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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CEO와의 계약결혼: Chapter 1 - Chapter 10

25 Chapters

제1장 신분 선언

“인사하십시오. 내 약혼녀 엘리노어 몽고메리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또 결혼할 여자죠.”엘리노어 몽고메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경악한 눈빛으로 자신의 상사, 아치볼드 리히터(아치)를 바라보았다.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 나라 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 ‘리히터 컴퍼니’의 총수 자리에 오른 남자.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왜 자신을 약혼녀라고 소개하는 거지?엘리노어는 허리를 감싸 쥐고 있는 아치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어쩌다 이런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 걸까?엘리노어가 이 레스토랑에 온 건 약혼자인 줄리안 블랙우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줄리안이 헤이즐우드가의 후계자인 폴라 헤이즐우드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이었다. 결국 언쟁 끝에 줄리안으로부터 일방적인 파혼 통보를 받고 말았다.분노와 실망감을 안고 줄리안과 폴라에게서 막 돌아섰을 때, 엘리노어는 우연히 아치와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다짜고짜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나 따라와요.”엘리노어는 채 무슨 일인지 이해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아치가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끌고 왔다는 사실을.그렇다. 엘리노어의 눈앞에 서 있는 여자는 방금 아치가 한 고백을 듣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아치는 엘리노어를 자신의 약혼녀라고 선언했다.이 상사가 진짜 미쳤나 보다!“아치, 지금 농담하는 거지?” 아치의 정략결혼 상대인 그레타린데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치를 노려보았다.그레타는 방금 아치가 한 말을 순순히 믿을 수 없었다.“보시다시피, 내 결혼 상대는 엘리노어뿐입니다.” 아치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거절을 허용하지 않았다.그레타가 비웃음을 흘렸다. “이 여자가?” 그레타의 손가락이 엘리노어를 향했고, 그녀의 시선이 엘리노어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내리기 시작했다.“장난치지 마, 아치! 네 취향도 아니잖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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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계약 결혼 제안

입술에 닿았던 그의 감촉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하지만 엘리노어에게는 마치 시간이 그대로 정지해 버린 것만 같았다.몸이 굳어버렸다. 엘리노어의 심장은 누군가에게 들릴 것처럼 거세게 요동쳤다. 두 뺨은 새빨갛게 물들어 숨조차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그녀를 바라보는 아치의 시선은 여전히 부드러웠으나, 엘리노어는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아치는 왜 자신에게 키스했을까? 그녀는 그저 이 남자의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원일 뿐인데. 두 사람의 관계는 상사와 부하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엘리노어가 아치와 교류하는 순간이라고는 같은 회의에 참석할 때가 전부였다.그 외에는 어떠한 친분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 남자는 마음대로 자신에게 키스를 한 걸까? 아치가 정말 미친 게 틀림없었다!엘리노어를 바라보던 아치의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레타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레타의 턱끝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너 진짜 미쳤구나, 아치!” 그녀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그레타의 손가락이 아치와 엘리노어를 번갈아 가며 가리켰다. “너희 둘….” 그레타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말도 안 돼.”아치의 입꼬리가 얇게 올라갔다. “당신 의견을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난 내가 한 말에 결코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 아치의 시선이 그레타를 향해 더욱 날카로워졌다.엘리노어는 방금 아치가 내뱉은 말을 듣고 숨이 턱 막힐 뻔했다.우리 관계?엘리노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회사에서 차갑고 단호하기로 소문난 상사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가?엘리노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아치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난 이미 내가 결혼할 여자를 정했습니다. 그러니 당신과의 정략결혼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아치는 여전히 날카롭고 곧은 시선으로 그레타를 응시했다.그레타의 양주먹이 몸 옆에서 불끈 쥐어졌다. 턱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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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가능한 한 빨리

