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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مؤلف: 크레용 소원
차도윤이 떠난 뒤 서희주는 이혼 합의서를 들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이때, 등 뒤에서 다시금 가식적인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몸을 돌리자 의기양양한 미소가 걸린 윤설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청순가련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제야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윤설아는 성큼성큼 걸어가 서희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죠. 전 윤설아라고 해요. 설도 테크 신임 기술팀 책임자이자 그쪽 남편의 ‘소울메이트‘이기도 하죠.”

서희주는 악수하는 대신 평온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마치 물건의 가치를 매기듯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어머, 요즘은 상간녀라는 말을 ‘소울메이트’라는 치졸한 수식어로 포장하는 게 유행인가 보지?”

윤설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목소리만큼은 전보다 더 기고만장해졌다.

“그쪽이 뭐라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도윤 오빠 옆자리, 애초에 내가 버리고 간 거예요. 안 그랬으면 서희주 씨 차례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설도 테크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 없죠? 나랑 오빠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어요. 도윤 오빠가 창업할 때 이미 서희주 씨랑 결혼한 상태였지만, 회사명에 굳이 내 이름을 넣고 싶어 하더라고. 그것도 모르고 그 집 안주인 노릇을 하는 게 꼭 광대 같다는 생각 안 들어요?”

“아, 맞다. 하나 더 알려줄까요? 도윤 오빠가 서희주 씨랑 결혼한 이유. 다름 아닌 예물도 바라지 않는 ‘가성비 좋은’ 부잣집 딸내미였기 때문이죠. 그동안 혼수품들 내다 팔아서 나 유학 자금 대줬거든요. 지금까지 내가 해외에서 쓴 돈, 전부 오빠가 보내줬어요.”

윤설아는 마치 전유물을 자랑하듯 말을 이어갔다.

“나한테 쓴 돈만 못해도 20억은 될걸요?”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서희주의 수수한 옷차림을 바라보았다.

“그쪽은 여태껏 가방 하나 받은 적 없죠?”

서희주는 제자리에 선 채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윤설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그 의미를 짐작하고 있었다.

차도윤에게 굳이 따져 묻지 않은 건 스스로 비참해지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차도윤이 자신의 혼수까지 팔아 윤설아의 유학 자금을 댔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 했다.

그러다 문득 신혼 초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차도윤은 갑자기 친구에게 돈을 빌려줘야 한다며 8천만 원을 가져갔는데, 마침 윤설아가 유학을 떠난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후 서희주는 그 돈에 관해 묻지 않았었다.

10년을 짝사랑해 왔건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차도윤이라는 사람을 처음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아는 차도윤은 그저 냉정하고 무뚝뚝한 워커홀릭일 뿐이었다.

다정함과는 거리가 멀고, 웃음도 말수도 적은 사람.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부부로서 서로를 예우하고 존중하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전부 착각에 불과했다.

윤설아를 감쌀 때 누구보다 말수가 많았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듯 애틋했다.

가끔은 웃고, 가끔은 얼굴도 붉히는 그런 남자였다.

적어도 품행만큼은 반듯한 신사인 줄 알았는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이토록 추잡하고 구역질 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인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희주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이자, 윤설아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쪽은 나랑 도윤 오빠의 사랑놀이에 끼어든 불청객일 뿐이에요. 눈치가 있다면 이제라도 주제 파악하고 알아서 물러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사이, 서희주는 이미 감정을 추스른 뒤였다.

이내 무덤덤하게 입을 뗐다.

“어차피 차도윤이랑 이혼할 거예요.”

윤설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나약한 여자일 줄이야. 살짝 자극했을 뿐인데 바로 이혼하겠다고 나오다니.

하지만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잘된 일이었다.

차도윤 말대로 서희주는 참 멍청하고 융통성이 없었다.

윤설아가 입을 떼려던 순간, 서희주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

“다만 이혼하기 전에 나한테 빚진 돈부터 갚아요.”

윤설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언제 그쪽한테 돈을 빌렸어요?”

