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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윤소정
강지현이 이제 막 차에 타려 하자 이도운도 표정을 가다듬고 함께 가려 했다.

이 시간이면 두 사람은 늘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

“비서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난 부동산 중개인이랑 집 보러 가기로 했어.”

이도운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오늘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이 집은 경쟁이 치열해서 오늘 안 가면 팔릴지도 몰라.”

강지현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

“너 항상 그랬잖아.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입가와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이도운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곧장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알았어. 그럼 나도 오늘 회사 안 가. 우리 함께 집 보러 가자.”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강지현이 더 환하게 웃더니 몸을 돌려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나 혼자 고르고 싶어서 그래. 다 고르면 너한테 보여줄게.”

그녀는 이도운의 속셈을 너무 잘 안다. 자신과 함께해주긴커녕 감시하기 위해서겠지.

이도운의 수작으로 부부 공동명의로 집을 사게 되면 그 집은 결국 그와 백하린의 소유가 된다.

강지현의 유혹적인 말투에 갑자기 흥분한 이도운은 그녀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잡아끌었다.

“나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응.”

강지현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곧바로 손을 뺐다.

“알았어. 그렇게 해, 그럼.”

이도운은 낮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

피할 곳조차 없던지라 강지현은 역겨움을 참으며 스킨십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차를 몰고 떠나자 이도운의 입에 걸렸던 미소도 싹 사라졌다.

단지 착각일까? 강지현이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아니면 그녀가 원래 예민한 사람이라 백하린을 질투하는 걸까?

이도운은 이유 모를 짜증이 밀려와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강지현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녀가 아무리 좋고 자신에게 진심이라 해도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내 백하린을 사랑할 테니까.

한 시간 후, 강지현은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서서 파이낸셜의 뷰를 내려다봤다.

그녀가 점찍어둔 이 단독주택은 실내 인테리어가 전부 최첨단 설비로 되어있고 미니멀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였다. 사용 면적은 무려 100평이 넘었다.

가장 큰 면적은 아니지만, 파이낸셜에서 위치가 가장 좋은 집이었다.

강지현은 이 도시의 불빛이 전부 켜졌을 때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벌써 상상하고 있었다.

“이 집으로 할게요. 제 명의로 계약 진행해주세요.”

그녀는 만족스럽게 분양 담당자에게 말했다.

이곳은 바로 입주가 가능했다. 이는 그녀가 숨 막히고 역겨운 그 ‘집’을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분양 담당자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녀가 그냥 둘러보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횡재라니.

어느덧 강지현을 대하는 태도가 다 달라졌다. 담당자는 그녀를 로비의 VIP 대기실로 안내하고는 커피와 디저트를 대접하라고 시킨 후 부동산 계약서를 가지러 갔다.

이따가 강지현이 카드를 긁고 사인만 하면 후속 절차는 전담 직원이 모두 처리해줄 것이다.

그녀가 계약서를 기다리던 그때,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갑자기 귓가에 들려왔다.

“그쪽인가요? 내가 점찍은 집을 빼앗으려는 사람이!”

강지현이 고개를 돌려보니 명품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 여자가 화난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경호원 두 명과 여성 분양 담당자 한 명이 따랐다.

“지금 저한테 말한 거예요?”

강지현은 잠깐 놀랐다가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

“그럼 누구겠어요? A동은 내가 먼저 봐뒀어요. 그 집 내가 살 겁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날카롭고 매력적인 눈빛으로 강지현을 째려보면서 오만하게 말했다.

“아까 집 볼 때 누가 이 집을 예약했다는 말도 없었고 그쪽 아직 계약금도 안 냈죠? 내가 먼저 돈을 냈으니 당연히 내 거죠.”

강지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는 막무가내인 사람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아 다른 자리로 옮기려 했다.

그러자 여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난 그딴 거 신경 안 써요. 어차피 알려주러 온 게 아니거든요. 나한테 우선권이 있으니까 내놓기 싫어도 내놓아야 할 겁니다.”

강지현이 돌아보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우선권이요?”

그녀의 옆에 있던 여성 분양 담당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희는 구매자의 자산 규모를 먼저 확인합니다. 선착순이 아니라 고객님의 자산 규모에 따라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담당자는 말하면서 강지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경멸의 뜻이 매우 짙었다.

“규정 한번 어이가 없네요!”

강지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그때, 계약서를 가지러 갔던 담당자가 미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강지현의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여자를 보더니 담당자는 나직이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저분이 바로 하씨 가문 아가씨인데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장난감 회사가 저분 집안 소유예요.”

