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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열지 마시오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3 23:36:24

서후는 젖은 놋쇠 열쇠를 작업대 위에 놓았다.

해담은 걸레를 내려놓고 열쇠를 집었다. 물기를 닦아 내자 손때 묻은 표면이 드러났다.

“비 오는 날에도 복사할 열쇠는 안 젖게 들고 오시네요.”

“손으로 감싸고 왔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

“필요한 열쇠입니다.”

해담은 대답하지 않고 열쇠를 살폈다. 서후는 늘 그 열쇠를 가져왔다. 놋쇠 손잡이에는 잔흠집이 있었고 날은 닳아 있었다. 해담은 맞는 블랭크를 골라 기계에 물렸다.

기계가 위잉 소리를 냈다. 서후는 계산대 앞에서 기다렸다. 해담은 기계의 손잡이를 움직여 열쇠의 홈을 깎았다. 쇳가루가 작업대 위에 얇게 쌓였다.

복사가 끝나자 해담은 줄로 날을 다듬었다. 원본과 나란히 놓고 홈을 확인한 뒤 서후에게 건넸다.

서후는 새 1,000원짜리 지폐 3장을 계산대에 놓았다. 해담은 돈을 서랍에 넣고 영수증을 내밀었다.

“약사님은 정말 비가 와도 오네요.”

“사장님이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기억은 하시네요.”

“네.”

“그런데도 오고요.”

“열쇠를 복사해야 합니다.”

해담은 영수증을 들고 있다가 손가락을 접었다. 서후는 영수증을 반으로 정확히 접어 지갑에 넣었다.

“그 열쇠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네.”

“어디에 쓰는지는 여전히 못 말하고요?”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해담은 새 열쇠를 다시 살폈다. 홈은 원본과 맞았다.

“그럼 다음에도 이걸 가져오세요.”

“그러겠습니다.”

서후는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갔다. 해담은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작업대에 남은 쇳가루를 쓸어 모아 통에 털어 넣었다.

셔터를 내릴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해담은 걸레를 빨아 널고, 작업대 위의 공구를 제자리에 놓았다.

아침이 되자 해담은 셔터를 올리고 가게 문을 열었다. 빗물은 밤새 그쳤지만 골목 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다. 해담은 문턱을 쓸고 작업대에 앉아 장부를 펼쳤다.

장부에는 어제의 거래가 적혀 있었다. 해담은 잉크가 번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책을 덮었다. 벽의 열쇠 블랭크 판에서 한쪽으로 기운 열쇠를 바로 걸었다.

“오늘은 안 기울었네.”

미용실 문을 열던 봉숙자가 말했다.

“어제도 안 기울었어요.”

“그런데 어제 만졌잖아.”

“먼지가 묻어서 닦았어요.”

“열쇠에 먼지가 묻었는데 네가 닦았는지, 마음에 먼지가 묻었는지는 내가 모르겠네.”

“원장님은 가위나 닦으세요.”

“닦고 있어. 네 말도 같이 듣고.”

봉숙자는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해담은 열쇠판을 한 번 더 살폈다가 작업대에 앉았다.

오전에는 손님이 몇 명 왔다. 열쇠를 복사하고, 자물쇠가 뻑뻑하다는 말을 듣고, 장부에 거래를 적었다. 해담은 주문을 받은 대로 확인하고 값을 받았다. 한 손님은 복사한 열쇠를 주머니에 넣기 전에 원본과 번갈아 맞춰 보았다.

“이제 잘 맞겠죠?”

“문에 넣어 보셔야 알아요. 안 맞으면 가져오세요.”

“사장님이 직접 깎으셨으니 맞을 겁니다.”

“맞게 깎으려고 일하는 거죠.”

손님은 웃고 나갔다. 해담은 기계에 남은 쇳가루를 털었다.

점심 무렵, 셔터 밖에서 열쇠 꾸러미가 짤랑거렸다. 해담이 고개를 들자 구판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햇볕에 탄 얼굴에 낚시 모자를 썼고, 어깨에는 낚시 조끼를 걸쳤다. 한 손에는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아빠, 언제 왔어요?”

“방금.”

“낚시는요?”

“끝났지.”

판길은 낚싯대를 문 옆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왔다. 낚시 조끼 주머니에서 작은 통을 꺼내 작업대 한쪽에 놓았다. 통 안에서 물이 흔들렸다.

“뭐예요?”

“물고기.”

“그건 알아요. 가져가라고요?”

“네가 먹을 거면 가져가고, 싫으면 엄마한테 줘.”

