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041화

작가: 재인
손연지는 순간 할 말을 잃었고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왜 이렇게 바보처럼 굴어?”

강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으며 말했다.

“바보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야. 앞으로 그 사람은 나랑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야.”

찾아야 할 사람은 다 찾았고 풀어야 할 감정도 다 풀었다.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멀리서 그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손연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하려 하자 강하리는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오늘 밤 동창회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을지도 모르잖아?”

손연지는 그녀를 노려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솔직히 이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

강하리는 미소만 지었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각, 안현우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시청에서 발표한 도시계획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거기엔 자신이 낙찰받은 동쪽 부지가 공원용지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 모든 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짜인 함정이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동쪽 땅을 낙찰받았다며 호언장담했고 그 땅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었다.

심지어 최하영을 이겼다는 기쁨에 축하 파티까지 열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모든 것이 뒤바뀌었고 안현우는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 위의 재떨이를 집어 TV 화면에 던졌다.

“이 망할 년!”

그는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경시로 가는 비행기표 예약해. 당장! 지금 당장!”

같은 시각, 임희주는 TV를 끄고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안 대표님, 우리 다시 한번 손잡는 건 어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안현우의 목소리는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임 선생, 아직도 해결 못 했어? 진짜 쓸모없는 년이네.”

임희주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이미 구승훈과 일종의 계약을 맺고 있었고 그를 위해 여초연을 꾀어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2화

    강하리는 내키지 않았지만 천아름과 손연지의 권유로 결국 그 드레스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선명한 붉은색 드레스는 어깨에서 허리까지 깊게 파여 등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아래로 이어진 반짝이는 스커트는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자연스럽게 밀착되며 늘어졌다.하얀 피부는 붉은 드레스 덕분에 더욱 도드라졌고 머리카락 사이로 은근히 드러난 날개뼈는 도발적이기까지 했다.구승훈을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었다.처음으로 그 은밀한 아름다움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천아름은 위아래로 훑어보며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더니 가방에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발찌를 꺼내 강하리의 하얀 발목에 조심스럽게 채워주었다.강하리는 처음으로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게 되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거울 속 자신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됐어. 오늘은 남자 하나 낚아오는 거야, 알았지?”천아름이 장난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툭 쳤고 강하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희 진짜 나 소개팅하러 가는 거 아니야.”천아름은 어깨를 으쓱였다.“동창회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냐? 말만 동창회지 결국 소개팅이나 다름없지.”강하리는 작게 웃었다. 남자 친구라는 건 원한다고 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녀는 아직 구승훈을 완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휴대폰을 내려다보자 사진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그 사진은 마음 깊은 곳에 가시처럼 박혀 불쑥 떠오를 때마다 찌르듯이 아팠다.동창회는 보경 대학교 근처의 초특급 호텔에서 열렸다.저녁 무렵, 주해찬의 차는 인월동 입구에 도착했다.강하리의 모습에 운전석에 앉은 주해찬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원래도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오늘만큼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천아름이 그녀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낸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오늘, 진짜 아름답네.”강하리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가요.”차가 호텔을 향해 움직이자 멀찍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벤틀리 안에서 구승훈이 고개를 숙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3화

    강하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앞에 선 구승훈을 밀어내려 손을 들었지만 그보다 빠르게 구승훈이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이미 가까웠던 거리에서 그의 몸은 더욱 바싹 다가가 붙었다.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창들이고 게다가 정안 그룹의 직원들도 꽤 눈에 띄었다.강하리는 구승훈의 행동에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강하리는 주변을 의식하며 손을 들어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구승훈, 이런 자리에서까지 너랑 싸우고 싶지 않아.”그 순간, 구승훈이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고 따뜻한 숨결과 짧은 통증, 그리고 가슴안에 알 수 없는 신맛이 번져갔다.강하리는 가볍게 웃으며 비꼬듯 말했다.“임희주한테도 이렇게 했어?”그 말에 구승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이어 가볍게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그는 아무 설명도 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안현우를 조심해.”그 말을 남기고 그는 그녀의 귓불을 한번 부드럽게 문지른 뒤 돌아섰다.강하리는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곧이어 짧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왜 하필 그런 말을 꺼낸 걸까?’그가 대답해 주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해버린 것이다.“하리야, 괜찮아?”주해찬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자 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네. 괜찮아요.”“정말 괜찮아? 방금 들은 말인데, 정안 그룹에서도 오늘 연말 회식 여기서 한다더라. 불편하면 지금 나가도 돼.”강하리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표정은 어느새 다시 평온해져 있었다.“정말 괜찮아요. 가요.”주해찬은 여전히 걱정스러워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두 사람은 함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고 연회장에 들어서자 누군가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에 주해찬은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조시욱, 너도 와 있었어?”정장을 입은 남자는 주해찬과 반갑게 포옹을 나누며 말했다.“마침 여기서 식사 중이었어. 넌?”“우린 동창회 참석하러 왔어.”주해찬은 웃으며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소개하려 했지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4화

