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tir

제3화

Autor: 윤소정
강지현이 이제 막 차에 타려 하자 이도운도 표정을 가다듬고 함께 가려 했다.

이 시간이면 두 사람은 늘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

“비서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난 부동산 중개인이랑 집 보러 가기로 했어.”

이도운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오늘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이 집은 경쟁이 치열해서 오늘 안 가면 팔릴지도 몰라.”

강지현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

“너 항상 그랬잖아.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입가와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이도운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곧장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알았어. 그럼 나도 오늘 회사 안 가. 우리 함께 집 보러 가자.”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강지현이 더 환하게 웃더니 몸을 돌려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나 혼자 고르고 싶어서 그래. 다 고르면 너한테 보여줄게.”

그녀는 이도운의 속셈을 너무 잘 안다. 자신과 함께해주긴커녕 감시하기 위해서겠지.

이도운의 수작으로 부부 공동명의로 집을 사게 되면 그 집은 결국 그와 백하린의 소유가 된다.

강지현의 유혹적인 말투에 갑자기 흥분한 이도운은 그녀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잡아끌었다.

“나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응.”

강지현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곧바로 손을 뺐다.

“알았어. 그렇게 해, 그럼.”

이도운은 낮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피할 곳조차 없던지라 강지현은 역겨움을 참으며 스킨십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차를 몰고 떠나자 이도운의 입에 걸렸던 미소도 싹 사라졌다.

단지 착각일까? 강지현이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아니면 그녀가 원래 예민한 사람이라 백하린을 질투하는 걸까?

이도운은 이유 모를 짜증이 밀려와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강지현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녀가 아무리 좋고 자신에게 진심이라 해도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내 백하린을 사랑할 테니까.

한 시간 후, 강지현은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서서 파이낸셜의 뷰를 내려다봤다.

그녀가 점찍어둔 이 단독주택은 실내 인테리어가 전부 최첨단 설비로 되어있고 미니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였다. 사용 면적은 무려 100평이 넘었다.

가장 큰 면적은 아니지만, 파이낸셜에서 위치가 가장 좋은 집이었다.

강지현은 이 도시의 불빛이 전부 켜졌을 때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 상상하고 있었다.

“이 집으로 할게요. 제 명의로 계약 진행해주세요.”

그녀는 만족스럽게 분양 담당자에게 말했다.

이곳은 바로 입주가 가능했다. 이는 그녀가 숨 막히고 역겨운 그 ‘집’을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분양 담당자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녀가 그냥 둘러보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횡재라니.

어느덧 강지현을 대하는 태도가 다 달라졌다. 담당자는 그녀를 로비의 VIP 대기실로 안내하고는 커피와 디저트를 대접하라고 시킨 후 부동산 계약서를 가지러 갔다.

이따가 강지현이 카드를 긁고 사인만 하면 후속 절차는 전담 직원이 모두 처리해줄 것이다.

그녀가 계약서를 기다리던 그때,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갑자기 귓가에 들려왔다.

“그쪽인가요? 내가 점찍은 집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강지현이 고개를 돌려보니 명품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 여자가 화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경호원 두 명과 여성 분양 담당자 한 명이 따랐다.

“지금 저한테 말한 거예요?”

강지현은 잠깐 놀랐다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A동은 내가 먼저 봐뒀어요. 그 집 내가 살 겁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날카롭고 매력적인 눈빛으로 강지현을 째려보면서 오만하게 말했다.

“아까 집 볼 때 누가 이 집을 예약했다는 말도 없었고 그쪽 아직 계약금도 안 냈죠? 내가 먼저 돈을 냈으니 당연히 내 거죠.”

강지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는 막무가내인 사람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아 다른 자리로 옮기려 했다.

그러자 여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난 그딴 거 신경 안 써요. 어차피 알려주러 온 게 아니거든요. 나한테 우선권이 있으니까 내놓기 싫어도 내놓아야 할 겁니다.”

