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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or: 크레용 소원
차도윤은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왔으면 노크할 줄도 몰라?”

서희주는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붓한 세 식구의 단란한 시간을 방해할까 봐 그랬지.”

차도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말조심해. 설아랑 난 하늘에 맹세코 결백하니까.”

서희주가 피식 웃으며 쏘아붙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다.”

“서희주, 너 왜 이렇게 상스럽게 변했어?”

서희주는 몸을 돌려 차도윤을 똑바로 응시했다.

입가엔 조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당신이 알던 서희주는 이제 없어.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고, 바보같이 한 남자만 바라보면서 다 이해해 주던 그 여자는 방금 죽었다고.”

서슬 퍼런 눈빛을 마주한 순간, 차도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침대 쪽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주 언니,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저랑 오빠,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서희주의 시선이 윤설아를 향했다.

아이를 낳은 산모였음에도 그녀는 화장한 상태였다.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은 무척이나 청순하고 무해해 보였다.

하얀 실크 잠옷 차림의 여자는 볼륨감 넘치는 몸매와 대조적으로 허리는 한 줌만 했고, 이른바 ‘청순 섹시한’ 분위기를 풍겼다.

윤설아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억울함을 해소하려는 듯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언니, 저 귀국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의지할 사람도, 친구도 없어서 도윤 오빠한테 도움을 청한 것뿐이에요. 언니가 애 아빠를 오빠로 오해하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리고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정 기분 나쁘시다면, 지금 당장 도윤 오빠를 돌려드릴게요.”

서희주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진짜 기가 차서. 돌려준다고? 애초에 윤설아 씨 사람이라도 됐던 것처럼 말하네요?”

이내 윤설아에게 바짝 다가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의지할 데가 없다고? 윤씨 가문 장녀 대접받고 살 때는 언제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거기서 내쫓기진 않았잖아요.”

“백번 양보해서 그 집이 싫다 쳐요. 그럼 친엄마는 어쩌고? 여기서 5km도 안 되는 거리에 살고 계시던데, 애를 낳고 친정엄마 대신 남의 남편은 왜 찾아요? 입으로는 가정 파탄 낼 마음이 없다면서, 어떻게 모성애가 담긴 숭고한 행위를 다른 남자나 꼬시는 저질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죠?”

“본처 앞에서 옷 헤치고 남의 남편한테 가슴 드러낸 거, 과연 실수인지 고의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 좀 해봐요. 애 핑계 대면서 끼 부리고, 연약함을 무기 삼아 남자 뺏으려는 그 더러운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사람 바보로 보지 마요.”

오후에 이미 로펌에서 윤설아의 뒷조사를 마친 상태였기에 서희주의 일침은 거침이 없었다.

윤설아는 예상치 못한 폭언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더니, 잠시 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곧장 차도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빠, 희주 언니랑 같이 돌아가세요. 이제 다시는 여기 오지 마세요. 저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으니까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윤설아의 가련한 모습에 차도윤은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아이를 안고 윤설아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다독였다.

“쟤 말은 신경 쓰지 마. 넌 그냥 여기서 편하게 지내면 돼. 내가 너희 모자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킬 거야.”

말을 마치고는 아이를 건네주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서희주를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한참이나 걸어간 뒤에야 차도윤은 거칠게 팔을 뿌리쳤다.

“너 오늘 미쳤어? 왜 이래 정말! 방금 네 꼴 좀 봐. 시장바닥에서 싸우는 아낙네랑 다를 게 뭐야?”

서희주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는 비웃음이 역력했다.

“그거 몇 마디 해줬다고 마음이 아프냐?”

“말이 너무 심하잖아. 설아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알기나 해? 6년 전에 윤씨 가문 친딸이 돌아오자마자 걔는 그대로 버려졌어. 유학 보내준답시고 등 떠밀어놓고 생활비 한 푼 못 받았어. 친엄마란 사람은 도박에 빠져서 딸한테 빌붙기 바쁜데, 설아는 그 고생을 다 견디고 독하게 공부해서 윈스턴 대학교 마이크로전자공학 석사 학위까지 따낸 애야.”

“솔직히 말할게. 설아 이번에 귀국한 거, 내가 거액 들여서 설도 테크 기술팀 책임자로 스카우트해 왔어. 산후조리 끝나면 바로 출근해.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더는 몰상식하게 굴지 마. 설아는 너랑 달라.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질투나 하는 수준 낮은 여자 아니라고. 걔가 그런 수작을 부린다고? 너보다 훨씬 순수하고 유능하거든? 앞으로 포토닉 칩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거야.”

한 마디 한 마디가 칼날이 되어 서희주의 심장을 도려냈고, 그 자리는 피와 살이 뭉개져 엉망이 되었다.