“엄마가 손질하라고 하겠죠.”

“그럼 내가 하면 되지.”

판길은 낚싯대를 다시 문 쪽으로 밀어 세웠다. 해담은 통 안을 들여다봤다. 물고기 몇 마리가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많이 잡았어요?”

“먹을 만큼.”

“아빠 기준으로요?”

“내가 잡은 건 내가 먹을 만큼이지.”

판길은 통의 뚜껑을 덮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왼쪽 벽에는 열쇠 블랭크가 걸렸고 가운데 기계 두 대가 놓여 있었다. 판길은 예전처럼 작업대 끝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약사 양반이 매일 온다며?”

해담은 장부를 덮었다.

“누가 그래요?”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가게에 오지도 않았는데요.”

“내가 전화했다.”

“그런 얘기를 왜 해요?”

“궁금하니까.”

판길은 낚시 모자를 벗어 작업대에 놓았다. 머리카락이 모자에 눌려 옆으로 뻗어 있었다. 그는 해담을 봤다.

“매일 8시 20분에 온다더라.”

“네.”

“같은 열쇠를 복사하고.”

해담은 공구를 정리하는 척했다.

“네.”

“넌 매일 받아 주고.”

“손님이니까요.”

“그 말이 편하냐?”

“제가 받아도 되는 손님이면 받는 거죠.”

판길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해담은 기계 옆에 놓인 줄을 골라 제자리에 걸었다.

“열쇠는 잘 깎고 있냐?”

“늘 하던 대로요.”

“그럼 한 번 해 보자.”

“뭘요?”

판길은 낚시 조끼 주머니를 뒤져 오래된 열쇠 하나를 꺼냈다. 손잡이에는 긁힌 자국이 있었고 날에는 먼지가 끼어 있었다.

“이걸로 복사해 봐.”

“이게 뭐예요?”

“내 자물쇠 열쇠.”

“어디 자물쇠요?”

“집에 있는 공구함.”

해담은 열쇠를 받아 들었다. 손잡이는 닳았지만 날은 크게 휘지 않았다.

“아빠 열쇠면 아빠가 깎아야죠.”

“내가 깎으면 시합이 안 되지.”

“무슨 시합이에요?”

“네가 하나 깎고, 내가 하나 깎는다. 원본에 더 가까운 쪽이 이기는 거야.”

“아빠가 왜 가게에 와서 시합을 해요?”

“오랜만이잖아.”

판길은 선반 위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작업대 옆에 섰다. 해담은 아버지가 가져온 열쇠를 다시 살폈다. 아빠가 가게를 떠난 뒤로, 둘이 나란히 기계 앞에 선 적은 거의 없었다.

“손님도 없으니 해 보자.”

“아빠는 손님이 아니잖아요.”

“오늘은 손님이다.”

“돈도 내요?”

“이기면 내지.”

“지면요?”

“그래도 낸다.”

“그럼 시합할 이유가 없네요.”

“이긴 사람이 먼저 골라.”

“뭘 골라요?”

판길은 작업대 위의 통을 가리켰다.

“저거.”

“물고기요?”

“네가 먹을 거면 네가 골라.”

“저는 물고기보다 아빠가 이기는 게 더 싫은데요.”

“그럼 열심히 해.”

해담은 낡은 열쇠와 알맞은 블랭크를 작업대에 놓았다. 판길은 손을 씻고 소매를 걷었다. 손등은 햇볕에 그을렸고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아빠가 먼저 할래요?”

“네가 먼저 해.”

“왜요?”

“네 가게니까.”

해담은 원본의 날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손끝에 작은 걸림이 느껴졌다. 그 부분을 눈으로 살핀 뒤 블랭크를 기계에 물렸다.

“그 열쇠가 오래됐네요.”

“공구함도 오래됐지.”

“자물쇠는 열려요?”

“잘 열리니까 아직 쓰는 거다.”

“오래됐는데요.”

“오래됐다고 안 열리는 건 아니야.”

판길은 작업대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해담은 기계를 켰다. 위잉 소리가 났다. 해담은 손잡이를 천천히 움직이며 원본의 날을 따라갔다. 한쪽 홈이 얕아지지 않게 기계의 속도를 조절했다.

기계가 멈추자 해담은 복사한 열쇠를 빼냈다. 줄로 날을 다듬고 원본과 나란히 놓았다. 아버지는 몸을 숙여 둘을 들여다봤다.

“여기는 조금 덜 깎였네.”