“방금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요. 지난 몇 년간 차도윤이 윤설아 씨한테 갖다 바친 돈이 못해도 20억은 된다면서. 거기다 내 혼수까지 팔아 보태준 유학 자금까지 합치면, 깔끔하게 20억으로 계산해 줄게요.”

말을 마친 서희주는 메모지와 펜을 꺼내더니 숫자 몇 개를 휘갈겼다.

그러고는 메모지를 윤설아의 옷 위에 붙여버렸다.

“이거 내 계좌 번호예요. 3일 안에 20억 입금하도록 해요.”

윤설아는 순식간에 평정심을 잃고 폭발했다.

“미쳤어요? 내가 왜 그쪽한테 20억을 줘요!”

“차도윤이 윤설아 씨한테 쓴 돈, 전부 우리 부부 공동재산이에요. 아내로서 상간녀한테 그 돈을 추징할 권리가 있죠.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정식으로 소송 걸고 언론사까지 불러서 누가 옳은지 시시비비를 가려볼 생각이에요.”

“설도 테크, 곧 상장한다면서요? 조강지처 혼수까지 팔아서 불륜녀 뒷바라지했다는 추문 터지면 과연 그 회사가 무사히 상장될 수 있을까요? 그때 가서 보게 될 손해는 고작 20억 정도로 안 끝날 텐데.”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윤설아는 머릿속이 하얘지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금세 뻔뻔하게 발뺌하기로 마음먹었다.

“방금 그건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에요. 내가 도윤 오빠 돈 20억을 썼다는 증거라도 있어요?”

서희주는 망설임 없이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윤설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도윤 오빠 옆자리, 애초에 내가 버리고 간 거예요... 도윤 오빠가 서희주 씨랑 결혼한 이유. 다름 아닌 예물도 바라지 않는 ‘가성비 좋은’ 부잣집 딸내미였기 때문이죠... 나한테 쓴 돈만 못해도 20억은 될걸요...”

윤설아는 입이 떡 벌어진 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서희주가 이렇게까지 영악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녹음기를 휴대하며 방금 나눈 대화를 모조리 녹취하다니.

서희주가 입을 뗐다.

“딱 3일 줄게요. 집이든 차든, 아니면 명품 백이라도 팔아 보든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몸이라도...”

“감히 누굴 모욕하는 거죠!”

윤설아는 펄쩍 뛰었다.

감히 자신더러 몸이라도 팔라는 소리인가!

정작 서희주는 그녀의 분노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쨌든 3일 뒤에 내 계좌에 20억이 찍히지 않으면 그다음 벌어질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해요.”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윤설아는 팔짱을 낀 채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저 순해 빠진 멍청이인 줄만 알았던 여자가 실상은 독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였다.

첫 만남부터 아주 뼈저리게 당하고 말았다.

20억이라니? 당장 2억도 없는 처지에 어디서 그 큰돈을 구한단 말인가.

산후조리원을 나온 서희주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원래는 근처에서 대충 국수 한 그릇으로 때울 생각이었다.

매일 점심마다 학교에 있는 차윤지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오만 되면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차윤지도 참, 한마디로 형언하기 힘든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이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는 그 집구석 식구들 수발들 이유가 없었다.

서희주는 근처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일식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고는 마음껏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에는 사흘이 멀다고 들락거렸던 단골집이었지만, 차도윤과 함께한 뒤로는 단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차도윤의 부인으로 살면서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입 안에서 캐비아를 곁들인 참다랑어의 신선하고 달콤한 맛이 퍼지는 순간, 서희주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평온하게, 오로지 음식의 맛에만 집중해 본 게 대체 얼마 만인가.

식사 한 끼에 쓴 돈은 무려 120만 원.

카드를 긁은 지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카톡 알림이 울렸다.

차도윤이었다.

