 만년필을 쥐고 움직일 때마다, 완벽하게 다려진 짙은 차콜 그레이 수트의 소매 끝에서 은은한 카리스마가 흘러넘쳤다. 다크 브라운 톤의 단정한 포마드 헤어와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결코 흐트러짐 없는 서늘한 턱선은 언제나처럼 빈틈없는 냉철한 경영자 그 자체였다. 전면 스크린에는 유럽 현지 법인의 분기 실적과 신규 사업 투자안이 떠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었지만 피곤한 기색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집중력이 좋아 보였다. “영국 법인 매출 성장률이 예상치보다 3.8퍼센트 낮습니다.” 한 임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윤의 손이 멈췄다. “이유는.” “환율 문제도 있었고 현지 유통 채널 확대가 계획보다 늦어졌습니다.” “환율은 세 달 전부터 예상됐습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 그뿐이었지만 회의실의 공기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예상 가능한 변수를 실패 이유로 보고하지 마세요.” “……네.” “유통 채널 확대가 늦어진 진짜 이유를 다시 분석해서 오늘 오후까지 올리십시오.” “알겠습니다.” 도윤은 다시 자료를 넘겼다. “다음.”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감정은 없었다. 쓸데없는 말도 없었다. 문제가 있으면 정확히 짚었고, 답이 부족하면 다시 가져오라고 했다. 태하그룹 임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차도윤의 모습이었다. 빈틈이 없는 남자. 결과로 평가하며, 감정을 업무에 끌어들이지 않는 사람.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민철은 회의실 한쪽에서 도윤을 지켜보다 아주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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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그리고 다시 5년   50화.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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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색 세단이 청담동 펜트하우스 지하 주차장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리고 내린 도윤의 걸음걸이는 다급하면서도 묵직했다. 1주일간의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지만,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비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펜트하우스로 올라온 도윤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은 고요했다. 거실을 가로질러 안으로 향하려던 찰나, 복도 끝 욕실 쪽에서 가볍고 물기 젖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윤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방금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수아가 서 있었다. 수아는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젖은 채 어깨를 적시고 있는 긴 머리칼을 타올로 톡톡 두드리는 중이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은 방금 더운 김을 쐬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었고, 목 늘어난 편안한 홈웨어 차림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가녀린 체구와 청초한 매력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도윤의 걸음이 그 자리에 뚝 멎었다. 1주일간 악물고 참아왔던 이성의 둑이, 수아의 물기에 젖은 맨 얼굴과 가녀린 모습 앞에 무참히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수아 역시 멍하니 현관 쪽에 서 있는 도윤을 발견하고는 동작을 멈추었다. 2주 넘게 보지 못했던 얼굴, 꿈에서조차 지독하게 그리워했던 그 서늘하고도 짙은 눈빛이 지금 제 앞에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시간에 홀린 듯,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팽팽한 공기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 "……."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펜트하우스의 복도를 깬 것은 주방 쪽에서 들려온 유진의 목소리였다. “도련님?” 유진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갈랐다. 도윤과 수아가 동시에 정신을 차렸다. 주방에서 나온 유진이 반갑게 웃었다. “잘 다녀오셨어요?” “네.” 도윤이 짧게 대답했다. “저녁 식사 준비 다 했어요. 씻고 나오세요.” “수아 씨도 같이 식사해요.” “알겠어요.” 도윤은 다시

  • 3년 그리고 다시 5년   48화. 돌아가고 싶은 곳

    인천국제공항. 비즈니스 제트기 터미널을 빠져나온 도윤은 곧바로 대기 중인 검은색 세단 뒷좌석에 올라탔다. 일주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친 도윤이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긴 비행에도 흐트러진 모습은 없었다. 짙은 색 정장 위로 코트를 걸친 채 빠르게 걷는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조차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뒤따르던 민철이 태블릿을 확인했다. “본사로 갈까요? 전무님” “본사 도착하면 바로 전략기획실에서 유럽 출장 결과 보고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지에서 수정된 계약서는 법무팀에서...” “아니, 집으로 간다.” 민철의 말이 멈췄다. “네?” 도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집으로 가.” 민철이 순간 도윤을 바라봤다. 잘못 들었나 싶었다. 민철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앞 차량에 전달하겠습니다.”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조금 놀랐다. 차도윤이 해외 출장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간다. 민철이 그를 보좌한 이후 거의 없었던 일이었다. 예전의 도윤이라면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하고 돌아왔어도 회사부터 들렀다. 출장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 밀린 결재를 처리하고, 다음 일정을 점검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집은 도윤에게 쉬는 곳이라기보다 잠을 자는 장소에 가까웠다. 도윤은 뒷좌석에 기대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런던을 오가는 일정이 빡빡했다. 하루에도 몇 개씩 이어지는 회의와 만찬. 현지 법인 보고. 계약 검토. 수백억이 오가는 협상. 그런데도 도윤은 단 한 번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일은 일이었다. 감정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도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서울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의 머릿속에 전혀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이수아. 도윤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또였다. 유럽에 있는 일주일 동안에도 그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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