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민도하는 끝까지 강서이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다.강서이가 숨을 들이마셨다.“아파. 당신... 손 힘 너무 세.”민도하는 긴장한 듯 손을 풀었다.강서이는 바로 안전한 거리로 물러났다. 민도하에게 잡혀 붉어진 손목을 문지르며 차갑게 말했다. 말투에는 예전 민도하가 늘 사용하던 조롱이 묻어 있었다.“예전엔 몰랐는데, 민 대표는 참 남 일에 관심 많다? 그럴 시간 있으면 첫사랑이나 더 챙겨.”강서이는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민도하에게 단 1초도 더 쓰고 싶지 않았다.손등은 계속 따끔거렸다. 병원에서 처치를 받긴 해야 했다.강서이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남자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민도하는 장성만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차 대. 강서이 병원에 데려다줘.”강서이가 자기와 함께 가기 싫다면 기사라도 보내면 된다.화상 치료가 늦어지지만 않으면 되니까.하지만 장성만 기사보다 먼저 도착한 차는 검은색 제네시스 G80이었다.배준석이 강서이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강 대표님, 어디 가십니까?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평소 같으면 강서이는 배준석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감정 상태가 불안정한 전남친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배준석의 차에 올랐다.“병원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배준석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강서이가 병원에 간다는 말을 듣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어디 안 좋으십니까? 몸이 아프세요?”“손을 데었어요.”배준석은 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강서이의 처치가 늦어질까 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민도하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거의 스스로를 괴롭히듯 강서이가 배준석의 차에 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차가 떠난 뒤에도 민도하는 한참 동안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차갑게 가라앉은 눈매가 가늘어졌다.어둡게 가라앉은 그 눈빛에서는 어떤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심장이 거대한 손에 짓눌린 듯하면서 답답해서 숨이 막힐
강서이는 직원에게 고맙다고 한 뒤 대기석 의자에 앉았다. 물이 조금 식은 뒤 약을 먹을 생각이었다.기다리는 동안 주기홍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그쪽 상황을 물었다.너무 일에 집중한 나머지, 옆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아이를 보지 못했다.식당 안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던 아이가 그대로 강서이 쪽으로 돌진했다.강서이는 컵 안의 뜨거운 물이 아이에게 쏟아질까 봐 바로 몸을 옆으로 피했다.그 바람에 컵의 물이 출렁이며 강서이의 손등 위로 쏟아졌다.뜨거운 느낌에 강서이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도 다른 손으로 아이의 옷깃을 붙잡아서 화분에 부딪히는 걸 막았다.그렇게 되자 아이는 바닥에 넘어질 수밖에 없었고, 곧바로 울기 시작했다.아이의 엄마가 뛰어나오더니,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또 강서이가 아이의 옷깃을 잡고 있는 것도 보았다. 바로 표정이 뒤집어진 여자가 강서이를 향해 소리쳤다.“애한테 뭐 하는 거예요? 겉보기엔 멀쩡하게 생겨서 왜 이렇게 뻔뻔해요? 왜 어린애를 괴롭혀요?”갑작스러운 욕설에 강서이는 잠시 멍해졌다.가장 큰 이유는 뜨거운 물에 손등을 데어 바로 반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정신을 차리고 맞받아치려던 때, 옆에서 익숙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얼굴만 못생긴 줄 알았더니 눈도 멀었어요? 머리는 장식이에요? 저 사람이 여사님 아들 목숨 구한 거 안 보여요?”소리치던 여자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의 욕설에 얼어붙었다.민도하는 그 여자를 상대할 새도 없었다. 강서이에게 다가와 손목을 붙잡고 뜨거운 물에 덴 부위를 확인했다.강서이는 더 당황했다.‘민도하가 지금 뭐 하는 거지?’‘내 편을 들어주는 건가?’‘굳이 민도하가 나설 일인가?’“화상이야. 빨리 병원에 가.”민도하는 강서이의 손을 확인하고 나서 표정이 더 차가워졌다.말투는 명령에 가까웠다.강서이는 손을 빼냈다. 태도도 차가웠다.“당신이 상관할 일 아니야.”욕을 먹었던 여자는 두 사람이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걸 보고 다시 기세등등해졌다.“우리 애가 멀쩡히 가고