엘리노어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곁에 있는 아치를 돌아보았다.그렇다, 엘리노어는 아치가 제안한 계약 결혼을 수락했다. 하지만 오늘 당장 자신의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꼭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합니까, 사장님?” 엘리노어가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아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젖은 재킷을 벗은 그는 이제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치는 타협 따위는 모른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엘리노어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불끈 쥐었다. 아치가 제안한 결혼에 대해 아버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막 아버지 생각을 하던 차에, 가방 속에서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을 꺼내자 화면에 아버지의 이름이 떠 있었다.엘리노어는 선뜻 전화를 받지 못했다. 평소에는 자신에게 관심조차 없던 아버지가 왜 연락을 했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아무래도 줄리안이 파혼건에 대해 벌써 고자질을 한 모양이었다.“중요한 전화면 받아요.”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특유의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엘리노어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아치를 바라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네, 아버지.” 핸드폰을 귀에 대자마자 엘리노어가 입을 열었다.“너 지금 어디냐, 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줄리안이 파혼을 하겠다는 게야?! 너는 정말 쓸모없는 자식이다, 엘!”엘리노어는 한쪽 손으로 허벅지 위에 놓인 치맛자락을 강하게 움켜쥐었다.역시나 줄리안의 말을 듣고 자신을 꾸짖으려고 전화한 것이 맞았다.그런데 왜 자신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걸까? 바람을 피운 건 줄리안인데!엘리노어는 깊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담담하게 응수했다.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금방 도착해요.”전화는 그대로 끊겨 버렸다.엘리노어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에 떠 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그렇지, 용건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먼저 연락을 했을 리가 없었다.그리고 새삼스럽게도, 매번 똑같은 아버지의 태도에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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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원치 않는 존재

엘리노어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려 했으나, 아치가 그녀의 손을 꼭 쥐며 살짝 당겼다.엘리노어가 고개를 돌려 아치를 바라보자, 그의 시선은 재크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내가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엘리노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아치의 목소리는 단호하여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엘리노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치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마치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연극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엘리노어는 재크슨이 입을 열려는 순간, 사만다가 한발 앞서 나서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이 정말 서로 사랑한다면, 당연히 허락해 드려야죠.” 사만다는 엘리노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재크슨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렇죠, 여보?”엘리노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만다의 말이 진심 어린 축복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엘리노어가 하루라도 빨리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사만다에게는 기쁜 일일 터였다.비록 그것이 엘리노어 자신이 바라는 바였을지라도, 자신을 존중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 더 이상 버틸 수는 없었다.재크슨의 시선이 엘리노어를 향해 더욱 차갑게 가라앉더니, 이내 거칠게 콧방귀를 뀌었다. “좋다. 정 결혼하고 싶다면 해라. 당장 이 집에서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엘리노어의 손가락이 아치와 잡고 있던 손을 강하게 쥐어짰다. 재크슨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버릴 줄은 몰랐다.어쩌면 줄리안과 끝난 이상, 엘리노어는 재크슨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또한, 아버지가 아치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도 다행이었다. 알았더라면 아치의 권력을 이용해 사업적 이득을 취하려 들었을 테니까.“좋습니다. 허락해 주셨으니, 오늘 당장 저희 결혼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아치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차 있었다. 그의 눈빛조차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재크슨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거칠게 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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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정식 부부

엘리노어와 아치는 그날로 수속을 마치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재크슨은 엘리노어에게 정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혼인신고 절차가 끝나자마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지금 엘리노어는 아치와 함께 차 안에 앉아 있었다.엘리노어는 손에 쥐어진 혼인신고서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켰다. 화려한 연회와 아름다운 드레스를 꿈꾸던 결혼식은 이제 그녀에게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게 된 듯했다.엘리노어는 이 계약 결혼에 그 어떤 기대도 품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직장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이제 우리 어머니를 만나러 갑시다.”아치의 목소리에 엘리노어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아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이렇게 갑작스럽게 결혼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반대하지 않으실까요?” 엘리노어가 확인하듯 물었다. 아치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더욱 불안했다.엄하신 분일까? 아니면 따뜻한 분일까?아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었지만, 얼굴에는 옅은 망설임의 기색이 번졌다.잠시 후.차는 아치 가문의 웅장하고 저택 앞마당에 들어섰다.아치는 엘리노어와 함께 차에서 내렸고, 두 사람은 나란히 발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섰다.“아치, 너니?”그들이 거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쉰 듯한 여성의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아치와 엘리노어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아치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예순쯤 되어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성이 아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역시 너였구나, 그런데….” 아치의 어머니 그레이스는 아들 곁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자 말을 멈추었다.그레이스의 미간이 깊게 패이며 두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레이스는 아치가 집에 데려온 여자의 차림새를 유심히 훑어보았다.“아치, 이 여자는 누구냐?” 그레이스의 손가락이 엘리노어를 직접 가리켰다.엘리노어는 그레이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그 직후, 엘리노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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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같은 방을 써야 합니까?

