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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Autor: 낙화
익숙한 숨결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 그녀는 단번에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남자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침대 위에 엎드려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과 반쯤 감긴 초점 잃은 눈으로 보아 의식이 또렷한 것 같지 않았다.

“죽을 거면 다른 데 가서 죽어.”

그를 보자마자 정루아는 또다시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를 속인 것도 모자라 이젠 이런 식으로 그녀를 놀라게까지 하다니!

그녀의 고함에도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거친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정루아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방금 전 팔이 스쳤을 때 느껴졌던 몹시 뜨거웠던 느낌이 떠올랐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그의 이마에 살짝 손을 얹었다.

역시 너무나 뜨거웠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은은한 피비린내가 코에 흘러들어왔다.

그녀의 고운 눈썹이 더욱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불을 걷어 올린 순간, 정루아의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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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54화

    정루아가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기분이 좀 풀리겠어? 쇼핑이라도 갈래?”“우리 눈 호강하러 가자.”이연희가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며 생글생글 웃었다.“그동안 선보면서 별의별 오징어를 다 봤더니, 안구 정화 좀 해야겠어.”정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가자.”이연희는 신이 나서 말했다.“응!”두 사람은 곧장 청야 라운지로 향했다. 룸 대신 홀에 자리를 잡아 바 테이블에 앉았다.이연희가 손을 휘저으며 매니저를 불러 술을 주문했다. 그러고는 대기 중인 호스트를 전부 불러들여 두 눈으로 직접 고르겠다고 선언했다.매니저는 두 사람을 곁눈질로 훑어내렸다. 죄다 명품인 것을 확인하자 잽싸게 분부에 따랐다.잠시 후, 훤칠한 키의 남성 20명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섰다.이연희는 한 손으로 팔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걸음을 옮기며 남자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한 바퀴 둘러본 그녀가 턱짓으로 한 사람을 콕 집었다.“이 친구는 합격, 나머지는 전원 탈락. 한 20명 더 들여보내요.”그렇게 총 60여 명의 남자가 거쳐 간 끝에야 겨우 5명을 골랐다.이내 그나마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어디 보자, 오늘 밤 누가 내 비위 제일 잘 맞춰주려나. 팁은 두둑하게 챙겨줄 테니까 알아서들 해.”간택 받은 5명의 남자가 잽싸게 이연희의 주변을 에워쌌다.어깨를 주무르는 사람, 다리를 안마하는 사람, 술을 따르는 사람, 과일을 입에 넣어주는 사람까지.그중 한 명은 이연희의 손목을 잡아 복근에 갖다 대며 능청스럽게 물었다.“누나, 제 복근 만져보실래요?”이연희는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아까만 해도 부루퉁하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역시 답은 얼굴인가?정루아는 친구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확인하자 김철웅이 보낸 메시지가 떴다.[루아 씨, 안심하세요. 바로 좌측 뒤편에 있으니 편하게 놀다 가셔도 됩니다.]정루아가 피식 웃었다. 그제야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스르륵 풀렸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53화

    “안 돼!”남수진이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내가 너를 어떻게 데려왔는데 또 나겠다는 거야? 이 방대한 업무를 엄마가 무슨 수로 감당해? 아들, 제발 진정해.”배진욱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다.“그럼 앞으로 제 일에는 신경 끄세요.”남수진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어.”한편, 울면서 방으로 뛰어간 배다인은 안에 있던 온갖 물건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그제야 턱밑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겨우 가라앉는 듯했다.이내 매서운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치를 떨었다.“정루아, 이 더러운 년아! 구태윤을 홀리더니 이제 우리 오빠까지 눈독 들여? 절대 가만 안 둘 거야.”...다음 날 아침, 김철웅한테서 문자가 왔다.아니나 다를까, 차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브레이크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만약 차를 몰고 나갔다면, 주행 중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결국 끔찍한 사고로 이어졌을 터였다.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정루아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혔다.그녀는 휴대폰을 꽉 움켜쥔 채 곧바로 김철웅에게 전화를 걸었다.“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건지, 혹시 단서라도 잡았어요?”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최대한 파헤쳐 보는 중입니다만,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셔야 할 겁니다. 아마 범인의 흔적은 찾아내기 어려울 확률이 높아요.”정루아가 질끈 눈을 감았다.“도대체 누가 날 이렇게까지 노리는 거죠? 내가 죽기라도 바라는 걸까요?”김철웅은 의문을 잠시 뒤로 하고 진지한 얼굴로 다짐했다.“루아 씨, 앞으로는 제가 곁에서 밀착해서 경호할게요. 다른 친구들은 주변에 잠복시켜서 감시하게 하고.”소파에 기대어 앉은 정루아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그래요.”당장 목숨이 오가는 판국에 다른 것을 따질 겨를 따위는 없었다....공항.비행기가 활주로에 부드럽게 착륙했다.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자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입국장을 걸어 나왔다.얼굴은 선글라스에 가려졌고, 귀에는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52화

