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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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By:  6jay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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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붕괴 사고 72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강지은. 그런데 병원 전광판에는 자신의 영정사진이 떠 있었고, 장례식장에서는 남편과 그의 첫사랑이 15억 보험금과 부의금을 세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 죽은 줄 알았지?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빈소 문을 연 순간, 그녀의 장례식은 그들의 인생을 끝장낼 복수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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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 1화. 병원 전광판에 뜬 내 이름과 흑백 영정사진

서울한국병원 응급의료센터 로비의 형광등 불빛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어 달라붙은 이마, 찢겨 나간 소매 사이로 드러난 시퍼런 멍 자국. 3일간 갇혀 있던 고속도로 터널 붕괴 현장에서 살아 돌아와, 초기 처치를 마친 참이었다.

시야가 온통 흐릿하고 귓가에는 이명이 울렸지만, 가슴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콘크리트 잔해 밑에서 깨진 스마트폰을 붙들고 남편에게 걸었던 마지막 통화의 음성이 생생했다.

'지은아, 구조대 갈 테니까 배터리 아껴. 전화 끊는다.'

그 짤막하고 무미건조한 한마디가 남편 박도진과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그 뒤로는 몇 번을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어둠과 흙먼지로 뒤덮인 30m 지하 콘크리트 무덤.

차가운 지하수와 흙탕물을 핥으며 72시간을 버텼다.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바위를 긁어내며 호흡 하나하나를 필사적으로 이어갔다. 내가 그 생지옥에서 끝내 살아남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모든 청춘과 돈을 바쳐 뒷바라지했던 내 남편, 박도진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환자분! 추가 검사와 치료가 남았어요. 우선 침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간호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내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로비 안내 데스크를 가리켰다.

"제 남편…… 남편에게 먼저 연락해야 해요. 박도진이라고……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내 메마른 음성에 간호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녀의 시선이 흔들리며 로비 벽면에 설치된 대형 장례식장 실시간 현황판으로 향했다. 기이한 침묵에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린 내 시선이 붉은색 자막에 멎었다.

[특실 1호실 / 故 강지은 님 빈소 / 발인: 내일 오전 8시]

[상주: 남편 박도진]

쿵.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바닥 끝까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내 흑백 증명사진이 국화꽃 테두리에 둘러싸인 채 전광판 한가운데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어머, 저거 봐…… 저 환자분 이름이랑 똑같잖아?"

"터널 사고 실종자라던데? 시신 수습도 안 끝났는데 남편이 벌써 빈소를 차렸다더니……."

"살아 돌아온 거야? 세상에, 남편은 이미 초상 치르고 있는데!"

로비에 모여 있던 보호자들과 의료진의 웅성거림이 거대한 파도처럼 귓전을 때렸다.

내 이름이 붙은 빈소.

내가 지하 30m 어둠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그 시각, 남편은 내가 죽었다며 빈소를 차렸다. 수색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나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두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내밀었던 손이 굳었다. 차가운 바닥을 벗어나 병원까지 왔는데도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올라왔다. 눈물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6년간의 연애와 2년간의 결혼 생활. 내 명의로 마련했던 3억짜리 신혼집 전세금과 내가 낮밤으로 일해 벌어다 준 돈으로 차려준 남편의 무역회사. 그 모든 헌신의 대가가 서늘한 악취를 풍기며 눈앞에 드러나고 있었다.

"환자분, 어디 가세요!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저기요!"

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을 뒤로한 채, 나는 손등에 꽂혀 있던 링거 바늘을 거칠게 뽑아 던졌다. 툭 튀어나온 핏방울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내 데스크 직원이 내민 검은색 롱코트를 받아 피 묻은 환자복 위에 걸쳤다. 손등은 휴지로 눌렀다.

"사고 현장 가족 협의회에 변호사 있죠? 그분한테 연락해 주세요. 살아 돌아온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고요."

간호사가 내 이름을 확인하는 소리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유령처럼 창백했지만, 두 눈동자만큼은 시퍼런 서릿발처럼 번뜩였다. 지하 1층 장례식장 버튼을 꾹 눌렀다.

승강기 문이 닫히는 순간, 내 메마른 입술 사이로 서늘하고 묵직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남편 박도진.

