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Author: 작은 거인

제1화

Author: 작은 거인
“이젠 너랑 자는 것도 질렸어. 헤어지자.”

6년 전 온씨 가문의 아가씨 온이서는 이 한마디로 당시 빈털터리였던 하은후를 가차 없이 차버리고 시장 아들인 황주원과 정략결혼 했다.

6년 후 온씨 가문은 부도가 났다. 남편 황주원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온이서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가장 처참하고 초라한 순간에 하은후와 다시 마주쳤다.

카페.

온이서는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통유리 창가 자리에 앉아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오늘 그녀의 이혼 소송을 맡아줄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변호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려던 찰나 문이 열리더니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회색 정장에 검은 셔츠, 그리고 줄무늬 넥타이를 매치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기품이 범상치 않았다.

남자가 들어온 순간 카페 여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연예계에서도 보기 드문 외모였고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놀랐지만 온이서는 그 얼굴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들어온 사람이 바로 6년 전 그녀가 잠자리가 질렸다고 차버린 첫사랑이자 전 남자친구 하은후였기 때문이었다.

6년 만에 본 하은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억 속의 하은후는 늘 하얀 린넨 셔츠를 입고 옆집 오빠 같은 다정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때의 소년미를 완전히 지워버린 모습이었다. 얼굴 라인이 날카로웠고 눈빛은 위험한 포식자처럼 차갑고 공격적이었다.

온이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황급히 모자를 눌러쓰면서 하은후가 그녀를 보지 못하기를 빌었다.

사실 어젯밤 또 황주원에게 맞았다. 지금 얼굴 여기저기에 멍과 상처가 남아있어 하은후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마지막에 헤어질 때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기억하길 바랐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망가진 모습은 절대 보여줘선 안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온이서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은후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테이블로 걸어와 맞은편 의자를 빼더니 태연하게 앉았다.

“차가 막혀서 늦었어. 미안.”

하은후의 말에 온이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자리 잘못 앉은 거 아니야? 누굴 만나려고 왔지?’

“저기요.”

온이서는 고개를 숙인 채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거의 가린 다음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그쪽 자리 아니에요.”

“아가씨, 모른 척하지 마. 난 아가씨가 죽어도 알아볼 수 있어.”

‘아가씨...’

그녀의 몸이 굳어버렸다. 온씨 가문이 망한 뒤로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이 호칭은 예전에 하은후가 제일 좋아했던 호칭이었다. 두 사람이 스킨십을 할 때면 하은후는 온이서를 꼭 끌어안고 쉰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속삭이곤 했었다.

“아가씨.”

“아가씨, 이제 해도 돼?”

“아가씨, 더 원해?”

“아가씨, 날 사랑한다고 말해.”

그때의 뜨거웠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오늘 하은후가 부른 ‘아가씨’에는 예전의 달콤함이 전혀 없이 오직 노골적인 증오만 담겨 있었다.

“전 그쪽이 찾으시는 사람이 아니니까 일어나세요. 제가 만나기로 한 분이 곧 오시거든요.”

“봉진우 씨 오지 않을 거야.”

하은후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느긋하게 말했다.

“아가씨의 이혼 소송은 내가 맡기로 했어.”

온이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난 봉 변호사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드디어 고개 들고 날 보는구나.”

그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하은후의 눈빛이 차분한 게 보였고 권력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온이서는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봉 변호사님은 왜 안 와?”

“봉진우 씨 재직 중에 규정을 여러 번이나 어겨서 오늘부로 로펌에서 잘렸어.”

“어제저녁까지 연락했는데 오늘 갑자기 잘렸다니. 이런 우연이 있다는 게 말이 돼? 하은후, 일부러 이런 거지?”

“내가 왜? 너 보러 오려고?”

하은후가 코웃음을 쳤다.

“온이서, 아직도 내가 너한테 미련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은후가 그녀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자존심을 짓밟은 여자를 그리워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무슨 뜻인데?”

“내가 망가진 꼴을 보려고 일부러 온 거잖아.”

“자기 주제는 잘 알고 있네.”

정말로 온이서의 우스운 꼴을 보려고 온 게 맞다고 인정했다.

온이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한구석이 저렸다.

황씨 가문에 시집간 6년 동안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시부모님도 그녀를 싫어했다. 온이서의 친정이 부도가 난 뒤에 시댁에서는 그녀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매일 고난의 연속이었다. 과거 온씨 가문 아가씨만의 당당함과 자부심은 전부 갈아 없어졌다. 지금 그녀를 비웃고 싶어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긴 했지만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바로 하은후.

“그렇게 보고 싶다면 실컷 보여줄게.”

온이서가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었다.

