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73화. 나의 아내 이주연

Author: 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8 18:01:19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주연이 돌아선 뒤에도 재혁은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뺨을 감싸던 따뜻한 손길.

그리고 숨결처럼 낮게 이어졌던 마지막 말.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그 짧은 문장은 그날 밤 내내 재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재혁은 코트를 벗어 소파에 걸쳐 놓은 채 곧장 서재로 향했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에는 창밖에서 스며든 희미한 도시의 불빛만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밀린 서류를 검토하거나 잠들기 전 운동으로 잡념을 떨쳐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아도 주연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의 과거를 듣고 애써 눈물을 참던 모습.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눈빛.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의 뺨을 감싸던 손길까지.

재혁은 길게 숨을 내쉬며 손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24화. 그의 질투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재혁의 차는 종로의 익숙한 길을 벗어나 청담동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 한 곳은 민성과도 가끔 들르곤 했던, 청담동의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칵테일 바였다. 가게 안은 은은한 조명과 함께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낮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에 나란히 앉은 재혁은 주연에게 자연스럽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었다. 낮은 조명.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 음악. 긴 바 테이블 뒤에는 수많은 술병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직원이 재혁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대표님.” “그러네요.” 두 사람은 조금 안쪽의 조용한 자리로 안내받았다. 재혁이 메뉴판을 주연에게 건넸다. “칵테일 괜찮습니까?” “네.” 주연은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다 웃었다. “이름이 너무 어려운데요.” “그럼 제가 골라드릴까요?” “오늘은 계속 재혁 씨가 골라주시네요.” “싫습니까?” 주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좋아요.” 재혁은 가볍고 달콤한 칵테일 하나와 자신의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잔이 놓였다. 주연은 한 모금 맛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재혁 씨는 어떻게 이런 것도 잘 알아요?” “민성이 덕분입니다.” “역시.”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금 전 미선이 차려준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해 행복나무 아이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민우 요즘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 주연이 말했다. “재혁 씨가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회사 구경시켜준다고 했잖아요.” “기억하고 있습니까?” “민우가 매번 이야기해요.” 재혁이 웃었다. “그럼 약속은 꼭 지켜야겠네요.” “아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23화. 부정하지 않는 마음

    지난밤, 자신을 밀어내던 주연의 낯선 눈빛과 당혹스러웠던 표정이 재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자신을 밀어낸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재혁은 섣불리 다그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강제로 캐묻기보다,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편안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였다. 재혁은 휴대전화를 들어 주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주연은 지난밤의 갑작스러운 스킨십과 도망치듯 자리를 떴던 일 때문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고,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하지만 재혁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부러 장난기 섞인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재혁이 차를 몰고 향한 곳은 지난번에 두 사람이 함께 갔던 허름하지만 정겨운 김치찌개 집이었다. 핸들을 쥐고 운전하는 재혁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곳의 주인인 미선에게 이번에는 당당하게 주연을 자신의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기 때문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미선은 두 사람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 지난번에 재혁이랑 같이 왔던 아가씨네!” “주연씨라고 했죠?” 미선은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내려놓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주연도 반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지난번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다시 왔어요.” 미선은 재혁과 주연을 번갈아 바라보다 입가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식탁 위에는 정갈한 한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치찌개.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윤기가 도는 잡채. 상큼한 샐러드와 작은 밑반찬까지. 주연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맛있어 보여요!” 주연이 미선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미선은 재혁이 왜 아가씨에게 저렇게 따뜻한 눈빛인지 알 수 있었다. “사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22화. 아버지가 아는 방식

    경환이 탄 검은 세단이 조용한 도로를 따라 본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이경환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시트에 기대고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운전기사는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서울의 불빛이 길게 흘러갔다. 경환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아들 민성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차갑고 무심한 표정. 그리고 자신에게 던졌던 한마디. “아버지가 제 일에 관심을 가지실 줄 몰랐습니다.” 경환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 민성.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존재였다. 사업은 마음먹은 대로 키울 수 있었다. 돈이 필요하면 벌면 됐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됐다. 하지만 아들만큼은 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민성의 어머니는 사랑해서 만난 여자가 아니었다. 민성은 그가 과거 직접 관리하던 유흥업소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끝에 생긴 아이였다. 돈을 노린 민성 엄마의 치밀한 계획 속에 덜컥 들어선 생명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직후 곧바로 경환에게 찾아왔고, 거액의 돈을 챙겨서는 아이를 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갓난쟁이였던 민성을 품에 안았을 때, 경환은 어떻게 아기를 어르고 달래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경환 자신 역시 차가운 부모의 그늘 아래서 그렇게 자랐기에, 아들에게 건넬 수 있는 아버지의 역할이란 세상에 돈을 쥐어주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아들이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모두 사주었다. 경환은 그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경환이 탄 차가 차가 커다란 교차로를 지나갔다. 경환은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며 오래전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사채업을 하다 보면 세상에서 만나지 못할 사람이 없었다. 돈이 급하다며 울고불고 매달리는 사람. 빌린 돈을 갚지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21화. 아버지라는 이름의 타인

