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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화

Author: 낙화
정루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피곤이 밀려와 입씨름을 벌일 여력조차 없었다.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온 뒤, 간이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은 온통 자신을 납치하려던 범인의 정체에 관한 생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날이 밝았다.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의자에서 밤을 새운 듯한 구태윤의 모습이었다.

흐트러진 셔츠는 구김이 졌고,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송문애가 눈을 뜨며 물었다.

“태윤아, 설마 밤새 여기 앉아 있었던 거니?”

구태윤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송문애는 미심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구태윤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송문애가 대답했다.

“많이 좋아졌어.”

구태윤은 정루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람 시켜서 아침 식사 보내놨어. 다 먹고 나면 나랑 같이 회사로 가자.”

정루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곧장 외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송문애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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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70화

    정루아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피곤이 밀려와 입씨름을 벌일 여력조차 없었다.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온 뒤, 간이침대에 누웠다.머릿속은 온통 자신을 납치하려던 범인의 정체에 관한 생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날이 밝았다.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의자에서 밤을 새운 듯한 구태윤의 모습이었다.흐트러진 셔츠는 구김이 졌고,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송문애가 눈을 뜨며 물었다.“태윤아, 설마 밤새 여기 앉아 있었던 거니?”구태윤이 대답했다.“아닙니다, 온 지 얼마 안 됐어요.”송문애는 미심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구태윤이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할머니,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송문애가 대답했다.“많이 좋아졌어.”구태윤은 정루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사람 시켜서 아침 식사 보내놨어. 다 먹고 나면 나랑 같이 회사로 가자.”정루아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하고 곧장 외할머니에게 다가갔다.송문애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을 눈치채고도 깊게 묻지 않았다.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 임혜숙이 병실로 찾아왔다.정루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치가 떨렸지만, 외할머니가 허락한 일이라 내쫓지는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병원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던 길, 그녀가 문득 물었다.“어젯밤에 한 약속, 언제 실행할 건데?”구태윤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오늘 안으로 투자 철회하게 할 테니까 걱정 마.”정루아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이번에는 웬일인지 일 처리가 군더더기 없었다.길가에 세워진 차 문을 열며 구태윤이 말했다.“타.”“됐어.”정루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택시 타고 갈게.”구태윤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루아야, 어젯밤에 그런 끔찍한 꼴을 당해놓고 널 어떻게 혼자 보내.”정루아는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경호원 떼거리로 붙여놓고 뭘 새삼스럽게.”그런데도 구태윤은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다.“이번 한 번만 내 말대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9화

    로비를 가로지르던 구태윤은 경호원의 보고를 받는 즉시 낯빛이 어두워졌다.“위치 공유해.”경호원들이 이미 차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 역시 곧장 추격에 가세하는 한편, 수하들을 동원해 일대를 샅샅이 포위하며 퇴로를 차단했다.같은 시각, 흰색 BMW 안.미화원은 백미러를 힐끗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정루아를 몰래 보호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아쉽게도 실력이 영 형편없었다.남자의 시선이 뒷좌석에서 잠든 정루아에게 닿았고, 미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내렸다.미화원은 재빠르게 차선을 바꾸고 추월을 거듭하며 코너를 돌자마자 속도를 높여 뒤따라오던 차량을 순식간에 따돌렸다.곧이어 CCTV가 없는 사각지대에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남자는 정루아의 턱을 움켜쥔 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그리고 눈꺼풀을 뒤집어 동공까지 확인했다.휴대폰으로 얼굴 사진을 찍고 머리카락 몇 올을 뽑아낸 뒤에야 문을 닫고 자리를 떠났다.걸음을 옮기면서 몸에 걸쳤던 위장용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어 던졌다.가면과 마스크, 외투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마침내 길고 날렵한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잠적했다....정루아는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깼다.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자, 초조함이 가득한 구태윤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쳤다.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머릿속으로는 기절하기 직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황급히 제 몸을 더듬으며 상태를 확인해 보니, 옷은 그대로였고 다친 곳도 없었다.“괜찮으니까 안심해.”그 모습을 본 구태윤이 입을 열었다.정루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여기가 어디야?”구태윤은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아직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교외의 한적한 도로였다.현장에 도착했을 때,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는 정루아가 뒷좌석에 기절한 채 누워 있었다.“루아야, 납치범 얼굴은 기억나?”구태윤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루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8화