네가 그렇게 서둘러 차려준 내 장례식에, 내가 직접 조문하러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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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병원 전광판에 뜬 내 이름과 흑백 영정사진
서울한국병원 응급의료센터 로비의 형광등 불빛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굳어 달라붙은 이마, 찢겨 나간 소매 사이로 드러난 시퍼런 멍 자국. 3일간 갇혀 있던 고속도로 터널 붕괴 현장에서 살아 돌아와, 초기 처치를 마친 참이었다.시야가 온통 흐릿하고 귓가에는 이명이 울렸지만, 가슴속에는 오직 한 사람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콘크리트 잔해 밑에서 깨진 스마트폰을 붙들고 남편에게 걸었던 마지막 통화의 음성이 생생했다.'지은아, 구조대 갈 테니까 배터리 아껴. 전화 끊는다.'그 짤막하고 무미건조한 한마디가 남편 박도진과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그 뒤로는 몇 번을 걸어도 연결되지 않았다. 어둠과 흙먼지로 뒤덮인 30m 지하 콘크리트 무덤.차가운 지하수와 흙탕물을 핥으며 72시간을 버텼다.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바위를 긁어내며 호흡 하나하나를 필사적으로 이어갔다. 내가 그 생지옥에서 끝내 살아남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내 모든 청춘과 돈을 바쳐 뒷바라지했던 내 남편, 박도진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환자분! 추가 검사와 치료가 남았어요. 우선 침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간호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내 팔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로비 안내 데스크를 가리켰다."제 남편…… 남편에게 먼저 연락해야 해요. 박도진이라고……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내 메마른 음성에 간호사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녀의 시선이 흔들리며 로비 벽면에 설치된 대형 장례식장 실시간 현황판으로 향했다. 기이한 침묵에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를 돌린 내 시선이 붉은색 자막에 멎었다.[특실 1호실 / 故 강지은 님 빈소 / 발인: 내일 오전 8시][상주: 남편 박도진]쿵.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바닥 끝까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내 흑백 증명사진이 국화꽃 테두리에 둘러싸인 채 전광판 한가운데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어머, 저거 봐…… 저 환자분 이름이랑 똑같잖아?""터널 사고 실종자라던데? 시신 수습도 안 끝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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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남편과 그의 첫사랑
지하 1층 장례식장 특실 1호실로 이어지는 대리석 복도 양옆에는 근조 화환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주)도진무역 임직원 일동''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 대표이사 박도진'내가 피땀 흘려 모아둔 종잣돈 3억을 고스란히 털어 넣어 차려준 남편의 무역회사 화환이 가장 화려한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번지르르한 문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빈소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슬픔과 곡소리로 가득 차야 할 공간에서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얼음이 부딪히는 달그락거리는 술잔 소리와 함께, 간드러진 여자의 웃음소리가 복도 벽을 타고 흘렀다. 장례식장 특유의 침울한 향 냄새 대신, 값비싼 프랑스산 향수 냄새와 독한 양주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특실 1호실의 육중한 여닫이문 틈새로 조용히 시선을 던졌다.문틈 너머로 펼쳐진 상주실의 풍경은 가히 한 편의 추악한 블랙코미디였다. 남편 박도진은 검은 상복 양복을 아무렇게나 걸쳐 입고 넥타이를 풀어 헤친 채, 가죽 소파에 오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그리고 그의 무릎 위에는 짙은 풀메이크업에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미니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요염하게 걸터앉아 있었다.신서린.도진의 대학 시절 첫사랑이자, 결혼 후에도 끈질기게 내 남편의 주변을 맴돌며 사업 자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던 그 여자였다.깨진 휴대폰 화면을 닦고 촬영을 켰다. 문틈 너머로 돈다발과 두 사람의 얼굴이 함께 잡혔다. 손이 떨려 문틀에 손목을 붙였다. 저들이 뱉은 말까지 남겨야 했다."도진 씨, 이 봉투 좀 봐봐. 대기업 부장이라더니 100만 원짜리 수표를 넣었어! 완전 대박이다, 진짜."서린이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가락으로 흰 부의금 봉투를 쩍쩍 찢으며 교태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탁자 위에는 갈기갈기 찢긴 부의금 봉투 수백 장과 5만 원권 돈다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그깟 부의금 몇 푼이 대수야? 지은이 앞으로 들어둔 사망보험금만 무려 15억이야, 서린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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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화. 상주님, 장례식이 참 흥겹네요
