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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분실물 보관함

Penulis: Jino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3 23:36:31

은결이 책가방을 가게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를 뒤집었다. 손바닥에 딱지 두 장과 지우개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누나, 열쇠가 없어요.”

해담은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은결은 가방 앞주머니부터 옆주머니까지 다시 뒤졌다. 지퍼를 열고 안에 든 공책과 필통도 하나씩 꺼냈다. 열쇠는 나오지 않았다.

“집에는 들어갔어?”

“아직요. 엄마가 오늘도 야간 근무라서 제가 먼저 들어가야 돼요.”

“가방에 넣은 건 기억나?”

은결은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나올 때는 있었어요. 문 앞에서 꺼내려니까 없었어요.”

해담이 가게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보았다. 방금 정리한 칸 하나가 삐뚤어져 있었다. 해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판을 바로잡았다. 그러고는 작업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이번 달 들어 3번째네.”

“이번엔 진짜 주머니에 넣었는데요.”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어.”

“그때는 책가방 안에 넣었어요.”

“그게 달라?”

은결이 대답 대신 가방을 들었다. 가방 끈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해담은 유리문을 열고 골목을 살폈다.

“어디부터 왔어?”

“큰길에서 두레슈퍼 앞 지나서 여기까지요.”

“그럼 그 길을 다시 보자. 네가 먼저 생각나는 데부터 말해.”

은결은 학교에서 나와 걸었던 길을 차례로 짚었다. 골목 입구, 두레슈퍼, 봉미용실 앞. 자기가 걸음을 멈춘 곳이 어디였는지도 떠올리려 했다. 해담은 가게 문에 『잠시 자리 비웁니다』라고 적은 종이를 걸었다. 문을 닫지는 않았다. 골목에서 안쪽이 보이도록 유리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두 사람은 골목 입구 쪽으로 걸었다. 은결은 한 손으로 가방을 들고 다른 손으로 바닥을 훑었다. 해담은 벽 쪽과 가게 문 앞을 살폈다.

“열쇠고리 같은 건 달았어?”

“그냥 열쇠만요.”

“가방 안에 달아 두면 덜 빠져.”

“그럼 애들이 놀려요.”

“뭘 놀려?”

“목에 열쇠 걸고 다니는 거요. 그러면 꼭 놀려요.”

해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잃어버려서 집에 못 들어가는 게 더 싫지 않아?”

“그건 엄마한테 혼나요.”

“놀림받는 건 괜찮고?”

“싫어요.”

은결은 목소리를 낮췄다. 해담은 더 권하지 않았다. 열쇠를 목에 걸지 않겠다는 마음은 은결이 정할 일이었다.

두레슈퍼 앞 평상에 엄분이가 앉아 있었다. 검은 고양이 깜이는 평상 아래로 들어가 앞발을 핥았다. 엄분이는 두 사람을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를 옆에 내려놓았다.

“또 열쇠냐?”

“이번 달 들어 3번째예요.”

“담이야, 네가 열쇠집을 하니까 애들 열쇠가 다 너한테 모이나 보다.”

“그럴 리가요.”

“그럼 누가 잃어버렸는지 내가 다 세어 볼까?”

“할머니가 세시면 제가 장부를 만들어야 해요.”

엄분이가 코웃음을 쳤다. 은결은 평상 밑을 내려다봤다. 깜이가 꼬리를 말고 앉아 있었다.

“깜이 밑에 열쇠 없어요?”

“고양이 밑에는 고양이밖에 없지.”

엄분이가 평상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깜이는 몸을 일으키더니 평상 아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은결이 허리를 숙였지만 바닥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레시 같은 거 없어요?”

“휴대전화는 있어요.”

은결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화면이 켜지지 않았다.

“배터리 다 썼어?”

“아까 학교에서 꺼졌어요.”

“그럼 내 걸로 비추자.”