    구태윤의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다.이내 그윽한 눈빛으로 정루아를 응시했다.“정원 그룹만 투자를 회수한다고?”“응.”정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이 굳이 돕겠다면 말리진 않겠어. 하지만 정원 그룹 투자는 반드시 철회시켜.”“왜 안 말리는 거지?”구태윤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묘한 긴장감이 주변을 에워쌌다.정루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말리면, 내 말 듣기나 하고?”구태윤은 입을 꾹 다문 채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왜 하필 정원 그룹 투자를 철회하라는 건데?”“양녀 주제에 감히 정씨 가문 돈을 탐내?”정루아가 숨도 안 쉬고 쏘아붙였다.구태윤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 다 먹고 네가 한 말 고려해 볼 테니까.”정루아는 미심쩍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렇게 간단한 일을 뭘 또 고려까지 해?”“루아야, 그건 그렇고. 네가 지금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나?”구태윤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난 와이프 말만 듣거든.”정루아는 덤덤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맑고 까만 눈동자에는 역력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우리 아직 이혼 전인 걸로 아는데.”구태윤이 침묵했다.정루아는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어차피 이혼 소송은 시간문제였고, 두 사람의 혼인 관계 역시 조만간 끝날 터였다.그러니 잠시 장단을 맞춰준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었다.구태윤은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정루아의 표정은 태연했고, 바짝 세우던 가시도 집어넣은 상태였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여전했다.정루아는 그가 속으로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알 바 아니었다.어느 정도 허기를 채운 다음 문득 고개를 돌렸다.“생각은 끝났어?”“그래, 네 말대로 할게.”구태윤은 순순히 대답했다.여기서 거절했다간 분명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설 테고, 그 과정에서 제 통제를 벗어나는 변수가 터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마치 허도준이 갑작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7화

    송문애는 차갑게 말했다.“너희 정말 실망이야. 양녀 하나 때문에 우리 루아를 쥐 잡듯이 잡아?”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루아의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만 외할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속 가장 여린 곳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울컥하는 감정이 차오르며 눈시울이 시큰해졌다.송문애의 믿음은 언제나 한결같았다.정루아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외할머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이내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시고. 어쨌든 전 한다면 하는 사람이에요.”임혜숙은 송문애의 편파적인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지만, 지금 당장 대놓고 맞설 수는 없었다.무려 큰 병을 앓고 난 뒤였다.비록 수술은 성공했다고 해도,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게다가 송문애가 쥐고 있는 재산은 엄청났다.그녀의 하나뿐인 딸로서 유산은 결국 전부 자기 차지가 될 터였다.임혜숙은 이를 악물고 꾹 참아냈다.정루아는 몸을 돌려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이내 휴대폰을 꺼내 구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세 번 울리더니 통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낮게 깔린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그녀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어디야? 잠깐 보자.”정루아의 어조는 덤덤했다.구태윤이 말했다.“병원으로 갈게.”하지만 정루아는 딱 잘라 거절했다.“아니야, 내가 가면 돼.”“네가 날 찾아온다고?”한껏 격앙된 목소리에 흥분이 묻어났다.정루아는 짜증이 슬슬 치밀어 올랐다.“그래서 어디냐고.”구태윤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회사.”그리고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전화가 뚝 끊겼다.야근 중이던 구태윤은 이미 꺼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여전히 차갑고 쌀쌀맞긴 하지만, 먼저 자신에게 연락을 해왔다.이렇게 마음이 설레던 적이 얼마 만이더라.새삼 그리운 기분이었다.그는 한민혁을 불러 정루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몇 가지 주문하게 한 뒤,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3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6화

