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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Author: 은지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어요?”

송남지는 축 늘어진 채 하정훈의 품에 안겨 물었다.

하정훈은 한 손에 유화 그림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송남지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일단 너부터 집에 데려다 놓고 얘기하자.”

송남지는 간신히 남아있는 이성으로 말했다.

“안 돼요. 집은 안돼요. 엄마가 이런 꼴을 보면 엄청 걱정하실 거예요.”

이제 안전해졌으니 괜히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정훈은 송남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물었다.

“그럼 우리 집에 갈래?”

지금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정훈의 차는 송 씨 저택에서 멀지 않은 오동나무 아래,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다.

사실 그는 한 시간이나 일찍 송 씨 저택 근처에 와 있었다.

송남지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윤해진의 차가 송남지를 데려다주는 것을 보았을 때는 솔직히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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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7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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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7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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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병원이라기보다는 최첨단 의료 장비와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갖춘 6성급 호텔에 더 가까웠다.층마다 객실이 즐비한 이곳의 복도를 지나 송남지가 들어선 방은 마치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연상케 했다.벽면은 부드러운 미색 스웨이드로 마감되어 있었고 침대 헤드는 통호두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들어 방 전체가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소파에는 보들보들한 영양 가죽 담요가 덮여 있었고 옆에는 복고풍 캡슐 커피 머신이, 냉장고에는 페트뤼스와 에비앙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박명규는 욕실을 가리키며 말했다.“먼저 씻고 나와요. 안에 깨끗한 수건이 있으니까. 곧 간호사 시켜서 갈아입을 옷도 보내줄게요. 준비 끝나면 저녁 같이 먹죠. 남지 씨가 와서 재용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으니, 뭐라도 좀 먹어줄 것 같네요.”송남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샤워실에 들어가 고개를 들자 유리 선반 위로 고급스러운 세면용품들이 가득 보였다.그중 하나는 하정훈이 평소 쓰던 것과 똑같은 H사의 바디워시였다. 묵직한 설송 향이 감도는 그 제품을 송남지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짜 보았다.코끝으로 하정훈의 향기가 밀려왔다.사실 병원에 발을 들이던 순간부터 묘하게 그가 머무는 공간과 닮았다고 느꼈었는데, 원인은 이 향기였던 것이다.온수가 쏟아지자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긴 여정의 피로를 씻어냈다.물방울이 서늘한 뺨을 타고 흐르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의 마음도 조금씩 말랑해졌다.한 시간 뒤, 송남지는 샤워 타월을 두른 채 욕실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갈아입을 옷이 조용히 놓여 있었는데, 다름 아닌 우윳빛의 트렌치코트였다.우윳빛 트렌치코트는 송남지에게 꽤 낯선 옷이었다.어릴 적부터 송남지는 흰옷을 즐겨 입지 않았는데, 혹여나 더러워지면 어머니가 빨래하시기 힘들까 봐 일찍이 철이 든 탓이었다.바닥에 놓인 옷을 주워 입고 거울을 보니, 우윳빛 코트 덕분에 평소의 서늘함 대신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곁에는 베이지색 목도리도 함께 놓여 있었다.송남지는 미간을 살짝

  • 가면을 쓴 남편   제748화

    정밀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박재용의 모습은 마치 기계에 갇힌 포로와도 같았다.안색은 대리석처럼 투명하게 창백했고 감긴 눈꺼풀 아래로 푸른 정맥이 선명히 드러났으며 한때 화폭 위를 자유롭게 누비던 손가락은 이제 모니터 배선 옆에 힘없이 놓인 채 손톱 끝에 연보랏빛 죽음의 그림자를 머금고 있었다.호흡 마스크 아래로 내뱉는 숨결은 두꺼운 시멘트벽에 가로막힌 듯 짧고 위태로웠고 고가의 심전도 모니터 위에 그려지는 곡선들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는 이의 심장을 조여왔다.송남지는 문 앞에 서서 잠시 굳어버렸다.그녀는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 연약한 존재를 깨뜨릴까 두려워, 혹은 현실 같지 않은 차가운 온기에 닿을까 무서워 허공에서 손을 멈췄다.실내에는 기계의 단조로운 비프음만이 흐를 뿐이었고 그 거대한 정적 속에서 송남지는 소중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그것은 지금 이 순간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박재용의 심장 박동과도 같았다.박재용은 온 힘을 다해 미소를 지으며 활기찬 척해보려 했지만 눈가에 서린 깊은 쇠약함만은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그는 짐짓 송남지를 놀리듯 농담을 던졌다.“설마 나한테 반한 거예요? 만 리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온 거 보니 좀 겁나네요. 내가 남지 씨한테 내일은 약속 못 합니다. 나조차 내가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거든요.”송남지는 애써 기운을 내면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툭 쳤다.“재용 씨,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장난이 나오세요?”그 모습을 보던 박명규는 박재용이 분위기를 밝히려고 애쓰는 게 딱 평소의 자신 같다고 생각했다.박재용을 웃겨주려고 매일같이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그였으니까.하지만 이제 박명규는 알 것 같았다. 이런 농담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웃기기는커녕 도리어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 뿐이었다.박재용은 살짝 맞은 팔이 아픈 듯 인상을 쓰며 엄살을 피웠다.송남지는 순간 당황해 급히 손을 거두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 가면을 쓴 남편   제747화