강지현이 돌아보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우선권이요?”

그녀의 옆에 있던 여성 분양 담당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희는 구매자의 자산 규모를 먼저 확인합니다. 선착순이 아니라 고객님의 자산 규모에 따라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담당자는 말하면서 강지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경멸의 뜻이 매우 짙었다.

“규정 한번 어이가 없네요!”

강지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 계약서를 가지러 갔던 담당자가 미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강지현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여자를 보더니 담당자는 나직이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저분이 바로 하씨 가문 아가씨인데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 회사가 저분 집안 소유예요.”

강지현은 그제야 하이 토이가 생각났다.

유산을 상속받은 후 여러 가문에 대해 알아봤는데 해원시의 상업 순위에서 하이 그룹이 5위였다.

저 여자는 충분히 거만을 떨 자본이 있었다.

여성 분양 담당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마음이 불편하시겠지만, 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불편할 것도 없어요. 다만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죠. 그나저나 여기 규정대로라면 저분보다는 제가 우선권이 있을 테니 이 집은 제가 삽니다.”

강지현은 가볍게 숨을 내쉰 후 옆에 있는 담당자에게 말했다.

“빨리 처리해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저.”

지금 이 말은 자신의 자산 순위가 해원시 5위인 하이 그룹보다 더 높다는 의미였다.

기고만장하던 그 여자와 옆에 있던 여성 담당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여자 방금 뭐라고 했어요? 본인에게 우선권이 있다고요?”

여자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여성 담당자에게 다시 물었다.

이에 담당자도 급히 예약 정보를 확인했다.

‘말도 안 돼. 만약 아가씨와 같은 엄청난 고객이 온다면 사전에 우리한테 말했을 텐데. 적어도 총괄 매니저님이 직접 나서야 하잖아.’

그도 그럴 것이 강지현의 옷차림만 보면 너무 평범해서 끽해야 졸부일 뿐 자산이 하이 그룹 따님을 뛰어넘을 리가 없었다.

“고객님, 아직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나요? 저희는 자산 규모에 따라...”

“그럼 규모를 확인해보시죠!”

강지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재차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동안 형편없는 인간들을 수없이 봐온지라 이까짓 권세에 빌붙는 사람들은 축에 끼지도 못했으니.

옆에 있던 남자 담당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래도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그 시각, 2층 VIP 구역의 커튼이 움직이더니 훤칠한 체구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사람은 그 뜻을 바로 알아채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가서 김 대표님 말씀 전해드려. 저분 자산은 조회할 필요 없어. 주씨 가문의 아가씨야.”

해원시에 주씨 가문은 딱 하나뿐인데 무려 해원시 갑부 집안이었다. 그 집안에 딸이 있었다고? 이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얘기였다.

강지현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이를 본 여성 담당자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봐요! 자기 주제를 알고 이러시는 건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기 집을 사려면 자산 검증이 필요해요. 뭐 수중에 돈이 좀 있겠지만 웬만해선 여기 집 사기 힘들 겁니다. 더는 아가씨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경비원을 불러서 내쫓는 수가 있어요.”

이번엔 여자도 화를 가라앉히고 코웃음을 치면서 담당자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대체 무슨 우선권이 있는지 한번 봐야겠어요. 다만 미리 말해두는데 우선권도 없으면서 내 시간을 낭비했다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겁니다. 나 절대 그쪽 가만 안 둘 테니까!”

여자는 강지현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얼굴에 누가 봐도 응석받이로 자란 공주님이었다.

강지현이 덤덤하게 웃었다.

“좋아요. 그럼 만약 내게 우선권이 있다면요? 그쪽도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건가요?”

“이봐!”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사이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강지현에게 달려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확실히 고객님께 우선권이 있으세요. 저희가 무례했던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옆에 있던 남자 담당자도 입이 쩍 벌어졌다. 방금 자산을 검증하려는데 자신이 접대한 여자가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가진 데다가 갑부 주씨 가문에서 금방 찾은 딸이라는 소식까지 전해 들은 것이었다.