해담이 휴대전화를 켜서 평상 밑을 비췄다. 깜이의 눈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깜이는 귀를 움직이고는 평상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없네.”

“깜이가 숨겼나?”

“고양이가 열쇠를 어디다 숨겨.”

엄분이가 말했다.

“그럼 고양이가 깔고 앉았을 수도 있잖아요.”

은결의 말에 해담이 바닥을 한 번 더 비췄다. 깜이는 앞발을 가슴 아래로 접었다. 평상 밑에는 먼지와 마른 잎만 있었다.

“일단 네가 온 길을 더 보자. 집 앞까지 갔다가 없으면 다시 돌아오자.”

은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담은 두레슈퍼 앞을 벗어나 봉미용실 쪽으로 걸었다. 바닥 틈과 가게 문 앞을 차례로 살폈다. 열쇠가 떨어졌다면 쇠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골목에는 가게마다 기계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은결은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봉미용실 문이 열리고 봉숙자가 밖으로 나왔다. 머리에 보라색 브릿지가 섞여 있었다. 손에는 빗이 들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둘이 바닥만 보고 다니게.”

“은결이가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또?”

“이번 달 3번째예요.”

“지난번엔 엄 할머니 평상 밑에서 찾았잖아.”

“그건 두 번째였어요.”

“그러니까 또 평상이잖아.”

봉숙자는 평상 쪽을 돌아보았다. 엄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깜이의 등을 쓸었다.

“이번엔 집에 가는 길에 잃어버렸대요.”

“그럼 가방을 봐야지. 주머니부터 다 뒤졌어?”

“다 뒤졌어요.”

“가방 끈도 봐. 물건 빠지는 데가 따로 있더라.”

은결이 가방을 돌려 보았다. 해담은 가방 안을 다시 살펴보았다. 공책이 한쪽에 쏠려 있었고 필통이 안쪽에 끼어 있었다. 주머니 바닥은 비어 있었다.

“가방에 구멍은 없네.”

“그럼 중간에 떨어졌나 봐요.”

“아까 두레슈퍼 앞에서 가방을 내려놨어?”

“아니요.”

“학교에서 나온 다음에 누가 불렀어?”

“친구가 딱지 보여 줬어요.”

은결은 가방을 열어 안쪽을 살폈다. 딱지 두 장이 공책 사이에서 나왔다.

“그때 가방을 열었어?”

“네. 딱지 꺼내려고요.”

“어디서?”

“큰길 쪽에서요. 골목 들어오기 전에.”

해담은 골목 입구 방향을 바라봤다.

“그럼 그쪽부터 다시 보자.”

은결이 가방을 메려 했다. 가방이 어깨에서 미끄러지며 한쪽 끈이 헐겁게 늘어졌다. 해담이 손을 뻗기 전에 서후가 골목 건너편에서 다가왔다. 약국 흰 가운 위로 남색 니트가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은결이가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서후는 은결의 가방을 보았다. 끈과 가방 몸체가 만나는 부분에 달린 작은 고리가 벌어져 있었다. 고리 한쪽이 가방 천에서 빠져나올 듯했다.

“가방 고리가 느슨합니다.”

은결이 어깨를 움츠렸다.

“열쇠랑 상관없어요.”

“열쇠를 여기 달았습니까?”

“아니요. 그냥 주머니에 넣어요.”

“그러면 직접 빠진 건 아닐 수 있겠네요.”

해담이 서후를 보았다.

“뭘 봤어요?”

“가방을 열 때 고리가 움직였습니다. 이대로 두면 가방 끈이 더 빠질 수 있습니다.”

“그걸 지금 고치겠다고요?”

“가능합니다.”

서후는 약국 쪽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해담은 가방을 받아 고리 부분을 살폈다. 작은 금속 고리가 천에 걸려 있기는 했지만, 고정하는 부분이 풀려 있었다. 가방을 들고 다니다 보면 끈이 떨어질 수 있었다.