“깎인 게 아니라 원본이 닳은 거예요.”

“그럼 원본대로 맞춰야지.”

“맞춰 놨어요.”

판길은 대꾸하지 않고 열쇠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으로 날을 훑어 보더니 작업대에 내려놨다.

“네 차례다.”

판길은 기계 앞에 섰다. 해담은 작업대 옆으로 자리를 비켜 줬다. 판길은 익숙하게 블랭크를 골랐다. 기계에 원본을 끼우고 복사할 열쇠를 맞췄다. 손가락으로 고정 나사를 조이는 동작이 해담에게 익숙했다.

“그 손 아직 안 굳었네요.”

“네가 그동안 잘 봤잖아.”

“옆에 서 있기만 했는데요.”

“옆에 서서 보는 것도 일이다.”

기계가 켜졌다. 판길은 해담보다 천천히 손잡이를 움직였다. 기계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해담은 아버지의 손을 바라봤다. 엄지에 굳은살이 붙은 자리와 손등의 옅은 흉터가 그대로였다.

판길은 기계를 멈추고 복사한 열쇠를 꺼냈다. 줄로 날을 다듬은 다음 원본 옆에 놓았다.

“자.”

해담은 두 열쇠를 나란히 맞춰 봤다. 판길의 것은 깊은 홈 하나가 원본보다 조금 더 들어가 있었다. 해담은 자기 열쇠를 옆으로 밀고 아버지의 것을 확인했다.

“아빠 건 여기 깊어요.”

“원본이 닳았다고 했잖아.”

“닳은 부분을 보고 깎아야죠.”

“그래서 네가 이겼다고?”

“아직 안 해 봤잖아요.”

해담은 작업대 밑에서 시험용 자물쇠를 꺼냈다. 자물쇠의 입구에 원본을 꽂아 돌리자 안에서 걸쇠가 움직였다. 원본을 뺀 뒤 해담이 만든 열쇠를 넣었다. 손잡이가 끝까지 돌아갔다.

판길은 해담이 만든 열쇠를 받아 자물쇠에 꽂았다. 열쇠는 조금 걸리다가 돌아갔다. 판길은 빼서 손잡이와 날을 살폈다.

“네가 이겼네.”

“그냥 제가 더 잘 맞췄어요.”

“그게 이긴 거야.”

판길은 열쇠를 작업대에 놓았다. 해담은 두 열쇠를 다시 원본과 맞춰 보고 자물쇠를 닫았다.

“아빠 것도 잘 쓸 수 있어요.”

“잘 쓰는 거랑 더 잘 깎는 건 다르지.”

“아빠 열쇠가 더 깊게 들어가긴 했어요.”

“그럼 다음엔 덜 깎으면 되지.”

“다음에도 할 거예요?”

“네가 하면.”

판길은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았다. 해담은 물고기 통을 작업대 아래로 옮겼다.

“엄마한테 줄 거면 지금 가져가세요.”

“내가 들고 가면 된다.”

“가게에 두고 잊지 말고요.”

“물고기를 왜 잊어.”

“아빠는 낚싯대도 가게 앞에 두고 들어왔잖아요.”

판길은 문 쪽을 봤다. 세워 둔 낚싯대가 보였다.

“그건 안 잊었다.”

“그럼 챙겨 가세요.”

판길은 낚싯대를 들고 가게 안쪽을 다시 둘러봤다. 작업대는 정리되어 있었고 장부는 계산대 가까이에 놓여 있었다. 선반 위에는 아버지의 공구함이 있었다. 낡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앞면에 『열지 마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판길은 공구함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해담이 그쪽을 봤다.

“그건 왜 아직 여기 있어요?”

“둘 데가 없어서.”

“집에 가져가면 되잖아요.”

“가게 물건이야.”

“아빠 물건이잖아요.”

“가게에서 쓰던 거니까 가게 물건이지.”

해담은 선반 아래쪽을 봤다. 공구함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해담은 한 번도 자물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게를 떠난 뒤에도 그대로 뒀다.

“열쇠는 어디 있어요?”

“없다.”

“그럼 어떻게 열어요?”

“열지 말라고 써 놨잖아.”

판길은 낚싯대를 들고 문 쪽으로 갔다. 해담은 계산대 뒤에 서 있었다. 판길은 문턱에서 멈추고, 손에 든 낚싯대를 반대쪽 손으로 옮겼다.

“아빠.”

“왜.”

“그 공구함은 진짜 열면 안 돼요?”

