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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Author: 낙화
“여보!”

정석주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임혜숙의 손이 정루아의 손가락을 스치고는 맥없이 툭 떨어졌다.

정루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쓰러진 임혜숙을 끌어안았다.

“엄마...?”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뒤에서 정석주의 고함이 들려왔다.

“당장 구급차 불러!”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끝에 임혜숙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응급실 앞.

정석주의 등이 굽어 있었고, 눈가의 주름이 한층 더 깊어진 것 같았다.

그가 정루아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네 엄마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나니까 이제 속이 좀 시원하냐?”

정루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켰다.

그때 구태윤이 입을 열었다.

“두 분이 끝까지 한 발짝도 안 물러서고 루아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여 놓고, 스스로 살려고 반항한 게 왜 루아 잘못이에요?”

정석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자네가 이렇게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걸 이제야 똑똑히 알겠네.”

이어 시선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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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10화

    “싫어요, 엄마. 그냥 저 내버려 두세요. 이 모든 게 다 제 탓이잖아요. 루아한테 사과하고 빌 테니까 나를 용서해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게요...”정시연은 임혜숙의 손을 뿌리치며 울먹였다.자신을 바닥 끝까지 깎아내리며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억울하고 무력한 피해자 그 자체였다.“저 여자 끌어내세요.”정루아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옆에 대기하던 경호원이 즉시 다가와 임혜숙을 떼어놓았다.임혜숙은 정루아를 돌아보며 사색이 된 채 외쳤다.“너 지금 무슨 짓이야!”정석주의 눈빛에도 경계심이 가득했다.“루아야, 진정해.”정루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아빠는 참견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정석주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이 되었다.정루아는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가더니 허리를 살짝 숙여 정시연의 턱을 움켜쥐었다.그리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언제까지 그렇게 불쌍한 척 징징거릴래? 엄마 아빠가 너 감싸고돌면 내가 억울해서 발작이라도 할 줄 알았어? 네가 짜놓은 판에 놀아나게?”이내 콧방귀를 뀌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이런 얄팍한 수작에 순순히 당했겠지. 너는 눈물 한 방울로 청순한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나는 부모님께 천하의 나쁜 년 소리 들으며 억지로 죄를 덤터기 썼을 거야.”정루아가 쯧쯧 혀를 찼다.“그땐 내가 너무 멍청했거든. 부모라는 인간들한테 사랑 따위 받아보겠다고 발버둥 쳤으니까. 하지만 이제 저 사람들의 생각 따위 관심 없어. 그러니...”짝!순간, 병실 안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정시연은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뺨이 터질 것처럼 화끈거렸다.“사과하고 싶어 안달인 그 정성, 받아줘야지 않겠어?”정루아는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또다시 뺨을 내리쳤다.“당장 멈춰! 이 짐승만도 못한 년아, 그 손 안 떼?”두 경호원에게 양팔이 꽉 붙잡힌 임혜숙은 눈앞의 광경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정루아가 문득 고개를 돌리자,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9화

    “훗.”결국 정루아는 참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이내 임혜숙을 경멸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비꼬았다.“만약 아빠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난 피해 끼칠 생각 없어, 그냥 행복만 빌어줄 거야’라고 유난 떠는 옛 연인이 있다고 해봐요. 엄마는 과연 어떤 기분이 들었겠어요?”임혜숙이 미간을 찌푸렸다.“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너희 아빠랑 난 서로가 첫사랑이었어.”정루아는 콧방귀를 뀌더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송문애는 담담한 눈빛으로 임혜숙을 응시했다.“넌 아직도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감도 안 잡히지? 내가 남의 프러포즈용 귀걸이나 가로챈 도둑놈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임혜숙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뜻이 아니라...”하지만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이제 어머니도 그게 자기 물건이 아니라는 걸 아셨으니까, 그냥 저한테 넘기면 안 되나요?”정루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지금 뇌절 왔어요?”임혜숙은 말문이 막혔다.송문애는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내뱉었다.“반성할 기미도 안 보이는데 그만 가라. 애초에 정붙이고 살던 사이도 아니니, 앞으로 다신 얼굴 볼 일 없었으면 좋겠구나.”임혜숙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려 했다.“어머니...”정루아가 곧바로 앞을 가로막으며 살벌한 눈빛으로 경고했다.“할머니 말씀 안 들려요? 당장 나가세요!”“루아야, 네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이기도 하시거든?”임혜숙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정루아는 고개를 돌려 정석주를 쳐다보며 비꼬듯 물었다.“이게 사과하겠다는 사람의 태도예요?”정석주가 임혜숙의 팔을 낚아채며 윽박질렀다.“그만 좀 해! 회사 망하는 꼴이라도 보고 싶은 거야?”임혜숙은 남편의 한마디에 더 이상 반발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끌려 나가는 순간에도 억울해하는 티가 역력했다.이때, 병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실루엣 하나가 나타났다.“아빠, 엄마... 집안일은 다 전해 들었어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나 때문에 두 분까지 이 사달이 난 거니까 제가 직접 루아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8화

