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윤소정
“주씨 저택으로요?”

강지현이 다시 물었다.

“네. 앞으로는 그곳이 아가씨의 집입니다.”

그녀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주승호는 그녀의 친아버지였고 수십조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주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할 이유도 없었다.

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알았어요. 제집이라면 당연히 직접 가서 봐야죠.”

닥칠 일은 언젠가는 닥칠 것이다.

가는 길에 유정재는 주씨 가문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지금 이 가문에서 경영하는 사업이 아주 많았다. 자산의 대부분을 주승호가 소유했고 소부분을 주승호의 아버지 주호석과 형 주병찬이 가지고 있었다.

이제 주승호의 모든 유산은 강지현에게 넘어갔다. 이는 강지현이 주상 그룹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호석은 현재 해외에서 요양 중이라 주승호의 아내인 엄경미가 대신하여 주씨 가문을 관리하고 있었고 회사는 양아들인 주단우가 책임지고 있었다.

한 시간 후 롤스로이스 리무진 한 대가 주씨 가문의 본가로 들어섰다.

300평이 넘는 넓은 별장 단지는 위엄이 넘치고 웅장했다. 단지 입구에서 본관까지 차로 10분 넘게 걸렸다.

건물이 일반적인 고급 별장보다도 훨씬 화려했고 발밑의 벽돌마저 엄청난 값어치를 자랑했다.

강지현은 이렇게 화려한 집은 처음이었다.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유정재는 그녀를 본관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가정부가 커다랗고 두꺼운 대문을 열자 통유리창 앞에 귀티가 나면서도 우아한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의 옆에 가정부 두 명이 서 있었고 소파에는 깔끔한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강지현을 몇 초간 훑어보다가 가까이 다가왔다.

유정재는 눈앞의 여자가 바로 주승호의 아내 엄경미라고 낮게 소개했다.

한편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주승호와 엄경미의 양아들이자 강지현의 명의상 오빠 주단우였다.

엄경미가 고개를 들자 유정재는 일행과 함께 물러났다. 순식간에 넓은 응접실에 강지현과 엄경미 모자만 남게 되었다.

“네가 바로 강지현이야?”

강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경미는 웃고 있었지만,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썩 친절치만은 못했다.

“와서 앉아. 제집 돌아왔으니 편하게 있어야지.”

엄경미가 먼저 말을 꺼내자 주단우도 잇달아 입을 열었다. 정중한 말투에 역시나 거리를 두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강지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맞은편 소파 구석에 앉았다.

“무슨 일로 저를...”

“그럼 바로 얘기할게. 네가 상속받은 유산 중 일부를 포기해. 그게 오늘 너를 부른 이유야.”

엄경미가 대뜸 말을 가로챘다.

주단우에게 눈짓하자 주단우가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강지현 앞으로 내밀었다.

“강지현 씨,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지현 씨가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긴 했지만, 회사 경영권은 지현 씨한테 맡길 수 없어. 이 점은 이해해주길 바라. 대신 우리가 보상으로 현금 200억을 줄게.”

주단우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이건 뭐 상의가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강지현은 흠칫 놀라더니 계약서를 대충 집어 들었다.

“주씨 가문의 모든 주식과 회사 경영권, 그리고 주씨 가문 명의 하의 모든 부동산을 포기하고...”

엄경미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네 상황은 이미 알아봤어. 너희 어머니랑 우리 남편이 잠깐 만난 사이에 예상치 못하게 네가 생겼고 세 살 때 보육원에 버려졌으니 그동안 너도 참 고생 많았겠어. 200억이 너한테는 적지 않은 돈이야. 주씨 가문의 상속자는 절대 길거리를 떠도는 사생아 따위가 될 수 없어. 이 점은 너도 잘 알 거로 생각해.”