[걸신이라도 들렸어? 한 끼에 무슨 120만 원이나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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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30화

    “차도윤 씨, 집은 오늘 오후 4시에 이미 팔렸습니다. 새 집주인은 사흘 뒤에 들어올 예정이니 빨리 새로 살 곳을 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차도윤의 얼굴이 확 굳었다.믿을 수 없다는 듯 그가 물었다.“무슨 소리예요? 서희주가 멋대로 집을 팔았다고요?”중개사는 서두르지도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서희주 씨 말씀으로는, 이 집은 결혼 전에 어머니가 혼수로 주신 집이라 본인 명의의 혼전 재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처분하든 본인 자유라고요.”순간 주변 사람들도 크게 술렁였다.“뭐야, 차씨 가문의 단독 주택이 팔렸다고?”“원래 이 집 며느리 혼전 재산이었대. 그것도 친정엄마가 혼수로 준 집이라니, 단독 주택을 혼수로 해 줄 정도면 집안이 보통은 아니었겠네.”“무슨 며느리야. 이미 이혼한 거 아니었어?”“그럼 차 대표님이 처가 덕 본 사람이었다는 거네. 젊은 나이에 저렇게 빨리 성공한 것도 분명 장인어른 쪽 힘이 있었겠지.”순식간에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고,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평소 장혜란과 사이가 좋지 않던 몇몇 할머니들은 이때다 싶어 더 신이 나서 빈정거렸다.“언니, 그 옥팔찌도 설마 전 며느리 혼수품이었던 거 아니야? 그래서 지금 도로 가져간 건가?”“그 팔찌는 보기만 해도 값이 엄청나 보이던데. 혼전 재산이면 당연히 챙겨 가야지.”장혜란은 단번에 아픈 곳을 찔린 듯, 부끄러움과 분노에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몇 걸음에 달려와 소리쳤다.“무슨 혼전 재산이니 뭐니, 나는 그런 건 몰라. 내가 아는 건 딱 하나야. 걔가 우리 집안에 시집왔으면 살아도 우리 집안 사람이고 죽어도 우리 집안 귀신이라는 거지. 사람도 우리 집안 사람인데 집이랑 장신구가 당연히 다 우리 집 거지, 그게 뭐가 이상해?”장혜란은 일부러 저렇게 말한 게 아니었다. 속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말은 주변 사람들을 또 한 번 얼어붙게 만들었다.“남의 집은 딸을 시집보내는 거지 파는 게 아닌데, 시어머니가 저러니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9화

    그때 차씨 가문 집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빼곡하게 몰려 있었다.건물 사람들 거의 전부가 구경하러 나온 탓에, 복도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차도윤이 돌아온 걸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길을 비켜 줬다.차도윤은 자기 집 앞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걸 보자, 눈빛에 대놓고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아들아, 이제야 왔구나. 너 더 늦었으면 우리 집 다 털릴 뻔했어.”차도윤은 울고불고하는 장혜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경비들에게 그 건장한 남자들을 막으라고 했다.“당신들 대체 누구야? 누가 당신들한테 이런 짓을 하라고 했지?”오는 길에 이미 차도윤은 이 일이 서희주와 관련 있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그래서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았다.집안 망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맨 앞에 선 책임자는 바로 부동산 중개사였다.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저희는 서희주 씨의 의뢰를 받고, 서희주 씨 물건을 전부 옮기러 왔습니다.”역시 서희주였다.요즘 그녀가 벌이는 일은 정말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누가 서희주한테 이 물건들을 옮겨 가도 된다고 했지? 당신들 지금 주거침입이야. 내가 경찰에 신고만 하면 당신들 전부 유치장 신세 지게 될 줄 알아. 내가 명령하는데, 10분 안에 모든 물건 제자리로 돌려놔. 안 그러면 그 뒤 일은 당신들이 책임져야 할 거야.”그런데 중개사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차도윤 씨, 저희 의뢰인은 서희주 씨입니다. 무슨 일이든 서희주 씨와 먼저 상의하셔야죠. 물론 경찰을 부르셔도 됩니다. 저희가 하는 모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니까요. 경찰이 오면 오히려 잘됐죠. 여기서 괜히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요.”차도윤은 속으로 분노를 꾹 눌러 삼켰다.그는 당연히 경찰이 오는 걸 원하지 않았다.이 집이 서희주의 혼전 재산이라는 걸, 그리고 집 안의 가전과 가구들까지 전부 서희주 소유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법적으로도 서희주는 이 집과 그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8화

