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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잠시 자리 비움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3 23:35:56

다음 날 아침, 해담은 셔터를 올리고 문턱에 쌓인 먼지를 쓸어냈다. 빗자루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골목에 퍼졌다. 토요일이라 가게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한동안 유리문은 조용했다.

해담은 빗자루를 세워 두고 작업대에 앉았다. 전날 장부에 적은 놋쇠 열쇠 아래로 새 기록을 적을 자리가 남아 있었다.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오늘도 놋쇠 열쇠를 복사하러 올 게 분명했다.

「아직 안 왔는데.」

해담은 장부를 덮고 벽의 열쇠 블랭크 판으로 갔다. 한 줄에 걸린 열쇠들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손으로 하나씩 만져 보니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해담은 맨 아래쪽 열쇠 두 개를 빼서 다시 걸었다.

유리문 밖에서 구두 소리가 멈췄다. 해담은 돌아봤지만, 문 앞에 선 사람은 열쇠를 맡기러 온 동네 손님이었다. 손님은 낡은 열쇠를 꺼내 계산대에 놓았다.

“이거 하나 더 만들 수 있어요?”

“네, 됩니다.”

해담은 열쇠를 받아 홈을 살폈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복사 기계를 켰다. 기계가 위잉 소리를 내고, 얇은 쇳가루가 작업대에 떨어졌다. 해담은 열쇠 끝을 다듬어 손님에게 건넸다.

손님은 새 열쇠를 손잡이에 끼워 확인했다.

“잘 맞네요. 역시 사장님 손을 거쳐야 해요.”

“문에서도 확인해 보세요. 여기서 맞아도 문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알았어요. 주말에 문이 잠겨서 부르면 바로 와야 해요.”

“출장비는 낮에는 30,000원입니다.”

“돈은 내야죠. 문은 열어야 하고.”

손님은 값을 치르고 돌아갔다. 해담은 문이 닫힌 뒤에야 어깨를 내렸다.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손을 장부로 뻗었는데, 장부 위에 놓인 펜이 눈에 들어왔다. 해담은 펜을 서랍에 넣었다.

오전이 지나자 골목에 오가는 사람이 조금씩 늘었다. 봉미용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가위 소리가 들렸다. 맞은편 탁씨정육에서는 칼과 도마가 부딪쳤다. 해담은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문을 열고 맞았다.

점심 무렵, 늘봄약국 문이 열렸다. 염금옥이 약국에서 나와 골목을 건넜다. 동그란 파마머리 아래로 돋보기가 흔들렸다. 손에 든 작은 봉투를 가슴께에 붙잡고 구씨열쇠 앞에 섰다.

“사장님, 바쁘세요?”

“아뇨. 들어오세요.”

염 여사는 문턱을 넘지 않고 안쪽을 한번 살폈다. 해담은 계산대 위에 놓인 열쇠를 치우고 자리를 비켰다.

“열쇠를 복사하러 오셨어요?”

“아니에요. 이건 약국 열쇠가 아니라 집 열쇠예요. 예전에 맞춰 둔 게 하나 더 필요해서요.”

염 여사는 봉투에서 열쇠를 꺼냈다. 해담은 열쇠를 받아 확인했다. 손잡이에는 작은 흠집이 있었지만 날은 깨끗했다.

“복사하면 되겠네요. 이 열쇠는 어디에 쓰세요?”

“집에요. 약국은 따로 있고요.”

해담은 고개를 끄덕이고 열쇠를 기계에 물렸다. 염 여사는 작업대 옆에서 기다렸다. 쇳가루가 떨어지자 해담은 손등으로 털지 않고 작은 솔로 모아 냈다.

“약사님은 오늘도 괜찮으세요?”

해담의 손이 잠시 멈췄다.

“제가 약사님 상태를 왜 물어봐요?”

“그냥 말해 봤어요. 며칠째 저녁마다 가게에 오시잖아요.”