강지현은 그제야 하이 토이가 생각났다.

유산을 상속받은 후 여러 가문에 대해 알아봤는데 해원시의 상업 순위에서 하이 그룹이 5위였다.

저 여자는 충분히 거만을 떨 자본이 있었다.

여성 분양 담당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마음이 불편하시겠지만, 규정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불편할 것도 없어요. 다만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죠. 그나저나 여기 규정대로라면 저분보다는 제가 우선권이 있을 테니 이 집은 제가 삽니다.”

강지현은 가볍게 숨을 내쉰 후 옆에 있는 담당자에게 말했다.

“빨리 처리해주세요.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저.”

지금 이 말은 자신의 자산 순위가 해원시 5위인 하이 그룹보다 더 높다는 의미였다.

기고만장하던 그 여자와 옆에 있던 여성 담당자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여자 방금 뭐라고 했어요? 본인에게 우선권이 있다고요?”

여자는 잘못 들은 줄 알고 여성 담당자에게 다시 물었다.

이에 담당자도 급히 예약 정보를 확인했다.

‘말도 안 돼. 만약 아가씨와 같은 엄청난 고객이 온다면 사전에 우리한테 말했을 텐데. 적어도 총괄 매니저님이 직접 나서야 하잖아.’

그도 그럴 것이 강지현의 옷차림만 보면 너무 평범해서 끽해야 졸부일 뿐 자산이 하이 그룹 따님을 뛰어넘을 리가 없었다.

“고객님, 아직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셨나요? 저희는 자산 규모에 따라...”

“그럼 규모를 확인해보시죠!”

강지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재차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동안 형편없는 인간들을 수없이 봐온지라 이까짓 권세에 빌붙는 사람들은 축에 끼지도 못했으니.

옆에 있던 남자 담당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래도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그 시각, 2층 VIP 구역의 커튼이 움직이더니 훤칠한 체구의 누군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던 사람은 그 뜻을 바로 알아채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가서 김 대표님 말씀 전해드려. 저분 자산은 조회할 필요 없어. 주씨 가문의 아가씨야.”

해원시에 주씨 가문은 딱 하나뿐인데 무려 해원시 갑부 집안이었다. 그 집안에 딸이 있었다고? 이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얘기였다.

강지현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이를 본 여성 담당자가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봐요! 자기 주제를 알고 이러시는 건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기 집을 사려면 자산 검증이 필요해요. 뭐 수중에 돈이 좀 있겠지만 웬만해선 여기 집 사기 힘들 겁니다. 더는 아가씨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경비원을 불러서 내쫓는 수가 있어요.”

이번엔 여자도 화를 가라앉히고 코웃음을 치면서 담당자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대체 무슨 우선권이 있는지 한번 봐야겠어요. 다만 미리 말해두는데 우선권도 없으면서 내 시간을 낭비했다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겁니다. 나 절대 그쪽 가만 안 둘 테니까!”

여자는 강지현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얼굴에 누가 봐도 응석받이로 자란 공주님이었다.

강지현이 덤덤하게 웃었다.

“좋아요. 그럼 만약 내게 우선권이 있다면요? 그쪽도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건가요?”

“이봐!”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사이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강지현에게 달려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확실히 고객님께 우선권이 있으세요. 저희가 무례했던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옆에 있던 남자 담당자도 입이 쩍 벌어졌다. 방금 자산을 검증하려는데 자신이 접대한 여자가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자산을 가진 데다가 갑부 주씨 가문에서 금방 찾은 딸이라는 소식까지 전해 들은 것이었다.

여성 담당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져 물으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를 잡아당기며 몇 마디 속삭이자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사과부터 해댔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주씨 가문 따님인 줄 몰랐습니다. 방금 무례하게 굴었던 점 부디 용서해주세요...”

그 말에 여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씨 가문? 설마 내가 아는 그 주씨 가문을 말하는 거야?’

해원에서 주씨 가문이 손 하나 까딱해도 금융계 전체가 뒤흔들린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절대 과언이 아니다.

“빨리 절차 진행해주세요. 시간 없다니까요.”

강지현은 그들과 논쟁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산 검증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당자가 서둘러 계약서를 가져왔다. 그녀는 사인한 후 즉시 절차를 밟도록 했다.

“그쪽이 주씨 가문의 딸이라고요? 왜 전에 본 적이 없죠?”