    정루아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내 배진욱을 바라보았다.“오빠, 난 이만 가볼게.”배진욱이 씁쓸한 한숨을 내쉬었다.“미안하다, 루아야. 우리 집에서 이런 꼴을 겪게 해서.”정루아가 말했다.“나야 뺨 때려서 화도 다 풀렸어. 다만 오빠가 이제 골치 아파지겠네.”“뭐, 내가 골치 아플 건 없지. 다인이가 먼저 무례하게 굴었으니까.”배진욱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나도 가봐야겠어.”두 사람은 현관 앞에서 각자 발걸음을 돌렸다.집으로 돌아온 정루아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했다.송문애가 손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루아야, 무슨 일 있었어?”송문애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정루아는 손을 씻고는 곧장 외할머니의 곁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할머니, 나 오늘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어요. 그때 구태윤을 구해준 사람, 진짜로 정시연이었더라고요.”송문애는 눈에 띄게 놀라더니 곧바로 물었다.“그럼 너는 누구를 구했던 거니?”“구승태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실 안에는 정적만이 내려앉았다.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과연 구승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꽤 자주 마주쳤었다.심지어 결혼식 날엔 신랑 들러리로 서주기까지 했었다.송문애는 손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진실을 알게 됐으면 홀가분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낯빛이 어두워?”정루아가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했다.“그냥... 구태윤이 왜 굳이 이 사실을 숨겼는지 이해가 안 가서요.”송문애가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혹시 네가 진실을 알게 되면, 태윤이를 향했던 그 감정마저 흔들릴까 봐 겁이 났던 건 아닐까?”정루아는 순간 멍해지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제가 그 사람을 먼저 좋아했어요. 그래서 구하러 갔던 건데요.”“글쎄, 태윤이 입장에선 그렇게 단순하게만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지.”송문애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물론 내 짐작일 뿐이지만 말이다. 요즘 젊은 애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51화

    정루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그냥 일하다 보면 있는 소소한 골칫거리 같은 거야.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워낙 위험한 상황들이라 얽히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배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힘들면 언제든 기대도 좋아. 나 믿지? 네가 짊어진 짐은 기꺼이 나눠 줄 테니까.”정루아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고마워, 진욱 씨.”“우리 사이에 언제까지 그렇게 ‘씨’자 붙여가며 선을 그을 거야? 들을 때마다 엄청 서운하네.”배진욱이 짐짓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이름 부르는 게 아직 어색하면, 차라리 오빠라고 불러.”“오빠...?”정루아가 멋쩍게 입을 뗐다.“훨씬 듣기 좋네. 그럼 나도 편하게 부른다?”배진욱이 싱긋 웃었다.“내 동생도 너 반만 닮아서 속 좀 덜 썩였으면 좋겠어.”정루아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다인 씨도 평상시엔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어. 난 집에 가서 생각 정리해 봐야 하니까 이만 가볼게.”배진욱이 따라 웃었다.“그래, 배웅해 줄게.”두 사람이 나란히 현관문으로 걸어갔다.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앞에 서서 손을 든 채 막 노크하려던 배다인을 마주쳤다.“오빠? 이 여자가 왜 여기서 나와?”배다인은 정루아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구기며 앙칼지게 쏘아붙였다.배진욱이 대답했다.“루아는 내 손님이야. 친구 집에 와서 차 한잔하고 간 게 뭐 어때서?”“진짜 그냥 손님 맞아?”배다인은 의심쩍은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정루아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쏘아붙였다.“어디 아프면 병원 가서 진료라도 받지? 마침 잘 아는 정신과 전문의가 있으니까, 필요하면 예약 잡아줄게.”배다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지금 나더러 돌았단 소리야?”정루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지. 넌 비아냥거릴 자격이 있고, 난 팩폭 날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흥!”배다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50화