    비명 사이로 나무 막대기 같은 걸로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곧 임희주의 비명이 끊겼는데 아마 고통에 기절한 모양이었다.잠시 후, 남자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도련님, 와서 이야기 좀 합시다.”구승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목소리,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여초연 곁을 지키던 경호원이 분명했다.“도련님께선 한 시간 안에 오셔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도련님은 이 여자를 다시 보지 못할 겁니다.”구승훈은 갑자기 코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그 여자가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지?”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 여자가 죽든 신경 안 쓰시겠죠. 하지만 도련님 본인의 목숨은 신경 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상태가 약의 마지막 효과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구승훈의 시선이 짙게 가라앉았다.“주소 보내.”전화기 너머로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역시 도련님은 똑똑하시네요. 혼자 오셔야 합니다. 신고하면 임희주만 죽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하십시오.”전화를 끊자마자 곧장 위치 정보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사진 속 임희주는 온몸에 피멍이 든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형, 어떡할 거야?”구승재가 묻자 구승훈은 말없이 위층 홀에 남아 있는 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곤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형수님 잘 지켜.”그 말과 함께 그는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돌아섰다.구승재가 재빨리 따라붙으며 물었다.“형, 정말 혼자 갈 거야?”구승훈은 걸음을 멈추고 짧은 숨을 내쉬었다.그 역시 알고 있었다.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하지만 그는 갈 수밖에 없었다.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그는 그 불구덩이에 들어가야만 했다.“걱정하지 마. 여초연은 내가 죽는 걸 원치 않아. 이 정도 괴롭힘은 아무것도 아니야.”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준봉도 여기 오라고 해. 그리고 형수님은 잘 부탁한다.”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아래층 연회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5화

    강하리는 주해찬과 구승훈이 나중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지 못했지만 구승훈이 떠날 때 얼굴에 떠오른 그 기분 나쁜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이유는 모르지만 가슴속 어딘가에서 불안감이 조용히 피어올랐다.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고 돌아섰고 그때 주해찬이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었다.“다들 인사했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했어요.”주해찬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이끌어 테이블에 앉혔다.동창회장은 한껏 활기찬 분위기였고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웃음소리로 가득했다.지금 강하리는 신분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유엔 산하 번역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되었고 덕분에 번역학과 출신들은 그녀에게 다가와 인맥을 쌓으려 애썼다.게다가 그녀가 아직 싱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슬쩍 다른 기대도 품기 시작했다.식사 자리에서 강하리는 유난히 술을 많이 마셨고 주해찬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시선이 어딘가 다른 데로 가 있는 듯한 걸 놓치지 않았다.“무슨 생각해?”주해찬이 물었고 강하리는 가볍게 웃으며 표정을 숨겼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같이 가줄게.”주해찬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강하리는 그의 어깨를 조용히 눌렀다.“선배,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그 말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하지만 주해찬은 잠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싫다면 조시욱한테 연락할게. 그 친구가 경호 기술이 뛰어나거든. 같이 다니면...”“선배.”강하리가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고마워요.”강하리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제가 새로 시작할 수 있게 챙겨줘서 정말 고마워요. 선배 마음,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괜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주해찬은 어이없다는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구승훈이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강하리는 입술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6화