“다만 너는 우리 남편의 친딸이고 주씨 가문의 핏줄이니 앞으로 명의상으로는 계속 주씨 가문의 아가씨야. 수요되는 거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엄경미는 제법 태연한 어투로 말했다. 강지현이 거절하지 못할 거라 확신한 것처럼 말이다.

한편 강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약서를 내려놓고 다시 엄경미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 관리도 잘한 덕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강지현 씨,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여기에 사인하면 돼.”

주단우가 테이블 위의 펜을 다시 강지현에게 내밀었다.

“그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주씨 가문은 ‘사생아’인 그녀를 선뜻 받아줄 리가 없다. 상의는 무슨, 세력으로 압박하려는 수작이겠지.

강지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차분한 말투로 계속 이어갔다.

“지금 저를 ‘사생아’라고 하셨지만, 법은 친자식만 인정합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직접 유언까지 남기셨고 위임 변호사를 통해 상속 서류에 사인도 했어요. 아버지의 유언장과 친자 확인 검사 결과로 제가 합법적인 상속자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순간 엄경미는 표정이 굳어지고 다시 한번 강지현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이것 참 신선한 캐릭터였다.

이 아이가 거절할 거라곤 정말 예상치도 못했다.

“지현이 너도 네가 사생아일 뿐이라는 걸 알잖아. 설령 회사를 다 준다 해도 너는 경영할 능력이 없을 텐데.”

엄경미가 대놓고 비웃었고 주단우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원시 전체를 아울러 엄경미의 뜻을 거절하는 사람은 단연코 없었으니까.

“강지현 씨, 아무래도 오해한 모양인데 이건 상의가 아니야. 우리 집안은 지현 씨가 생각하는 평범한 가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대가족이야. 지현 씨의 결정이 가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현 씨 혼자서 우리 이 대가족을 절대 상대하지 못해.”

주단우는 행여나 그녀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직설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강지현은 두 사람이 단지 압력을 가하는 것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처럼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남을 무시하는 데 익숙했기에 200억 원이면 충분히 강지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녀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런 회유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주단우 씨의 말은 상의가 아니라 통보라는 건가요? 안타깝게도 상속권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폐기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상 그룹의 자산 구성과 주식 구조에 대해 요 며칠 조사해 봤는데 핵심 부동산의 가치가 수십조 원이고 그룹 연 매출은 꾸준히 16조 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고작 200억 원으로 보상하겠다고요? 환산하면 주상 그룹 산하의 길거리 가게 하나 살 수 있는 가격에 불과합니다. 200억 원과 수십조 원 중에 뭐가 더 좋은지 정도는 저도 구분할 수 있어요. 이건 보상이 아니라 강탈이라 할 수 있겠죠?”

강지현은 가볍게 웃고는 계약서를 덮어 그대로 주단우에게 돌려주었다.

“...”

엄경미와 주단우는 서로를 쳐다보며 다소 예상 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더 볼 일 없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법대로 처리하거나 규정대로 하시죠. 주단우 씨는 저희 아버지의 양아들이라 법정 상속 순위가 제 뒤에 있습니다. 설마 주씨 가문에서 혈연관계도 없는 양아들한테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할 생각인 건가요?”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대문을 막 열려고 할 때, 엄경미가 눈짓하자 주단우가 대뜸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거기 서!”

응접실 밖에 이미 경호원이 두 줄로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강지현이 생각했다.

‘오늘 집에 다 갔네!’

그녀는 가만히 서서 엄경미를 쳐다봤다.

“저한테 손이라도 써서 강제로 포기시키겠다는 겁니까?”

엄경미가 코웃음을 치더니 여전히 경멸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지현, 아직 내 성격 모르나 본데 좋게 말할 때 들어. 개기지 말고.”

주단우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바짝 다가갔다. 덩치 큰 체구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원하는 가격 한번 불러봐.”

강지현은 물러서긴커녕 그를 빤히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가격을 당신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물려주신 수십조 원의 유산, 단 한 푼도 양보할 생각 없어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주단우의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두 눈에 살기가 비쳤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지현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섰다.