노아리가 알아차리기 전에 민도하는 태연히 시선을 거두었다.강서이는 여기서 배준석을 만날 줄 몰랐다.“감사합니다.”“제가 드린 우산은요?”배준석은 점점 굵어지는 비를 보며 물었다.“가방에 있어요. 늘 가지고 다녀요. 꽤 편하더라고요.”강서이는 자신의 가방을 살짝 두드리며 답했다.배준석의 눈가에 웃음이 고였다.“그런데 왜 우산을 안 쓰셨어요?”“여기까진 비가 안 들이칠 줄 알았어요.”“다음엔 조심하세요. 이런 비가 아주 춥지는 않아도 비를 맞으면 불편하니까요.”두 사람이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을 때, 김설이 도착했다.강서이는 배준석의 재킷을 돌려주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석이 말했다.“걸치고 가세요. 다음에 돌려주시면 됩니다.”김설 뒤쪽에도 차가 서 있었다. 길을 오래 막고 있을 수 없어서, 강서이는 배준석에게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그날 밤, 강서이는 집에 돌아가 샤워를 마친 뒤 곧장 사업계획서를 손질했다.지난번 S시에 예채정을 찾아갔을 때,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해 하마터면 투자를 놓칠 뻔했다.같은 실수는 두 번 하지 않는다. 그것이 강서이의 일 처리 원칙이었다.강서이는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 제법 익숙했다.하지만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감성적인 스토리를 앞세우는 걸 좋아했다.그때 민도하는 투자심의위원회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강서이를 지적했다. 강서이가 쓴 건 사업계획서가 아니라 웃긴 사연 모음집이라고 했다.심지어 어디 인터넷 사연 게시판에 올리면 몇 만 원 원고료는 받을지 모른다고 조롱했다.강서이는 그날 너무 화가 나서 울었다. 화장실에 숨어 한참을 울었고, 이후 꽤 오랫동안 민도하를 상대하지 않았다.기억 속에서, 그것은 민도하가 유일하게 강서이에게 먼저 숙인 날이었다.민도하는 먹을 것을 사 들고 강서이의 원룸으로 왔다. 7년 동안 단 한 번뿐인 방문이었다.그날 밤 민도하는 조용한 목소리로 강서이를 달랬다. 강서이의 허기를 채워 주고, 강서이의 마음까지 채워 주었다.마지막에는 직접 강서이에게 사업계획서를 어
강서이는 옆자리 사람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김설에게도 전화해 조금 뒤 데리러 와 달라고 했다.전화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노아리와 마주쳤다.정확히는 노아리가 일부러 강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강서이는 노아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강서이는 더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노아리를 바라보았다.노아리가 턱을 살짝 들고 물었다.“그로스캐피탈이 항만 재개발 프로젝트 입찰에 들어간다면서요?”“맞아요. 그런데요?”강서이는 숨기지 않았다.노아리는 조용히 웃었다. 태도는 가볍고 오만했다.“강서이 씨가 정말 자기 분수를 모르는군요. 도하 옆에서 7년이나 있었으니 그래도 뭔가 배웠겠지 싶었고, 나름 상대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강서이 씨를 너무 과대평가했네요. 그러니까... 강서이 씨도 딱 그 정도인 것 같아요.”매우 도발적인 말이었다.기댈 사람이 있으니 노아리에게는 그렇게 말할 배짱이 있었다.강서이는 화내지 않았다. 똑같이 웃으며 물었다.“노 본부장은 제가 되게 신경 쓰이나 보네요?”노아리의 표정이 차가워지면서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강서이 씨, 결국 나를 못 이겨요. 도하는 언제나 내 편이니까요.” “강서이 씨가 지난 7년 동안 뭘 했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강서이 씨가 한 모든 건 도하에게 아무 가치도 없으니까요.”“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도하는 결국 나를 선택할 거예요.”노아리가 떠난 뒤, 강서이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방금 노아리는 강서이의 아픈 곳을 찔렀다.강서이가 마음 아픈 건 민도하의 무시 때문이 아니었다.과거의 자신이 안쓰러웠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그 무모했던 자신이.강서이만 알고 있었다.이번에 얼마나 이기고 싶은지......옆방에서는 성이남이 배준석과 식사 약속을 잡아 두었다.두 사람은 꽤 오래 만나지 못했다.배준석이 성이남에게 물었다.“이런 코스 요리 별로 안 좋아하는 걸로 아는데 왜 굳이 여기로 왔어?”