오늘 화장을 하지 않아 가뜩이나 하얀 피부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이마의 붉은 상처와 눈가의 푸르스름한 멍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녀의 얼굴에 생긴 상처를 본 순간 하은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커피잔을 꽉 쥐어 손가락 마디가 새하얘졌고 손등의 핏줄이 튀어 올랐다.

‘황주원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

“이제 속 시원해?”

온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족하면 자세히 설명해줄 수도 있어. 이마 흉터는 재떨이에 맞은 거고 눈가의 멍은...”

“그만해! 닥쳐!”

하은후는 가슴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듯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다 네가 선택한 거야. 자업자득이라고.”

“맞아. 내 선택이었고 내가 자초한 결과야. 이렇게 된 거 보니까 마음이 좀 풀렸어?”

온이서가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하은후를 쳐다봤다.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러고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챙긴 다음 도망치듯 가버렸다.

하은후는 그 자리에 앉아 온이서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감정이 파도처럼 출렁거려 당장이라도 그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하은후, 어디야?”

“의뢰인 만나고 있어.”

“귀국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의뢰인을 만나?”

상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설마 봉진우가 맡기로 했던 이혼 소송을 네가 가져간 거야? 로펌 대표라는 사람이 언제부터 이런 보잘것없는 사건까지 직접 맡았어?”

하은후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부탁할 게 있어.”

“뭔데?”

“황주원 좀 알아봐 줘.”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제30화

    “변호사님, 또 뵙네요!”황주원이 하은후를 보자 즉시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맞이하며 인사했다.하은후는 미지근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황주원은 여전히 열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변호사님, 며칠 전 로펌 변호사분께서 전화 주셔서 조언해 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안 그러면 제 상음시 항구 사업에 큰 문제가 생길 뻔했죠.”‘며칠 전에 전화를?’온이서는 피팅룸에 있었던 그날 하은후가 메시지를 보낸 후 황주원의 전화벨이 울렸던 게 생각났다.‘그날이었을까?’“황주원 씨, 상음시 항구 쪽에 저와 제 친구들도 약간 작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업을 많이 확장하고 있나 보네요.”하은후는 담담하게 한마디 했지만 저도 모르게 압박감이 풍겼다.“한 마디 조언드리자면 다들 돈 벌기 위해 사업하는 거지만 선은 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러면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울 테니까요.”황주원은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지난 몇 년 동안 상음시 시장인 아버지만 믿고 선 넘는 사업을 적지 않게 해왔다.‘하변이 뭔가 알게 된 걸까?’하은후의 방금 한 말은 겉으로는 조언 같지만 실은 경고에 더 가까웠다.“알겠습니다. 앞으로도 변호사님의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하은후는 말없이 발걸음을 돌려 떠나갔다.한쪽에 서서 듣고 있던 온이서는 그제야 뭔가 이해했다.이제 보니 하은후가 황주원의 약점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피팅룸에서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하은후는 한마디만 했지만 이 한마디에 황주원이 많이 당황한 듯했다. 더 이상 고객 대응을 할 마음이 사라진 황주원은 온이서를 뒤로 한 채 복도로 나가 오랫동안 전화를 했다.황주원이 곁에 없으니 굳이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었기에 온이서는 오히려 기뻤다.작은 접시에 담긴 말차 무스를 한 접시 들고 혼자 연회장의 창가 앞에 서서 천천히 먹었다.통유리에 연회장 안의 각양각색의 드레스와 술잔이 어우러진 장면이 그대로 비쳤다. 사람들 속에 있는 하은후는 그야말로 위성들에 둘러싸인 지구나 다름없었다.최강현

  •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제29화

    황주원과 조미리가 동시에 온이서를 향해 압박하는 시선을 보냈다.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신호였다.“아무 일도 없어요. 얼마 전에 며칠 여행 다녀오느라 조금 피곤해서 연락드리지 못했어요.”“아무 일 없다니 다행이야. 언제 시간 나면 꼭 불러줘, 전에 이서 씨가 가르쳐 준 두 동작 지금 아주 잘 연습했으니까 나중에 확인해 줘. 이서 씨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거든.”“알겠어요.”두 사람이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연회장 입구에 또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이서 씨, 편히 앉아 있어. 나는 다른 손님 맞이하러 가야 해서. 우리 나중에 시간 날 때 또 이야기하자.”“네, 바쁘실 텐데 수고하세요.”장가을이 자리를 뜨자 시어머니 조미리가 온이서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주원한테 들었는데 너 요즘 이혼하겠다고 난리라며? 우리 주원이 술에 취해서 실수로 너한테 손을 댔다고 바로 경찰에 가정 폭력으로 신고했다며?”조미리는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온이서, 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온씨 가문이 파산해서 넌 이제 온씨 가문 딸도 아니야. 친정에 빚만 잔뜩 있는데 우리 주원이를 떠나면 누가 너를 원하겠니? 이혼할 자격도 없는 주제 무슨 난리를 치는 거야?”조미리는 아들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시어머니 유형이었다. 조미리 눈에 자기 아들 황주원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옳았고 이 세상 가장 완벽한 존재였다. 온이서는 황씨 가문에 들어온 순간부터 숨 쉬는 것조차 잘못이었다.“정신이 있으면 우리 주원이 곁에 남아서 대를 이을 떡두꺼비 같은 아들 낳을 생각이나 해. 만약 아들을 또 못 낳으면 네가 이혼하겠다고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버릴 거야. 황씨 가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필요 없으니까.”손자만 바라는 조미리는 남녀 차별이 극도로 심했다. 온이서가 딸 라임을 낳았을 때 여자아이라는 소식을 들은 뒤 병원에도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병상에 누워있던 온이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들을 낳을 때까지 노력하라고 명령했다.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 후 온이서에