엄경미는 몸을 돌려 통유리창 쪽으로 걸어갔고 응접실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강지현은 여전히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다가오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쳐다봤다.

바로 그때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열댓 명의 남자들이 들어왔는데 그들 뒤에 유정재도 따라오고 있었다.

주단우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엄경미를 쳐다봤다.

“사모님.”

유정재가 엄경미에게 다가가 뭐라 속삭이자 그녀의 안색이 확 돌변했다.

“뭐라고요?”

“어르신께서 방금 연락이 왔는데 김씨 가문에서 지현 아가씨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유정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남자가 강지현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강지현 씨 되시죠?”

강지현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대표님께서 내일 저녁 식사에 강지현 씨를 초대하고 싶어 하십니다. 이건 대표님 명함이에요.”

남자는 도금한 블랙 명함을 두 손으로 공손히 강지현에게 건넸다.

강지현이 명함을 받고 뭐라 말하기도 전에 상대는 일행과 함께 가버렸다.

다시 명함을 내려다보니 정교한 명함에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김태하.]

양복을 입은 남자가 떠난 후 강지현의 앞에 있던 경호원들이 주단우의 눈치를 살폈다.

잠깐 망설이던 주단우는 엄경미가 손을 흔들자 그제야 강지현을 놓아주었다.

대체 어찌 된 상황인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강지현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주단우는 엄경미의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엄마, 그냥 이렇게 보내시게요?”

“안 보내면 뭐? 너도 봤잖아. 상대는 무려 김씨 가문이야.”

엄경미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먹을 꽉 쥐었더니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갈 지경이었다.

한편 강지현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별장 정문을 나섰는데 검은색 밴 여러 대가 천천히 떠나고 있었다.

어두운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

“강지현.”

강지현이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색 벤틀리 한 대가 어느새 옆에 멈춰 있었다.

유리창이 내려가자 캐쥬얼한 운동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난 너의 큰아버지 주병찬이야. 타, 데려다줄게.”

강지현은 남자를 자세히 쳐다봤는데 눈매와 윤곽이 자신과 조금 닮아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겪은 일이 떠올라 차분하게 거절했다.

“고맙습니다만 저 혼자 가면 돼요.”

“두려워할 거 없어. 난 저 안의 사람들이랑 달라. 널 도우려고 온 거야.”

강지현이 걸음을 멈추지 않으니 주병찬은 천천히 운전하며 따라갔다.

그녀가 계속 믿지 않자 남자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사생아인 네가 하루아침에 수십조 원에 달하는 유산을 상속받았으니 다들 너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일 거야. 하지만 넌 운이 좋게도 김씨 가문의 선택을 받았어. 네가 그 집안으로 시집갈 수만 있다면 주씨 가문에서의 지위도 흔들리지 않을 거야. 엄경미도 더는 널 함부로 하지 못해.”

강지현이 드디어 주병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 시집이요?”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100화