“은결아, 가방 안에 큰 물건은 없어?”

“공책이랑 필통.”

“그럼 잠깐 내려놔.”

은결이 가방을 바닥에 놓았다. 서후는 가운 주머니에서 작은 집게를 꺼냈다. 해담은 집게 끝을 확인했다. 뾰족한 부분이 닳아 있었다.

“그걸로 잡으면 돼요?”

“고리를 다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고정도 조금 할 수 있고요.”

“약국에 그런 게 있어요?”

“약병 뚜껑을 잡을 때 씁니다.”

서후는 가방을 들지 않고 바닥에 놓인 채로 고리를 만졌다. 금속 고리를 벌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안쪽으로 밀었다. 은결은 옆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지켜봤다. 집게가 고리에 닿을 때마다 작게 짤깍 소리가 났다.

“이거 잡아당겨도 돼요?”

“지금은 안 됩니다. 고정이 덜 됐습니다.”

“고쳐졌는지 보려고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은결은 입을 다물었다. 서후는 느슨해진 부분을 집게로 눌렀다. 몇 번 방향을 바꾸고 나서 가방 끈을 살짝 당겨 확인했다. 고리가 더 움직이지 않았다.

“됐습니다.”

은결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끈을 잡고 당겼다. 고리는 빠지지 않았다.

“진짜 고쳤네.”

“세게 잡아당기지는 마세요.”

“왜요?”

“다시 빠질 수 있습니다.”

은결은 가방을 어깨에 멨다. 끈이 아까보다 한쪽에 덜 기울었다.

“고맙습니다, 약사 삼촌.”

“괜찮습니다.”

서후는 집게를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해담은 바닥에 남은 작은 쇳가루를 신발 끝으로 쓸었다.

“그럼 다시 찾자.”

“가방 고쳤으니까 열쇠도 찾을까요?”

“그건 별개야.”

“알았어요.”

해담은 은결에게 열쇠 목걸이를 다시 권하지 않았다. 대신 가방 안쪽 주머니를 열어 보라고 했다. 은결은 안쪽 주머니를 뒤집어 확인했다. 빈 주머니였다.

“이쪽은 안 넣었어?”

“네.”

“가방을 열었던 데부터 볼 거야. 친구 만난 곳 기억나?”

“큰길 입구 전봇대 옆이요.”

“거기 가자.”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서후가 말했다. 해담은 서후의 가운을 보았다.

“약국은요?”

“염 여사님이 안에 계십니다.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몇 시인데요?”

“8시 20분입니다.”

“그걸 지금 말하면 더 늦은 것처럼 들리잖아요.”

“늦지는 않았습니다.”

서후는 그 말만 하고 은결과 함께 골목 입구 쪽으로 걸었다. 해담은 가방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은결을 살폈다. 새로 고친 고리는 그대로 걸려 있었다.

◎

토요일 낮, 은결은 구씨열쇠 문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가방을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끈 고리는 빠지지 않았다.

“누나, 어제 못 찾았어요.”

“집에는 어떻게 들어갔어?”

“엄마가 야간 근무 끝나고 와서 문 열어 줬어요.”

“엄마가 기다렸겠네.”

“네. 엄마가 열쇠 더 잘 챙기래요.”

해담은 계산대 위에 있던 복사 장부를 덮었다. 은결은 오늘도 집에 혼자 들어가야 했다. 엄마는 낮잠을 자고 밤 근무를 나간다고 했다. 열쇠를 찾지 못하면 또 누군가를 기다려야 했다.

“어제 어디까지 봤어?”

“큰길 입구까지요. 친구 만난 데도 봤어요.”

“가방에서 딱지 꺼냈던 곳?”

“네. 거기도 없었어요.”

“그럼 오다가 떨어진 게 아닐 수도 있겠네.”

“학교에 두고 왔나?”

“학교는 문 닫았을 테고.”