여자는 멍한 얼굴로 강지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주씨 가문의 동년배들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눈앞의 이 여자는 완전 뉴페이스였다.

“주씨 가문은 무슨. 이거 다 사기 아니야?”

여자는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그들이 서로 짜고 쳐서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눈짓하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했다.

분양 센터의 사람들이 나서서 말리기 전에 또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로비에 몰려들어 여자의 일행을 막아섰다.

앞장서서 걸어오던 중년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저는 주씨 가문의 집사 유정재입니다.”

그 말에 여자는 물론이고 강지현마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씨 가문 사람들이 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걸까?

그녀는 다가오는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금테 안경과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분위기와 말투는 매우 점잖았지만 묘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

유정재가 나타난 후 여자도 기가 팍 꺾였다.

“집사님, 설마 이 여자가... 정말 주씨 가문 아가씨라고요?”

그녀는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 주승호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해 한 명 입양했는데 왜 하필 주승호가 사망하자마자 뜬금없이 친딸이 나타난 걸까?

‘헐! 설마 사생아야?’

“맞습니다. 이분은 주승호 씨 친딸이자 현재 주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이십니다.”

말을 마친 유정재는 여자를 지나쳐 강지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강지현은 그의 시선이 마냥 불편할 따름이었다. 문득 유정재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유정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뒤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도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강지현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여자도 충격에 휘청거릴 뻔했다.

그녀가 가방을 꽉 움켜쥐고 서둘러 떠나려는데 주변의 경호원들이 길을 막았다.

“아가씨, 저분과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바로 해결해드릴까요?”

유정재는 뒤돌아보지 않고 미소를 머금은 채 강지현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여자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내가 조금 전에 버릇없이 굴었다고 진짜 무릎 꿇게 하는 건 아니겠지? 이대로 꿇으면 앞으로 이 바닥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쪽팔려 죽겠네 진짜.”

“...”

재벌가에서 주씨 가문의 지위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스케일은 강지현도 처음이었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됐어요. 손해 본 것도 없는데요 뭘.”

“그렇다면 아가씨가 저희 아가씨께 사과드리세요. 그래야 앞으로 두 가문의 체면을 지킬 수 있습니다.”

유정재가 허리를 곧게 펴고 말했다. 강지현은 그냥 넘어갈지 몰라도 유정재는 누군가 주씨 가문에 무례를 범하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만, 여자는 강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는 결국 침을 꿀꺽 삼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지현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여자가 사과하고 나서야 경호원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여자가 떠난 후 유정재가 눈짓을 보내자 조금 전 강지현을 무시했던 여성 담당자도 끌려나갔다.

강지현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정재가 다가오며 공손하게 길을 안내했다.

“여기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차 밖에 대기시켰으니 먼저 타시죠, 아가씨.”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정재를 쳐다봤다. 처음의 경계심은 사라지고 많이 차분해진 눈빛이었다.

강지현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나지막이 물었다.

“차에요? 어디 가는데요?”

“당연히 주씨 저택이죠.”

유정재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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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현은 말을 하다가 방금 할머니를 돌보던 가정부가 옆에서 몰래 그들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김태하에게 눈짓했다. 김태하는 곁눈질로 슬쩍 바라봤지만 굳이 볼 필요도 없이 이미 알아챘다.“우리 집 두 어르신이 다 이런 식이에요. 익숙해지면 돼요. 다음에 불편하면 그냥 거절해도 되고요.”강지현은 고개를 저었다.“사실 오늘 저도 태하 씨를 뵙고 싶었어요. 주상 그룹 프로젝트를 제가 맡아 처리했잖아요. 태하 씨 덕분이 크고, 원래 감사 인사드리고 싶었거든요.”김태하는 낮게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아니,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태하 씨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뭐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좋을지...”강지현은 말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가진 것이 많은 김태하는 감사 인사로 뭘 받으면 좋을지 잠시 생각이 필요했다.“감사요?”김태하는 강지현이 이런 말을 꺼낼 줄 몰랐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겼다.“태하 씨, 저녁 안 드셨나요?”강지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빛은 반짝이며 김태하의 잘생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김태하가 말했다.“아직 안 먹었어요. 급하게 돌아왔거든요.”“그럼 딱 좋네요. 제가 태하 씨에게 한 끼 만들어 드릴게요.”강지현이 웃으며 덧붙였다.자신도 아직 저녁을 안 먹어 배가 조금 고프기도 했다.“요리 잘하세요?”김태하는 다소 놀란 목소리였다.여태 이런 식으로 감사 인사를 한 사람은 없었다.“태하 씨 댁 셰프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요.”강지현이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했다.하지만 자신의 요리에 나름의 자신감은 있었다.어릴 적부터 자립하며 먹고 싶은 건 직접 연구해 요리했다. 학교 때는 교내 요리대회에서 1등도 했었다.그녀의 요리를 맛본 친구들은 다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강지현은 방금 할머니와 얘기하며 김태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김태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는 일로 바빠 어린 시절 돌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이후 할머니가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6화