    배진욱이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정루아의 앞쪽으로 밀어주었다.“지진 현장에서 후원 행사 사진을 기록하던 기자를 찾아냈거든. 그 사람한테서 사진 몇 장을 빼내 왔는데, 그중에 정시연이 구태윤을 업고 폐허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찍힌 게 있었어.”다름 아닌 그가 가장 먼저 보여준 사진이었다.정루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핏기가 가신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이 서려 있었다.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받아 든 그녀가 화면을 뚫어지라 응시했다.놀랍게도 예전에 구태윤이 직접 보여주었던 사진과 정확히 일치했다.정말로 사실이었다니.구태윤을 구한 사람은 정시연이었다.그렇다면 그녀는...?자신이 구했던 그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정루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배진욱을 바라보았다.어느덧 목이 꽉 막혔다.“하지만... 분명히 내가 그 사람을 구했는데...”“자자, 일단 진정하고.”새하얗게 질린 채 혼란에 빠진 그녀를 보며 배진욱이 나직하게 다독였다.말을 마치고는 휴대폰 화면을 넘기며 두 번째 사진을 띄웠다.사진 속에는 풋풋하고 앳된 얼굴의 정루아가 한 소년을 등에 업은 채 무너진 가옥 틈새를 헤쳐 나오고 있었다.다만 그 소년의 옆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구태윤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는 이목구비.하지만 구태윤은 아니었다.정루아의 동공이 수축했다.이내 두 손으로 휴대폰을 감싸 쥔 채 사진을 확대해 가며 구석구석 훑어내렸다.의식을 잃었는지 두 팔이 허공에 축 늘어진 채 덜렁거리는 소년과 그를 등에 업은 채 잔해 속을 빠져나오는 자신의 모습까지.카메라 렌즈는 그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화면 속 남자의 얼굴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이 사람은...”정루아가 입술을 겨우 달싹이며 목소리를 쥐어짰다.“설마, 구승태야?”“맞아.”배진욱이 다시 화면을 넘기자, 이번에는 구승태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났다.교복 차림의 소년은 생기가 넘치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한 손에는 트로피를 든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린 모습이

  •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제349화

    여나은은 긴장한 얼굴로 이불을 꽉 움켜쥐며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정루아는 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놓치지 않고 여유롭게 말했다.“천천히 생각해 봐. 꼭 내 밑에서 일할 필요는 없어. 다른 곳도 알아보고 정해도 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여나은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대답했다.“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안 될까요?”“그래.”정루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병원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된 차를 향해 걸어가던 그때, 불현듯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그녀는 흠칫 놀라며 급히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입구에는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로만 북적일 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방금 건 그저 착각이었을까?가슴 한구석에서 묘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정루아는 서둘러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막 시동을 걸려는 찰나,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휴대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하자 김철웅이었다.다급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바짝 긴장한 그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철웅 씨, 무슨 일이에요?”김철웅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루아 씨, 시동 걸지 말고 당장 차에서 내리세요! 방금 들어온 첩보가 있는데, 누군가 루아 씨 차에 손 댔을 가능성이 큽니다.”정루아의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내라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이내 황급히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때마침 저 멀리서 김철웅이 전력 질주로 달려오고 있었다.“화장실 좀 다녀오느라 부하 직원한테 잠깐 지켜보라고 했는데, 그 녀석 말로는 누군가 루아 씨 차 주변을 꽤 오래 서성였다고 하더라고요.”정루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이제 어떡해야 하죠?”김철웅이 단호하게 말했다.“일단 전문 업체 불러서 차부터 견인해 정밀 검수받아야 합니다. 루아 씨는 택시 타고 이동하시죠.”정루아의 머릿속에 지난번에 당했던 습격과 그전의 아찔했던 납치 소동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이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물었다.“저번에 있었던 일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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