여성 담당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져 물으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를 잡아당기며 몇 마디 속삭이자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사과부터 해댔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주씨 가문 따님인 줄 몰랐습니다. 방금 무례하게 굴었던 점 부디 용서해주세요...”

그 말에 여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씨 가문? 설마 내가 아는 그 주씨 가문을 말하는 거야?’

해원에서 주씨 가문이 손 하나 까딱해도 금융계 전체가 뒤흔들린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절대 과언이 아니다.

“빨리 절차 진행해주세요. 시간 없다니까요.”

강지현은 그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산 검증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당자가 서둘러 계약서를 가져왔다. 그녀는 사인한 후 즉시 절차를 밟도록 했다.

“그쪽이 주씨 가문의 딸이라고요? 왜 전에 본 적이 없죠?”

여자는 멍한 얼굴로 강지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주씨 가문의 동년배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이 여자는 완전 뉴페이스였다.

“주씨 가문은 무슨. 이거 다 사기 아니야?”

여자는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그들이 서로 짜고 쳐서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눈짓하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했다.

분양 센터의 사람들이 나서서 말리기 전에 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로비에 몰려들어 여자의 일행을 막아섰다.

앞장서서 걸어오던 중년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저는 주씨 가문의 집사 유정재입니다.”

그 말에 여자는 물론이고 강지현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씨 가문 사람들이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걸까?

그녀는 다가오는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금테 안경과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분위기와 말투는 매우 점잖았지만 묘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

유정재가 나타난 후 여자도 기가 팍 꺾였다.

“집사님, 설마 이 여자가... 정말 주씨 가문 아가씨라고요?”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 주승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해 한 명 입양했는데 왜 하필 주승호가 사망하자마자 뜬금없이 친딸이 나타난 걸까?

‘헐! 설마 사생아야?’

“맞습니다. 이분은 주승호 씨 친딸이자 현재 주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이십니다.”

말을 마친 유정재는 여자를 지나쳐 강지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강지현은 그의 시선이 마냥 불편할 따름이었다. 문득 유정재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유정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뒤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도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강지현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여자도 충격에 휘청거릴 뻔했다.

그녀가 가방을 꽉 움켜쥐고 서둘러 떠나려는데 주변의 경호원들이 길을 막았다.

“아가씨, 저분과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바로 해결해드릴까요?”

유정재는 뒤돌아보지 않고 미소를 머금은 채 강지현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여자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내가 조금 전에 버릇없이 굴었다고 진짜 무릎 꿇게 하는 건 아니겠지? 이대로 꿇으면 앞으로 이 바닥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쪽팔려 죽겠네 진짜.”

“...”

재벌가에서 주씨 가문의 지위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스케일은 강지현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됐어요. 손해 본 것도 없는데요 뭘.”

“그렇다면 아가씨가 저희 아가씨께 사과드리세요. 그래야 앞으로 두 가문의 체면을 지킬 수 있습니다.”

유정재가 허리를 곧게 펴고 말했다. 강지현은 그냥 넘어갈지 몰라도 유정재는 누군가 주씨 가문에 무례를 범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여자는 강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결국 침을 꿀꺽 삼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지현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여자가 사과하고 나서야 경호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여자가 떠난 후 유정재가 눈짓을 보내자 조금 전 강지현을 무시했던 여성 담당자도 끌려나갔다.

강지현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정재가 다가오며 공손하게 길을 안내했다.

“여기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차 밖에 대기시켰으니 먼저 타시죠, 아가씨.”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정재를 쳐다봤다. 처음의 경계심은 사라지고 많이 차분해진 눈빛이었다.

강지현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나지막이 물었다.

“차에요? 어디 가는데요?”

“당연히 주씨 저택이죠.”

