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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원치 않는 존재

Author: Noona Aurora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6 15:36:26

엘리노어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뭐라고 한마디라도 하려 했으나, 아치가 그녀의 손을 꼭 쥐며 살짝 당겼다.

엘리노어가 고개를 돌려 아치를 바라보자, 그의 시선은 재크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엘리노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아치의 목소리는 단호하여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엘리노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치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마치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연극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엘리노어는 재크슨이 입을 열려는 순간, 사만다가 한발 앞서 나서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이 정말 서로 사랑한다면, 당연히 허락해 드려야죠.” 사만다는 엘리노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재크슨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렇죠, 여보?”

엘리노어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만다의 말이 진심 어린 축복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엘리노어가 하루라도 빨리 이 집에서 나가는 게 사만다에게는 기쁜 일일 터였다.

비록 그것이 엘리노어 자신이 바라는 바였을지라도, 자신을 존중하지도,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 더 이상 버틸 수는 없었다.

재크슨의 시선이 엘리노어를 향해 더욱 차갑게 가라앉더니, 이내 거칠게 콧방귀를 뀌었다. “좋다. 정 결혼하고 싶다면 해라. 당장 이 집에서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엘리노어의 손가락이 아치와 잡고 있던 손을 강하게 쥐어짰다. 재크슨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버릴 줄은 몰랐다.

어쩌면 줄리안과 끝난 이상, 엘리노어는 재크슨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아치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도 다행이었다. 알았더라면 아치의 권력을 이용해 사업적 이득을 취하려 들었을 테니까.

“좋습니다. 허락해 주셨으니, 오늘 당장 저희 결혼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아치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차 있었다. 그의 눈빛조차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재크슨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거칠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결혼하고 나면, 다시는 이 집에 돌아올 생각 마라!”

엘리노어는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재크슨의 말은 이 집을 떠나겠다는 그녀의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짐 챙겨서 나와요. 혼인신고서 받는 대로 바로 나랑 갑시다.” 아치가 낮은 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엘리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치의 손을 놓고 1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엘리노어가 방으로 들어가자, 줄곧 침묵을 지키던 아이리스가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아이리스는 노크도 없이 엘리노어의 방으로 불쑥 들어와, 의붓언니가 짐을 싸는 모습을 감시하듯 내려다보았다.

“너 쓰던 것만 챙겨 가. 나가면서 도둑질할 생각은 하지 말고.” 아이리스는 이 집에 엘리노어의 귀중품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듯 톡쏘아붙였다.

엘리노어는 뒤에서 들려오는 아이리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가만히 있었다.

아이리스는 이 집의 굴러온 돌에 불과했지만, 재크슨의 총애와 보호를 받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주인 행세를 하며 엘리노어를 엎어 키운 자식 취급을 해왔다.

“걱정 마, 난 내 분수를 잘 아니까. 길거리에서 주워 와놓고 공주님 행세하는 누구랑은 달라서 말이지.” 엘리노어가 가시 돋친 신음처럼 받아쳤다.

아이리스는 엘리노어의 말에 경악했다. 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다짜고짜 엘리노어에게 다가갔다.

아이리스는 엘리노어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손을 들어 올려 그대로 엘리노어의 뺨을 향해 날렸다.

짝!

매서운 손찌검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아이리스의 폭행에 엘리노어의 뺨이 화끈거리고 붉게 부어올랐다.

“똑똑히 알아둬.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네 어미도 보잘것없는 여자였고. 아빠가 사랑하는 건 우리 엄마뿐이라고. 잊지 마!” 아이리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고했다.

말을 마친 아이리스는 일부러 엘리노어의 캐리어를 바닥에 내팽개쳤고,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짓밟았다.

엘리노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치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옷을 다시拾어 담았다.

거실.

아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자신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재크슨을 향해 얼음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아이리스가 찌푸린 얼굴로 거실에 돌아오는 모습이 아치의 눈에 들어왔다. 아이리스가 사만다에게 무언가 고자질하듯 속닥거리는 모습에 아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잠시 후. 아치의 시선이 작은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엘리노어에게 닿았다.

그래도 명색이 제법 유복한 집안의 딸인데, 짐이 고작 이것뿐이란 말인가?

아치는 엘리노어가 이 집에서 정말 아무런 존재감도 없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하물며 엘리노어의 가문이 상당한 규모의 회사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아치의 회사에서 평직원으로 일해야만 했던 것이다.

“짐은 다….” 말하려던 아치의 음성이 엘리노어의 붉어진 왼쪽 뺨을 보는 순간 턱 막혔다.

그 즉시, 아치의 시선이 사만다 옆에 앉아 있는 아이리스를 향해 단도처럼 날카롭게 내리꽂혔다.

아치가 다시 엘리노어를 돌아보며 곧바로 물었다. “누가 때렸습니까?”

엘리노어는 아치가 자신의 뺨을 알아챌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기에, 아이리스의 행패를 굳이 아치 앞에서 공론화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엘리노어의 목소리가 얇게 떨렸다. “이제 가도 될까요?” 엘리노어의 눈빛에 간절함이 서렸다. 마치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자신을 창살 없는 감옥에서 건져내 줄 유일한 구원자인 것처럼.

아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다시 그녀의 손가락을 얽어 잡았다. 그러나 엘리노어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기기 전, 아치의 차가운 눈빛이 다시 한번 아이리스를 향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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