차도윤의 머릿속에서 자신은 이미 살림이나 하며 질투에 눈먼 아낙네로 전락해 버렸다.

반면, 윤설아를 언급할 땐 감탄과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새까맣게 잊었다. 회사 창립 초기 기술팀 책임자 자리를 지켰던 것 또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사실 차도윤의 말에 모순적인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떻게 윤설아의 지난 세월을 그토록 훤히 꿰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그와 상관없는 아이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따져봤자 무슨 의미겠는가.

진실이 무엇이든, 그녀에게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희주는 가방에서 서류 뭉치와 펜 한 자루를 꺼내 내밀었다.

“당신 헛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그냥 사인이나 해.”

고개를 숙여 서류를 확인하는 순간, 차도윤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다름 아닌 이혼 합의서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우리 결혼한 지 3년이나 됐지만 딱히 같이 일군 재산은 없잖아. 회사 지분 같은 건 탐내지도 않을게. 대신 내 혼전 재산은 전부 가져가겠어. 확인해보고 사인해.”

이혼 합의서를 훑어보는 차도윤은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뭐 하는 짓이냐고 묻잖아.”

서희주는 평온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보면 몰라? 이혼하자는 거지. 이제 당신 따위 필요 없어.”

서희주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반면, 차도윤의 손가락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그는 서희주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냉소를 흘렸다.

“나랑 밀당하겠다는 거야? 이까짓 이혼 서류 한 장 들고 와서 협박이라도 통할 줄 알았나 본데. 이혼하고 싶다고? 좋아, 소원대로 해줄게. 나중에 울면서 다시 매달리지나 마.”

차도윤은 진심으로 화가 치밀었다.

서희주가 감히 이혼 합의서를 들이밀며 협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유치한 수작에 자신이 넘어갈 거로 생각했나?

방금 그가 훑어본 이혼 조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희주는 사실상 몸만 나가는 처지나 다름없었다.

회사의 지분조차 단 한 주도 요구하지 않은 그녀의 태도를 보고 차도윤은 확신했다.

관계를 완전히 끊어낼 용기가 없어서 언제든 돌아올 퇴로를 열어두려고 일부러 적당한 선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지난 세월 자신에게 헌신해 온 서희주를 떠올리면, 이번 이혼 소동도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 부리는 심술이라 확신했다.

차도윤은 거침없이 펜을 들어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다.

“서희주, 적당히 좀 해. 네가 제멋대로 저지른 일이니까 그 결과도 알아서 책임져.”

말을 마치고는 차갑게 자리를 떴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서희주가 먼저 잘못했다며 찾아올 거라는 오만한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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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30화

    “차도윤 씨, 집은 오늘 오후 4시에 이미 팔렸습니다. 새 집주인은 사흘 뒤에 들어올 예정이니 빨리 새로 살 곳을 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차도윤의 얼굴이 확 굳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그가 물었다.“무슨 소리예요? 서희주가 멋대로 집을 팔았다고요?”중개사는 서두르지도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서희주 씨 말씀으로는, 이 집은 결혼 전에 어머니가 혼수로 주신 집이라 본인 명의의 혼전 재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처분하든 본인 자유라고요.”순간 주변 사람들도 크게 술렁였다.“뭐야, 차씨 가문의 단독 주택이 팔렸다고?”“원래 이 집 며느리 혼전 재산이었대. 그것도 친정엄마가 혼수로 준 집이라니, 단독 주택을 혼수로 해 줄 정도면 집안이 보통은 아니었겠네.”“무슨 며느리야. 이미 이혼한 거 아니었어?”“그럼 차 대표님이 처가 덕 본 사람이었다는 거네. 젊은 나이에 저렇게 빨리 성공한 것도 분명 장인어른 쪽 힘이 있었겠지.”순식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평소 장혜란과 사이가 좋지 않던 몇몇 할머니들은 이때다 싶어 더 신이 나서 빈정거렸다.“언니, 그 옥팔찌도 설마 전 며느리 혼수품이었던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 도로 가져간 건가?”“그 팔찌는 보기만 해도 값이 엄청나 보이던데. 혼전 재산이면 당연히 챙겨 가야지.”장혜란은 단번에 아픈 곳을 찔린 듯, 부끄러움과 분노에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몇 걸음에 달려와 소리쳤다.“무슨 혼전 재산이니 뭐니, 나는 그런 건 몰라. 내가 아는 건 딱 하나야. 걔가 우리 집안에 시집왔으면 살아도 우리 집안 사람이고 죽어도 우리 집안 귀신이라는 거지. 사람도 우리 집안 사람인데 집이랑 장신구가 당연히 다 우리 집 거지, 그게 뭐가 이상해?”장혜란은 일부러 저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속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말은 주변 사람들을 또 한 번 얼어붙게 만들었다.“남의 집은 딸을 시집보내는 거지 파는 게 아닌데, 시어머니가 저러니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9화