유정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Continúa leyendo este libro gratis
Escanea el código para descargar la App

Último capítulo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0화

    또한, 누구의 체면도 안중에 두지 않았고 여자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하여 결혼 적령기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김씨 가문의 어른들에게 뭐라 하지 못했다.이런 인물이 강지현에게 자리를 빼앗겼는데도 문제 삼기는커녕 오히려 상냥하게 해결책을 묻다니!김태하의 시선에 강지현은 순간 부담이 커졌지만 심호흡한 뒤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이미 벌어진 일을 이해하고 실수를 더 나은 조치로 해결하는 거죠.”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널찍한 테이블을 둘러보았다.“여기 공간이 충분해서 의자 하나 더 추가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주최 측에서는 제 옆에 이와 동일한 규격의 자리를 마련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주상 그룹의 체면도 지킬 수 있고 김태하 씨의 도량도 돋보일 것이며 주최 측의 위기 대처 능력과 성의 또한 보여줄 수 있지요.”“저한테 강제적으로 자리를 옮기게 해서 세 당사자 간의 갈등과 어색함을 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요?”강지현의 말이 끝난 순간 연회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뭇사람들은 그녀의 침착하면서도 기지가 넘치는 발언에 크게 놀랐다.누가 그녀를 별 보잘것없는 사생아라고 했는가? 그 누구보다 논리적이고 영특한 상속녀인 것을!강지현이 몇 마디 말로 상황을 순식간에 해결하자 하지유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주시언이 어느새 연회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빛나는 여동생을 보면서 그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강지현을 빤히 쳐다보던 김태하의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오더니 이내 주최 측 관계자에게 말했다.“강지현 씨 말대로 하세요.”차분한 말투에서 도통 그의 기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최 측은 한시름을 놓았다.“네, 알겠습니다.”직원이 곧바로 의자를 가져왔다.작은 에피소드가 막을 내리고 만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지현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질의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왜 드시지 않고 저만 보세요?”김태하가 낮은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9화

    하지만 강지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부러 태연한 척하는 게 아니라 찐 여유로움이 느껴졌다.주최 측은 그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거의 애원하는 식으로 말했다.“강지현 씨, 저희가 업무상 실수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 즉시 다른 상석으로 마련해드릴게요. 곤란해지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는 예약되어 있던 자리이고 이제 곧 도착하실 예정이라 부디 저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네요. 저 같은 일개 매니저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강지현이 물러서지 않을수록 상황은 더욱 난감해졌다. 그녀가 일어서든 아니든 어쨌거나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게 뻔했다.옆에서 하지유가 대놓고 야유를 날렸다.“어떤 사람은 마지막까지 허세를 부리다가 결국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죠. 정말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거예요.”그녀의 말에 금세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만장일치로 강지현이 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적어도 주최 측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일말의 자존심을 챙길 수는 있었다.만약 끝까지 버티다가 끌려 나오거나 충돌이라도 생기면 그것만큼 볼썽사나운 일도 없을 것이다.강지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 뒤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주최 측에서 실수할 수는 있어요. 이 점은 이해합니다.”처음에는 말투가 차분하더니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매니저에게 시선이 향한 순간 갑자기 톤이 낮아졌다.“하지만 전 주상 그룹을 대표해서 왔어요. 오늘 저는 주씨 가문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라고요. 당신들은 제 이름표를 누락시켰고 지금은 또 도착하지도 않은 귀빈 때문에 저한테 임시 좌석으로 옮기라고 했어요. 이건 주씨 가문의 체면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요?”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화들짝 놀랐다. 주씨 가문의 지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주최 측의 이번 조치는 명백히 주씨 가문을 무시하는 행위였다.매니저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하려는데 강지현이 말을 이었다.“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8화