쾅-!특실 1호실의 두꺼운 목재 문이 거칠게 밀려 나가며 벽면에 부딪혔다. 고막을 찢는 듯한 육중한 파열음과 함께, 빈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일순간 증발했다.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던 도진의 친척들과 조문객들, 그리고 소파에서 돈을 세던 도진과 서린의 시선이 일제히 출입구로 쏠렸다. 문간에 선 내 모습은 흡사 지옥의 밑바닥에서 악귀들을 처단하러 기어 올라온 사신 같았을 것이다.머리칼에는 터널 붕괴 현장의 잿빛 콘크리트 분진이 엉켜 있었고, 이마와 볼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했다. 찢겨 나간 환자복 위에 걸친 검은 롱코트 자락이 서늘한 에어컨 바람을 타고 기괴하게 펄럭였다."……누, 누구십니까? 여기 상주 전용실인데 함부로 들어오시면……."상주석 옆에서 술을 따르던 도진의 사촌 동생이 말을 더듬으며 어설프게 일어섰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천천히 제단을 향해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뎠다.흙 묻은 슬리퍼가 대리석 바닥에 끌렸다. 말을 꺼내려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자, 내 발소리만 더 또렷해졌다. 박도진의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크게 확장되기 시작했다.그의 손에 들려 있던 양주잔이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흔들리더니, 이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떨어졌다.쨍그랑-!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독한 알코올 냄새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강…… 강지은……?"도진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채 덜덜 떨렸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 있던 서린 역시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빈소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멈추고 내 얼굴과 제단 위의 영정사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공기마저 얼어붙은 그 정적 속을 나는 천천히 가로질렀다. 조문객들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양옆으로 물러서며 홍해처럼 길을 갈라주었다. 누군가는 헛숨을 들이켜며 뒷걸음질쳤고, 누군가는 공포에 질려 입을 틀어막았다."살아 있는 거야? 저 사람, 영정사진 속 강지은 과장이잖아!""어떻게 된 거야? 시신도 없다더니 살아 돌아왔어!"사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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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화. 귀신이다
"꺄아아악-! 귀신이야! 귀신이 살아 돌아왔다!"바닥에 나뒹굴던 신서린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며 테이블 밑으로 흉측하게 기어 들어갔다. 빈소 안에 있던 친척들과 조문객들은 사색이 된 채 서로를 밀치며 출입구 쪽으로 아수라장처럼 도망쳤다. 소주병이 깨지고 의자가 뒤집히며 장례식장은 단숨에 아비규환의 난장판으로 변했다."귀신?"나는 차갑게 읊조리며 소파에 주저앉아 있던 박도진의 멱살을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3일간의 조난으로 팔은 제대로 힘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의 옷깃을 손가락에 감아 쥐고, 테이블에 몸을 기대 버텼다.도진의 목이 졸리며 컥컥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내가 흙더미에 묻혀 피눈물을 흘릴 때, 내 빈소 차려 놓고 축배를 들던 인간이 이제 와서 귀신 타령이야?""지, 지은아…… 이거 놓고 말해…… 사람이 왜 이래! 숨 막혀 죽겠다고!"도진이 두 손으로 내 손목을 뜯어내려 발버둥을 쳤다. 그 뻔뻔하고 비열한 주둥이를 똑바로 응시하는 순간, 내 왼손이 허공을 매섭게 갈랐다.짝-!뺨을 때리는 소리가 빈소에 울렸다. 내 손바닥에도 찢어질 듯한 통증이 번졌지만, 손을 거두지 못했다. 도진의 고개가 완전히 꺾이며 찢어진 입술 틈으로 시뻘건 핏물이 부의금 봉투 위로 튀었다."악! 내 턱……!"도진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나는 한 치의 지체도 없이, 테이블 밑에 웅크리고 떨고 있던 신서린의 긴 머리채를 잡아채 그대로 탁자 밖으로 패대기쳤다."꺄악! 내 머리! 이거 놔, 이 미친년아! 살려줘요, 도진 씨!""남의 장례식장에 기어들어 와서 상복 입고 안주인 행세를 해? 내 15억 보험금으로 포르쉐를 사서 발리로 가?"나는 서린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그녀의 얼굴을 돈다발이 널브러진 탁자 모서리에 처박았다."남의 남편을 끼고 앉은 걸로 모자라, 내 목숨값까지 나눠 가지려고 했어? 남의 피 같은 돈에 손대지 말았어야지, 이 쓰레기들아."서린은 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었다. 주변에 남아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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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사망보험금 심사 중단과 가압류 예고