    한참 앉아 구경만 하던 주단우도 참지 못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빛에 더 깊은 조롱을 담았다.“조급해하지 마세요. 곧 사람들이 도착할 거예요.”강지현은 시계를 보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장 문이 열렸다.주단우는 긴장하며 몸을 굳혔다.회사의 핵심 주주는 총 7명, 그와 엄경미, 강지현은 이미 확실했고, 나머지 네 주주는 모두 엄경미 지지파로, 평소라면 절대 나타날 일이 없었다.그런데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그 네 주주 중 두 명이었다.50대 중년 남성 두 명이 양복을 갖춰 입고 바삐 걸어 들어왔다.들어와서도 주단우를 한 번 바라볼 엄두도 못 내고, 창백한 얼굴로 강지현의 옆자리에 앉았다.‘뭐지?’주단우는 숨을 고르고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혼란을 느꼈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주주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5분도 안 돼 회사 모든 고위층이 급히 모였다.회의장은 곧 사람들로 꽉 찼다.원래 강지현을 무시하던 고위층도 이제는 한 명씩 공손하게 인사하고 지각 사유를 늘어놓으며 강지현에게 충분히 체면을 세워주는 모습이었다.‘주주도 나섰는데 줄을 잘못 섰나?’회의장은 죽은 듯 조용했고 분위기도 엄숙했다.오직 강지현만 의자를 돌리며 차분히 시간을 보았다.“더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이대로 진행하죠.”강지현이 말을 꺼내자 비서는 바로 회의실 문을 닫았다.방금까지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주단우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며 손을 움켜쥔 채 손가락 마디로 소리를 냈다.강지현은 비서에게 대주주 계약서를 설명하게 한 뒤, 다시 말했다.“아마 여기 계신 분들은 저를 잘 모르실 겁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강지현이라고 합니다. 주승호 씨의 친딸이며, 주승호 씨의 유언에 따라 주상 그룹의 유일한 상속인으로 지정되었습니다.”회의장은 2초간 정적이 흐르다가, 이내 낮은 소리로 수군거림이 일었다.이미 소문은 돌았지만 강지현이 핵심 고위층 회의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힌 순간이었다.많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9화

    “태하 씨...”강지현이 이도운의 일을 설명하려 하자 김태하가 입을 열었다.“지현 씨의 사생활을 전 캐묻지도, 간섭하지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약혼한 상태예요. 지현 씨가 예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어요.”묻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강지현은 마음속으로 조금 미안함이 들었다.김태하가 그녀의 과거를 신경 쓸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저... 최대한 빨리 처리할게요. 믿어주세요”강지현은 그 순간, 눈앞의 사람이 정말 이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녀에게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개를 끄덕이는 김태하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미묘한 관심이 스쳤다.그는 강지현을 조사한 적이 없던 게 아니었다. 6년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녀가 이도운에게 마음을 남겨두었는지 신경이 쓰였다.그는 마음속 불편함을 눌러두고 담담히 덧붙였다.“필요한 거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해요.”강지현은 낮게 알았다고 대답했다.다음 날 오전, 강지현은 주상 그룹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인사팀을 찾았다.팀원들의 입사 절차가 막혀 있었고, 자신의 권한도 여전히 처리 중이었다.승인을 받으려면 주주 회신을 기다려야 했다. 순간, 강지현은 이번에도 주단우가 장난친 것이라는 걸 바로 알았다.강지현은 대주주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한 가지 조항을 발견했다.[주주 과반수가 절차를 거쳐야 효력이 발생한다.]즉, 강지현이 계약 자체는 완료했지만, 실제로 회사의 권한을 손에 넣으려면 모든 절차가 끝나야 한다는 뜻이었다.게다가 현다영 등에게 직접 입사 승인을 내주는 것도, 그녀가 권한을 부여받은 뒤에야 효력이 발생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엄경미가 병가를 핑계로 빠지자, 회사 과반수 주주도 함께 ‘사라지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직접 얼굴을 볼 수도 없으니 이 절차가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지현 언니, 이 주단우 진짜 간사하네요...”이 소식을 들은 현다영 등도 강지현 대신 화가 났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8화