“염 여사님이 약국을 봐 주시니까 오시는 거겠죠.”

“제가 봐 주는 건 맞죠.”

염 여사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해담은 복사할 열쇠를 꺼내 날을 살폈다. 줄로 모서리를 다듬는 동안 염 여사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종류별 블랭크가 걸려 있었고, 계산대 한쪽에는 장부가 놓여 있었다.

“저번에 오신 날, 저도 약국을 비워 드렸어요.”

“그래서요?”

“해담 사장님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요.”

해담은 손에 든 열쇠를 내려놓았다.

“제가 뭘 궁금해해요?”

염 여사는 입을 열었다가 잠깐 다물었다. 해담은 답을 기다리지 않고 열쇠를 원본과 나란히 놓았다. 두 열쇠가 잘 맞는지 길이와 홈을 비교했다.

“사장님, 약사님은 말이 많은 분이 아니에요.”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묻는 말에는 대답해요.”

“그것도 알고 있고요.”

“개업 날 얘기는 약사님한테 직접 들어요.”

염 여사는 그 말을 하고 봉투를 접어 손에 쥐었다. 해담은 손님에게 건넬 복사 열쇠를 집었다가 그대로 내려놓았다.

“무슨 얘기요?”

“제가 할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면서 궁금해할 거라고 말하셨잖아요.”

“궁금하면 직접 물으시면 되죠.”

해담은 염 여사를 바라봤다. 염 여사는 해담이 대답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손에 든 열쇠를 받아 갔다. 해담은 복사비를 말했다. 염 여사는 값을 계산대에 놓고 영수증을 받았다.

“그 얘기가 뭔지는 약사님한테 들으세요.”

“잠깐만요. 개업 날에 제가 뭘 했는데요?”

“저는 말 안 할게요.”

염 여사는 문을 열고 나갔다. 해담은 손에 들고 있던 솔을 작업대 위에 놓았다. 염 여사가 골목을 건너 늘봄약국으로 돌아가는 동안, 해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염 여사님.”

염 여사는 돌아보지 않고 약국 문을 열었다. 유리문이 닫히자 해담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계산대 위 영수증을 날짜가 보이게 접어 장부 옆에 놓았다. 염 여사가 가져온 열쇠는 이미 손에 돌아가 있었다.

해담은 약국 쪽을 한 번 바라봤다가 블랭크 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을 뻗어 열쇠 하나를 고쳐 걸었다. 그 옆 열쇠도 바로 잡았다.

「말을 꺼낼 거면 끝까지 하지.」

해담은 작업대로 돌아와 남은 쇳가루를 쓸어 모았다. 염 여사의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개업 날. 약사님한테 직접. 해담은 장부의 빈칸을 펴 놓고도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오후에는 은결이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가게 앞을 지났다. 책가방이 등에 닿을 때마다 안쪽에서 딱지들이 바스락거렸다. 은결은 가게 유리문을 들여다보다가 해담과 눈이 마주치자 들어왔다.

“누나, 오늘도 문 열었어요?”

“문 열어 놓고 장사하는데.”

“그럼 열쇠 잃어버려도 괜찮아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은결은 가방 앞주머니를 열었다. 안쪽을 손으로 뒤적이고, 다른 쪽 주머니도 열었다. 해담은 작업대에서 손을 멈췄다.

“또 잃어버렸어?”

“아직은 몰라요.”

“열쇠가 없으면 잃어버린 거지.”

“집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럼 집에 들어가서 찾아.”

은결은 고개를 돌려 가게 밖을 살폈다. 해담은 유리문 너머로 길가를 확인했지만, 열쇠처럼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은결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안쪽을 더 뒤졌다.

“잠깐. 집에 들어가려면 열쇠가 있어야 하잖아.”

“맞아요.”

“그럼 지금은 못 들어가겠네.”

“엄마는 저녁에 와요.”

은결은 딱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해담은 그 딱지를 보았다.