특실 1호실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숨 막히는 정적이 쏟아져 내렸다. 박도진은 류태환 변호사가 들이민 보험사 접수 내역과 고소장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사시나무 떨듯 헐떡이고 있었다. 순백의 A4 용지 위에 보험사 접수 번호가 찍혀 있었다.'피보험자 생존 확인에 따른 사망보험금 지급 심사 중단'도진은 종이를 뒤집었다가 다시 앞면을 확인했다. 15억이라는 숫자보다 그 아래 붙은 중단이라는 단어를 더 오래 보고 있었다."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 가압류라니? 내가 상주인데 왜 보험금이 묶여!"도진이 피투성이가 된 입술을 덜덜 떨며 악을 썼다. 그의 뒤에서 바닥을 기어 다니던 신서린 역시 화장이 번진 흉측한 얼굴로 비명을 꽥 질렀다."변호사님,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 도진 씨가 지은 씨 터널에 갇혔을 때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데요!"류태환 변호사는 대꾸하기 전에 테이블 위의 봉투를 가리켰다."신서린 씨, 슬퍼하셨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테이블 위 봉투는 왜 저렇게 뜯겨 있습니까? 저 돈을 누가 챙기고 있었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태환이 태블릿 PC 화면을 켜서 도진의 핏발 선 눈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도진이 아내의 실종 신고 직후 보험사에 제출한 사망보험금 청구 자료가 떠 있었다."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던 사고 당일 밤, 응급실 당직의에게 500만 원을 건네고 사망진단서를 받았다는 정황도 경찰에 넘겼습니다. 담당 의사에 대한 조사도 시작됐습니다."쿵-!도진이 물러나다 소파 받침에 발뒤꿈치를 부딪쳤다. 양손으로 등받이를 움켜쥐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졌을 것이다. 그의 낯빛이 시체처럼 새하얗게 탈색되어 갔다."의, 의사가…… 벌써 조사받는다고?""박도진 씨 명의의 예금과 주식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겠습니다. 도진무역 법인 계좌의 수상한 거래는 별도로 확인할 겁니다. 회사 돈과 대표 개인 돈은 구분해야 하니까요."태환이 서류 한쪽을 짚자 도진은 그 줄을 가리려는 듯 손을 뻗었다. 태환은 종이를 거둬 서류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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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사고 당일의 진실
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류태환 변호사의 세단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서늘한 새벽 공기가 흙먼지와 피로 뒤덮인 내 뺨을 차갑게 식혀주었다.차량 안은 조용했다. 가죽 냄새 사이로 은은한 우디 향이 감돌았다. 3일 만에 느껴보는 문명사회의 아늑함이었지만, 내 신경은 살인적인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곤두서 있었다."강 과장님, 몸 상태가 심각합니다. 일단 병원 VIP 입원실로 모셔서 링거와 산소 치료부터 받으시죠."태환의 나직하고 단단한 음성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류 변호사님. 지금 쉬면 저 파렴치한 인간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꼴입니다. 블랙박스 영상부터 확인하죠."태환이 내 결연한 눈빛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 위에 뜬 영상의 촬영 일시는 내가 충주 고속도로 터널 붕괴 사고로 어둠 속에 갇힌 사고 당일 오후 4시 20분이었다. 화면 속 장소는 경기도 외곽의 한적한 무인 모텔 주차장이었다.'지은아, 구조대 갈 테니까 배터리 아껴. 전화 끊는다.'블랙박스 고음질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박도진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음성. 그리고 통화가 종료되자마자 차량 안에서 터져 나온 것은 귀를 찢는 교태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였다.'오빠, 진짜 전화 그냥 끊어버린 거야? 터널 무너져서 사람 깔렸다는데 어떡해?''어떡하긴 뭘 어떡해. 15억짜리 로또가 제 발로 터널에 기어들어 갔는데.'화면에는 모텔 주차장 입구가 잡혀 있었다. 도진의 느릿한 숨소리와, 바로 곁에서 웃는 서린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수색대가 늦게 갈수록 우리한테 유리해. 그 안에 묻혀서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 죽으면 완벽한 자연재해 사망이거든. 15억 일시불로 떨어지면 넌 이제 사모님 소리 듣고 사는 거야.''꺄악! 오빠 최고! 나 오늘 밤 오빠한테 완전 봉사할래!'스피커 너머로 두 악마가 나누는 적나라한 키스 소리와 샴페인 코르크가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내 심장이 산산조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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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지은아 다 오해야