    송문애는 손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난 진작에 마음의 준비를 했지. 혜숙이가 날 돌보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로 눈치챘어.”정루아의 눈동자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그럼 왜 곁에서 간호하게 내버려 둔 거예요?”송문애가 한숨을 내쉬었다.“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걔한테 아주 눈곱만큼의 진심이라도 남았을지 궁금했나 봐.”하지만 결과는 뻔하게도 실망뿐이었다.정루아는 외할머니의 곁에 엎드렸다. 가슴이 먹먹하게 죄어왔다.무려 자기 딸이지 않은가.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갖은 기대를 걸어 낳은 자식이었다.그런데 지금 이런 대접을 받으니 속상하기 마련일 것이다.정루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말했다.“어떻게든 엄마 끌고 와서 할머니한테 사과하게 할게요.”송문애는 쓴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도 안 했다....다음 날.정루아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바쁘게 움직이다가 정석주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우리 지금 네 외할머니 병문안 왔는데, 안으로 들여보내 주질 않네.”정루아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금방 갈 테니까 기다려요.”통화를 마치고는 정호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병실 문 앞에 도착하자, 정석주 부부가 서성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의 시선이 곧바로 임혜숙에게 향했다.불과 며칠 만에 살이 쏙 빠져 초췌할 정도였다. 예전의 귀부인 같은 화려함과 여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정루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가 정석주에게 물었다.“외할머니한테 사과하러 온 거예요?”임혜숙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루아야...”정석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엄마가 자기 잘못을 뉘우쳤어. 그래서 일부러 사과하러 찾아온 거야.”“들어가시죠.”정루아는 임혜숙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병실 문을 열었다.간병인이 송문애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안으로 들어선 정루아는 간병인들에게 나가보라고 눈짓했다.병실 문이 닫히고, 그녀는 옆에 서서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7화

    배진욱은 가볍게 턱짓하더니, 넌지시 물었다.“누가 다쳤는데? 설마 연희 씨?”“아니야.”정루아가 고개를 저었다.“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그 말에 안경테 너머로 배진욱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이내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정루아 역시 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고는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배진욱이 휴대폰으로 업무 메시지를 몇 개 처리하더니,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루아 씨 이혼 소송이 며칠 안 남았을 텐데. 어때, 결과는 나왔어?”핸들을 쥔 정루아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아니, 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재판이 연기됐어.”배진욱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쩌다 그런 일이?”“그 사람이 다쳤거든.”정루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대답했다.말을 아끼는 그녀를 보며 배진욱은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병원에 있던 사람도 구 대표였겠네.”정루아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응, 맞아.”배진욱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다쳤대?”잠시 뜸을 들이던 그의 어조에 묘한 여운이 묻어났다.“내가 알기로 구 대표는 끝까지 이혼 안 하려고 버텼을 텐데, 아니야?”정루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들었다.구태윤이 이혼하기 싫어하는 건 사실이었다.심지어 재판조차 열지 못하게 할 방법은 수십 가지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다.그렇다면 이번 일도 설마...‘아니야.’그녀는 애먼 생각을 얼른 지워버렸다.무려 진짜 총이지 않았는가.아무리 이혼을 미루고 싶어도 목숨을 담보로 하는 짓을 계획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임혜숙이 외할머니를 빼돌릴 걸 어찌 알았겠는가.‘됐어, 괜한 추측하지 마.’정루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 하지만 우리 결혼 생활은 이미 끝났어. 이혼은 시간문제지.”배진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이런저런 소문도 꽤 들었거든.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6화