    다들 갑자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단지에는 돈 많은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김씨 댁 아들처럼 고연봉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한번 중년에 실직하면 집안 전체가 그대로 무너졌다.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장혜란에게 잘 보여야 했다. 정말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연줄을 타고 차도윤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까.허씨 댁이 장혜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래도 혜란 씨가 복은 많네. 아들이 큰 회사 차렸으니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맞아요. 앞으로 우리도 언니한테 많이 기대야겠어요.”장혜란은 칭찬 소리 속에 흠뻑 젖어 우쭐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윤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엄마, 빨리 와요. 집에 이상한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우리 집 물건까지 막 가져가고 있어요.”오늘은 금요일이라 차윤지는 야간 자율학습이 없었다.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덩치 큰 남자 몇 명이 집 안으로 들이닥쳤다.차윤지도 그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장혜란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새까매졌다. 대낮에, 그것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 안에 들어와 강도질을 하다니.게다가 차윤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겁이 났다.그녀는 얼른 주변의 할머니들에게 손짓했다.“아이고,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고 있다네. 얼른 나랑 같이 좀 가 봐.”다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로열 더 팰리스는 고급 단지였고, 보안이 철저하기로도 유명했다.그런 도둑들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장씨 댁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먼저 가 봐요. 나는 경비 부르고, 이웃들도 더 불러서 같이 올라갈게요. 대낮부터 집 안에 들어올 정도면 보통 간 큰 놈들이 아닐 거예요.”장혜란은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우리 윤지,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사람들은 우르르 몰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는 금방 꼭대기 층에 멈췄다.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서 차윤지가 소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7화

    “손님, 160억짜리 집을 정말 120억에 파시려고요?”서희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최대한 빨리 파는 거예요.”“이건 완전히 손해 보고 급매로 내놓는 거라, 오늘 오후 안으로도 팔 수 있어요.”부동산 중개사가 어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이 집이 손님 소유 맞으세요?”“등기권리증도 여기 있고, 집 살 때 받은 각종 서류랑 영수증도 다 보관하고 있어요.”중개사가 확인해 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실례지만 왜 이렇게 급하게 집을 파시려는 건가요? 외국으로 나가실 예정이세요?”서희주는 담담하게 말했다.“이 집은 결혼 전에 엄마가 저한테 사 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전남편이랑 이혼했는데도, 지금 그 집 식구들이 이 집을 차지한 채 안 나가고 있어요. 집이 팔리면 그 사람들 내보낼 방법은 있겠죠?”중개사는 그 말을 듣자 바로 울분이 치밀어 오른 듯했다.눈앞의 여자는 기품이 남달랐고, 말투도 세련됐다. 누가 봐도 잘사는 집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였다. 그런데도 전남편 쪽이 혼수로 받은 집을 눌러앉아 차지하고 있다니 말이다.“서희주 씨,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는 법원 경매 매물도 자주 맡고, 기존 거주자가 안 나가 버티는 경우도 많이 겪어요. 저희한테는 전문 정리팀이 있어서 그런 건 어렵지 않아요. 전부 퇴역 군인이나 은퇴한 격투선수들로 꾸려져 있거든요. 그때 가면 나가야 하고, 안 나가면 바로 밖으로 내보내면 됩니다.”서희주는 만족한 듯 그 자리에서 중개사에게 두둑한 봉투 하나를 건넸다.“그럼 잘 부탁드릴게요.”역시 두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희주의 로열 더 팰리스 주택은 팔려 버렸다.새 집주인은 얼마 전에 귀국한 교포였다.게다가 가능한 한 빨리 입주하고 싶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그래서 부동산 쪽에서는 그날 오후 바로 사람을 정리할 생각이었다.한편, 저녁 무렵.로열 더 팰리스에서는 장혜란이 저녁을 먹고 단지 아래에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마침 같은 단지에 사는 할머니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6화