“집 열쇠 대신 그걸 쓰려고?”

“그건 그냥 딱지예요.”

“그건 잘 알고 있네.”

해담은 문가로 나가 은결이 온 길 쪽을 바라봤다. 바닥과 가게 앞을 살폈지만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은결은 뒤따라 나와 책가방 끈을 양손으로 잡았다.

“누나, 저 오늘 열쇠 안 잃어버린 것 같은데요.”

“가방에 없잖아.”

“그러니까 집에 두고 왔을 수도 있어요.”

“집에 두고 왔으면 문 앞에서 못 들어가.”

은결은 잠시 생각하고 가방을 다시 열었다. 가방 안쪽의 작은 주머니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은결이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찾았어요.”

“거기 있었네.”

“안 잃어버렸죠?”

“찾기 전에는 잃어버린 줄 알았지.”

은결은 열쇠를 손바닥에 올렸다가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해담은 그 손을 지켜봤다.

“거기 넣으면 또 못 찾는 거 아니야?”

“아까는 안쪽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보이는 데 넣어.”

은결은 앞주머니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가방 끈에 달린 고리는 비어 있었다. 은결은 열쇠를 손에 든 채 고리를 바라봤다.

“목에 거는 건 싫어요.”

“목에 걸라고 안 했어.”

“전에 엄마가 목에 걸라고 했어요.”

“그럼 가방에 달아.”

은결은 고리와 열쇠를 번갈아 봤다. 해담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은결이 직접 열쇠를 고리에 끼웠다. 잠금 부분을 당겨 확인한 뒤 가방을 멨다.

“이제 안 잃어버리겠죠?”

“고리가 끊어지지 않으면.”

은결은 고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겼다.

“안 끊어져요.”

“그럼 됐어.”

“누나도 열쇠 많이 잃어버려요?”

“나는 열쇠를 만드는 사람이야.”

“만드는 사람이 더 많이 잃어버릴 것 같은데.”

해담은 은결을 바라봤다. 은결은 가방 끈을 고쳐 메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조심해서 가.”

“네. 누나도요.”

“내가 어디 가는데?”

은결은 대답하지 않고 골목을 걸어갔다. 책가방이 등 뒤에서 흔들렸지만 열쇠는 고리에 달린 채였다. 해담은 은결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문 앞에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후가 기울면서 골목에 있던 손님이 줄었다. 해담은 계산대 서랍을 정리하고, 기계 옆에 쌓인 쇳가루를 닦았다. 유리문 밖으로 약국의 불빛이 보였다. 약국 문이 열릴 때마다 안쪽에서 약통이 부딪치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

해담은 장부를 펼쳤다. 오늘 복사한 열쇠의 종류와 금액을 적고, 영수증을 제자리에 놓았다. 놋쇠 열쇠를 적은 줄 아래는 비워 두었다. 아무것도 오지 않았는데 미리 적을 수는 없었다.

시계가 8시를 지나자 봉미용실에서 가위 소리가 잦아들었다. 탁씨정육 쪽에서는 도마를 씻는 소리가 들렸다. 해담은 계산대 아래에서 앞치마 끈을 고쳐 묶었다. 남색 앞치마 위로 허리의 열쇠 꾸러미가 내려앉아 짤랑거렸다.

그동안 서후는 8시 20분에 왔다. 해담은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장부를 덮었다. 문 가까이 놓인 작은 나무판을 꺼내 계산대 아래에 세워 두었다. 앞면에는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으면 됐다. 열쇠를 복사하러 오는 손님을 받을 이유는 없었지만, 해담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오지 않아도 가게는 그대로 열려 있었다. 셔터는 8시 30분까지 올려 두면 됐다.

해담은 나무판을 집어 들었다. 분필을 찾아 『잠시 자리 비움』이라고 썼다. 글씨가 끝난 뒤 판을 문밖으로 가져갔다. 유리문 손잡이에 걸어 놓으면 안쪽에서 글씨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아, 문 옆 벽에 기대 세웠다.