    강하리는 심호흡을 한 뒤 무언가 말하려 하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조시욱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하리야, 무슨 일 있어?”그는 곧장 준봉과 노진우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무슨 일 있었어요?”강하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화장실 좀 다녀오려던 참이었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뒤돌아서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갔고 그 뒤를 따라 준봉과 노진우, 그리고 조시욱까지 함께 움직였다.복도 중간에 이르자, 준봉과 노진우가 거의 동시에 조시욱 앞을 막아섰다.“죄송합니다. 사모님께서 화장실로 가는 길이라 더 이상 따라오시면 곤란합니다.”조시욱은 잠시 입꼬리를 올리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하리의 안전을 위해 따라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선 넘는 행동을 할 일은 절대 없으니까요.”조시욱은 강인한 인상의 얼굴에 단단한 신념이 서려 있었다.그는 분명 정중했지만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하지만 준봉과 노진우 역시 완강했다. 두 사람 모두 단단히 길을 막고 그를 절대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조시욱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뭐가 그렇게 걱정돼서 그래요? 제가 당신들 대표님 여자를 빼앗기라도 할까 봐 그래요?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빼앗지 못해요.”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겁고도 담담했다.그녀가 아직도 전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걸 조시욱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그래서 그는 빼앗을 수 없었고 빼앗을 생각도 없었다.만약 강하리가 그 사람과 다시 잘 된다면 그는 오히려 기꺼이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어차피, 아이가 있는 부부라면 가장 좋은 건 함께 있는 것이니까.하지만 지금은 그저 친구로서 그녀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다.셋은 복도에서 잠시 팽팽하게 대치했고 그사이 강하리는 이미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조시욱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곧장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고 준봉과 노진우도 서둘러 그 뒤를 따라붙었다.사람들이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7화

    조시욱은 재빨리 창문 쪽으로 달려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그는 유령처럼 가볍게 벽을 타고 옆에 있는 하얀 배수관에 매달렸다.뒤이어 준봉도 주저 없이 따라 올라갔고 두 사람은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노진우는 곧장 비상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달렸다.조시욱은 몇 번의 손짓 만으로 옥상에 도착했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그 어디에도 강하리는 없었다.준봉은 손목을 돌려 풀며 배수관을 타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는 정확히 여자 화장실이 있는 층에 도착해 창문 유리를 발로 깨뜨리고 창틀을 잡아 몸을 안으로 던졌다.여자 화장실 안에서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비명이 터졌고 겁에 질린 여자들이 구석으로 몰려들어 준봉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그는 화장실 안을 빠르게 훑은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혹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유난히 예쁜 여자 보신 분 있나요?”여자들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고 준봉은 하나씩 칸막이 문을 두드렸다.두 칸에선 사람이 있었지만 그 안의 목소리는 강하리가 아니었다.여자 화장실이라는 특성상 더 강하게 문을 부술 수도 없었기에 그는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사과하고 조용히 돌아섰다.그때, 남자 화장실 쪽에서 조시욱이 나왔다.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동시에 고개를 저으며 얼굴엔 무겁고 침착한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강하리는 아마도 위층 화장실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간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위로 올라갔거나 아래로 끌려갔을 것이다.하지만 위에도 아래에도 그녀는 없었고 준봉은 휴대폰을 꺼내 급히 노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없어.”노진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CCTV 확인하고 있어.”조시욱은 통화를 마친 뒤, 준봉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대표님한테 연락하세요. 호텔 전체는 이미 봉쇄했으니까 인원 투입해서 바로 수색 들어가라고 전해요.”준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구승훈의 휴대폰은 연결되지 않았다.그는 곧장 구승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했고 둘은 함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8화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창문으로 로프를 던지고 손을 털며 화장실을 빠져나왔다.호텔 뒤편 검은색 세단 뒷좌석에서 안현우는 옆에 누워 있는 강하리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강하리... 날 공격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살아 있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줄게.”그는 천천히 강하리의 턱을 잡아당기고 몸을 숙여 입술을 가까이 댔다.그러나 입을 맞추기 직전에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무슨 일이야!”안현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전화기 너머엔 낮고 정제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대표님, 부탁하신 일 완료됐습니다. 제 일도 잊지 마세요.”“걱정하지 마. 안 잊어.”그는 급히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 안 대표님은 이미 들켰을지도 몰라요.”이 말만 남기고 여자는 곧장 전화를 끊었고 안현우의 눈빛이 순간 매섭게 번뜩였다.역시나 누군가가 이미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이를 악물고 재빨리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 시동을 걸고는 급히 차도를 달리기 시작했다.같은 시간, 호텔 방 안에서 임명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잔을 가볍게 기울이고 있었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들어와.”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작전 완료됐습니다. 안현우를 도와 여자를 빼냈고 구승재에게도 신호를 보냈습니다.”임명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모든 게 그의 예상대로였다.“다음은 어떻게 할까요?”여자가 참지 못하고 묻자 임명우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웃었다.“이제 우리가 영웅처럼 구출하러 가볼까? 그러면 강하리도 나에 대한 태도가 좀 달라지려나?”여자는 잠시 말을 잃었고 임명우는 가볍게 웃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막 튀어나온 안현우의 차 앞으로 반대편에서 한 차량이 돌진해 왔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안현우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틀어 피했다.하지만 그 차는 마치 그의 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49화

