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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정식 부부

Author: Noona Aurora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9-06 15:38:48

엘리노어와 아치는 그날로 수속을 마치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재크슨은 엘리노어에게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혼인신고 절차가 끝나자마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지금 엘리노어는 아치와 함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엘리노어는 손에 쥐어진 혼인신고서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켰다. 화려한 연회와 아름다운 드레스를 꿈꾸던 결혼식은 이제 그녀에게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게 된 듯했다.

엘리노어는 이 계약 결혼에 그 어떤 기대도 품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직장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제 우리 어머니를 만나러 갑시다.”

아치의 목소리에 엘리노어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아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혼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지 않으실까요?” 엘리노어가 확인하듯 물었다. 아치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더욱 불안했다.

엄하신 분일까? 아니면 따뜻한 분일까?

아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었지만, 얼굴에는 옅은 망설임의 기색이 번졌다.

잠시 후.

차는 아치 가문의 웅장하고 저택 앞마당에 들어섰다.

아치는 엘리노어와 함께 차에서 내렸고, 두 사람은 나란히 발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치, 너니?”

그들이 거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쉰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

아치와 엘리노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치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예순쯤 되어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성이 아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너였구나, 그런데….” 아치의 어머니 그레이스는 아들 곁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자 말을 멈추었다.

그레이스의 미간이 깊게 패이며 두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레이스는 아치가 집에 데려온 여자의 차림새를 유심히 훑어보았다.

“아치, 이 여자는 누구냐?” 그레이스의 손가락이 엘리노어를 직접 가리켰다.

엘리노어는 그레이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그 직후, 엘리노어는 아치가 다시 자신의 손을 꼭 잡는 것을 느꼈다.

엘리노어가 아치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인사하십시오. 엘리노어 몽고메리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여자이고, 이제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그레이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아치의 방금 전 설명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내? 아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치!” 그레이스가 해명을 요구했다.

아치는 먼저 엘리노어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이 엘리노어를 향할 때만큼은 부드럽게 변하더니, 이내 그녀를 이끌고 그레이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그레이스는 눈앞에 나란히 선 아치와 엘리노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지만 엘리노어는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어머니께서 정해주신 정략결혼을 거절한 것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전 엘리노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친 아치는 엘리노어의 손을 잡은 힘을 더욱 세게 주었다.

엘리노어는 방금 말을 끝낸 아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치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문장 하나하나가 엘리노어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잔혹한 현실이 그녀의 뺨을 때리는 듯했다. 이 모든 고백은 그저 연극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시작한 연극.

아치는 정략결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엘리노어는 아버지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다.

그레이스는 아치가 한 말을 듣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아치와 엘리노어를 몇 번이고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깐만….” 그레이스는 겨우 충격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엘리노어를 사랑한다니, 그게 대체 언제부터냐? 그리고 왜 엄마한테는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거니?” 그레이스가 확실한 대답을 요구했다.

아치는 침묵하고 있는 엘리노어를 흘끗 돌아본 뒤,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오래 전부터였습니다. 다만 저희 관계를 비밀로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엘?”

엘리노어는 그레이스를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의 눈빛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아치가 엘리노어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자, 그레이스도 결국 의심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럼, 너희 정말 서로 사랑하는 거냐?” 그레이스가 재차 확인했다.

아치와 엘리노어는 한목소리로 확신을 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스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엘리노어에게 다가가 바로 앞에 섰다.

엘리노어를 바라보는 그레이스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그레이스의 두 손이 엘리노어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우리 아치를 받아줘서 고맙다. 이제 이 아이를 잘 부탁하마.” 그레이스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엘리노어는 그레이스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엘리노어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레이스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손을 거둔 후에도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내가 정해준 정략결혼을 거절한 건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좋아하는 여자를 찾았다는 거니까.” 그레이스의 시선이 아치를 잠시 담았다가 다시 엘리노어에게로 향했다.

그레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결혼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정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난 참 기쁘구나.”

“그럼 이제 결혼식은 어떻게 할 거니? 엘리노어의 가족들도 찾아뵈어야겠지?” 이야기를 마친 그레이스가 아치와 엘리노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엘리노어의 표정이 씁쓸하게 어두워지는 것을 보자, 그레이스의 미소도 순간 굳어버렸다.

“왜 그러니?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냐?” 그레이스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엘리노어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자 아치가 곧바로 나섰다. “나중에 따로 설명해 드릴게요.”

아치는 엘리노어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선 엘부터 쉬게 해줘야겠습니다.”

그레이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자신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 걸까?

아치는 하인을 시켜 엘리노어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엘리노어가 올라간 후, 아치는 그레이스를 이끌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이냐? 왜 친정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아이 표정이 그렇게 어두워지는 게야?” 그레이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곧바로 물었다.

아치는 그레이스를 바라보며 차분히 설명했다. “엘의 집안 사람들은 그녀에게 다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결혼하든 말든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니, 친정 이야기는 꺼내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그레이스는 충격을 받았다.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자식한테 그럴 수가 있니? 그럼 친어머니는?” 그레이스가 물었다.

아치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그 집엔 사악한 새어머니와 의붓동생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친정의 악행으로부터 엘을 보호하기 위해 결혼을 서두른 겁니다.”

아치는 엘리노어의 가정사를 이용해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레이스는 경악했고, 분노를 참느라 턱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그런 몰상식한 부모가 다 있니!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어떻게 그렇게 방치할 수 있어!” 그레이스가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아치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어차피 자신 역시 비슷한 처지가 아니던가. 다만 자신에게는 보호해 주는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레이스는 아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을 꼭 쥐며 간절한 눈빛으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부부가 되었으니, 남편으로서 이제부터 저 아이를 잘 보살펴 주거라.” 그레이스는 엘리노어의 사연에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아치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앞으로 저 아이가 먼저 꺼내지 않는 한, 친정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으마.” 그레이스가 덧붙였다.

“네, 그러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치가 짧게 응수했다.

그레이스를 안심시킨 후, 아치는 엘리노어를 확인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방 안에 들어서자, 아치의 시선은 옆에 캐리어를 둔 채 소파에 앉아 있는 엘리노어에게 곧바로 닿았다.

아치가 들어오는 것을 본 엘리노어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노어는 아치를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 “어머니께 설명은 잘 말씀드렸습니까? 혹시 의심하지는 않으시던가요?”

아치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치의 시선이 엘리노어의 캐리어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그녀의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 계약 결혼 건 말입니다. 혹시 원하는 조건이 있습니까?” 아치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본론을 꺼냈다.

방금 전 그레이스와 고부간처럼 나눈 대화 때문에, 엘리노어는 잠시 자신들이 계약 관계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치의 한마디는 그들이 단지 계약 부부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사장님께서 준비해 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혹시 부담스러운 조항이 있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노어는 아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감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곧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 오겠습니다.” 아치는 엘리노어와의 시선을 거두었다.

아치가 다시 나아가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 엘리노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 사장님과 같은 방을 쓰게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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