마포구 상암동의 32평 고급 아파트. 내가 결혼 전부터 청약과 적금으로 피땀 흘려 모은 3억 원의 전세보증금으로 마련한 내 온전한 보금자리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복도에 도착하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안쪽에서 서랍을 마구 뒤집는 요란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야! 강지은 다이아몬드 예물 세트 어디 뒀어! 옷장에 있는 명품 가방이랑 금송아지 다 쓸어 담으라고!"도진이 거실 바닥에 대형 캐리어 세 개를 펼쳐놓고 안방 옷장과 금고를 닥치는 대로 뒤집어엎고 있었다. 신서린은 내 화장대 서랍을 뒤져 백화점 상품권 뭉치와 명품 롤렉스 시계를 제 명품 핸드백에 쑤셔 넣고 있었다."도진 씨, 이 샤넬 클래식 백 내가 가져도 되지? 그 여자 이걸 하나하나 확인할 정신이나 있겠어?""가져, 다 가져! 그거 중고로 처분해서 일단 사채 이자부터 막아야 해!"도둑고양이처럼 남의 살림살이를 털어대던 두 악마의 시선이, 현관문 앞에 우뚝 선 나와 류태환 변호사에게 멎었다."……지, 지은아!"서린의 손에서 롤렉스 시계가 미끄러져 마루 바닥으로 요란하게 굴러떨어졌다. 서린은 훔치려던 명품 가방을 등 뒤로 숨기며 쥐새끼처럼 구석으로 엉금엉금 물러섰다."내 장례식장에서 쫓겨나자마자 달려온 곳이 남의 집 도둑질이야?"내가 서늘한 음성으로 거실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자, 도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되기 시작했다. 그는 번개처럼 표정을 바꾸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내 쪽으로 기어왔다."지은아! 다 오해야, 진짜 오해야! 서린이 저 악독한 년이 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한 거야!""뭐? 박도진, 이 미친 새끼야. 너 지금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네가 15억 타서 발리 가자며!"서린이 경악하여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지만,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더러운 손을 뻗었다."지은아, 난 널 진심으로 사랑해! 터널 사고 났을 때도 내가 병원에서 밤새 얼마나 울었는데…… 제발 고소만 취하해 줘! 응?"비루하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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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화. 신혼집 전세금
"경찰관님, 신고드린 현장입니다. 두 사람이 강지은 씨의 패물을 챙겨 나가려 했습니다. 가방과 캐리어부터 확인해 주십시오."류태환 변호사의 단호한 신호와 함께,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마포경찰서 강력팀 형사 4명이 거실 안으로 들이닥쳤다."뭐, 뭐야! 이거 놔요! 내가 이 집에 사는 사람인데 왜 붙잡아!"도진은 팔이 붙잡히자 고래고래 악을 쓰며 발악했다. 신서린 역시 여경의 손에 팔이 꺾인 채 발버둥을 쳤다."놔요! 난 그냥 따라온 것뿐이라고요! 도진 씨가 다 가져가도 된다고 했단 말이에요!"나는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전세계약서 원본을 형사 반장에게 차분하게 건넸다."전세보증금 3억 원은 결혼 전 제가 마련했고 계약자도 저예요. 집을 비우는 일정에 맞춰 제 계좌로 돌려받기로 집주인과 합의했습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제 패물을 가져가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처벌을 원합니다."형사 반장이 서류를 꼼꼼히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진을 차갑게 쏘아보았다."주거 문제와 물건을 가져간 문제는 따로 확인하겠습니다. 두 분은 패물을 함께 챙긴 절도 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하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 이유에 대해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강지은! 너 진짜 미쳤어? 전세금을 당장 빼버리면 난 어디서 살라고!""어디서 살든 네 사정이지, 박도진 씨. 적어도 내 집은 아니야."나는 서린이 쑤셔 넣었던 명품 가방과 캐리어를 열어 형사가 보는 앞에서 내용물을 바닥에 꺼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캐리어에 넣어 둔 겉옷과 낡은 신발 몇 켤레만 쓰레기봉투에 쑤셔 담아 복도 바닥으로 가차 없이 내던졌다."꺄악! 내 명품 옷들! 야, 강지은! 너 사람을 이따위로 대접해?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서린이 머리채가 헝클어진 채 길길이 날뛰었지만, 여경이 그녀의 양팔을 거칠게 꺾어 수갑을 채웠다."신서린 씨, 절도 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물건은 확인이 끝날 때까지 손대지 마세요."두 악마가 경찰들의 거친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로 끌려가는 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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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화. 청구서의 습격