    정석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건 왜 물어?”“당장 취소하세요.”정루아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말했다.“그리고 투자한 돈 빼내세요.”정석주는 곧바로 그녀를 노려보았다.“지금 무슨 미친 소리야? 언니한테 회사 하나 차려주는 게 뭐 어때서? 네가 피해받는 것도 아니잖아.”“난 허락 못 해요.”정루아는 팔짱을 꼈다.“친딸도 아닌 사람한테 왜 우리 집 돈을 써야 하죠?”그리고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전에 회사 하마터면 파산할 뻔했던 일, 잊으셨어요?”싸늘한 말투에는 협박이 서려 있었다.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에 정석주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당시 소란 때문에 그는 며칠 밤을 설쳐야 했고, 이사회에서도 능력을 의심받기 시작했다.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하지만...정석주는 얼굴을 굳힌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구태윤이 다리 놔줬고, 투자도 같이한 거야. 루아야,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넌 늘 시연이한테 상처만 줬잖아. 우린 그냥 작게나마 보상해주고 싶은 거니까 우기지 좀 마.”정루아는 속으로 비웃었다.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구태윤은 형수 걱정뿐이라니.다른 건 보상해 줄 수 없으니까 아예 회사 하나 차려주고, 일감까지 몰아주며 떠받들겠다는 건가?이혼하지 않으려고 벌인 온갖 짓을 생각해 보면 기가 찰 뿐이었다.정루아는 금세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구태윤한테도 투자 철회하라고 할 거예요. 아무튼 두 사람이 회사 차려주는 거 난 반대예요. 정시연이 무슨 자격으로 그걸 받아요?”“정루아!”임혜숙이 듣다못해 나섰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정루아의 앞으로 걸어갔다.“너는 왜 맨날 언니한테 그렇게 앙심을 품고 못살게 구니? 이제 눈앞에 얼씬도 안 하는데 뭐가 불만이야? 마음을 좀 넓게 가지면 어디가 덧나냐고.”정루아는 비웃음을 흘렸다.“나 원래 속 좁고 뒤끝 장난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 말대로 안 하면 아주 끝장나는 수도 있어요.”“너...!”말문이 막힌 임혜숙은 얼굴이 일그러졌다.“진짜 갈수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265화

    임혜숙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불만스럽다는 듯 타박했다.“루아 너 엄마한테 태도가 그게 뭐니? 내 어머니가 병원에 누워 계시는데 당연히 돌보러 와야 하지 않겠어?”정루아는 기가 막힌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말 뻔뻔함의 극치였다.송문애에게 상처로 남을 모진 소리를 쏟아내고서 어떻게 낯짝 두껍게 다시 눈앞에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정루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냥 돌아가세요. 굳이 엄마까지 있을 필요 없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알아서 잘 모실게요.”하지만 임혜숙은 고개를 저었다.“싫어, 안 가. 우리 어머니는 내가 간호할 거야.”그러더니 송문애를 돌아보며 물었다.“어머니, 저 여기 같이 있어도 되죠?”“그러렴.”송문애는 의외로 거절하지 않았다.정루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눈썹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외할머니의 결정을 존중하기에 더 말리지 않았다.바로 그때, 정석주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한마디 거들었다.“루아야, 할머니가 이렇게 크게 아프셨으면 우리한테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어른이 돼서 왜 이렇게 생각이 없니.”정루아가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그럼 두 사람은 어떻게 아셨는데요?”정석주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시연이가 알려줬지. 전 회사에 아는 친구가 있는데, 감독이 병문안 다녀간 걸 보고 시연이한테 연락한 거야. 그리고 곧장 전해 준 덕분에 우리도 알게 되었지. 시연이 아니었으면 할머니가 입원한 줄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잖아.”정루아는 속에서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임혜숙이 송문애를 돌아보며 말했다.“어머니, 아직 시연 얼굴은 못 보셨죠? 저희가 입양한 딸인데, 성격이 얼마나 착하고 속이 깊은지 몰라요. 얼굴도 예쁘고 반듯한 데다가 어머니 걱정을 아주 많이 해요. 혹시나 어머니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오늘은 같이 안 온 거랍니다.”송문애는 임혜숙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물었다.“이미 내 손녀 루아가 있는데, 왜 굳이 다른 아이를 입양한 거냐?”임혜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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