  •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제28화

    이내 의사가 와서 온이서의 ‘상처’를 소독한 뒤 연고를 발라주었다.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온이서는 더 이상 드레스를 고를 생각이 없었다. 대충 꽃 자수가 있는 드레스 한 벌을 입어 본 뒤 괜찮겠다 싶어 점원에게 부림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온이서가 떠날 때 하은후는 여전히 아래층에 앉아 심아정이 드레스를 고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이 남자,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데 왜 내 일에 자꾸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걸까?’온이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별 이슈가 없이 무사히 넘어간 것에 대해 안도했다.사흘 후면 바로 최씨 가문 사모님 장가을의 생일 파티였다.사흘 동안, 온이서는 매일 황주원에게 라임의 일상 영상을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딸이 그리운 이유도 있었지만 영상 속 배경에서 실마리라도 찾아 황주원이 라임을 어디에 숨겼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워낙 잔뜩 경계하고 있던 황주원인지라 보낸 영상에서는 그 어떤 유용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난감해진 온이서는 그 때문에 라임이 더 걱정되어 매일 하루하루가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하은후 역시 사흘 동안 편히 보내지 못했다. 드레스 가게에서 만난 다음 날 온이서가 집에 남겨둔 조미료 한 봉지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두드렸다.그런데 문을 연 사람은 소예린이었다.소예린이 하은후를 보고 멈칫했다.“이서 찾으러 온 거야?”“물건 돌려주려고.”“하지만 이미 이사 갔어.”하은후는 얼굴이 잔뜩 어두워졌다.‘이사 갔다고? 정말 이혼하지 않겠다는 건가?’순간 머릿속에 황주원이 온이서의 허리에 손을 얹은 장면이 떠올랐다. 황주원 곁으로 돌아가서 매일 밤 살결을 맞대며 부부 관계를 가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속에 이유 모를 분노가 불타올랐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은후는 온이서가 가져왔던 조미료 한 봉지를 전부 계단 쓰레기통에 내던졌다.깜짝 놀란 소예린은 하은후가 떠나자마자 바로 방으로 돌아가 온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서야. 하은후가 너 찾으러 왔어.”“나? 무슨 일

  •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제27화

    “빨리 가!”온이서는 거의 애원하는 어조였다.“내보내려면 일단 빚부터 갚아.”“무슨 빚? 이미 요리까지 해줬잖아?”“호텔 빚.”말을 마친 하은후는 온이서의 허리를 꽉 잡더니 고개를 숙여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가느다란 목을 불꽃처럼 덮쳤다.그날 온이서가 했던 것처럼 부드러운 키스가 아니라 벌과 징벌의 의미를 담은 강한 빨림이었다.“으...”눈살을 찌푸린 온이서는 따끔하고 간지러운 감각에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다.어떻게든 몸을 비틀며 하은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강하고 거친 하은후의 힘 앞에서는 턱없이 부족했다.밀폐된 공간에 거칠게 얽히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들렸다.몇 초 후 하은후가 드디어 온이서를 놓아주었다.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서 거울에 기댄 온이서는 목에 선명하고 애매한 붉은 자국이 남은 것을 발견했다.‘큰일 났네... 고른 드레스가 모두 터틀넥 스타일인데... 이제 어떻게 입어 보지?’몸을 곧게 편 하은후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이서의 하얀 피부에 자신이 남긴 키스 마크를 바라본 순간 눈빛이 폭풍 전야의 바다처럼 무거워졌다. 눈빛 속에는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혼란이 섞여 있었다.손을 들어 손가락 끝으로 자기 입술을 살짝 닦은 뒤 한마디 했다.“이걸로 호텔 빚 갚은 거야.”말을 마친 뒤 온이서를 더 이상 보지 않은 채 뒤로 돌아 커튼을 젖혔다. 그러고는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거친 기운을 풍기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온이서는 부드러운 의자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미처 숨을 고르기도 전에 두 점원이 함께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황씨 가문 사모님, 필요한 드레스 두 벌 다 가져왔어요. 나와서 입어 보세요.”갑작스럽게 생긴 키스 마크라 뭐로도 가릴 수 없었기에 온이서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깔끔하게 다듬은 손톱으로 하은후가 남긴 키스 마크를 세게 꼬집었다.“아악!”온이서가 비명을 질렀다.“벌레!”두 점원이 온이서의 비명을 듣고 급히 뛰어 들어왔다.“사모님, 괜찮으세요? 벌레 어디 있어요?”“