    정루아는 할 말을 잃었다.진짜 답이 없는 남자였다.말로만 사랑한다고 했지,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걸 부탁하면 핑계만 대기 바빴다.더 이상 이 인간과 입씨름하고 싶지도 않았다.좋은 소리든 쓴소리든 할 말은 다 했다.기어코 고집을 부리며 귀를 막는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정루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매몰차게 돌아섰다.“윽...”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발걸음이 우뚝 멈췄다.그녀는 뒤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왜 그래?”구태윤은 묵묵부답했다.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린 모습은 고통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정루아는 저도 모르게 다가가서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이라도 나는지 확인하려고 했다.그 순간,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곧이어 확 끌어당기는 바람에 속절없이 넓은 품 안으로 고꾸라졌다.무쇠처럼 단단한 팔뚝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정루아는 버럭 화를 내며 발버둥 쳤다.“또 날 속인 거야?”“루아야, 나 아직 등에 상처 채 아물지도 않았어. 그렇게 버둥대면 다 터져서 피범벅 된다?”구태윤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머릿속으로 문득 피로 흥건하게 젖은 그의 등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을 대신해 총을 맞아서 다치게 되었지...거칠게 반항하던 손길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그녀는 딱딱한 말투로 경고했다.“이거 놔.”“루아야...”구태윤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체향을 깊게 들이마셨다.탁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널 이렇게 안아본 게 얼마 만이야. 너무 그리웠어.”그러나 정루아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남 속여서 얻은 포옹이 그렇게 좋아?”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리를 감싼 팔뚝에 더 강한 힘이 실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뭐, 굳이 그녀가 발버둥 치지 않아도 스스로 상처를 터뜨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그래도 내심 걱정은 하잖아, 아니야?”구태윤이 물었다. 대체 누구를 향한 질문인지 알 수 없었다.정루아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마침내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05화

    “여보세요?”정루아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전과 달리 한결 누그러진 말투였다.“루아야.”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지금 어디야?”정루아가 대답했다.“운전 중이야. 무슨 일인데?”구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묘하게 억울한 말투로 투덜거렸다.“나 보러 안 올 거야?”정루아는 묵묵부답했다.핸들을 쥔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앞을 주시하던 그녀는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지금 갈게.”남자의 어조가 한층 들떴다.“그래, 기다릴게.”통화를 마치고, 정루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이내 차들 돌려 구태윤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VIP 병실은 호텔 객실 부럽지 않게 안락했다.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와 푹신한 소파까지.게다가 화병에 꽂힌 생화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를 말끔히 가려주었다.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구태윤의 모습이 보였다.보조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그는 자판을 두드리며 일에 열중했다.옆에는 한민혁이 꼿꼿이 서서 지시를 기다리듯 대기 중이었다.똑똑.정루아는 손가락을 구부려 병실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환자가 됐으면 곱게 누워서 쉴 것이지.”구태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칠흑 같은 눈동자가 반짝거리더니,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루아야,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병실로 들어선 정루아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걸터앉았다.“그래도 내 목숨 살려준 사람인데, 인간적으로 그 정도 도리는 해야지. 당신한테 고맙기도 하고.”구태윤의 입꼬리가 한층 더 올라갔다.“부부 사이에 뭘 새삼스럽게.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기꺼이 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그렇단 말이지?”정루아가 묘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렸다.“그럼 정시연을 본가에서 쫓아내 달라고 하면? 가능하겠어?”구태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이유는? 내 조카 엄마를 상식적으로 쫓아낼 명분이 없잖아.”정루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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