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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4화

Author: 은지아
송남지는 콧잔등이 시큰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

“알아. 미안해.”

최보라가 수화기 너머로 코를 훌쩍였다.

“됐어, 다 됐고. 너 무사하면 된 거야. 우리 연지는 누굴 닮았대? 너 닮았지? 무조건 널 닮았어야 해. 하정훈 그 인간처럼 차가운 인상이면 우리 조카 나중에 시집은 어떻게 가라고...”

그 말에 송남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우리 연지 언제 보러 올 거야?”

“지금 당장!”

최보라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30분 뒤, 현관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문 앞에는 유아용품이 한가득 든 커다란 쇼핑백을 든 최보라가 서 있었고 그 뒤로는 몸집만 한 백합 꽃다발을 든 오지훈이 흥분과 당혹감이 반반씩 섞인 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온 최보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연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송남지를 와락 껴안는 것이었다.

“살이 쏙 빠졌네.”

송남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최보라가 웅얼거렸다.

“코다르에서 밥도 제대로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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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1034화

    송남지는 콧잔등이 시큰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알아. 미안해.”최보라가 수화기 너머로 코를 훌쩍였다.“됐어, 다 됐고. 너 무사하면 된 거야. 우리 연지는 누굴 닮았대? 너 닮았지? 무조건 널 닮았어야 해. 하정훈 그 인간처럼 차가운 인상이면 우리 조카 나중에 시집은 어떻게 가라고...”그 말에 송남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언니, 우리 연지 언제 보러 올 거야?”“지금 당장!”최보라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30분 뒤, 현관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문 앞에는 유아용품이 한가득 든 커다란 쇼핑백을 든 최보라가 서 있었고 그 뒤로는 몸집만 한 백합 꽃다발을 든 오지훈이 흥분과 당혹감이 반반씩 섞인 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집 안으로 뛰어 들어온 최보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연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송남지를 와락 껴안는 것이었다.“살이 쏙 빠졌네.”송남지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최보라가 웅얼거렸다.“코다르에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지?”송남지가 그녀의 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아니야, 엄청 많이 먹었어. 클로딘이 매일 맛있는 걸 해줬는걸.”그제야 최보라는 품을 풀고 눈가를 훔치더니, 고개를 숙여 아기 침대 안의 하연지를 바라보았다. 막 분유를 다 먹은 하연지는 말똥말똥 눈을 뜬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낯선 이모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최보라는 몇 초간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이내 휙 고개를 돌려 오지훈을 쳐다보았다.“지훈아, 우리도 애 하나 낳자.”마침 화병에 백합을 꽂고 있던 오지훈은 그 폭탄 발언에 하마터면 화병을 와장창 엎을 뻔했다.“너 지금 진심이냐?”그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최보라는 다시 고개를 숙여 하연지를 내려다보았다. 마침 하연지가 작고 귀여운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앙증맞은 하품을 했다.“완전 진심이야.”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 시각, 하정훈은 퇴근하자마자 곧장 묵란펜트로 향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거실 너머로 최보라와 오지훈의 대화 소리,

  • 가면을 쓴 남편   제1033화

    권우빈이 초인종을 누르자 이미란이 문을 열었다.송남지의 품에 안긴 작고 뽀얀 아기를 마주한 순간 이미란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사모님.”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예전의 호칭을 불렀다.“이 아이가... 도련님의 아이인가요?”송남지가 환하게 웃었다.“네. 연지예요. 하연지.”이미란은 행여 아이가 깨질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하연지를 안아 들었다. 이내 그녀의 뺨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울음 섞인 웃음을 짓던 그녀가 아이를 달래듯 중얼거렸다.“어쩜 이리 똑같을까. 도련님 어릴 적이랑 너무 닮았어요.”현관에 선 하정훈은 이미란이 하연지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는 모습과 송남지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모습, 그리고 권우빈이 캐리어를 손님방으로 밀어 넣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는 문득 이 집에 그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완벽히 채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그것은 단순한 온기나 안락함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감정, 바로 소속감이었다.그는 송남지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도리를 대신 풀어 옷걸이에 걸어주었다.“남지야.”그가 부르자 송남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앞으로 매일 와도 될까?”그의 눈동자에는 짙은 기대와 불안, 그리고 조심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사막을 아주 오랫동안 헤매다 마침내 오아시스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신기루일까 봐 차마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그녀는 대답 대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이모, 갈비찜 다 됐어요? 배고파요.”눈물을 훔치던 이미란이 이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다 됐고말고요. 당장 차려드릴게요.”하정훈은 거실 한가운데 선 채로 주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송남지의 뒷모습을 가만히 좇았다. 굳이 따라 들어가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도무지 감출 길 없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미란의 품에 안긴 하연지는 작게 하품을 하더니 이내 다시 새