  •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제26화

    “하은후, 미쳤어?”온이서가 당황하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빨리 나가!”“미친 게 누군데!”온이서를 바라본 하은후는 맹수처럼 거친 기운을 내뿜으며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너한테 가정 폭력을 하고 너를 기절시켜 다른 남자 침대에 보내 바람을 피운 것처럼 모함하려는 그런 개자식인데, 그래도 이혼 안 하겠다고?”“내 일이니까 신경 끄고 나가!”온이서가 손을 들어 하은후를 밀쳤지만 하은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일한 출구를 막아서며 두꺼운 벨벳 커튼에 등을 기댄 채 말을 이었다.“황주원이 뭐가 좋은데? 그렇게까지 황주원이라는 남자를 사랑해? 너를 해쳐도 용서할 만큼? 결혼해서 부부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거야.”온이서는 초조하면서도 화가 났다.“하은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따지는데? 우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무슨 자격? 잊었어? 나는 네가 바람피운 상대야.”하은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자 큰 키 때문에 온이서 몸 위에 하은후의 그림자가 뒤덮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숨 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좁아졌다.“다시 네 남편과 산다고? 그러면 네 바람 상대인 나는 어쩌고?”온이서는 하은후가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다.바람 상대 역할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 싶었다.“아프면 가서 치료를 받아, 여기서 미친 짓 하지 말고!”온이서가 다시 한번 하은후를 밀치려 했지만 하은후는 오히려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쥔 뒤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너무 뜨거운 하은후의 체온에 온이서는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했다.“아가씨, 결혼 생활에 떳떳하지 못한 행동한 적 없다고? 그럼 지난번 호텔에서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하은후는 긴 손가락으로 온이서의 길고 하얀 목을 스쳤다.“네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키스 마크를 남겨놓고 결혼 생활에 떳떳하다고?”하은후의 어두운 눈빛에 위험한 감정이 출렁이는 것을 본 온이서는 긴장한 마음에 거울에 몸을 기댔다.“지금 이런 걸 얘기할 때가 아니야, 누가 들어와서 우리 둘이 여기 있는 걸 보

  •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제25화

    검은색 하이엔드 맞춤 정장을 차려입은 하은후는 아주 잘생겼다.그의 곁에 있는 심아정은 검은색 벨벳 롱드레스를 입어 두 사람이 매우 어울려 보였다.‘세상이 작다는 말 이래서 하나 보네...’온이서는 그들이 보지 못하게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지만 하은후는 여전히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하은후의 멈칫한 시선에 심아정도 바로 온이서를 발견했다.“오빠, 저분 며칠 전에 오빠 집에 와서 요리하던 시간제 도우미 언니 아니야?”눈에 놀라움이 스친 심아정은 온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물었다.“언니, 여기서 뭐 하세요?”“저...”상음시의 드레스 전문점은 고급 정품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었기에 여기 드레스 가격은 시간제 요리 도우미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온이서가 어떻게 둘러댈지 생각 중이었을 때 점원이 그녀 곁으로 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지금 손에 들고 계신 이 드레스, 디자이너 로렌스 씨가 때마침 2층에 계세요. 필요하시면 내려오셔서 디자인 컨셉을 설명해 드리라고 하겠습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사모님?”심아정은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사모님이라고요? 그럼 왜 은후 오빠 집에서 시간제 도우미로 일한 거예요?”“이혼 준비 중이어서 생활비를 벌려고요.”온이서가 말했다.“그럼 지금은요?”“지금은... 지금은 이혼 안 하려고요.”온이서의 말이 끝나자 하은후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눈빛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독을 묻힌 바늘 같아 관자놀이가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단 1초도 머물고 싶지 않아 막 돌아서려는 순간 황주원이 다가왔다.“이거, 하은후 변호사님 아닌가요?”하은후를 발견한 황주원이 웃으며 악수를 하려고 다가왔지만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는 하은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색해진 황주원은 지난번 호텔에서 하은후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때문에 하은후가 이러는 줄 알고 사과하려 했다. 바로 그때 하은후가 입을 열었다.“황주원 씨, 누군지 소개 좀 해줄래요?”하은후가 온이서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