8시 15분이었다.

해담은 가게 안을 한 번 둘러봤다. 작업대에 열쇠가 남아 있지 않았고, 기계 전원도 꺼져 있었다. 앞치마를 벗지 않은 채 계단으로 향했다. 열쇠 꾸러미가 허리에서 부딪쳤다.

철계단 첫 칸에 발을 올리자 가게 안이 내려다보였다. 해담은 셔터 쪽을 확인하고 계속 올라갔다. 2층 문을 열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계단 위쪽, 창 아래에 서서 가게 앞이 보이는 자리에 멈췄다.

가게 앞은 비어 있었다. 건너편 약국 유리문 안으로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이 잠깐 보였다. 해담은 시선을 거두고 난간을 잡았다. 아래에 세워 둔 팻말은 골목 쪽을 향해 있었다.

8시 20분이 되자 약국 문이 열렸다.

서후가 흰 가운 차림으로 나왔다. 흰 가운 안에는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놋쇠 열쇠가 들려 있었다. 서후는 약국 문을 닫고 가게 쪽으로 걸어왔다. 해담은 계단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서후가 팻말 앞에서 멈췄다. 『잠시 자리 비움』을 읽은 뒤, 가게 유리문 안을 바라봤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해담은 보이지 않았다. 서후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들고 있던 열쇠를 내려다보고 팻말 옆에 그대로 섰다.

해담은 계단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서후가 기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막상 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아래로 내려갈 준비가 됐던 발이 멈췄다.

봉미용실 문이 열렸다. 봉숙자가 가게 앞을 쓸던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서후를 보고, 팻말을 보고, 다시 서후를 봤다.

“진 약사, 오늘은 문이 닫혔나?”

“사장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그건 나도 읽었어.”

봉숙자는 팻말 가까이 다가가 글씨를 확인했다. 분필이 조금 번진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문을 잠그지는 않았네.”

“네.”

“그럼 안에 계시다는 뜻인가?”

서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봉숙자는 가게 문 안쪽을 살폈다. 해담은 계단 위에 몸을 숨기려다 그대로 멈췄다. 좁은 계단에서 움직이면 열쇠 꾸러미가 소리를 낼 것 같았다.

“진 약사, 열쇠 복사하러 온 거야?”

“네.”

“늘 그 열쇠?”

“네.”

“필요한 열쇠는 하나면 되는 거 아닌가?”

서후는 손에 든 놋쇠 열쇠를 가볍게 쥐었다.

“복사한 열쇠도 필요합니다.”

봉숙자는 서후를 바라보다가 빗자루를 바닥에 세웠다.

“그럼 사장님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네.”

“약국 문은 누가 봐?”

“염 여사님이 봐 주십니다.”

봉숙자는 더 묻지 않고 빗자루를 들었다. 가게 앞을 한 번 쓸고도 돌아가지 않았다. 서후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봉숙자는 빗자루를 멈춰 들고 해담 쪽을 흘끗 보았다.

“해담아, 팻말은 네가 썼지?”

해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글씨가 네 글씨네.”

봉숙자는 기다렸다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리 비운 사람은 대답할 필요 없지.”

봉숙자는 빗자루를 들고 봉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혀도 안쪽에서 가위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해담은 계단 위 난간을 잡은 채 숨을 고르게 쉬었다.

잠시 뒤 탁씨정육 셔터가 움직였다. 탁종팔이 흰 앞치마를 두른 채 문 앞에 나와 손을 씻었다. 탁종팔은 서후와 팻말을 차례로 봤다. 해담은 서후가 들고 있는 놋쇠 열쇠를 알아봤다.

“오늘도 왔네.”

“네.”

“사장님은 자리 비웠고.”

“네.”

“그럼 기다려.”

“그러겠습니다.”

