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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작가: 낙화
결국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의식이 몽롱한 와중에 누군가 자신을 안아 들더니 포근한 침대에 눕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무릎의 상처를 치료하려는 손길이 닿자 통증에 숨을 들이켰다.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았던 설움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구태윤, 나 너무 아파...”

그녀는 여전히 환상 속에 머물러 있었다.

살갗만 긁혀도 부랴부랴 달려와 위로해주던 남자, 그리고 넓은 품에 안겨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던 여자.

이미 그런 관계에 길든 상황이었다.

꿈속에서 구태윤은 그녀를 감싸 안고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주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입술로 하나하나 닦아내 주었지만, 서러움은 그칠 줄 몰랐다.

정루아는 남자의 옷깃을 꽉 움켜쥔 채 흐느끼며 푸념했다.

“왜 정시연한테 잘해줘? 난 그 여자 싫단 말이야, 정말 끔찍해서 진절머리가 나! 당신도 나랑 같이 미워해야지, 마음이 변하면 어떡해? 정시연 사랑하게 된 거야? 정작 아내는 나 몰라라 하고 남이 애 낳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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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74화

    구태윤이 눈살을 찌푸렸다.“엄마, 가지 마세요.”장옥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태윤아, 루아를 너무 감싸기만 하면 못써.”구태윤은 차가운 얼굴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루아는 정씨 가문 딸이에요. 그 집안 문제에선 루아가 결정하는 게 당연합니다. 생떼를 부리는 건 형수님이고요.”장옥경의 미간이 깊게 팼다.“하지만 루아가 이참에 매듭을 딱 지어주지 않으면 일 마무리가 깔끔하게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엄마는 어떻게 마무리 짓기를 원하시는데요?”구태윤이 그녀를 응시했다. 칠흑 같은 눈동자에 서늘한 한기가 일렁였다.“형수님한테 사과라도 하라는 거예요? 아니면 무조건 꼬리를 내리고 형수님의 소원이라면 무조건 들어주길 바라는 겁니까?”장옥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구태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싸늘해졌다.“과거에 날 구했던 일도 있고 하니, 마무리는 제가 짓는 게 맞아요. 루아가 굳이 책임질 이유가 뭐 있습니까? 또한, 형수님 비위를 맞춰줄 필요는 더더욱 없고요.”응급실 앞 복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말이 맞았다. 애초에 이 소동이 벌어진 게 정루아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먼저 외국으로 떠나겠다고 생떼를 쓰고, 구하준을 억지로 데려가려 한 건 정시연이었다.그녀가 판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고가 일어날 리도 없었다.장옥경은 아까 구태윤이 차에 치일 뻔한 걸 보고 눈이 뒤집히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정시연의 페이스에 말려 모든 책임을 정루아 탓으로 돌렸다.하지만 머리가 식고 나니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방금 그 차 운전자는 잡았니?”장옥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이미 경찰서로 넘겼습니다.”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곧이어 날카로운 일침이 들려왔다.“한번 조사해 봐. 그 도로는 평소에 차도 거의 안 다니고 속도 제한이 걸려 있는 곳이야.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나타났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단 말이야.”그녀의 시선이 구태윤의 품으로 향했다.구하준은 어느새 잠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73화