“선생님한테 전화할까요?”

“네가 마지막으로 열쇠를 본 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해담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은결도 뒤따랐다. 골목 바닥에는 어제 살피고 지나간 흔적이 없었다. 해담은 은결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기억나는 걸 하나씩 말해.”

“학교에서 열쇠를 주머니에 넣었어요.”

“어느 주머니?”

“바지 주머니요.”

“그다음은?”

“친구 만나서 딱지 봤어요.”

“그 뒤에 가방을 열었고.”

“네. 그러고 골목으로 들어왔어요.”

“가방을 어디서 다시 열었어?”

은결은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기억 안 나요.”

“괜찮아. 생각나는 데부터.”

“두레슈퍼 앞에서 엄 할머니한테 인사했어요.”

“그때 가방은?”

“멨어요.”

“봉미용실 앞에서는?”

“그냥 지나갔어요.”

“우리 가게 앞에선?”

“문 열려 있나 보고 들어왔어요.”

해담은 은결이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길을 다시 걸었다. 큰길 입구까지 이어지는 바닥을 살피고, 은결이 걸음을 멈췄던 곳에서 발을 옮겼다. 가방을 열었다는 장소는 떠오르지 않았다. 열쇠가 바지 주머니에서 빠졌을 수도 있고, 가방을 열다가 안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었다.

봉미용실 앞을 지날 때 봉숙자가 빗을 내려놓고 나왔다.

“찾았어?”

“아직이에요.”

“그럼 오늘은 평상부터 보자. 어제 깜이가 그쪽에 있었어.”

“깜이가 열쇠를 숨겼을까요?”

“숨겼다기보다 깔고 앉았겠지.”

“고양이가 열쇠를 깔고 앉아 있어요?”

“못 봤어도 안다. 이 골목 일은 다 알아.”

“그건 못 보셨잖아요.”

봉숙자는 해담을 한 번 쳐다봤다.

“지금부터 보면 되지.”

엄분이는 평상에 앉아 장바구니를 고르고 있었다. 깜이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 어제 깜이가 평상 밑에 있었죠?”

“그랬지.”

“오늘은 어디 있어요?”

“모른다.”

“평상 밑에 있을까요?”

“고양이한테 물어봐.”

엄분이는 장바구니 안에 채소를 넣었다. 은결이 평상 아래를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휴대전화 손전등이 켜졌다.

“안 보여요.”

“어제도 안 보였어.”

“오늘은 더 안쪽까지 비춰 봐.”

해담이 휴대전화를 받아 평상 안쪽을 비췄다. 아래쪽에는 먼지가 뭉쳐 있었고,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열쇠는 없었다.

“여기도 없네요.”

“깜이가 어디 갔는지부터 알아봐야겠네.”

엄분이는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평상 옆을 살폈다. 깜이는 슈퍼 문 뒤에서 나와 두레슈퍼 벽을 따라 걸었다. 꼬리를 세운 채 평상 다리 사이로 지나갔다.

“깜이야.”

은결이 부르자 고양이는 멈추지 않았다.

“따라가면 돼요?”

“고양이 뒤를 쫓으면 더 도망갈 수 있어.”

해담은 은결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멈췄다. 대신 고양이가 지나간 쪽을 가리켰다.

“저기 밑을 보자.”

평상과 가게 벽 사이에는 손이 들어갈 만한 틈이 있었다. 해담이 몸을 낮췄다. 어제는 평상 아래만 확인하고 벽 쪽은 제대로 보지 않았다. 깜이의 털이 벽 아래에 붙어 있었다.

“뭐가 있어요?”

은결도 옆에 앉았다.

“잠깐만.”

해담은 휴대전화 불빛을 안쪽으로 비췄다. 작은 금속 끝이 보였다. 해담은 손을 넣지 않고 평상 다리를 잡아 조금 밀었다.