    강지현은 김태하가 갑자기 돌아온 것을 보고 얼굴이 붉어졌다.“태하 씨, 어떻게 오셨어요...”‘할머니는 분명 오늘 태하 씨가 늦게까지 일한다고 말씀하셨는데...’“별일 아니었죠?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김태하는 차가운 말투지만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다가가 할머니 상태를 확인했다.할머니는 강지현의 손을 놓았다. 얼굴은 건강하게 붉고 윤기까지 있었다. 전화 때 말했던 것처럼 힘들어하며 병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래. 조금 아팠지만 지현이랑 반나절 얘기 나누고 나니 몸이 다 편해졌어.”지순옥은 가볍게 기침하며 눈치를 주듯 강지현을 바라봤다.“우리 손주, 지현이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 줘. 일 있었을 텐데 일부러 시간 내서 나랑 있어 줬잖아.”김태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강지현은 할머니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너무 조급하게 생각했다.방금 할머니가 강지현과 즐겁게 이야기하신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김태하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려 둘이 함께 있게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괜찮아요. 할머니, 별거 아니에요. 할머니랑 이야기 나누는 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강지현은 재빨리 일어나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가볼게요.”“어머, 지현아,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오늘 날씨 안 좋대. 밤에 큰비가 올 거래.”할머니는 곁의 가정부에게 눈짓했다. 가정부는 날씨 예보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늦었고 비까지 오는데, 지현아, 오늘 여기서 묵고 가는 게 어때? 내일 아침 태하가 출근시켜 줄 테고, 집에 부족한 게 없으니 편리할 거야.”할머니는 말이 길어지며 직접 강지현의 팔을 잡았다.순발력이 너무 민첩해 다친 것 같지 않을 정도였다.“할머니, 조심하세요. 허리가...”“아, 내 허리는 이제 괜찮아. 모두 지현이 덕분이지.”활짝 웃던 지순옥은 김태하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이 손주는 뭐든 잘하지만, 차갑기만 해서 좋은 여자가 앞에 있어도 좀처럼 먼저 나서지 못한다는 걸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5화

    “들었는데 약혼식이 꽤 잘 됐다면서? 김 대표님이 너에게 만족하셨겠네?”주단우는 몇 마디로 강지현을 은근히 겨냥했다.프로젝트 중 투자 한 건이 마침 미래 그룹 계열사와 관련되어 있었다.그는 강지현이 주상 그룹이 아닌 김태하를 의지했다고 암시한 것이다.계약 위반은 아니지만, 밖으로 알려지면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김태하가 단 한 번 도왔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도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주단우 씨, 저는 정정당당하게 제 팀을 이끌고 엉망인 프로젝트를 정리한 거예요. 그런데 감사 인사도 안 하고, 제 능력을 의심하다니요. 정말 서운하네요. 김 대표님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분이 투자한 건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사람인지.”강지현은 주단우의 위선적인 태도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주단우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는 김 대표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이건 우리 집안 문제인데 왜 김 대표님까지 끌어들여? 지현아,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 프로젝트 잘 해줘서 고마워.”그 말과 동시에, 그는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해 계약 진행을 완료한 뒤 강지현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지현아, 절차 끝나면 회사 권한 정식으로 부여될 거야.”강지현은 주단우에게 예의 차리지 않고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주 대표님, 앞으로도 협력 잘 부탁드립니다.”주단우는 미소 지었다가 강지현이 떠나자마자 웃음기를 지우고 바로 엄경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프로젝트가 일단락되자 강지현은 팀 회식을 위해 시내 중심가, 1인당 200만 원짜리 고급 개인 식당을 예약했다.하지만 식당에 도착하기 전, 지순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지현아, 지금 바빠?”지순옥의 목소리가 조금 쇠약하다는 것을 강지현은 바로 알아챘다.“안 바빠요. 지금 퇴근했는데요.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오늘 혼자 집에 있었는데 방금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어...”할머니 말씀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강지현은 마음이 이미 조여왔다.“괜찮으세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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