    강하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여자와 부딪쳤고 목덜미에 느껴진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그리고 눈을 떴을 때, 온몸은 욱신거렸고 정신은 흐릿했다.손은 꽁꽁 묶여 있었고,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한참이나 멍하니 있었다.얼굴을 돌려보니 자신이 차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게다가 좌석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그 순간, 질주하는 차 안에서 낮고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망할 놈,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온 거야? 됐어. 전에 약속한 장소로 가. 내 일 망치기만 해 봐, 죽여버릴 거야.”전화를 끊자마자 강하리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안현우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운전석에서 돌아본 안현우의 눈빛엔 광기와 탐욕이 엉켜 있었다.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웃었다.“깨어났네?”강하리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으며 앞좌석을 노려보았다.“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데요?”안현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강하리 씨, 영상 하나 보여줄까요?”그는 휴대폰을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곧 차 안엔 낯 뜨거운 신음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졌다.강하리는 화면을 제대로 보지 않아도 어떤 영상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진짜... 미쳤네요. 지금 당신 완전 변태 같아.”그녀의 조롱 섞인 말에 안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하지만 곧 비웃듯 말을 이었다.“하지만 이 영상 끝까지 보고 나면 날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요.”그는 휴대폰을 안전벨트 위에 툭 던졌고 화면은 강하리의 시야에 정확히 들어왔다.그 고통스러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등골을 타고 식은 기운이 흘러내렸다.그때, 휴대폰 화면이 강하리의 눈에 정확히 들어왔다.거의 동시에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덮쳤다.이미 지쳐 있던 몸이 수천 개의 화살에 찔린 듯 깊은 통증이 온몸을 덮쳤다.영상 속 인물들은 모두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여자는 최근 구승

최신 챕터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3화

    구승훈은 강하리의 턱을 쥔 채 엄지로 그녀의 분홍빛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입술이 붉게 충혈되자 강하리는 구승훈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구승훈 씨, 그만해요. 연정이 보러 가는 길에 추태 부리고 싶지 않아요.”구승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조시욱은 안아도 되고 난 안 되는 거야? 조시욱은 널 만져도 되고 난 안되는 거냐고!”“그래요!”강하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앞으로 누구든 가능할 수 있어도 구승훈 씨 당신만은 절대 안 돼요!”그녀는 이 말을 하면 구승훈이 분노하며 문을 박차고 나갈 줄 알았다. 사실 그걸 바라기도 했다.하지만 뜻밖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구승훈은 몸을 낮춰 무릎을 꿇었다. 강하리는 아직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발목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털실 슬리퍼 하나만 신은 채 다녔다.아까 구승훈이 강하리를 안고 차에 태울 때 슬리퍼 한 짝이 옆으로 벗겨졌었다. 구승훈은 몸을 낮춰 그 슬리퍼를 주워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에 신겨 주었다.그의 큰 손이 그녀의 발목을 감싸며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마치 조금만 세게 다뤄도 그녀가 아플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강하리는 순간 그 손끝에서 묘한 애틋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그런 감정을 느낀 스스로가 우스워 웃음이 난 강하리 발을 움츠렸다.그럼에도 구승훈은 손을 놓지 않고 슬리퍼를 신긴 뒤 다시 강하리를 안아 휠체어에 앉혔다.“말도 안 되는 부탁인거 아는데...”구승훈이 그녀를 휠체어에 앉히고 나서 속삭였다.“제발 나한테 너무 차갑게 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전혀 마음을 열 기색이 없었다.“그럼 적어도 다시 쟁취할 기회라도 줘, 응? 강 대표?”“구승훈 씨,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이렇게 헤어졌다 만났다, 당신은 안 질려도 나는 질렸어요. 그만 좀 해요. 내가 부탁할게요.”말을 마친 강하리는 스스로 휠체어를 밀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구승훈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 옆으로 다가가 휠체어를 대신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2화