“엄 할머니, 평상 살짝 움직여도 돼요?”

“무거워.”

“둘이서 들면 돼요.”

봉숙자가 반대쪽에 섰다. 엄분이는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 평상 다리를 잡았다. 해담과 봉숙자가 한쪽을 들고 엄분이가 다른 쪽을 밀었다. 평상이 조금 움직였다. 바닥에 마른 잎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은결이 틈을 들여다봤다.

“보인다.”

열쇠는 평상 다리 안쪽에 걸려 있었다. 열쇠고리가 없는 쇠 열쇠였다. 깜이가 그 위에 몸을 말고 앉아 있었던 모양인지 털 몇 가닥이 손잡이에 붙어 있었다.

“제 열쇠예요.”

은결은 손을 뻗었다가 해담을 쳐다봤다.

“꺼내도 돼요?”

“네가 잃어버린 거잖아.”

은결은 손을 넣어 열쇠를 집었다. 손바닥에 열쇠를 올려 놓고 앞뒤를 살폈다.

“이거 맞아요.”

“집 열쇠 맞지?”

“네.”

“주머니에 넣지 말고, 오늘은 가방 안쪽에 넣어.”

은결은 열쇠를 가방에 넣었다가 잠깐 생각하고 다시 꺼냈다.

“안쪽 주머니는 딱지 넣는 데잖아요.”

“그럼 네가 정해. 어디에 두면 잊지 않을지.”

“그럼 딱지를 빼고 거기 넣을게요.”

“목걸이는 싫고?”

“싫어요.”

해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결은 열쇠를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갔다. 손으로 주머니를 한 번 눌러 확인했다.

엄분이가 깜이 쪽을 내려다봤다. 깜이는 평상 밑에서 앞발을 핥았다.

“고양이도 열쇠가 좋은가 보다.”

“깜이가 훔친 건 아니에요.”

“깜이가 훔쳤다고 누가 그랬니?”

은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엄분이는 장바구니를 들었다.

“그럼 잃어버린 게 아니라 맡겨 둔 거네.”

“그런 맡김은 다음부터 하지 마요.”

해담의 말에 엄분이는 웃었다. 봉숙자는 평상을 원래 자리로 밀었다. 해담은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은결의 가방을 살폈다. 끈 고리는 제자리에 있었다.

“오늘은 열쇠 어디 있는지 알아?”

“안쪽 주머니요.”

“집에 갈 때 다시 확인해.”

“네.”

해담은 은결을 골목 안쪽까지 데려다주었다. 은결네 빌라 앞에서 가방을 내려놓게 하고, 지퍼를 열어 열쇠를 확인했다. 은결은 열쇠를 꺼내지 않고 주머니 안쪽을 손끝으로 짚었다.

“있어요.”

“좋아. 문 열고 나면 안쪽 주머니에 다시 넣어.”

“알았어요.”

“열쇠 목걸이는 계속 싫고?”

“네. 애들이 놀려요.”

“그럼 안 해도 돼. 대신 네가 정한 자리를 꼭 기억해.”

은결은 가방을 다시 멨다. 끈이 어깨에 걸렸고, 금속 고리는 빠지지 않았다. 서후가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흰 가운 주머니에 집게가 보였다.

“열쇠를 찾았습니까?”

“네. 평상 밑에 깜이가 깔고 있었어요.”

“다행입니다.”

은결은 가방을 한 번 고쳐 멨다. 그러더니 서후의 가운 자락을 잡아당겼다.

“약사 삼촌은 누나 좋아해요?”

서후가 은결을 내려다봤다.

“네.”