    사실 하원영은 강지현을 도울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화장실에서 하지유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는데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걸 원치 않았을 뿐이다.게다가 강지현은 주시언의 동생이었다.주시언은 어젯밤 강지현을 엄청 감싸고 돌았다. 꼭 마치 그녀가 강지현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경계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원영 씨의 호의는 고맙지만... 그래도 저는 이 자리에 앉고 싶어요.”강지현은 몸을 돌리고 비어있는 좌석에 그대로 앉았다.“강지현 씨, 누가 거기 앉으라고 했어요? 시골 촌뜨기도 아니고 예의라는 걸 전혀 모르시네요.”하지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더는 체면 따위 신경 쓸 겨를 없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강지현에게 쏘아붙였다.“확실히 잘 모르겠네요. 이런 만찬이 처음이거든요.”강지현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하지유의 말을 받아쳤다.그 순간 하지유는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가 당당하게 모른다고 인정하니 되레 반격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하지만 여기 오는 길에 주최 측과 주씨 가문에서 모두 말씀해주셨어요. 해원시 최고 재벌로서 꼭 상석, 그러니까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고요. 안 그러면 제 면을 깎는 거라고 하던데?”“이쪽이 상석이고 이름표가 없잖아요. 마침 저도 이름표를 찾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 자리가 주최 측에서 저를 위해 비워둔 자리이지 않을까 싶네요.”강지현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사실 주씨 가문이라면 충분히 그녀에게 이런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주씨 가문으로 돌아온 아가씨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주변 손님들도 강지현의 말에 하나둘 동조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직접 나서서 그녀를 두둔하기까지 했다.“이름표가 없으니 강지현 씨가 앉으시죠.”“강지현 씨 말씀이 맞아요. 그 정도 신분이라면 당연히 그 자리에 앉으셔야죠.”하지유의 안색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이제는 찍소리도 못했다.강지현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듯 괜히 엮여 곤란한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7화

    하지만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모든 자리를 다 찾아봐도 자신의 이름표가 보이지 않았다.다들 자리에 앉은 상황에서 홀로 서 있으니 강지현은 더욱 난처해졌다.음식을 서빙하던 종업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강지현 씨, 식사가 곧 시작될 예정이니 빨리 자리에 앉아주세요.”“네.”그녀는 빈자리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 자리가 하필 상석이었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다가가 앉으려던 그때, 한 여자가 대뜸 막아섰다.“죄송합니다만 이 자리는 앉으실 수 없습니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 여자는 다름 아닌 하지유였다.입꼬리를 씩 올리고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강지현을 쳐다보았고 이에 옆에 앉아 있던 몇몇 재벌가 따님들도 고개를 숙이고 킥킥거렸다.“제가 지금 자리를 못 찾아서요. 여기 이름표가 없던데요?”강지현은 비어있는 자리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이름표가 없었다.“이 자리는 예약석이에요. 초대했지만 참석 여부가 불확실한 중요 인사들을 위해 미리 비워둔 자리죠. 이런 기본적인 사항은 다들 알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하지유는 친절하게 설명하는 척했지만, 말투에 조롱이 가득 담겨 있었다.강지현이 무지하다고 비꼬는 게 분명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강지현 씨, 혹시 이런 만찬이 처음이에요? 자기 이름표가 있는 자리에 앉아야 하는 법을 몰라요?”“설마요. 방금 주씨 가문을 대표해서 그렇게 멋진 연설을 했는데 자기 자리 하나 못 찾겠어요?”연회장이 너무 조용하다 보니 아주 작은 소리에도 모든 손님의 이목이 쏠렸다.강지현은 다시 한번 화두에 올랐다.그녀를 곤란하게 하려고 하지유가 이름표를 치운 게 틀림없었다.강지현은 제자리에 서서 차분한 눈길로 연회장을 쭉 둘러봤는데 역시나 이름표는 어디에도 없었다.주변에서 쏟아지는 조롱 섞인 시선에 하지유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바로 그때,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해요? 제 이름표도 안 보이는데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6화