    구태윤의 미간이 좁혀졌다.“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정시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은혜 갚는 셈 치고 내 이름으로 회사 차려준 건 태윤 씨잖아요. 그런데 루아가 투자를 반대한다고 해서 진짜로 손을 떼는 게 어디 있어요? 루아 심기 거스르지 않으려고 기꺼이 물러났더니, 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몰아세우냐고요!”그리고 서러움이 북받친 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품에 안긴 구하준이 고사리손으로 그녀를 토닥였다.“엄마, 울지 마...”구태윤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원 그룹은 투자를 철회하겠지만, 내 개인 자금은 유지할 거예요.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유난입니까?”정시연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루아가 부모님까지 꼬드겨서 돈을 빼게 했는데, 태윤 씨라고 뭐 별수가 있겠어요? 대체 루아한테 무슨 오해를 샀길래 저를 이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늘에 맹세하건대, 내 마음속엔 당신 형인 구승태 밖에 없어요. 만약 그 사람을 배신했다면 당장 천벌을 받아 죽어도 좋아요.”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정루아의 악행을 낱낱이 고발했다.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더 비참해지기 전에 떠나게 해줘요. 하준이 데리고 당신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갈 테니까.”말을 마치고는 운전기사를 향해 소리쳤다.“당장 출발해요, 공항으로 가주세요.”하지만 기사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가 비켜주질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출발하란 말인가.그때, 구태윤이 성큼성큼 걸어왔다.정시연은 바짝 긴장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그는 뒷좌석 문을 벌컥 열더니 구하준을 끌어내렸다.“엄마, 엄마!”구하준이 버둥거리며 정시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구태윤은 아이를 안은 채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구하준, 당장 울음 그쳐.”녀석은 흠칫 놀라더니 두려움에 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구태윤이 정시연을 돌아보았다.“떠나고 싶으면 형수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72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잇따라 밖으로 걸어 나왔다.정루아가 입을 열었다.“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진욱 씨, 고마워.”배진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너무 부담 갖지 마. 할머니 도와드리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터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 뿐이야.”정루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그럼 당장 부탁 하나 해도 돼?”“뭔데?”“회사까지 태워다줘. 나 이제 출근해야 하거든.”배진욱이 싱긋 웃었다.“그래.”...정시연의 회사는 여느 신생 기업과 달리, 정원 그룹과 구명 그룹의 투자와 구태윤의 인맥까지 더해 금세 프로젝트를 따내며 사업을 궤도에 올려놓았다.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정원 그룹이 투자를 철회한다니.어젯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정시연은 휴대폰이 부서지라 꽉 움켜쥐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동자 속엔 독기가 끓어올랐다.빌어먹을!그동안 정루아를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먼저 칼날을 빼 들 줄이야.그녀는 당장 항공권부터 끊고는, 다음 날 곧바로 짐을 싸 들고 구하준을 품에 안은 채 집을 나섰다.본가에는 아이를 전담해서 돌보는 유모가 따로 있었다.정시연이 구하준을 데리고 나가는 것을 목격한 유모는 혼비백산하여 장옥경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장옥경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당장 사람들을 풀어 정시연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차가 교차로 한가운데 멈춰 섰다.정시연은 구하준을 꽉 껴안고 차에서 내렸다. 빨개진 눈에는 처연함이 가득했다.“어머님, 제발 저랑 하준이 좀 보내주세요. 제가 여기 붙어 있어 봤자 짐만 될 뿐이잖아요. 하준이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 우리가 눈앞에서 사라져 주면 다들 행복해질 거 아니에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서러움에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장옥경이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본가에서 아쉬운 소리 안 듣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애 돌볼 사람도 널렸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이 난리야?”정시연은 펑펑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71화

    구태윤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싸늘한 목소리는 살기가 묻어났다.“말이 길다?”“어라? 화났냐? 구태윤이 화내는 꼴도 보고 말이야. 알았어, 더 건드렸다가는 폭발하겠네. 입국하면 너한테 연락하라고 할게.”수화기 너머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진심으로 짜증 났음을 눈치채고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응.”구태윤이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였다.“참...”상대가 문득 말을 이었다.“전에 네가 알아보라고 했던 거, 단서가 좀 잡혔어.”구태윤이 미간을 찌푸렸다.“용건만 한꺼번에 얘기해.”“어허, 지금 덕 볼 놈이 태도가 그게 뭐야? 똑똑히 들어, 나한테 싹싹하게 굴지 않으면 이 정보는 영원히 땅속에 묻어둘 줄 알아.”상대도 기분이 상했는지 콧방귀를 뀌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구태윤은 어이가 없었다.골치 아픈 녀석 같으니라고....송문애는 배진욱을 반갑게 맞이했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묘하게 마음에 끌리던 청년이었다. 과하지 않고 편안한 매력이 좋았다.배진욱은 송문애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그 시각, 임혜숙은 정루아를 끌고 나가서 나직하게 물었다.“루아야, 너 배씨 가문 도련님이랑 어떤 사이야?”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는 제법 친해 보였다.정루아가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냥 지난번 연회에서 알게 됐어요.”임혜숙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더니 입을 열었다.“둘이 사이가 꽤 돈독한 모양이네. 그 사람한테 잘 좀 부탁해서 우리 회사랑 프로젝트 하나 따내 주면 안 될까?”정루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쏘아붙였다.“정시연한테 들어간 투자금 당장 빼라고 한 게 언제인데, 처리하긴 했어요?”임혜숙이 눈살을 찌푸렸다.“루아야, 언니한테 그렇게까지 옹졸하게 굴어야겠니.”정루아가 냉소를 지었다.“그럼 내가 무슨 명목으로 배진욱한테 부탁해요? 지분 하나 없는 회사 살리겠다고, 배성 그룹이랑 정원 그룹이 손잡고 번 막대한 돈을 고스란히 갖다 바치란 소리예요?”꿈도 참 야무졌다.임혜숙도 열을 받았는지 언성을 높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70화