    그때 차씨 가문 집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하게 몰려 있었다.건물 사람들 거의 전부가 구경하러 나온 탓에, 복도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차도윤이 돌아온 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길을 비켜 줬다.차도윤은 자기 집 앞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걸 보자, 눈빛에 대놓고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아들아, 이제야 왔구나. 너 더 늦었으면 우리 집 다 털릴 뻔했어.”차도윤은 울고불고하는 장혜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경비들에게 그 건장한 남자들을 막으라고 했다.“당신들 대체 누구야? 누가 당신들한테 이런 짓을 하라고 했지?”오는 길에 이미 차도윤은 이 일이 서희주와 관련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그래서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았다.집안 망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맨 앞에 선 책임자는 바로 부동산 중개사였다.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저희는 서희주 씨의 의뢰를 받고, 서희주 씨 물건을 전부 옮기러 왔습니다.”역시 서희주였다.요즘 그녀가 벌이는 일은 정말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누가 서희주한테 이 물건들을 옮겨 가도 된다고 했지? 당신들 지금 주거침입이야. 내가 경찰에 신고만 하면 당신들 전부 유치장 신세 지게 될 줄 알아. 내가 명령하는데, 10분 안에 모든 물건 제자리로 돌려놔. 안 그러면 그 뒤 일은 당신들이 책임져야 할 거야.”그런데 중개사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차도윤 씨, 저희 의뢰인은 서희주 씨입니다. 무슨 일이든 서희주 씨와 먼저 상의하셔야죠. 물론 경찰을 부르셔도 됩니다.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니까요. 경찰이 오면 오히려 잘됐죠. 여기서 괜히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요.”차도윤은 속으로 분노를 꾹 눌러 삼켰다.그는 당연히 경찰이 오는 걸 원하지 않았다.이 집이 서희주의 혼전 재산이라는 걸, 그리고 집 안의 가전과 가구들까지 전부 서희주 소유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법적으로도 서희주는 이 집과 그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8화

    다들 갑자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단지에는 돈 많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김씨 댁 아들처럼 고연봉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한번 중년에 실직하면 집안 전체가 그대로 무너졌다.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장혜란에게 잘 보여야 했다. 정말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연줄을 타고 차도윤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허씨 댁이 장혜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래도 혜란 씨가 복은 많네. 아들이 큰 회사 차렸으니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맞아요. 앞으로 우리도 언니한테 많이 기대야겠어요.”장혜란은 칭찬 소리 속에 흠뻑 젖어 우쭐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윤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엄마, 빨리 와요. 집에 이상한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우리 집 물건까지 막 가져가고 있어요.”오늘은 금요일이라 차윤지는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다.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덩치 큰 남자 몇 명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차윤지도 그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장혜란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새까매졌다. 대낮에, 그것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 안에 들어와 강도질을 하다니.게다가 차윤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겁이 났다.그녀는 얼른 주변의 할머니들에게 손짓했다.“아이고,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고 있다네. 얼른 나랑 같이 좀 가 봐.”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로열 더 팰리스는 고급 단지였고, 보안이 철저하기로도 유명했다.그런 도둑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장씨 댁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먼저 가 봐요. 나는 경비 부르고, 이웃들도 더 불러서 같이 올라갈게요. 대낮부터 집 안에 들어올 정도면 보통 간 큰 놈들이 아닐 거예요.”장혜란은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우리 윤지,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사람들은 우르르 몰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는 금방 꼭대기 층에 멈췄다.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서 차윤지가 소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7화

    “손님, 160억짜리 집을 정말 120억에 파시려고요?”서희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파는 거예요.”“이건 완전히 손해 보고 급매로 내놓는 거라, 오늘 오후 안으로도 팔 수 있어요.”부동산 중개사가 어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이 집이 손님 소유 맞으세요?”“등기권리증도 여기 있고, 집 살 때 받은 각종 서류랑 영수증도 다 보관하고 있어요.”중개사가 확인해 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실례지만 왜 이렇게 급하게 집을 파시려는 건가요? 외국으로 나가실 예정이세요?”서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이 집은 결혼 전에 엄마가 저한테 사 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전남편이랑 이혼했는데도, 지금 그 집 식구들이 이 집을 차지한 채 안 나가고 있어요. 집이 팔리면 그 사람들 내보낼 방법은 있겠죠?”중개사는 그 말을 듣자 바로 울분이 치밀어 오른 듯했다.눈앞의 여자는 기품이 남달랐고, 말투도 세련됐다. 누가 봐도 잘사는 집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였다. 그런데도 전남편 쪽이 혼수로 받은 집을 눌러앉아 차지하고 있다니 말이다.“서희주 씨,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는 법원 경매 매물도 자주 맡고, 기존 거주자가 안 나가 버티는 경우도 많이 겪어요. 저희한테는 전문 정리팀이 있어서 그런 건 어렵지 않아요. 전부 퇴역 군인이나 은퇴한 격투선수들로 꾸려져 있거든요. 그때 가면 나가야 하고, 안 나가면 바로 밖으로 내보내면 됩니다.”서희주는 만족한 듯 그 자리에서 중개사에게 두둑한 봉투 하나를 건넸다.“그럼 잘 부탁드릴게요.”역시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희주의 로열 더 팰리스 주택은 팔려 버렸다.새 집주인은 얼마 전에 귀국한 교포였다.게다가 가능한 한 빨리 입주하고 싶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그래서 부동산 쪽에서는 그날 오후 바로 사람을 정리할 생각이었다.한편, 저녁 무렵.로열 더 팰리스에서는 장혜란이 저녁을 먹고 단지 아래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마침 같은 단지에 사는 할머니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6화