    박재용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삼촌, 누구 좀 마중 나가줘요.”박명규가 어안이 벙벙한 듯 되물었다.“마중? 공항이야, 아니면 어디? 너 친구 하나 없던 놈 아니었냐?”박재용은 조바심이 났는지 팔에 꽂혀있던 링거 바늘을 거칠게 빼려 했다.“진짜 답답하네, 그냥 내가 직접 갈게요.”다행히 박명규가 재빨리 그를 가로막았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가면 되잖아. 누구라고?”“송남지요. 병원 정문에 있어요.”박명규의 발걸음이 일순간 멈칫했다.“재스민의 그 송남지? 너 걔랑 사귀는 거냐? 내 기억엔 유부녀였던 것 같은데.”박재용이 무심하게 삼촌을 슥 쳐다봤다.“재스민 이제 그 여자 거 아니에요.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이제 유부녀도 아니고요.”박명규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삼촌이 참 대단하지? 어떻게 맞는 답이 하나도 없냐.”박재용이 쓸쓸하게 웃어 보였다.“삼촌, 일부러 그렇게 나 웃겨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얼른 가서 데려와 줘요. 오늘 수리스 바람이 너무 세서 그 사람 많이 추울 거예요.”유리문 앞.송남지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박재용의 삼촌, 박명규였다.피로가 가득한 그의 얼굴에는 지울 수 없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송남지는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저 여기 있어요!”박명규의 안내로 송남지는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박명규는 어른 체면에 아랫사람 일에 사사건건 참견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송남지는 그 마음을 단번에 꿰뚫어 보고 싹싹하게 입을 열었다.“아저씨, 궁금하신 게 있다면 뭐든 물어보셔도 돼요.”박명규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눈치가 빠르구나. 내가 할 말 있는 걸 어떻게 알았니.”송남지는 박명규에게 박재용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먹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병원 주소를 알아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재용이 녀석 말이, 이제 네가 재스민 대표도 아니고

  • 가면을 쓴 남편   제326화

    송남지는 이젤 위에 놓인, 방금 완성한 유화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온몸이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뒤덮인 것도, 어느새 서재로 들어온 하정훈의 존재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그는 쟁반을 든 채 옆에 서서, 송남지가 하루 종일 공들여 완성한 작품을 한번 보고는 안쓰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하씨 가문 기사에게 주는 그림이라고 해서 대충 그리지 않고 진심을 다해 온종일 정성을 쏟았다.그녀의 얼굴에 묻은 물감 자국을 본 하정훈은 입을 열어 조용히 말했다.“정말 잘 그렸네.”아이에게 주는 유화였기에 색채가 선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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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면을 쓴 남편   제324화

    최보라는 송남지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그저 한숨을 내쉬며 양나정 그 이름 석 자를 곱씹을 뿐이었다.그러다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경악했다. “오늘 나랑 미팅하기로 한 사람이 양나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무슨 미팅?”송남지가 의아한 듯 물었다.“우리 회사에서 funAI전시를 맡았는데 아까 그쪽 담당자를 확인해 보니까 이름이 양나정이었어.”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몇 초간 생각에 잠겼다. funAI는 오지훈의 회사였다.양나정이 서경에 오자마자 오지훈의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건 필시 오지훈이 하정훈의

  • 가면을 쓴 남편   제317화

    그녀의 시선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하정훈에게로 향했다.상황 파악이 빠른 이들은 서둘러 다른 화제를 꺼내 들었고 그렇게 아슬아슬했던 분위기는 일단락되었다.“하 대표님, 듣자 하니 집에서 사모님 주무시는 거 보고 오셨다고요. 보기엔 차가워 보이시는데, 알고 보니 완전 사랑꾼이셨네요.”오늘 밤의 주인공은 서정우인 듯했지만, 사실 상당수는 하정훈을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그러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말을 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바로 이것이 하정훈이 이 자리에 오기 싫었던 이유였다.첫째는 서정우가 받아야 할 주목을 빼앗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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