(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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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셔터를 내린 지 10분이 지났다. 해담은 가게 앞에 서서 허리에 걸린 열쇠 꾸러미를 손으로 눌렀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멎었다.길 건너 늘봄약국 문이 열렸다. 서후가 밖으로 나왔다. 흰 가운 안에는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두 손으로 유리병을 받쳐 들었다.“8시 40분입니다.”“알아요.”해담은 약국 시계를 보지 않았다. 7년 동안 늘 8시 40분에 길을 건넜다. 오늘은 그 자리에 서서 약국에서 나오는 사람을 기다렸다.서후는 몇 걸음 앞에서 멈췄다. 병 안에는 놋쇠 열쇠가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유리병을 기울이지 않아도 열쇠 머리마다 새긴 작은 홈이 보였다.해담은 병을 바라봤다.“다 찼네요.”“네. 가득 찼습니다.”“뚜껑 닫을 때 부딪히는 소리가 났겠어요.”“병을 들면 났습니다.”“그걸 매일 들고 다녔어요?”“약국 서랍에 두었습니다.”“매일 복사한 열쇠도요?”“네.”해담은 두 손을 앞치마에 문질렀다. 쇳가루가 묻은 손끝이 남색 천에 닿았다.서후는 병을 내밀었다. 해담은 양손으로 받아 들었다. 유리가 차가웠다. 안에서 열쇠들이 작게 부딪혔다.“제 약국 뒷문 열쇠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해담 씨가 깎았습니다.”해담은 병을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 서로 다른 날 깎은 열쇠들이 모여 있었다. 날의 높이가 조금씩 달랐다. 열쇠 머리에 난 ㄱ자 홈도 하나씩 보였다.“제가 깎은 걸 어떻게 알아요?”“해담 씨가 처음 깎은 열쇠라서요.”“복사한 열쇠도 전부 제가 깎았다고요?”“네.”“약사님이 같은 열쇠를 가져올 때마다요?”“그렇습니다.”“하나도 안 빠지고?”“하나도 빠짐없이요.”해담은 병을 다시 내려다봤다. 유리 너머로 열쇠들이 겹쳤다. 어떤 것은 머리 부분이 반들거렸고, 어떤 것은 옆면에 쇳가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깎은 흔적이 서로 달랐다.“이걸 다 모아 놓고 뭘 하려고 했어요?”“해담 씨께 드리려고 했습니다.”“왜요?”“해담 씨가 깎은 열쇠니까요.”“그건 이유가 아니잖아요.”“제게 중요했습니다.”해담은 입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8화. 부재 시 옆집 문의

    “새 공책을 사 오면 첫 줄은 제가 쓸 거예요.”해담은 펜을 계산대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서후는 계단 아래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깜이는 공책 위에서 내려와 난간 옆을 지나갔다. 해담은 고양이가 떠난 뒤 공책을 덮어 품에 안았다.“첫 줄에 뭘 쓸 겁니까?”“그건 공책을 보고 정할 거예요.”“알겠습니다.”“약사님은 뭘 쓸 건데요?”“해담 씨가 정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또 기다려요?”“네.”해담은 대답 대신 공책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서후는 계단 아래에 남아 있었다. 철계단을 오르는 동안 공책 모서리가 앞치마에 닿았다.11월 20일 토요일 아침, 해담은 가게 문 옆에 안내문을 붙였다. 종이 위에는 『부재 시 길 건너로 문의하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아래에는 늘봄약국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길 건너에 있는 가게는 하나뿐이었다.해담은 테이프가 들뜨지 않도록 네 귀퉁이를 눌렀다. 문을 닫고 밖에 나와 살펴보니 안내문이 유리문에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약국 문에도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부재 시 길 건너로 문의하세요』. 서후가 약국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흰 가운은 없었고 남색 니트 위에 겉옷을 걸쳤다. 한 손에는 종이가 든 봉투가 있었다.해담은 약국 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었다.“똑같네요.”“문구를 맞추는 편이 알아보기 쉽습니다.”“누가 먼저 붙였어요?”“해담 씨가 먼저 붙이셨습니다.”“제가 붙이는 걸 보셨어요?”“약국 안에서 봤습니다.”서후가 문 옆의 안내문을 한 번 확인했다. 봉투를 든 손은 내려가 있었다.“이쪽은 오늘 붙이실 겁니까?”“네. 붙일 종이도 가지고 오셨나 봐요.”“그렇습니다.”“약국 문에 붙이면 되겠네요.”“그렇게 하겠습니다.”서후는 약국 유리문에 종이를 대고 테이프를 눌렀다. 해담은 구씨열쇠 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두 안내문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했다.두레슈퍼 평상에 앉아 있던 엄분이가 안경을 코 위로 올렸다.“이제 한쪽 문이 닫히면 건너가면 되겠네.”“문 닫고 어디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7화. 장부 마감