판길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가게 안을 돌아보는 눈길이 공구함에 닿았다. 해담은 계산대 위의 펜을 가지런히 놓았다.

판길은 문을 나서다 돌아봤다.

“그 공구함, 네가 진짜로 문 닫을 생각 들 때 열어라.”

(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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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간판, 내가 손으로 쓴 거다.”아빠의 말이 끝난 뒤에도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해담은 사진 아래쪽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사진 속 간판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지금 구씨열쇠에 걸린 간판도 그랬다. 글자 획이 조금 굵고, ‘열’의 마지막 획은 오른쪽으로 짧게 올라가 있었다.“아빠가 직접 쓴 거예요?”“가게 열 때 급하게 썼다. 간판집에 맡길 돈도 아꼈고.”“그 글씨가 지금 간판까지 온 거네요.”“그렇지.”구판길은 사진을 해담에게 돌려줬다. 사진 모서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담은 아래를 받쳤다. 간판 아래에 선 아빠는 지금보다 얼굴이 덜 탔고, 앞치마도 새것처럼 보였다.“아빠는 저때도 무뚝뚝했어요?”“사진에 말투가 나오냐?”“안 나오니까 물어보는 거죠.”“그때도 지금도 똑같다.”봉숙자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똑똑히 봤어. 구 사장님은 가게 열 때도 말이 별로 없었어.”“봉 원장님이 그때부터 골목에 계셨어요?”“내가 미용실을 하기 전에도 이 골목에 살았지. 모르는 게 없어.”“저 사진은 아빠가 몇 살 때예요?”“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네 아빠한테 물어.”“사진 속 아빠가 대답을 안 하시잖아요.”구판길이 해담을 보았다.“가게 문 열던 때니까 지금보다 젊었지.”“그건 저도 알아요.”“그럼 됐다.”사진을 다시 장부 옆에 놓은 뒤에도 해담은 간판 글씨를 몇 번 더 봤다. 아빠 손글씨가 원래부터 간판에 새겨진 줄 알았다. 글씨를 본떠 간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린 뒤에도 해담은 계산대 안쪽에서 사진을 펼쳐 놓았다. 사진 속 간판과 유리문 밖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사진 속 글자와 현재 간판의 글자 모양은 일치했다. 검은 칠이 벗겨진 모서리와 오른쪽 아래에 붙은 작은 글씨만 달랐다.해담은 사진을 접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10월 25일 오전,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모양이 맞는 열쇠를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5화. 금고 개봉 행사

    “다이얼은 제가 돌릴게요. 손대지 마세요.”해담은 옛 솔매우체국 안쪽에 놓인 금고 앞에 섰다.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찼다. 가을 장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모여들어 금고 주위에 둥글게 섰다. 문밖에서는 상인들이 장터 물건을 소개하는 소리와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봉숙자가 금고 옆에서 손바닥을 내저었다.“다들 조금만 뒤로 물러서요. 해담이가 돌릴 자리가 있어야지.”“저 정도면 넉넉한데.”탁종팔이 말했다. 봉 원장이 탁 사장을 돌아봤다.“사장님은 더 물러서세요. 나중에 금고 열리면 제일 먼저 안에 들어가실 것 같으니까.”“내가 왜 들어가.”“사진에 젊은 모습이 있으면 가져가실 수도 있잖아요.”“사진은 안 가져가.”탁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도 금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구판길은 사람들 뒤에 서서 금고를 바라봤다. 햇볕에 탄 얼굴에 낚시 조끼를 걸쳤고, 손에는 오래된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해담은 아빠를 보았다.“아빠, 안쪽으로 더 들어오세요. 문 열리면 잘 안 보일 수도 있어요.”“여기서도 보인다.”“다들 보러 왔는데 아빠만 안 보이면 안 되잖아요.”구판길은 대꾸하지 않고 사람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에 있던 진서후가 해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해담 씨.”“서후 씨. 오셨어요?”“네. 아버지는 퇴원하셨습니다.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다행이에요.”“오늘 장터에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도 사진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해담은 서후의 얼굴을 살폈다. 왼쪽 눈 아래 작은 점이 그대로 보였다. 서후는 약국에서 입던 흰 가운 대신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해담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금고로 몸을 돌렸다.“그럼 잘 열어야겠네요.”“해담 씨가 여시면 됩니다.”“그 말은 부담되는데요.”“제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해담은 다이얼을 내려다봤다.「말이 늘 정확해.」금고는 무릎 높이보다 조금 큰 철제 금고였다. 표면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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