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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Author: 윤소정
주시언은 애써 화를 억눌러 참으며 침묵했고,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주시언은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잘 받아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고 점잖았다. 하원영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하원영이라면 달랐다. 자기가 옳든 아니든... 싸움이 붙으면 무조건 이겨야 했다. 누가 자신을 불쾌하게 하면 명분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어릴 적의 주시언은 남들에게 이용당하고 괴롭힘당하기 쉬운 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둘이 처음 알게 됐을 때, 주시언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은 마치 구세주라도 본 사람 같았다. 아주 맹목적으로 우러러봤다.

“주시언 씨, 착한 사람인 척 그만해요. 내 앞에서까지 그런 가식 떨 필요 없어요.”

하원영은 주시언을 밀어내지 못한 채, 목 안의 불편함을 억지로 삼켜 내리고 차갑게 말을 이었다.

“이건 저와 안세영 씨 사이의 일이에요.”

안세영의 눈가가 붉어졌다.

“시언 씨, 저 사람은 전혀 고마워하지도 않잖아요. 시언 씨를 그렇게 차 놓고도 아직도 저렇게 잘난 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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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70화

    공항 프라이빗 VIP 라운지 안에서는 김태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이번에 논의할 프로젝트 보고서를 훑어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떠나기 전 강지현이 자기를 바라보던 눈빛이 남아 있었다.“몇 시야?”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최동윤에게 물었다.최동윤은 시간을 확인했다.“아홉 시입니다, 대표님.”남자가 무슨 뜻으로 묻는지 알았던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곧 오실 것 같습니다.”이번에 미래 그룹이 맡게 된 건 비중이 매우 큰 국가 프로젝트였다.프로젝트 지역은 서남쪽 국경 지대였다. 두 나라 산맥이 맞닿아 있는 외딴 구역에 자리하고 있었고, 양국이 공동으로 자금을 댄 사업이었다. 미래 그룹이 무려 3년 동안 공들여 따낸 핵심 프로젝트이기도 했다.김태하가 이번 출장에 나서는 이유도 바로 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다만 이번 프로젝트는 상업 개발과 민생 공익이라는 두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양국은 각각 한 명씩 ‘공익 대표’를 보내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전 과정을 따라 기록하게 했다. 양국의 우정을 전하고, 손잡고 산간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함께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김태하도 이 사실은 뒤늦게 통보받았다. 윗선에서 정한 대표 역시 해원시에 있었고, 출발부터 동행하며 기록을 남기길 원한다는 얘기였다.겸사겸사 이동하는 동안 김태하와 인터뷰도 진행해서 미래 그룹 홍보 자료로 쓰겠다는 계획도 있었다.김태하는 원래 최동윤을 보내 사람을 데려오게 하려 했다. 그런데 연락 과정에서 상대측 비서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시간과 장소만 확인한 뒤 정시에 도착하겠다고 했다.최동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VIP 라운지 문도 열렸다. 서지아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여자를 보는 순간, 김태하의 눈빛에는 아주 미세한 놀라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깊은 물처럼 잔잔한 평정으로 가라앉았다.이번 공익 대표가 서지아일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서씨 가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69화

    강지현은 귓불까지 뜨거워져 김태하를 한 번 밀었다.“빨리 가, 김 대표.”40분이 넘는 거리였는데도, 그 시간은 한순간처럼 짧게 지나갔다.가는 길에 강지현은 먼저 김태하를 끌어안았다. 이제는 정말 아쉬워졌다. 고작 일주일일 뿐인데, 정말 일주일뿐인데도, 마치 아주 긴 이별을 앞둔 것만 같았다.그녀는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파묻고, 그에게서 나는 맑고 좋은 향을 욕심내듯 들이마셨다.“김태하.”그녀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너 엄청 보고 싶을 거야.”“그럼 나 안 갈게.”김태하는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깊이 끌어안고, 턱으로 그녀의 머리 꼭대기를 가볍게 문질렀다.그가 그렇게 말하자, 강지현의 눈빛에는 정말로 잠깐 흔들림이 스쳤다.하지만 김태하는 농담으로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말로 당장 차를 돌릴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안 돼. 일이 더 중요해.”그를 일주일이나 보내는 일정이라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녀가 괜히 떼를 쓸 수는 없었다.“정 안 되면 나 미래 그룹 대표 안 할 테니까, 네가 나 먹여 살려.”김태하는 일부러 강지현을 놀리듯 말했지만 목소리만큼은 여전히 진지했다.남자가 일부러 장난치는 걸 알면서도, 강지현은 곧장 진지한 얼굴로 그의 눈을 바라봤다.“그건 돼.”김태하는 낮게 웃었다. 깊게 깔린 목소리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다정함이 섞여 있었다.“강지현, 나도 너 엄청 보고 싶을 거야.”차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서로 얽히는 숨소리만 고요하게 맴돌았다.강지현은 김태하의 턱 가까이 다가갔고 자연스럽게 그의 차가운 입술에 닿았다.두 사람의 입맞춤은 무척 부드러웠다. 천천히, 조금씩, 서로의 입술을 오가며 가볍게 깨물었다. 사람 마음을 어지럽힐 만큼 애틋한데도,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다 풀어내지 못한 그리움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앞쪽에 앉아 있던 최동윤은 그 장면을 보고 얼른 두 눈을 가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공항 VIP 통로 앞에 부드럽게 멈췄다. 최동윤이 먼저 내려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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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67화