    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하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떠올리고, 매운 것도 되는지 물었다.남자가 잠시 머뭇거리는 걸 보고 곧바로 이해하며 말했다.“좋아요. 기억할게요. 태하 씨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매운 것도 안 되네요.”“조금 먹는 건 괜찮아요.”김태하는 입맛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맛이 강한 양념을 별로 안 먹는 편이었다.강지현은 더 묻지 않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시작했다.주방이 반개방형이라 그녀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모두 한눈에 보였다.그래서 김태하의 시선도 강지현에게 고정됐다.갑자기, 그는 조금 이해가 됐다. 결혼 문제를 늘 신경 쓰던 두 어르신이 왜 그렇게 그를 챙겼는지.대가족에서 감정은 항상 이해관계 아래 있었다.김태하의 부모님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헤어졌고, 김씨 가문에서는 김태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만이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며 살아왔다.“누군가가 이해해주고, 오래 변함없이 곁에 있어 준다면 좋지 않아? 평생 일을 붙들고 살 수 없잖아. 집에 와서 누군가가 밥을 해주고, 함께 먹어 준다면 마음이 놓이지 않겠어?”할머니의 말이 갑자기 김태하의 귀에 울렸다.그때, 강지현이 김태하에게 갓 요리한 음식을 가져왔다.세 가지 반찬과 국 하나로, 잡채 볶음, 김치 볶음, 새우 계란찜, 소고기뭇국이었다.복잡하지 않지만 다양한 요리를 빠르게 해냈다.강지현이 얼굴을 살짝 붉히자 김태하는 마음이 말랑해졌다.“이렇게 많이 하다니요. 수고했어요.”“많지 않아요. 재료는 셰프가 준비한 거라 저는 볶기만 했어요. 예전엔 친구 초대하면 더 많이 했거든요...”낮게 말하는 강지현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김태하는 평소 냉정했던 감정이 조금 풀리는 걸 느꼈다.그의 주변엔 늘 미모와 능력 있는 여성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움직이고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강지현은 얘기하며 밥을 담아 김태하에게 젓가락을 건넸다.그가 계속 바라보는 걸 보고 그녀는 눈치를 챘다.“맛보세요. 태하 씨.”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7화

    강지현은 말을 하다가 방금 할머니를 돌보던 가정부가 옆에서 몰래 그들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김태하에게 눈짓했다. 김태하는 곁눈질로 슬쩍 바라봤지만 굳이 볼 필요도 없이 이미 알아챘다.“우리 집 두 어르신이 다 이런 식이에요. 익숙해지면 돼요. 다음에 불편하면 그냥 거절해도 되고요.”강지현은 고개를 저었다.“사실 오늘 저도 태하 씨를 뵙고 싶었어요. 주상 그룹 프로젝트를 제가 맡아 처리했잖아요. 태하 씨 덕분이 크고, 원래 감사 인사드리고 싶었거든요.”김태하는 낮게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아니,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태하 씨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뭐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좋을지...”강지현은 말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가진 것이 많은 김태하는 감사 인사로 뭘 받으면 좋을지 잠시 생각이 필요했다.“감사요?”김태하는 강지현이 이런 말을 꺼낼 줄 몰랐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겼다.“태하 씨, 저녁 안 드셨나요?”강지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빛은 반짝이며 김태하의 잘생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김태하가 말했다.“아직 안 먹었어요. 급하게 돌아왔거든요.”“그럼 딱 좋네요. 제가 태하 씨에게 한 끼 만들어 드릴게요.”강지현이 웃으며 덧붙였다.자신도 아직 저녁을 안 먹어 배가 조금 고프기도 했다.“요리 잘하세요?”김태하는 다소 놀란 목소리였다.여태 이런 식으로 감사 인사를 한 사람은 없었다.“태하 씨 댁 셰프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요.”강지현이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했다.하지만 자신의 요리에 나름의 자신감은 있었다.어릴 적부터 자립하며 먹고 싶은 건 직접 연구해 요리했다. 학교 때는 교내 요리대회에서 1등도 했었다.그녀의 요리를 맛본 친구들은 다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강지현은 방금 할머니와 얘기하며 김태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김태하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는 일로 바빠 어린 시절 돌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이후 할머니가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6화