그날 오전 마포경찰서에서 벌어진 일은 나중에 전해 들었다. 도진은 유치장에서도 끊임없이 밖으로 나갈 방법부터 물었다고 했다. 구겨진 명품 와이셔츠 차림에 손목에는 은빛 수갑을 찬 박도진은 유치장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었다.그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떨렸고, 입술 가장자리에는 빈소에서 맞아 터진 피딱지가 흉측하게 남아 있었다. 단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내의 사망보험금 15억으로 발리 풀빌라를 가네, 포르쉐를 모네 허세를 부리던 남자의 꼴은 온데간데없었다.사방이 꽉 막힌 철창 안에서 들려오는 것은 다른 취객들의 고성과 담당 경찰관들의 차가운 호통소리뿐이었다. 면회실로 옮겨진 도진은 손목을 연신 비볐다. 수갑이 닿았던 자리를 문지르다가도 철문 소리만 나면 고개를 들었다.철컥-! 쾅!유치장 면회실 철문이 거칠게 열리고,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덩치 큰 사내 3명이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들어섰다. 강남 대부캐피탈의 악명 높은 강 실장과 그 수하들이었다."어이, 박도진 대표. 여기서 나라 밥 먹으면서 시원하게 에어컨 쐬고 계셨네?"강 실장이 굵은 금반지를 낀 우람한 손가락으로 아크릴 유리창을 쾅쾅 두드렸다. 도진이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일어나며 유리창 앞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강, 강 실장님!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저 변호사 부르면 곧 나갈 수 있습니다!""나가긴 어딜 나가, 이 파렴치한 새끼야."강 실장이 차가운 침을 바닥에 뱉으며 두툼한 채권 계약서와 차용증 뭉치를 유리창 앞에 사정없이 내리찍었다."네 마누라 멀쩡히 살아서 돌아왔다며? 15억은 못 받는다더라. 네 통장에 가압류 신청까지 들어가면 뭘로 갚을 건데? 카드도 다 막혔다며?"유리창 너머로 들이밀어진 서류에는 도진이 자필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은 사채 차용증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포르쉐 카이엔 차량 잔금 8,000만 원에, 네가 지난주에 첫사랑 계집년 명품 가방 사준다고 땡겨간 사채 원금 1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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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화. 너 거지였어?
두 사람의 대질 내용도 뒤에 확인할 수 있었다. 마포경찰서 제3조사실에서, 도진과 서린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양손에 차가운 은빛 수갑을 찬 박도진과 신서린이 긴 철제 취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서린의 얼굴은 더 이상 SNS에서 수십만 팔로워를 거느리던 화려한 뷰티 인플루언서의 모습이 아니었다. 고급 마스카라는 눈물과 땀에 흉측하게 번져 있었고, 단정치 못한 검은 미니원피스는 유치장 바닥의 흙먼지로 뒤덮여 넝마주이 같았다.서린은 번진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까맣게 묻어난 화장을 보고는 도진에게 손을 내보였다."도진 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변호사는 불렀어? 선임비는 냈냐고!"서린이 수갑 찬 두 손으로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시퍼렇게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도진은 퀭하게 파인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덜덜 떨리는 손가락만 내려다볼 뿐이었다."돈이…… 없어, 서린아. 카드도 막혔어. 통장까지 묶이면 진짜 손쓸 방법이 없다고.""뭐? 돈이 없다고? 15억 보험금은 어떻게 된 건데!""강지은이 살아 돌아왔잖아. 보험사에서 돈 안 준다고…… 사망진단서 써 준 의사도 조사받고 있어."도진의 비루하고 웅얼거리는 고백에, 서린의 눈동자가 경악과 배신감으로 뒤틀려갔다."그럼 너…… 15억도 없고, 신혼집 전세금도 없고, 진짜 땡전 한 푼 없는 빚쟁이 알거지였어?""서린아, 그래도 난 널 호강시켜 주려고 사채까지 땡겨서 포르쉐 계약금 넣고 명품 사줬잖아…….""사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미친 사기꾼 새끼야!"서린이 이성을 완전히 잃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수갑 찬 두 손을 높이 치켜들어 도진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어 내렸다.짝-! 퍽-!"아악! 서린아, 왜 이래! 미쳤어? 이거 놔!""누가 사달래? 네가 15억 재벌 사모님 만들어준다고 내 인생 책임진다고 했잖아! 내 팔로워들, 내 모델 계약 다 날아가게 생겼는데 네깟 놈이 뭔데 날 끌어들여!"서린이 도진의 머리채를 한 움큼 쥐어뜯으며 얼굴에 가래침을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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