    지금 와서 곱씹어 보면, 차도윤은 ‘사랑해’라는 세 글자조차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 오랜 시간 동안 늘 그녀만 그의 뒤를 쫓아다닌 것 같았다. 그가 뭘 원하는지 말로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두 손에 가득 받쳐 그의 앞에 갖다 바쳤고,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굴었다.하지만 그녀는 끝내 자기가 바라는 걸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시큰거렸다.바로 그때, 서희주의 휴대폰이 울렸다.서희주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 표시를 보는 순간, 서희주와 윤승하는 거의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화면에는 ‘남편’이라고 떠 있었다.서희주는 휴대폰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서희주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차도윤의 말투는 그보다 더 싸늘했다.“서희주, 너 언제부터 외박까지 하게 됐어?”서희주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정말 웃긴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결국 웃음까지 터지고 말았다.“차도윤, 우리 이미 이혼한 거 알지?”“또 이혼으로 나를 협박하려는 거야? 서희주,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유치하게 굴 건데?”서희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차도윤은 멋대로 말을 이어 갔다.“너랑 쓸데없는 말장난할 시간 없어. 본론만 말할게. 엄마 혈당약 떨어졌어. 네가 사서 갖다드려. 그리고 차 키는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놔. 나 내일 은행 가서 얘기할 일이 있는데, 설마 네 모닝 끌고 가라는 건 아니겠지.”“...”“됐고, 나 이제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너 얼른 집에 들어와. 오늘 저녁에는 내가 들어가서 너랑 밥 먹어 줄게.”말을 마치자마자 차도윤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서희주는 그저 기가 막혔다.그녀도 알 수 있었다.차도윤의 그 전화는 사실상 자기 딴에는 그녀에게 체면치레할 구실 하나 던져 준 거였다.어쩌면 장혜란의 몸 상태 때문에 그녀의 손이 다시 필요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녀의 롤스로이스를 돌려받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 앞에서 높은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5화

    윤승하는 눈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딘가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명문가 자제 특유의 여유와 품격이 배어 있었다.“여보, 말해. 잘 듣고 있을게.”서희주는 ‘여보’라는 호칭에 순간 기가 막혔지만 이상하게 듣기 싫지는 않았다.서희주가 입을 열었다.“우리 결혼한 건 일단 공개하지 말자. 나 어제 막 이혼했잖아. 적응할 시간은 좀 필요해.”윤승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좋아.”“둘째, 나는 윤테 그룹 연구개발부에 들어갈 거야. 인턴 신분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어. 대신 때가 무르익어서 내가 내 연구팀을 꾸리고 싶어질 때는 회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야 해. 급여나 처우는 내가 직접 인사팀이랑 얘기할 거고, 너는 간섭하지 마.”윤승하는 고개를 끄덕였다.“합리적이네.”“셋째, 우리 혼인신고는 했고 나도 너랑 감정을 쌓아 보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 감정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로 존중해야 해. 강요하면 안 돼.”윤승하는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했다.“뭘 강요하면 안 되는데?”서희주는 뺨이 살짝 붉어졌지, 그래도 당당하게 말했다.“나한테 너랑 자라고 강요하면 안 돼. 우리가 한 번 관계를 가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두 번째도 원한다는 뜻은 아니야.”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서희주는 어젯밤 일이 아무래도 조금은 짜인 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면 왜 전다은이 글을 올리자마자 윤승하가 댓글을 달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다은은 급히 불려 나가고, 그 직후 윤승하가 갑자기 나타났겠는가.윤승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네 의견을 충분히 존중할 거고, 절대 조금도 강요하지 않을게.”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웃었다.“그래도 하나는 분명히 해 둘게. 네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나한테 강제로 들이대도 돼. 나는 존중 안 받아도 전혀 상관없어.”서희주는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그제야 윤승하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어젯밤 일이 내가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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