아치는 문턱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소파 옆에 여전히 굳은 자세로 서 있는 엘리노어를 바라보았다.“당연합니다.” 아치가 무심하게 응수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넣은 채였다. “같은 방을 써야 합니다.”엘리노어는 흠칫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사장님… 제가 손님방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엘리노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그녀는 불안감에 싸여 손가락을 마구 쥐어짰다.아치는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눈빛으로 엘리노어를 응시했다.“어머니께서는 노크도 없이 제 개인 공간에 불쑥 들어오시곤 합니다.” 아치가 차갑고 단호한 어조로 말을 받아쳤다. “게다가 새신부가 따로 떨어진 방에서 자는 걸 보면 집안 하인들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바라시는 겁니까, 엘리노어 씨?”엘리노어는 입술을 깨물며 아치와의 시선을 피한 채 고개를 숙였다. “저… 이해했습니다. 다만 어머니와 함께 살고, 같은 방까지 써야 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해서 그렇습니다.”“우리는 이미 정해진 계약 기간 동안 이 연극을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엘리노어 씨.” 아치가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서며 강하게 어조를 높였다.아치의 시선이 눈앞의 여자를 단단히 묶어두었다. “서로 동의한 일이니,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습니다.”엘리노어는 속으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자신을 이 연극 속으로 끌어들이고 강제로 참여시킨 건 다름 아닌 아치 자신이 아니던가?비록 자신 역시 이 계약 결혼을 통해 얻는 이득이 있었지만 말이다.“동의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저 적응할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입니다, 사장님.” 엘리노어는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아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알겠습니다.” 아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저쪽에 드레스룸이 있습니다. 옷과 짐을 정리할 수 있도록 오른쪽 큰 장 두 칸을 비워두었습니다.” 아치의 손이 방 한쪽에 위치한 문 하나를 가리켰다.“감사합니다.” 엘리노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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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갑작스러운 긴장감

엘리노어는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자신이 느끼는 긴장감을 숨기려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장님. 그저 조금 피곤해서 그렇습니다.”아치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는 협탁 위에서 집어 든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우리 계약 결혼 서류입니다.” 아치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꼼꼼히 읽어보세요.”엘리노어는 살짝 차가워진 손가락으로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심장의 요동을 가라앉히려 깊게 숨을 내쉬었다.엘리노어는 천천히 한 장 한 장 서류를 넘겼다. 당황하거나 망설이는 기색 없이, 곁에 앉은 남자가 작성한 문장과 조항들을 차분하게 훑어내렸다.아치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서류 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휘말려 들어온 엘리노어에게 불리한 조항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항목이 그녀에게 공정하게 작성되어 있었다.“어떻습니까?” 아치가 자신의 문서를 넘기며 물었다. “반박하거나 추가하고 싶은 조항이 있습니까?”엘리노어는 검은 서류 봉투를 천천히 닫은 뒤, 몸을 살짝 돌려 아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장님께서 적어주신 모든 권리와 의무에 동의합니다. 다만, 추가 조항으로 하나만 더 제안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아치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턱에 살짝 힘을 준 채 엘리노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말해봐요.”“회사에서는 이 결혼을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엘리노어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남자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기획팀에서 제 입장이 난처해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소문의 중심이 되거나 다른 동료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싶지도 않고요. 회사에서는 지금처럼 상사와 부하 직원으로 남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게요.”아치는 눈앞의 여자가 요구한 조건의 파장을 가늠해 보려는 듯 잠시 침묵했다. 이내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리가 있군요. 나 역시 사적인 일과 공적인 업무를 구분하는 편을 선호합니다. 받아들이죠.”아치는 협탁 위에서 금촉 만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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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어색함

엘리노어는 밀려오는 엄청난 수치심을 누르며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마구 쥐어짰다.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눈앞에 서 있는 아치를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죄송합니다, 사장님. 맹세코 제가 사장님을 끌어안았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엘리노어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자신의 심장 소리에 묻힐 지경이었다.아치는 잠시 침묵하며 엘리노어를 내려다보았다. 마침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밖으로 길쭉한 다리를 내딛었다.아치는 곧게 서서 입을 열었다. "서둘러 씻으세요."아치는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어머니께서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난 어머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드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엘리노어는 여전히 아치를 올려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치가 침대를 벗어나는 그림자가 지나가고, 이내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엘리노어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무례함에도 아치가 화를 내지 않아 안도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잠시 후.엘리노어는 비록 비싼 옷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깔끔하고 편안한 출근용 투피스 차림을 갖춰 입었다.방 한쪽에서 아치가 엘리노어의 차림새를 유심히 관찰했다. 참으로 소박했다. 아치가 입는 비싼 셔츠 한 장이면, 엘리노어가 입은 것과 같은 셔츠를 수십 장은 살 수 있을 정도였다."회사에 늘 그런 차림으로 다닙니까?"아치의 목소리에 엘리노어가 흠칫 놀랐다. 그녀는 머지않은 곳에 서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엘리노어는 먼저 자신의 복장을 살펴본 뒤, 아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사장님. 전 늘 이렇게 입고 다니는 편입니다. 혹시 회사 복장 규정에 어긋납니까?"아치의 회사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늘 이런 차림이었음에도 엘리노어는 재차 확인했다.아치는 찰나의 순간 침묵하더니, 재킷을 입으며 응수했다. "아닙니다."엘리노어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아니다? 무슨 뜻의 아니다일까?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일까, 아니면 문제없다는 뜻일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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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결혼을 숨기다