    지금 와서 곱씹어 보면, 차도윤은 ‘사랑해’라는 세 글자조차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 오랜 시간 동안 늘 그녀만 그의 뒤를 쫓아다닌 것 같았다. 그가 뭘 원하는지 말로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두 손에 가득 받쳐 그의 앞에 갖다 바쳤고,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굴었다.하지만 그녀는 끝내 자기가 바라는 걸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시큰거렸다.바로 그때, 서희주의 휴대폰이 울렸다.서희주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 표시를 보는 순간, 서희주와 윤승하는 거의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화면에는 ‘남편’이라고 떠 있었다.서희주는 휴대폰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서희주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했다.차도윤의 말투는 그보다 더 싸늘했다.“서희주, 너 언제부터 외박까지 하게 됐어?”서희주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정말 웃긴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결국 웃음까지 터지고 말았다.“차도윤, 우리 이미 이혼한 거 알지?”“또 이혼으로 나를 협박하려는 거야? 서희주,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유치하게 굴 건데?”서희주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차도윤은 멋대로 말을 이어 갔다.“너랑 쓸데없는 말장난할 시간 없어. 본론만 말할게. 엄마 혈당약 떨어졌어. 네가 사서 갖다드려. 그리고 차 키는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놔. 나 내일 은행 가서 얘기할 일이 있는데, 설마 네 모닝 끌고 가라는 건 아니겠지.”“...”“됐고, 나 이제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너 얼른 집에 들어와. 오늘 저녁에는 내가 들어가서 너랑 밥 먹어 줄게.”말을 마치자마자 차도윤은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서희주는 그저 기가 막혔다.그녀도 알 수 있었다.차도윤의 그 전화는 사실상 자기 딴에는 그녀에게 체면치레할 구실 하나 던져 준 거였다.어쩌면 장혜란의 몸 상태 때문에 그녀의 손이 다시 필요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녀의 롤스로이스를 돌려받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녀 앞에서 높은

  •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제25화

    윤승하는 눈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딘가 사람을 약 올리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명문가 자제 특유의 여유와 품격이 배어 있었다.“여보, 말해. 잘 듣고 있을게.”서희주는 ‘여보’라는 호칭에 순간 기가 막혔지만 이상하게 듣기 싫지는 않았다.서희주가 입을 열었다.“우리 결혼한 건 일단 공개하지 말자. 나 어제 막 이혼했잖아. 적응할 시간은 좀 필요해.”윤승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좋아.”“둘째, 나는 윤테 그룹 연구개발부에 들어갈 거야. 인턴 신분으로 들어가도 상관없어. 대신 때가 무르익어서 내가 내 연구팀을 꾸리고 싶어질 때는 회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야 해. 급여나 처우는 내가 직접 인사팀이랑 얘기할 거고, 너는 간섭하지 마.”윤승하는 고개를 끄덕였다.“합리적이네.”“셋째, 우리 혼인신고는 했고 나도 너랑 감정을 쌓아 보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 감정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로 존중해야 해. 강요하면 안 돼.”윤승하는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했다.“뭘 강요하면 안 되는데?”서희주는 뺨이 살짝 붉어졌지, 그래도 당당하게 말했다.“나한테 너랑 자라고 강요하면 안 돼. 우리가 한 번 관계를 가진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두 번째도 원한다는 뜻은 아니야.”지금 와서 떠올려 보니, 서희주는 어젯밤 일이 아무래도 조금은 짜인 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면 왜 전다은이 글을 올리자마자 윤승하가 댓글을 달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다은은 급히 불려 나가고, 그 직후 윤승하가 갑자기 나타났겠는가.윤승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네 의견을 충분히 존중할 거고, 절대 조금도 강요하지 않을게.”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웃었다.“그래도 하나는 분명히 해 둘게. 네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언제든 나한테 강제로 들이대도 돼. 나는 존중 안 받아도 전혀 상관없어.”서희주는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그제야 윤승하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바뀌었다.“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어젯밤 일이 내가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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