탁종팔은 물기를 털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뒤, 정육점 문틈으로 탁종팔의 목소리가 들렸다.

“칼은 내일 갈아도 돼.”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탁종팔은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해담은 서후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팻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해담은 계단 위에 계속 서 있었다.

8시 23분이 지나도 서후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든 열쇠를 주머니에 넣지도 않았다. 가게 유리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다. 팻말 옆에 서서 골목을 바라봤다.

8시 25분이 되자 해담은 앞치마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 서후가 기다리는 시간만큼 해담도 계단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봉숙자가 나와서 가게 앞을 지나갔다. 봉숙자는 팻말을 한 번 보고 서후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서 보고 있으면 불편하겠지?”

“아닙니다.”

“그럼 나도 조금 더 있어야겠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필요해서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여기 있지.”

봉숙자는 빗자루를 세워 두고 봉미용실 앞에 섰다. 해담은 이마를 짚었다. 봉 원장이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옆에서 또 기다리고 있었다.

「골목 전체가 대기실이네.」

해담은 입술을 다물었다. 서후는 봉숙자에게 말을 보태지 않았다. 봉숙자는 가위 소리도 내지 않고 가게 앞에 섰다. 탁종팔도 정육점 문 안쪽에서 한 번 더 고개를 내밀었다.

“해담아, 오늘 영업은 끝났어?”

해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탁종팔은 가게 문을 열어 두고 기다렸다. 서후는 여전히 팻말 옆에 있었다. 골목 사람들의 시선이 계단 쪽으로 향했다.

8시 28분에 은결이 골목 아래에서 걸어왔다. 책가방에 달린 열쇠가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부딪쳤다. 은결은 가게 앞에 선 서후를 보고 걸음을 늦췄다. 팻말을 읽고 서후를 올려다봤다.

“약사 삼촌, 누나 2층에 있어요.”

목소리가 골목 안에 울렸다. 봉숙자가 입을 가렸고, 탁종팔은 정육점 문에 손을 얹은 채 멈췄다. 해담은 계단 위에서 눈을 감았다.

서후가 은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까?”

“네. 계단 올라갔어요. 제가 봤어요.”

“알려 줘서 고맙습니다.”

은결은 팻말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자리 비움』을 손가락으로 짚고 글씨를 읽었다.

“누나가 자리를 비웠다고 써 놨는데요.”

“네.”

“2층에 있는데요.”

“네.”

“그럼 자리를 비운 게 아니잖아요.”

은결은 팻말과 서후를 번갈아 봤다. 서후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은결은 책가방 고리에 달린 열쇠를 만져 확인했다.

“약사 삼촌은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네.”

“언제까지요?”

“사장님이 오실 때까지요.”

은결은 팻말 앞에 쪼그려 앉아 바닥에 떨어진 분필 가루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해담은 계단을 내려가 은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서후를 피해 나온 게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은결아, 그만 가.”

해담은 계단 위에서 말했다. 은결이 고개를 들었다. 서후도 계단 쪽을 봤다. 봉숙자가 빗자루를 들고 몸을 돌렸다. 탁종팔은 아무 말 없이 가게 문턱에 서 있었다.

“누나, 여기 있었네요.”

“그건 아까부터 알고 있었잖아.”

“약사 삼촌한테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은결은 입을 다물었다. 가방 끈을 한쪽 어깨에 고쳐 걸었다.

“죄송해요.”

“됐어. 집에 가.”

“네.”

은결은 서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약사 삼촌, 누나 내려올 거예요.”

해담은 계단 난간을 잡았다. 은결은 더 말하지 않고 골목을 걸어갔다. 책가방에 달린 열쇠가 몇 번 흔들렸지만 고리에서 빠지지 않았다.

8시 30분이 됐다. 해담은 철계단을 내려왔다. 앞치마 허리의 열쇠 꾸러미가 계단을 밟을 때마다 짤랑거렸다. 계단 끝에 발을 내딛자 봉숙자가 빗자루를 들고 비켜섰다. 탁종팔은 정육점 문턱에서 해담을 바라봤다.