    강지현은 김태하가 갑자기 돌아온 것을 보고 얼굴이 붉어졌다.“태하 씨, 어떻게 오셨어요...”‘할머니는 분명 오늘 태하 씨가 늦게까지 일한다고 말씀하셨는데...’“별일 아니었죠?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김태하는 차가운 말투지만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다가가 할머니 상태를 확인했다.할머니는 강지현의 손을 놓았다. 얼굴은 건강하게 붉고 윤기까지 있었다. 전화 때 말했던 것처럼 힘들어하며 병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래. 조금 아팠지만 지현이랑 반나절 얘기 나누고 나니 몸이 다 편해졌어.”지순옥은 가볍게 기침하며 눈치를 주듯 강지현을 바라봤다.“우리 손주, 지현이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 줘. 일 있었을 텐데 일부러 시간 내서 나랑 있어 줬잖아.”김태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강지현은 할머니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너무 조급하게 생각했다.방금 할머니가 강지현과 즐겁게 이야기하신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김태하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려 둘이 함께 있게 만들고자 한 것이었다.“괜찮아요. 할머니, 별거 아니에요. 할머니랑 이야기 나누는 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강지현은 재빨리 일어나 말했다.“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가볼게요.”“어머, 지현아, 그렇게 급하게 가려고? 오늘 날씨 안 좋대. 밤에 큰비가 올 거래.”할머니는 곁의 가정부에게 눈짓했다. 가정부는 날씨 예보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렇게 늦었고 비까지 오는데, 지현아, 오늘 여기서 묵고 가는 게 어때? 내일 아침 태하가 출근시켜 줄 테고, 집에 부족한 게 없으니 편리할 거야.”할머니는 말이 길어지며 직접 강지현의 팔을 잡았다.순발력이 너무 민첩해 다친 것 같지 않을 정도였다.“할머니, 조심하세요. 허리가...”“아, 내 허리는 이제 괜찮아. 모두 지현이 덕분이지.”활짝 웃던 지순옥은 김태하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이 손주는 뭐든 잘하지만, 차갑기만 해서 좋은 여자가 앞에 있어도 좀처럼 먼저 나서지 못한다는 걸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95화

    “들었는데 약혼식이 꽤 잘 됐다면서? 김 대표님이 너에게 만족하셨겠네?”주단우는 몇 마디로 강지현을 은근히 겨냥했다.프로젝트 중 투자 한 건이 마침 미래 그룹 계열사와 관련되어 있었다.그는 강지현이 주상 그룹이 아닌 김태하를 의지했다고 암시한 것이다.계약 위반은 아니지만, 밖으로 알려지면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웠다. 김태하가 단 한 번 도왔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도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주단우 씨, 저는 정정당당하게 제 팀을 이끌고 엉망인 프로젝트를 정리한 거예요. 그런데 감사 인사도 안 하고, 제 능력을 의심하다니요. 정말 서운하네요. 김 대표님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어때요? 그분이 투자한 건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사람인지.”강지현은 주단우의 위선적인 태도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주단우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는 김 대표님에게 전화하지 않았다.“이건 우리 집안 문제인데 왜 김 대표님까지 끌어들여? 지현아,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 프로젝트 잘 해줘서 고마워.”그 말과 동시에, 그는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해 계약 진행을 완료한 뒤 강지현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지현아, 절차 끝나면 회사 권한 정식으로 부여될 거야.”강지현은 주단우에게 예의 차리지 않고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주 대표님, 앞으로도 협력 잘 부탁드립니다.”주단우는 미소 지었다가 강지현이 떠나자마자 웃음기를 지우고 바로 엄경미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프로젝트가 일단락되자 강지현은 팀 회식을 위해 시내 중심가, 1인당 200만 원짜리 고급 개인 식당을 예약했다.하지만 식당에 도착하기 전, 지순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지현아, 지금 바빠?”지순옥의 목소리가 조금 쇠약하다는 것을 강지현은 바로 알아챘다.“안 바빠요. 지금 퇴근했는데요.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오늘 혼자 집에 있었는데 방금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어...”할머니 말씀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강지현은 마음이 이미 조여왔다.“괜찮으세요? 많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