  • 가면을 쓴 남편   제1032화

    “남지야. 서경에 돌아가면 우리 새로 시작하자. 그럴래?”송남지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코다르의 햇살이 라벤더 꽃밭에 스며들 듯 아주 가볍고 아스라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마침내 보드라워진 하정훈의 마음 밭에 한 알의 씨앗처럼 톡 떨어져 박혔다.“좋아요. 조금씩, 천천히 시작해요.”...서경으로 돌아가는 날,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하정훈은 코다르에서 서경까지 직항으로 이동할 소형 전세기를 마련했다. 송남지는 하연지를 품에 안고 창가 자리에 앉았고 권우빈은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도 하연지는 겉싸개 속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무중력감이나 엔진의 굉음조차 아이에게는 닿지 않는 듯했다.송남지는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는 해안선을 바라보았다.지중해의 짙은 남색 물결은 옅은 하늘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가느다란 선이 되어 구름 아래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코다르에서 보낸 지난 두 달의 시간,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시간 동안 홀로 아이를 기다리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세 사람이 함께하는 귀갓길이었다.송남지는 품 안의 하연지를 내려다보았다. 딸아이는 단꿈을 꾸는 듯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연지야.”그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우리 집에 가자.”비행기가 서경에 착륙했을 때, 창밖에는 가벼운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서경의 12월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하정훈이 준비한 차는 계류장 안쪽, 비행기 트랩 바로 아래까지 그녀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송남지는 두꺼운 캐시미어 코트 속으로 하연지를 꼭 품은 채 차에서 내렸지만, 차까지 향하는 짧은 걸음 사이로도 찬 바람이 옷깃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그녀가 저도 모르게 몸을 잘게 떨자, 하정훈이 즉시 자신의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로 덮어 주었다.“얼른 타.”송남지는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를 품에 안고 뒷좌석에 오르자 하정훈이 그 옆으로 자연스럽게 따라 앉았고 권우빈은 조수석에 올라탔다.차는 천천히

  • 가면을 쓴 남편   제1031화

    하연지가 태어난 지 아흐레째 되던 날, 송남지는 퇴원했다. 코다르의 햇빛은 여느 때처럼 눈부셨다.하정훈이 짐을 챙기고 권우빈이 이를 거들며 세 사람이 병원 문을 나섰을 때, 이미 입구에는 클로딘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손수 정원에서 수확한 오렌지 한 바구니와 싱그러운 라벤더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있었는데, 하연지를 마주하자마자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정말 예쁘구나.”그녀가 프랑코니아어로 나직이 말을 건넸다.아이보리색 포대기에 싸여 자그마한 얼굴만 겨우 내민 하연지는 오늘은 눈을 말갛게 뜨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포도알처럼 검고 맑은 눈망울이 이 낯설고도 눈부신 세상을 가만히 응시했다.하정훈이 운전대를 잡고 송남지가 조수석에 앉았다. 뒷좌석 카시트에 몸을 실은 하연지 옆으로 권우빈이 앉아, 가만히 고개를 숙여 그 작은 생명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차는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눈부시게 푸른 지중해 바다 위로 햇살이 조각조각 부서지며 은빛 물결을 이루었고 멀리 날아오른 갈매기들의 하얀 날개는 청명한 하늘을 도화지 삼아 우아한 곡선을 그려냈다.송남지가 창문을 내리자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올리브나무 향을 머금은 바람이 밀려들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폐부 가득 차오르는 공기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정훈 씨.”그녀가 나직이 이름을 부르자, 하정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응?”“기억해요? 캐슬힐에서 나한테 했던 말.”하정훈의 손가락이 핸들을 가볍게 두드렸다. 잊었을 리 없었다. 단 한 구절도 빠짐없이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수줍던 첫 만남부터 이혼 후 조심스레 다가오던 모습, 자신이 아플 때 그녀를 모질게 밀어냈던 기억, 그리고 결국 그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까지도.“기억해.”그가 짧게 답했다.송남지는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응시하며 잠시 침묵했다.“아주 어릴 때부터 날 좋아했다고 했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나지막해서 자칫하면