서후는 팻말 옆에 그대로 서 있었다. 손에는 놋쇠 열쇠가 들려 있었다. 해담은 팻말을 벽에서 떼어 가게 안쪽으로 돌려놓았다. 그다음 서후를 마주 봤다.

“왜 기다려요?”

“기다리는 거 잘합니다.”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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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9화. 열쇠 일괄 양도

    셔터를 내린 지 10분이 지났다. 해담은 가게 앞에 서서 허리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손으로 눌렀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멎었다.길 건너 늘봄약국 문이 열렸다. 서후가 밖으로 나왔다. 흰 가운 안에는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두 손으로 유리병을 받쳐 들었다.“8시 40분입니다.”“알아요.”해담은 약국 시계를 보지 않았다. 7년 동안 늘 8시 40분에 길을 건넜다. 오늘은 그 자리에 서서 약국에서 나오는 사람을 기다렸다.서후는 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 병 안에는 놋쇠 열쇠가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유리병을 기울이지 않아도 열쇠 머리마다 새긴 작은 홈이 보였다.해담은 병을 바라봤다.“다 찼네요.”“네. 가득 찼습니다.”“뚜껑 닫을 때 부딪히는 소리가 났겠어요.”“병을 들면 났습니다.”“그걸 매일 들고 다녔어요?”“약국 서랍에 두었습니다.”“매일 복사한 열쇠도요?”“네.”해담은 두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쇳가루가 묻은 손끝이 남색 천에 닿았다.서후는 병을 내밀었다. 해담은 양손으로 받아 들었다. 유리가 차가웠다. 안에서 열쇠들이 작게 부딪혔다.“제 약국 뒷문 열쇠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해담 씨가 깎았습니다.”해담은 병을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 서로 다른 날 깎은 열쇠들이 모여 있었다. 날의 높이가 조금씩 달랐다. 열쇠 머리에 난 ㄱ자 홈도 하나씩 보였다.“제가 깎은 걸 어떻게 알아요?”“해담 씨가 처음 깎은 열쇠라서요.”“복사한 열쇠도 전부 제가 깎았다고요?”“네.”“약사님이 같은 열쇠를 가져올 때마다요?”“그렇습니다.”“하나도 안 빠지고?”“하나도 빠짐없이요.”해담은 병을 다시 내려다봤다. 유리 너머로 열쇠들이 겹쳤다. 어떤 것은 머리 부분이 반들거렸고, 어떤 것은 옆면에 쇳가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깎은 흔적이 서로 달랐다.“이걸 다 모아 놓고 뭘 하려고 했어요?”“해담 씨께 드리려고 했습니다.”“왜요?”“해담 씨가 깎은 열쇠니까요.”“그건 이유가 아니잖아요.”“제게 중요했습니다.”해담은 입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8화. 부재 시 옆집 문의