    해담은 공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서후는 철계단 가운데쯤에 앉아 공책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단 한 칸이 비어 있었다.해담은 표지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모서리가 닳아 종이 속이 드러난 곳도 있었고, 표지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공책을 펼치자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계단 아래 가게에서는 셔터가 내려간 뒤의 쇳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이게 그 출근부예요?”“네.”“매일 적으셨다고 하셨죠.”“매일은 아니에요.”서후가 공책에서 해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빠진 날이 있습니다.”“몸이 안 좋으셨을 때요?”“그런 날도 있고요. 설이나 추석 당일에는 약국도 쉬었어요. 아빠가 가게를 넘겨주고 나서도 명절 당일만큼은 문을 닫으라고 했어요.”해담은 공책을 조금 돌려 서후가 보기 편하게 했다. 첫 장에는 날짜 대신 짧은 작대기들이 줄을 맞춰 그어져 있었다. 볼펜으로 그은 것도 있고, 연필 자국도 있었다. 중간에는 진하게 눌러 쓴 흔적이 있었다.“하나씩 그은 거예요?”“피로회복제 한 병 사러 갈 때마다요. 가게 셔터 내리고, 8시 40분에 건너가서 한 병 샀어요. 돌아오면 여기다 작대기 하나.”“2,523개가 있습니까?”“네.”“직접 세어 보셨습니까?”“세어 봤죠. 몇 번이나요.”“제가 봐도 됩니까?”“보여 드리려고 가져왔어요.”서후는 공책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해담은 그걸 보고 한쪽 입술을 살짝 올렸다.“읽으셔도 돼요. 페이지 넘기는 것도요.”“제가 넘기겠습니다.”“그럼 넘기세요. 종이가 약해서 조심해야 해요.”“알겠습니다.”서후는 손가락 끝으로 종이 모서리를 잡아 천천히 넘겼다. 작대기들은 줄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끝까지 빽빽하게 채워진 페이지도 있었고, 중간에 듬성듬성한 곳도 있었다. 해담은 서후가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무릎 위 공책을 잡고 있었다.“날짜를 쓰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그냥 작대기만 그었어요. 날짜를 쓰면 장부가 되잖아요.”“출근부라고 부르셨습니다.”“가게 출근부랑은 달라요. 그건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6화. 간판 상담