    구승훈의 동작이 너무 빨라 강하리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차 안에 앉아 있었다.“구승훈 씨!”강하리가 소리쳤다. “나 혼자 갈 수 있어요.”구승훈이 비웃으며 말했다.“어떻게 가? 조시욱이 데려다준대? 다른 남자랑 내 딸 보러 가겠다는 거야?”강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구승훈은 그녀의 휠체어를 접어 트렁크에 싣고 있었다.조시욱은 막무가내인 구승훈을 막으려다 아까 전화 받던 강하리의 불안한 표정이 떠올라 막지 않았다.“연정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나도 같이 갈게.”구승훈이 동작을 멈추고는 싸늘하게 웃었다.“조 도련님은 매일 이렇게 한가한가 보지?”말을 마친 구승훈은 휠체어를 트렁크에 던져 넣고는 차에 올라 그대로 출발했다.달리는 차 안에서 강하리는 창밖만 응시한 채 구승훈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구승훈은 조용히 운전하면서 가끔 백미러로 강하리를 살펴보았다.“아까... 아프지 않았어?”강하리는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창밖만 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물음은 공허하게 차 안을 맴돌 뿐이었다.구승훈은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의사 말로는 이제 재활 치료 들어가야 한다던데, 치료사는 예약했어?”“했어요.”강하리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딸을 보러 가는 길에 더 이상 구승훈과의 그 어떠한 불필요한 갈등도 피하고 싶었다. 잠시나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것도 그녀에겐 너무 힘들었다.“이 차에 임 선생은 태운 적 없어.”구승훈의 뜬금없는 한마디에 강하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설명할 필요 없어요. 신경 안 써요.”그 한마디에 구승훈의 하려던 말들이 전부 목에 걸려버렸다.그는 깊게 숨을 쉬며 말했다.“임 선생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단지 여초연의 시선을 흐리려고 잠깐 곁에 뒀을 뿐이야.”강하리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한때 그녀는 구승훈이 이런 한 마디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설령 지금처럼 단순하고 허술한 변명이라도 좋았다. 그랬더라면 그녀는 혼자서 괴로워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1화

    구승훈과 헤어진 후로 그녀는 두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았다.“왜 갑자기 거기에 가고 싶어진 거야?”조시욱이 무심한 듯 물었다.강하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시욱 선배, 해찬 선배가 뭐라고 말했어요?”조시욱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사실은 별말 없었어. 그냥 국내에 며칠밖에 머물지 못하니까 내게 틈틈이 널 돌봐 달라고 했지.”강하리의 눈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선배는 항상 걱정이 많아.”“하리야, 사실 나는...”“시욱 선배.”강하리가 말을 끊었다.“그만해요.”조시욱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강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왜? 구승훈 때문이야? 정말 구승훈에게 다시 기회를 주려는 거야?”강하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그 사람과는 상관없어요.”조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럼 왜 자신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건데?”강하리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시욱 선배, 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거예요. 하지만 진심으로 누군갈 다시 좋아하거나 새 감정을 쌓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미안해요, 일찍 말했어야 했는데... 장 회장님께도 희망을 품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조시욱은 말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기다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말도 결국 삼켜야 했다. 어떤 말은, 그냥 그녀에게 부담만 줄 뿐이었다.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알겠어. 할아버진 걱정 마, 내가 설명할게. 그럼 다른 감정은 일단 치워두고 우리 친구는 될 수 있잖아?”강하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조시욱은 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씁쓸했다.주해찬이 부탁했다는 건 모두 거짓이었다.처음 임무를 함께 할 때부터 그의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협상장에서 여유롭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시선을 뗄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에게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고는 마음을 접어야 했다.강하리가 어르신 생신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고 아주머니의 생신 파티에 나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80화