  • 가면을 쓴 남편   제1030화

    문가에서 권우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남지가 고개를 들어보니 소년이 하얀 데이지 꽃다발을 품에 안고 들어서고 있었고 그 뒤로 소피와 레아가 따르고 있었다. 소피는 손에 샴페인을 들고 있었고 레아는 케이크를 안고 있었는데, 세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미소가 가득했다.“축하해요, 송.”소피는 협탁 위에 샴페인을 놓으며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주었다.“전시회는 정말 대성공이었어요.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에요.”송남지는 미소를 지었다.“모두 여러분 덕분이에요. 전 그냥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걸요.”“송은 여기 있었어요.” 소피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언제나 여기 있었죠.”권우빈은 창틀에 놓인 화병에 데이지를 꽂고 몸을 돌려 송남지를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빛은 코다르의 햇살처럼 깨끗하고 밝았다.“누나, 저 다른 갤러리들 제안 다 거절했어요.”그의 말에 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민 실장이 말해주더라.”“전 재스민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영원히요.”권우빈이 말했다.송남지는 몇 초 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우빈아, 넌 앞으로 더 큰 무대에서 활동하게 될 거야. 내가 기회를 주어서가 아니라 네 스스로 그럴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야. 재스민은 네 시작점일 뿐, 최종 종착지가 아니란다.”권우빈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년 특유의 고집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몸짓이었다.“재스민은 제집이에요 그러니 전 집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송남지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살에 금빛으로 물든 바다를 바라보았다.세상에는 붙잡아 둘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바람과 파도, 그리고 천재의 반짝이는 재능 같은 것들이다.하지만 그녀는 권우빈이 아무리 멀리 나아가더라도 자신의 시작점을 잊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아픈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리라는 것도 말이다.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아기가 태어난 지 엿새째 되던 날, 하정훈은 수리스에서

  • 가면을 쓴 남편   제1029화

    출산 다음 날, 송남지는 비로소 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아기는 그녀 곁의 작은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귀 옆으로 주먹을 쥔 작은 손이 마치 항복하는 아기 고양이 같았다. 쭈글쭈글하던 피부는 펴져 고운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얇은 입술과 오뚝한 코는 하정훈을 빼닮았으나, 옅게 휘어진 눈썹만큼은 영락없는 송남지였다. “너를 닮았어.”하정훈은 아기 침대 곁에 서서 딸을 내려다보았다. 이틀 내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그의 웃음은 도무지 거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코는 당신을 닮았어요.”베개에 몸을 기댄 송남지가 아직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입술도 당신이고.”그 말에 하정훈이 말했다“아직 눈을 안 떠서 모르겠지만, 널 닮았을 거 같아.”“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그는 딸의 닫힌 눈꺼풀을 응시하다 잠시 말을 골랐다.“예쁜 건 다 널 닮았을 테니까.”그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송남지는 잠시 멈칫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배의 상처가 땅겨 그녀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자, 하정훈은 곧바로 긴장한 채 침대 곁으로 다가와 몸을 굽히고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저 웃음 때문에 아픈 것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하정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복합적이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눈빛에 담았다. 안쓰러움, 죄책감, 고마움, 그리고 그보다 훨씬 깊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었다.“남지야.”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네?”“혹시 며칠 동안... 연아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 둔 게 있어?”송남지는 딸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을 골랐다.“연지. 사모할 연에 치자나무 지.”하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두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늘 간절히 사모한다는 연과 송남지의 지. 그것은 간절한 연모이자 미련이었다.“원래는 하연이라고 지을까 했어요.”송남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 연자 하나만으로는 너무 단출하더라고요. 연지라고 하면, 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이를 부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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