    정루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피곤이 밀려와 입씨름을 벌일 여력조차 없었다.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온 뒤, 간이침대에 누웠다.머릿속은 온통 자신을 납치하려던 범인의 정체에 관한 생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날이 밝았다.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의자에서 밤을 새운 듯한 구태윤의 모습이었다.흐트러진 셔츠는 구김이 졌고,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송문애가 눈을 뜨며 물었다.“태윤아, 설마 밤새 여기 앉아 있었던 거니?”구태윤이 대답했다.“아닙니다, 온 지 얼마 안 됐어요.”송문애는 미심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구태윤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할머니,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송문애가 대답했다.“많이 좋아졌어.”구태윤은 정루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사람 시켜서 아침 식사 보내놨어. 다 먹고 나면 나랑 같이 회사로 가자.”정루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곧장 외할머니에게 다가갔다.송문애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을 눈치채고도 깊게 묻지 않았다.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임혜숙이 병실로 찾아왔다.정루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치가 떨렸지만, 외할머니가 허락한 일이라 내쫓지는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 그녀가 문득 물었다.“어젯밤에 한 약속, 언제 실행할 건데?”구태윤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오늘 안으로 투자 철회하게 할 테니까 걱정 마.”정루아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이번에는 웬일인지 일 처리가 군더더기 없었다.길가에 세워진 차 문을 열며 구태윤이 말했다.“타.”“됐어.”정루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택시 타고 갈게.”구태윤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루아야, 어젯밤에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해놓고 널 어떻게 혼자 보내.”정루아는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경호원 떼거리로 붙여놓고 뭘 새삼스럽게.”그런데도 구태윤은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다.“이번 한 번만 내 말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9화

    로비를 가로지르던 구태윤은 경호원의 보고를 받는 즉시 낯빛이 어두워졌다.“위치 공유해.”경호원들이 이미 차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 역시 곧장 추격에 가세하는 한편, 수하들을 동원해 일대를 샅샅이 포위하며 퇴로를 차단했다.같은 시각, 흰색 BMW 안.미화원은 백미러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정루아를 몰래 보호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아쉽게도 실력이 영 형편없었다.남자의 시선이 뒷좌석에서 잠든 정루아에게 닿았고, 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내렸다.미화원은 재빠르게 차선을 바꾸고 추월을 거듭하며 코너를 돌자마자 속도를 높여 뒤따라오던 차량을 순식간에 따돌렸다.곧이어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남자는 정루아의 턱을 움켜쥔 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그리고 눈꺼풀을 뒤집어 동공까지 확인했다.휴대폰으로 얼굴 사진을 찍고 머리카락 몇 올을 뽑아낸 뒤에야 문을 닫고 자리를 떠났다.걸음을 옮기면서 몸에 걸쳤던 위장용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어 던졌다.가면과 마스크, 외투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마침내 길고 날렵한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잠적했다....정루아는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깼다.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자, 초조함이 가득한 구태윤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쳤다.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머릿속으로는 기절하기 직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황급히 제 몸을 더듬으며 상태를 확인해 보니, 옷은 그대로였고 다친 곳도 없었다.“괜찮으니까 안심해.”그 모습을 본 구태윤이 입을 열었다.정루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여기가 어디야?”구태윤은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직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교외의 한적한 도로였다.현장에 도착했을 때,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는 정루아가 뒷좌석에 기절한 채 누워 있었다.“루아야, 납치범 얼굴은 기억나?”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루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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