    “새 공책을 사 오면 첫 줄은 제가 쓸 거예요.”해담은 펜을 계산대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서후는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깜이는 공책 위에서 내려와 난간 옆을 지나갔다. 해담은 고양이가 떠난 뒤 공책을 덮어 품에 안았다.“첫 줄에 뭘 쓸 겁니까?”“그건 공책을 보고 정할 거예요.”“알겠습니다.”“약사님은 뭘 쓸 건데요?”“해담 씨가 정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또 기다려요?”“네.”해담은 대답 대신 공책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서후는 계단 아래에 남아 있었다. 철계단을 오르는 동안 공책 모서리가 앞치마에 닿았다.11월 20일 토요일 아침, 해담은 가게 문 옆에 안내문을 붙였다. 종이 위에는 『부재 시 길 건너로 문의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늘봄약국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길 건너에 있는 가게는 하나뿐이었다.해담은 테이프가 들뜨지 않도록 네 귀퉁이를 눌렀다. 문을 닫고 밖에 나와 살펴보니 안내문이 유리문에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약국 문에도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부재 시 길 건너로 문의하세요』. 서후가 약국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흰 가운은 없었고 남색 니트 위에 겉옷을 걸쳤다. 한 손에는 종이가 든 봉투가 있었다.해담은 약국 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었다.“똑같네요.”“문구를 맞추는 편이 알아보기 쉽습니다.”“누가 먼저 붙였어요?”“해담 씨가 먼저 붙이셨습니다.”“제가 붙이는 걸 보셨어요?”“약국 안에서 봤습니다.”서후가 문 옆의 안내문을 한 번 확인했다. 봉투를 든 손은 내려가 있었다.“이쪽은 오늘 붙이실 겁니까?”“네. 붙일 종이도 가지고 오셨나 봐요.”“그렇습니다.”“약국 문에 붙이면 되겠네요.”“그렇게 하겠습니다.”서후는 약국 유리문에 종이를 대고 테이프를 눌렀다. 해담은 구씨열쇠 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두 안내문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했다.두레슈퍼 평상에 앉아 있던 엄분이가 안경을 코 위로 올렸다.“이제 한쪽 문이 닫히면 건너가면 되겠네.”“문 닫고 어디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7화. 장부 마감

    해담은 공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서후는 철계단 가운데쯤에 앉아 공책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단 한 칸이 비어 있었다.해담은 표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모서리가 닳아 종이 속이 드러난 곳도 있었고, 표지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공책을 펼치자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계단 아래 가게에서는 셔터가 내려간 뒤의 쇳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이게 그 출근부예요?”“네.”“매일 적으셨다고 하셨죠.”“매일은 아니에요.”서후가 공책에서 해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빠진 날이 있습니다.”“몸이 안 좋으셨을 때요?”“그런 날도 있고요. 설이나 추석 당일에는 약국도 쉬었어요. 아빠가 가게를 넘겨주고 나서도 명절 당일만큼은 문을 닫으라고 했어요.”해담은 공책을 조금 돌려 서후가 보기 편하게 했다. 첫 장에는 날짜 대신 짧은 작대기들이 줄을 맞춰 그어져 있었다. 볼펜으로 그은 것도 있고, 연필 자국도 있었다. 중간에는 진하게 눌러 쓴 흔적이 있었다.“하나씩 그은 거예요?”“피로회복제 한 병 사러 갈 때마다요. 가게 셔터 내리고, 8시 40분에 건너가서 한 병 샀어요. 돌아오면 여기다 작대기 하나.”“2,523개가 있습니까?”“네.”“직접 세어 보셨습니까?”“세어 봤죠. 몇 번이나요.”“제가 봐도 됩니까?”“보여 드리려고 가져왔어요.”서후는 공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해담은 그걸 보고 한쪽 입술을 살짝 올렸다.“읽으셔도 돼요. 페이지 넘기는 것도요.”“제가 넘기겠습니다.”“그럼 넘기세요. 종이가 약해서 조심해야 해요.”“알겠습니다.”서후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모서리를 잡아 천천히 넘겼다. 작대기들은 줄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끝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페이지도 있었고, 중간에 듬성듬성한 곳도 있었다. 해담은 서후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무릎 위 공책을 잡고 있었다.“날짜를 쓰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그냥 작대기만 그었어요. 날짜를 쓰면 장부가 되잖아요.”“출근부라고 부르셨습니다.”“가게 출근부랑은 달라요. 그건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6화. 간판 상담