아치의 고급 승용차가 차들로 붐비기 시작하는 도심 도로를 가로질러 달렸다.차 안에는 아연실색할 정도의 정적이 감돌았다. 엘리노어는 창밖을 똑바로 바라보며, 저 멀리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리히터 컴퍼니의 마천루를 주시했다.회사에 도착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하자 그녀의 심장이 다시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사장님." 엘리노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정적을 깨뜨리며 불렀다.아치는 운전에 집중하며 전방의 도로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슨 일입니까?""사거리 지나서 있는 버스 정류장 앞 길가에 저를 내려주십시오, 사장님." 엘리노어가 회사 정문에서 수백 미터가량 떨어진 정류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아치가 잠시 시선을 돌려 엘리노어를 바라보았다. "왜 거기서 내립니까? 어차피 같은 건물로 가는데.""어젯밤 우리가 서명한 계약서 초안 내용대로입니다, 사장님." 엘리노어가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힘주어 설명했다. "회사에서는 이 관계를 비밀로 하기로 합의했지 않습니까. 다른 직원들이나 임직원이 제가 사장님의 개인 차량에서 내리는 것을 본다면 큰 의심을 사게 될 겁니다. 나쁜 소문이 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아치는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불평도, 반박도 없었다.아치는 무심하게 핸들을 도로 가장자리로 틀어 속도를 줄였고, 버스 정류장에서 몇 미터 떨어진 다소 한적한 길가에 고급 승용차를 정확히 세웠다.엘리노어는 아치가 불쾌해하지 않아 안도했다."감사합니다, 사장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엘리노어가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안전벨트를 푼 뒤 차 문을 열었다.그녀는 서둘러 내려 차 문을 꼭 닫았다.블레이저를 여민 엘리노어는 인도를 따라 회사 건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수많은 다른 직원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 준비를 하면서.엘리노어가 회사에 도착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기획팀으로 향했다.5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는 같은 층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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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핑계를 찾아서

엘리노어는 아비가일이 요청한 서류들을 날짜와 순서에 맞게 분류하여 정리를 마친 뒤, 손등으로 관자놀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문 위에 걸린 벽시계를 흘끔 보니, 짧은 바늘이 이미 오후 1시를 지나고 있었다. 직원들의 점심시간은 한 시간 전부터 시작되어 흐르고 있었다.숨을 깊게 내쉬며, 엘리노어는 뻐근해지기 시작한 양손으로 다시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어 올렸다.그녀는 기획팀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문서 보관실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엘리노어가 밖으로 나왔다. 건물 가장 아래층에 위치한 메인 문서 보관실로 향하는 복도를 지나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엘리노어는 쓸 수 있는 팔꿈치로 보관실의 나무 문을 밀어 열었다. 철제 선반들이 줄지어 들어선 방 안에서, 한 중년 남성 직원이 엘리노어 쪽을 바라보았다."실례합니다. 이 보고서 서류들을 반납하러 왔습니다." 엘리노어는 약간 숨을 헐떡이며 카운터 책상 위에 종이 더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직원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문서 더미를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엘리노어를 올려다보았다. "이거 지난주에 저희가 디지털화 작업을 막 끝낸 오래된 보고서 아닙니까? 왜 다시 실물 시스템에서 빼낸 건가요?"엘리노어는 순간 멍해졌다.아비가일이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핑곗거리를 찾아낸 것이라는 심증이 속에서 완전히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노어는 다른 직원 앞에서 문제를 확대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쪽을 택했다. 비록 아비가일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유조차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비가일 팀장님께서 오늘 아침에 이 데이터들을 수동으로 다시 정리하고 분류하라고 지시하셔서요." 엘리노어는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남성 직원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서류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별일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시 보관함에 넣어 두겠습니다.""정말 감사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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