    현다영은 그 말을 듣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겁을 먹은 탓에 곧바로 강지현을 바라봤다.주단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속이 더 들끓었다.‘이 여자가 배짱이 큰 거 아니었나? 감히 나를 건드려 놓고 이제 와서 훌쩍거리다니, 어디서 가련한 척이야.’“현다영, 할 수 있으면 소송으로 나 고소해. 그리고 회사에서 일할 때는 정신 똑바로 차려. 안 그러면 강지현이 너 잠깐은 지켜줘도 평생 지켜주진 못해.”주단우는 대놓고 현다영을 협박하고 있었다. 그의 이를 비집고 새어 나오는 냉기는 현다영의 뼛속까지 씹어 부술 것만 같았다.현다영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고, 강지현은 주단우의 말에 화가 치밀었다.“주 대표, 제가 회의실에서 한 말 벌써 잊었어요?”“강지현, 너 진짜 끝이 없네?”주단우는 지금 이 상황에서 괜히 강하게 맞설 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강지현 손에는 엄경미 대신 처리해 온 자기 쪽 더러운 자료가 조금 쥐어져 있었다.강지현이 진짜 마음먹고 물고 늘어지면, 적어도 가죽 한 겹은 벗겨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렇게까지 대놓고 자기 자존심을 짓밟은 사람은 여태 한 명도 없었다.특히 현다영이 되레 자기를 물어뜯고 나온 일은 더 그랬다.“사과해.”강지현이 차갑게 두 글자를 던졌다.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은 듯했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사람을 압도했다.인사팀 직원은 원래 끼어들어 말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지현과 주단우가 이미 정면으로 부딪친 걸 보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는 걸 보자 현다영이 먼저 버티지 못했다. 그녀는 몰래 손을 뻗어 강지현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아니면... 그냥 그만하자고 하고 싶었다.“그래, 미안하다.”마침내 주단우가 기가 차서 웃었다. 그는 눈매를 휘며 현다영을 향해 잠긴 목소리로 세 글자를 내뱉었다.하지만 그 세 글자는 현다영의 마음을 조금도 편하게 해 주지 못했다.“사과는 진심이 있어야죠. 최소한 누구한테 사과하는지는 알아야 하고, 상대가 받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66화

    현다영은 원래 강지현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했고, 또 주단우가 자기 가족에게 보복할까 봐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미 양심 쪽에 서기로 마음먹은 이상, 강지현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결국 모든 일을 다 털어놓았다.그녀가 강지현 사무실에 들어간 건, 그저 주단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실제 데이터도 넘기지 않았다.현다영은 차라리 엄마와 남동생을 데리고 해원시를 떠날지언정, 강지현의 뒤통수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강지현은 당연히 현다영을 믿었다. 다만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미련할 정도로 혼자서 주단우의 협박을 감당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것 역시 사람 마음을 쥐고 흔드는 주단우의 영악한 방식이었다.현다영이 강지현에게 도움을 청하게 만든다는 건, 결국 그녀가 감당해야 할 모든 걸 강지현에게 떠넘기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원래부터 강지현과 주단우는 회사 안에서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그런데 현다영 일까지 얽혀 강지현이 영향을 받고, 주단우와 정면충돌하게 된다면...그건 현다영이 강지현을 지키고 싶어 했던 처음의 마음과도 어긋나는 일이었다.설령 자기 몸은 괜찮더라도 마음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한쪽은 가족이고, 다른 한쪽은 은인이었다. 현다영은 도무지 이 선택을 할 수 없었다.다행히 강지현이 먼저 솔직하게 말을 꺼내며 예민하게 굴던 현다영의 마음을 달래 줬다.주단우가 현다영에게 보복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강지현 역시 그녀를 끝까지 지켜낼 생각이었다.그녀들은 같은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서로 기대고 돕는 건 짐이 되는 게 아니었다.강지현은 현다영이 자신을 온전히 믿었으면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며 깎아내리지도 않았으면 했다.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는 거지, 피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다치더라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수많은 일을 함께 버텨 오지 않았나. 고작 주단우 하나가 뭐가 그렇게 무섭단 말인가?강지현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현다영은 며칠째 자신을 짓누르던 불안과 음침한 기분에서 조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65화