    “저 간판, 내가 손으로 쓴 거다.”아빠의 말이 끝난 뒤에도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해담은 사진 아래쪽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사진 속 간판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지금 구씨열쇠에 걸린 간판도 그랬다. 글자 획이 조금 굵고, ‘열’의 마지막 획은 오른쪽으로 짧게 올라가 있었다.“아빠가 직접 쓴 거예요?”“가게 열 때 급하게 썼다. 간판집에 맡길 돈도 아꼈고.”“그 글씨가 지금 간판까지 온 거네요.”“그렇지.”구판길은 사진을 해담에게 돌려줬다. 사진 모서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담은 아래를 받쳤다. 간판 아래에 선 아빠는 지금보다 얼굴이 덜 탔고, 앞치마도 새것처럼 보였다.“아빠는 저때도 무뚝뚝했어요?”“사진에 말투가 나오냐?”“안 나오니까 물어보는 거죠.”“그때도 지금도 똑같다.”봉숙자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똑똑히 봤어. 구 사장님은 가게 열 때도 말이 별로 없었어.”“봉 원장님이 그때부터 골목에 계셨어요?”“내가 미용실을 하기 전에도 이 골목에 살았지. 모르는 게 없어.”“저 사진은 아빠가 몇 살 때예요?”“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네 아빠한테 물어.”“사진 속 아빠가 대답을 안 하시잖아요.”구판길이 해담을 보았다.“가게 문 열던 때니까 지금보다 젊었지.”“그건 저도 알아요.”“그럼 됐다.”사진을 다시 장부 옆에 놓은 뒤에도 해담은 간판 글씨를 몇 번 더 봤다. 아빠 손글씨가 원래부터 간판에 새겨진 줄 알았다. 글씨를 본떠 간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린 뒤에도 해담은 계산대 안쪽에서 사진을 펼쳐 놓았다. 사진 속 간판과 유리문 밖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사진 속 글자와 현재 간판의 글자 모양은 일치했다. 검은 칠이 벗겨진 모서리와 오른쪽 아래에 붙은 작은 글씨만 달랐다.해담은 사진을 접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10월 25일 오전,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모양이 맞는 열쇠를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5화. 금고 개봉 행사

    “다이얼은 제가 돌릴게요. 손대지 마세요.”해담은 옛 솔매우체국 안쪽에 놓인 금고 앞에 섰다.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찼다. 가을 장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모여들어 금고 주위에 둥글게 섰다. 문밖에서는 상인들이 장터 물건을 소개하는 소리와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봉숙자가 금고 옆에서 손바닥을 내저었다.“다들 조금만 뒤로 물러서요. 해담이가 돌릴 자리가 있어야지.”“저 정도면 넉넉한데.”탁종팔이 말했다. 봉 원장이 탁 사장을 돌아봤다.“사장님은 더 물러서세요. 나중에 금고 열리면 제일 먼저 안에 들어가실 것 같으니까.”“내가 왜 들어가.”“사진에 젊은 모습이 있으면 가져가실 수도 있잖아요.”“사진은 안 가져가.”탁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도 금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구판길은 사람들 뒤에 서서 금고를 바라봤다. 햇볕에 탄 얼굴에 낚시 조끼를 걸쳤고, 손에는 오래된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해담은 아빠를 보았다.“아빠, 안쪽으로 더 들어오세요. 문 열리면 잘 안 보일 수도 있어요.”“여기서도 보인다.”“다들 보러 왔는데 아빠만 안 보이면 안 되잖아요.”구판길은 대꾸하지 않고 사람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에 있던 진서후가 해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해담 씨.”“서후 씨. 오셨어요?”“네. 아버지는 퇴원하셨습니다.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다행이에요.”“오늘 장터에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도 사진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해담은 서후의 얼굴을 살폈다. 왼쪽 눈 아래 작은 점이 그대로 보였다. 서후는 약국에서 입던 흰 가운 대신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해담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금고로 몸을 돌렸다.“그럼 잘 열어야겠네요.”“해담 씨가 여시면 됩니다.”“그 말은 부담되는데요.”“제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해담은 다이얼을 내려다봤다.「말이 늘 정확해.」금고는 무릎 높이보다 조금 큰 철제 금고였다. 표면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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