    “저 간판, 내가 손으로 쓴 거다.”아빠의 말이 끝난 뒤에도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해담은 사진 아래쪽을 받치고 있던 손을 거두지 않았다. 사진 속 간판은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였다. 지금 구씨열쇠에 걸린 간판도 그랬다. 글자 획이 조금 굵고, ‘열’의 마지막 획은 오른쪽으로 짧게 올라가 있었다.“아빠가 직접 쓴 거예요?”“가게 열 때 급하게 썼다. 간판집에 맡길 돈도 아꼈고.”“그 글씨가 지금 간판까지 온 거네요.”“그렇지.”구판길은 사진을 해담에게 돌려줬다. 사진 모서리를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담은 아래를 받쳤다. 간판 아래에 선 아빠는 지금보다 얼굴이 덜 탔고, 앞치마도 새것처럼 보였다.“아빠는 저때도 무뚝뚝했어요?”“사진에 말투가 나오냐?”“안 나오니까 물어보는 거죠.”“그때도 지금도 똑같다.”봉숙자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했다.“그건 내가 똑똑히 봤어. 구 사장님은 가게 열 때도 말이 별로 없었어.”“봉 원장님이 그때부터 골목에 계셨어요?”“내가 미용실을 하기 전에도 이 골목에 살았지. 모르는 게 없어.”“저 사진은 아빠가 몇 살 때예요?”“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네 아빠한테 물어.”“사진 속 아빠가 대답을 안 하시잖아요.”구판길이 해담을 보았다.“가게 문 열던 때니까 지금보다 젊었지.”“그건 저도 알아요.”“그럼 됐다.”사진을 다시 장부 옆에 놓은 뒤에도 해담은 간판 글씨를 몇 번 더 봤다. 아빠 손글씨가 원래부터 간판에 새겨진 줄 알았다. 글씨를 본떠 간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그날 밤, 가게 셔터를 내린 뒤에도 해담은 계산대 안쪽에서 사진을 펼쳐 놓았다. 사진 속 간판과 유리문 밖 간판을 번갈아 보았다. 사진 속 글자와 현재 간판의 글자 모양은 일치했다. 검은 칠이 벗겨진 모서리와 오른쪽 아래에 붙은 작은 글씨만 달랐다.해담은 사진을 접지 않고 서랍에 넣었다.10월 25일 오전, 벽의 열쇠 블랭크 판을 종류별로 다시 걸었다. 모양이 맞는 열쇠를

  • 7년 짝사랑을 폐업했더니 길 건너 약사가 단골이 됐다   75화. 금고 개봉 행사

    “다이얼은 제가 돌릴게요. 손대지 마세요.”해담은 옛 솔매우체국 안쪽에 놓인 금고 앞에 섰다.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에 열쇠 꾸러미를 찼다. 가을 장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문 안으로 모여들어 금고 주위에 둥글게 섰다. 문밖에서는 상인들이 장터 물건을 소개하는 소리와 사람들 발소리가 들렸다.봉숙자가 금고 옆에서 손바닥을 내저었다.“다들 조금만 뒤로 물러서요. 해담이가 돌릴 자리가 있어야지.”“저 정도면 넉넉한데.”탁종팔이 말했다. 봉 원장이 탁 사장을 돌아봤다.“사장님은 더 물러서세요. 나중에 금고 열리면 제일 먼저 안에 들어가실 것 같으니까.”“내가 왜 들어가.”“사진에 젊은 모습이 있으면 가져가실 수도 있잖아요.”“사진은 안 가져가.”탁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도 금고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구판길은 사람들 뒤에 서서 금고를 바라봤다. 햇볕에 탄 얼굴에 낚시 조끼를 걸쳤고, 손에는 오래된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해담은 아빠를 보았다.“아빠, 안쪽으로 더 들어오세요. 문 열리면 잘 안 보일 수도 있어요.”“여기서도 보인다.”“다들 보러 왔는데 아빠만 안 보이면 안 되잖아요.”구판길은 대꾸하지 않고 사람들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에 있던 진서후가 해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해담 씨.”“서후 씨. 오셨어요?”“네. 아버지는 퇴원하셨습니다. 집에서 쉬고 계십니다.”“다행이에요.”“오늘 장터에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도 사진이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해담은 서후의 얼굴을 살폈다. 왼쪽 눈 아래 작은 점이 그대로 보였다. 서후는 약국에서 입던 흰 가운 대신 남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해담은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금고로 몸을 돌렸다.“그럼 잘 열어야겠네요.”“해담 씨가 여시면 됩니다.”“그 말은 부담되는데요.”“제가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해담은 다이얼을 내려다봤다.「말이 늘 정확해.」금고는 무릎 높이보다 조금 큰 철제 금고였다. 표면에는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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