    늦은 저녁. 지혜에게 거절당한 민성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의 걸음이 멈췄다. 낯선 남자의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낯설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낯설어진 사람의 것이었다. 민성은 거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 이경환이었다. 민성의 표정이 굳었다. “오셨습니까.” 부자 사이의 인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했다. 이경환은 아들을 바라보다 한쪽 팔에 감긴 깁스를 발견하자 얼굴을 굳혔다. “사고가 났다면서.” 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재킷을 벗었다.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그게 중요해?” 이경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교통사고가 나서 며칠이나 병원에 있었다면서 왜 나한테 연락 한 번 안 해?” 민성이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제 일에 관심을 가지실 줄 몰랐습니다.” 이경환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틀린 말입니까?” “민성아.” “아버지는 제가 어디서 뭘 하든 별로 관심 없으셨잖습니까.” 민성의 말투는 오히려 차분했다. 그래서 더 차갑게 들렸다. 이경환은 아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네 아버지야.” 그 말에 민성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셨습니까?”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쌓인 서운함이 들어 있었다. 이경환의 얼굴이 굳었다. 민성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듯 소파에 앉았다. “사고는 제 부주의였습니다.”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경환은 그런 아들이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 혀를 찼다. “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이경환이 말했다. “너도 이제 그만 정신 차려.” 민성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20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복지센터 건너편 도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한 시간 가까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민성은 창밖으로 복지센터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팔에는 아직 단단한 깁스가 감겨 있었다 민성은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사과의 말을 연습했다. ‘그날은 내가 잘못했습니다.’ 너무 딱딱했다. ‘당신을 무시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변명처럼 들렸다.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 말을 지혜가 믿어줄까. 민성은 답답한 듯 머리를 좌석에 기대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대는 게 아니었어. 미안하다고, 내 섣부른 행동이 얼마나 경솔했는지 진심으로 사과하자. 마음을 다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머릿속으로는 백 번도 더 완벽하고 진중한 사과 문장을 완성했다. 하지만 막상 복지센터 유리문이 열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지혜의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 민성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고 입술은 바짝 말라붙었다. 준비했던 말들은 증발해 버린 것처럼 단 한 마디도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민성은 옆자리에 놓인 작은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오는 길에 꽃집 앞을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산 것이었다. 그런데 사고 나서 보니 이것마저 우스웠다. ‘이런 거 받는다고 풀릴 여자가 아닌데.’ 그는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때 복지센터의 자동문이 열렸다. 지혜는 센터 앞을 서성이는 민성을 발견하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빛에는 놀람 대신 차갑고 단호한 경계심

  • 3년의 계약, 당신을 모른채 사랑에 빠지다.   119화. 사랑해서 더 아픈 마음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주연은 불도 켜지 않은 채 한동안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재혁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재혁이 철저하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둘 때, 그녀는 어떻게든 그 벽을 허물기 위해 먼저 다가가고 마음을 열려고 부단히 애를 썼었다. 하지만 막상 재혁이 그 선을 넘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주연이 느낀 것은 기쁨보다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싶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었다. 아직도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싫어서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재혁이 자신에게 먼저 다가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주연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조금 전 재혁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자신에게 다가오던 모습. 그리고 자신이 그를 밀어낸 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던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재혁에게 지금의 자신은 누구일까.’ 행복나무에서 만난 여자.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잠시 한국으로 돌아온 여자.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아닌 여자. 주연의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아내를 두고도 마음대로 선을 넘으려 하는 그의 모습은, 주연에게 깊은 자괴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 재혁을 사랑하게 되었기에,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기에 역설적으로 그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아팠다. 만약 지금처럼 마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