    “제가 주 대표를 조사한 것도 맞고, 이간질하려는 것도 맞죠.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 사이를 흔들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꺼내는 거예요. 이런 건 주 대표가 저보다 더 익숙하지 않아요? 주 대표가 이경 그룹에 투자한 것도 결국 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저와 김씨 가문 사이를 흔들려는 거였잖아요?”강지현의 말에는 조금의 숨김도 없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 모습 때문에 오히려 주단우의 화는 더 치밀어 올랐다.그는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제대로 멘탈이 흔들리고 있었다.주단우는 결국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말 몇 마디 툭 던지고, 증거도 하나 없이 내가 우리 엄마를 의심할 거라고 생각해? 강지현, 너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강지현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주단우가 저 말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주단우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와 머리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차라리 대놓고 압박하는 편이 더 빠르고 확실했다.“주단우 씨, 더 이상 저를 건드리지 마요.”강지현은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원래도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였지만, 지금 그 안에는 서늘한 냉기가 맴돌고 있었다. 낮게 깔린 그 한마디만으로도 사람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주단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지현이 그의 곁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이경 그룹은 위험 등급이 아주 높아요. 공식 공문까지 이미 내려왔고요. 저는 그 자료를 이미 이사회에 보고해 뒀어요. 제가 미리 말 안 했다고 원망하지는 마요. 주상 그룹이 투자금만 날리고, 이경 그룹까지 무너지면 주 대표도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잖아요. 그때 되면 주 대표 어머니도 꽤 화나시겠죠?”말을 마친 강지현은 힐끗 주단우를 바라봤다. 그의 손이 테이블 모서리를 짚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주단우는 차갑게 강지현을 한 번 도려내듯 노려봤다. 가슴이 몇 번 크게 오르내리더니, 곧장 성큼성큼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그는 걸어가면서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60화

    백하린이 그들을 괴롭히는 건 상관없었지만 매번 꾸짖을 때마다 강지현을 언급했다.요즘 회사에 나오지도 않는 강지현을 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들의 얘기를 들은 이도운은 백하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지현이랑 몰래 경쟁하고 있다니.’“강지현 곧 회사로 돌아올 거니까 그만두지 말아요. 그동안 여러분들이 잘했으니 휴가를 내고 싶으면 이틀 정도 내도록 해요. 지금 회사가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어서 모두 힘을 합쳐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해요.”이도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들에게 연봉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58화

    백하린의 말을 들은 문수정이 코웃음을 쳤다.“이씨 가문에 며칠 있었다고 윤후를 자기 아들이라 생각하는 거야? 이 집의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알아?”백하린이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이도운도 따라가려 하자 문수정이 못 나가게 막아섰다.“그냥 가라고 해. 너 미쳤어?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몰라? 재산, 회사, 체면 몽땅 포기할 셈이야?”이도운은 온몸의 피가 끓어올라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문수정의 말에 다시금 이성을 되찾았다.지금 백하린을 쫓아간다면 그가 공들여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터.이도운은 숨을 깊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56화

    이철호는 불안했는지 임종을 앞두고 이씨 가문의 재산을 아내에게 맡겼다. 혹시라도 이도운과 백하린이 다시 만날까 봐 두려웠던 것이었다.문수정은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사진들을 자세히 살폈다.사진이 찍힌 장소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도운의 집이라는 걸 발견했다. 백하린이 돌아온 것도 모자라 이도운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니...저녁, 백하린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낯선 여성의 하이힐 한 켤레가 현관에 놓여 있었다.이 신발은 강지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백하린의 예민한 신경이 곤두섰다. 몸을 돌려 나가려던 그때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55화

    주단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주상 그룹은 인재 관리가 매우 엄격해서 주단우도 밑바닥부터 시작해 회사의 시가총액을 돌파하는 성과를 여러 번 내고서야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강지현이 주상 그룹을 손에 넣으려면 막아야 할 입이 한둘이 아니었다.“그래.”주단우가 느긋하게 대답했다.“그나저나 내가 내 힘으로 프로젝트를 따내면 그땐 회사 경영 권한을 어떻게 보장해줄 건데요?”주단우가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강지현이 자기 주제를 정말 모른다고 생각했다.진작 준비를 마쳤는지 휴대폰을 꺼내 누르더니 곧바로 강지현에게 성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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