민도하와 노아리가 늘 붙어 다니는 모습을 워낙 자주 봐서, 갑자기 한 사람만 보이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그래서 민도하가 친구가 더 온다고 말하자, 강서이는 곧장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렸다.이상하게도 그 추측이 맞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기묘한 강박증이었다.노아리는 그날 유일하게 늦은 사람이었다. 늦은 이유는 길이 막혔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역시 전부 차를 타고 왔다. 막힐 걸 알았다면 미리 나왔어야 맞았다.그래도 노아리는 민도하가 데려온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불만을 품었어도 민두해와 민도하의 체면을 봐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노아리는 강서이도 이 식사 자리에 나온다는 걸 미리 들은 듯했다. 들어와서도 강서이를 보지도 않았고,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남태휘가 먼저 민도하에게 물었다.“도하야, 소개 안 해?”옆에 있던 누군가가 웃으며 말했다.“부이사장님은 아직 모르십니까? 저는 벌써 들었습니다. 이분은 민 대표님 여자친구분입니다.”“부이사장님 소식이 늦으셨네요. 두 분 좋은 소식도 곧 들릴 건데요. 조금만 늦었다면 청첩장 받고 축의금 낼 뻔했습니다.”남태휘는 웃으며 말했다.“그건 저도 정말 몰랐군요. 괜히 저만 민망하게 됐네요.” “도하 너도 참, 삼촌한테 이런 일은 미리 말해 줘야지.”민도하가 답했다.“지금 아셔도 늦지 않습니다.”그 말은 사실상 민도하가 노아리와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외부 소문처럼, 두 사람은 좋은 일을 앞둔 사이였다.남태휘가 말했다.“네 아버지도 참, 이렇게 큰일을 말씀을 안 하셨네. 그래도 네 나이면 이제 개인적으로도 정착할 때가 되긴 했지.”민도하도 인정했다.“그럴 나이는 됐죠.”노아리는 내내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기쁜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민도하가 관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해 준 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업인협회 식사 자리에 데리고 온 것도 기뻤다.강서이가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건 민두해 때문이었다. 노아리는 예전에는 그 점이
강서이의 반응이 차분한 걸 보고 주기홍은 조금 마음을 놓았다.솔직히 같은 남자인 주기홍이 들어도 민도하의 말은 잔인했다.“우리가 7년 같이 있었던 거지, 7년 사랑한 건 아니잖아.”남자인 주기홍도 듣기 힘든 말이었다.강서이가 그 말을 어떻게 버텼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주기홍은 한마디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강서이의 관심은 저쪽 사람들에게 있지 않았다.강서이는 손목시계를 보며 물었다.“주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성 대표님은 언제쯤 오십니까?”주기홍이 얼른 답했다.“곧 도착하실 겁니다.”강서이는 거의 30분을 더 기다렸지만 성이남은 나타나지 않았다.주기홍은 결국 성이남의 비서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확인했다.상대는 성이남에게 갑자기 다른 약속이 생겨 못 온다고 했다.주기홍은 미안해했다.“죄송합니다, 강 대표님. 투자자를 소개해 드리려고 했는데...”직장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말은 그저 핑계에 가까웠다.상대가 그로스캐피탈은 이력도 짧고 회사 규모가 작다고 판단해서 약속을 깬 것이다.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강서이는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성 대표님과는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주기홍이 설명했다.“성 대표님은 젊습니다. 23살이고, 해외에서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라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서 성격도 꽤 화려하고, 일 처리도 자기 마음대로 하는 편입니다.”“사실 쉽지 않은 분입니다. 그래도 집안이 워낙 탄탄합니다. 국내에서 현금 흐름이 가장 좋은 기업 중 하나라, 협력만 성사되면 자금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주 본부장님이 애써 주신 건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인연이 아닌데 억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강서이와 주기홍이 자리를 뜰 때, 서태우가 두 사람을 보았다.서태우는 잠시 다가가 인사하고 싶었다.하지만 자신과 강서이 사이에 남은 앙금, 예전에 강서이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떠올랐다.서태우는 결국 포기했다.자금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