    강지현은 처음으로 이런 거대한 규모의 행사에서 연설을 맡았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긴장감을 떨치기가 어려웠다.“저 여자 누구예요? 주상 그룹 대표면 주단우 씨나 사모님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어머, 모르셨나 보네! 저 여자 주승호 씨 사생아래요. 듣기로 수십조 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던데.”“주씨 가문에 사람이 없대요? 저 여자가 비즈니스가 뭔지는 알고 감히 연설한대요?”“듣자 하니 주씨 가문이 지금 난리도 아니라던데. 상업의 상자도 모르는 사람이 가문의 상속녀가 되었으니. 주씨 가문도 이제 나락이네요...”“어쩜 저렇게 화려하게 치장했는지. 무슨 패션쇼인 줄 아나 봐요...”...어딘가에서부터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강지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켜졌다.마이크를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한 줄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상대는 바로 주시언이었다.그가 먼저 박수를 치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서서히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강지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앞에 놓인 프롬프터를 쳐다봤는데 화면이 텅 비어있었다!이건 분명 누군가 손을 써서 강지현을 망신 주려는 수작이었다.무대 아래의 박수가 잦아든 후,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망설임 없이 유창한 외국어로 연설을 시작했다.정확한 발음과 진지한 목소리에 의논 소리가 금세 잦아들었다.그녀를 난처하게 만들려 했던 사람은 강지현이 금융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아마 몰랐을 것이다.금융을 전공하려면 외국어는 필수였다. 그녀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즉흥 연설 능력도 뛰어났다.대학교 시절 강지현은 매년 영어 즉흥 연설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는데 대부분 내용이 상업 분석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류의 발표는 원고 없이도 얼마든지 흥미롭게 할 수 있었다.앞서 연설했던 자들은 통역사와 동행했지만, 강지현이 단상에 오른 후 통역사는 강제로 휴식을 취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주시언도 마침내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5화

    김태하가 한마디 할 때마다 현장은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지현마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전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었다.분명 차갑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며 조각상처럼 단상에 서 있었지만, 강지현은 그에게서 진한 남자의 매력을 느꼈다.생중계를 다 보고 나서 강지현은 김태하의 성격이 차가운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이렇게 뛰어난 사람에게 사교활동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연애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알아서 추앙할 텐데.메시지 알림이 더는 울리지 않았다.강지현은 마침내 졸음이 쏟아져 이불을 뒤집어쓰고 꿈나라에 들었다.다음 날 만찬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주병찬은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주시언 역시 바쁜 사람이었다. 업무 전화가 끊임없이 오는가 하면 또 누군가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반면 강지현은 주상 그룹의 상속녀임에도 불구하고 주병찬과 주시언의 옆에 있을 때만 사람들이 명함을 건네거나 예의상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그녀는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이 상업계의 거물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주씨 가문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건 주승호와 주씨 가문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지, 갑자기 나타난 사생아 강지현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다.그녀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대다수였다.주병찬도 그녀에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미리 말해주었다.여기 있는 사람들은 엄경미와 주단우를 더 인정했다. 강지현은 주승호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못 돼서 조만간 주씨 가문의 자산과 권력 모두 엄경미와 주단우에게 넘어갈 것으로 여겼다.하여 지금 당장 엄경미와 주단우에게 등 돌리지 않고 일단 강지현과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강지현도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저 주상 그룹을 대표하여 형식적으로 참석했을 뿐이니까. 다만 수십조 원의 자산을 손에 쥐었기에 그녀는 결코 주눅들 수 없었다.강지현은 주상 그룹을 대표하는 연설문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주병찬이 사람을 찾아 연설문을 작성했고 그녀가 여러 번 다듬

Más capítulos
Explora y lee buenas novelas gratis
Acceso gratuito a una gran cantidad de buenas novelas en la app GoodNovel. Descarga los libros que te gusten y léelos donde y cuando quieras.
Lee libros gratis en la app
ESCANEA EL CÓDIGO PARA LEER EN L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