    구승훈은 순간 말이 막혔다.“하리야, 제발...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어?”그의 목소리엔 분명한 간절함이 실려 있었다.하지만 강하리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가요.”그녀는 다시 한번 담담하게 말했고 구승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다.“너무 무리하지 마. 에비뉴 쪽 일은 내가 처리해 둘게.”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렸고 조시욱은 그대로 그녀를 밀고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 몸을 돌려 진료실로 들어갔다.“강하리 씨의 상태를 좀 알고 싶습니다.”의사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했다.병원 안에선 이미 구승훈과 강하리에 관한 얘기가 돌 만큼 돌았다.사랑스러웠던 커플이 순식간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는 말들이었다.강하리가 수술할 때 구승훈은 오지도 않았고 입원하는 내내 찾아온 건 한 번뿐이었으며 오늘 깁스 푸는 날에도 옆에 있어 준 사람은 다른 남자였다.그래서 의사는 솔직히 말해 구승훈이 강하리를 완전히 내쳐버린 줄 알았다.‘이런 여자를 놓친 건 눈이 먼 건가... 양심이 없는 건가...’의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승훈이 직접 찾아와 그녀의 상태를 묻는다는 게 당황스러웠다.“상처 회복은 꽤 잘 되고 있어요. 다만 완전 회복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재활 치료가 오래 걸릴 수도 있고요...”반쯤은 형식적인 설명이 끝난 뒤 구승훈은 반 시간쯤 지나서야 진료실에서 나왔다.그는 2층 복도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1층 로비에서 강하리는 조시욱과 함께 웃으며 조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 한구석은 시리도록 쓰렸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바로 그 순간 강하리는 숨이 턱 막히는 듯 살짝 멈춰 섰다.고개를 돌려 위층을 올려다보았지만 보이는 건 남자의 뒷모습뿐이었다.그 시선을 따라 조시욱도 뒤를 돌아보았지만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9화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진료실 문이 안에서 열렸고 강하리가 휠체어를 밀며 천천히 나왔다.구승훈과 마주친 것이 놀랍지도 않은 듯한 그녀의 표정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그저 조시욱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가요. 오늘 조 회장님께서 건강검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같이 가봐요.” 그러자 조시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아시게 되면 분명 오늘 밤 내내 그 얘기만 하실걸.”강하리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늘진 표정 속 그 웃음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하리야.”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그러자 조시욱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둘이 잠깐 이야기할래?”하지만 구승훈은 이미 그녀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러고는 방금 깁스를 푼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아직도 아파?”단 한 마디였지만 거기에 담긴 감정은 지독할 정도로 절절했다.그러나 강하리의 마음속엔 이 말이 오히려 조롱처럼 다가왔고 그동안 꾹 눌러왔던 분노와 상처가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그녀는 눈가가 시큰해지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숨이 턱 막혔다.‘아프냐고? 정말 이젠 웃기지도 않네. 사고가 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이 자식은 이제 와서 상처가 다 아물어갈 무렵에야 묻네. 아프냐고?’구승훈의 긴 손가락은 그녀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는 망설이다가 감싸진 붕대를 살짝 만지려 했으나 강하리는 재빨리 팔을 빼냈다.“손대지 마요.”강하리의 붉어졌던 눈가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고 마음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역겨워요.”구승훈의 손은 허공에 멈춰 선 채 얼어붙었고 그는 마치 부서질 듯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때 내가 몇 초 망설였다는 이유로 그래? 하리야, 설마 진심으로 내가 임희주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강하리는 눈을 내리깔며 감정을 숨겼고 가슴 깊숙이 파고든 통증도 억눌렀다.그러고는 쓴웃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8화

    구승훈의 시선은 줄곧 조시욱과 강하리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다.두 사람이 병원 진료동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그는 마침내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돌아보았다.“석 여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석미연은 여전히 온몸을 값비싼 명품으로 휘감은 채 늘 그렇듯 강하리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승훈 씨,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굴 필요 없잖아. 우리 사이에 무슨 깊은 앙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전에 좀 불편했던 일도 다 그 여우 같은 강하리 때문이잖아. 안 그래?”석연란의 비아냥 섞인 말투에 구승훈의 눈빛이 즉시 어두워졌다.“석 여사님,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했었나요? 감히 승훈 씨라고 부를 정도로요?” 그는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강하리는 분명히 심씨 가문의 당당한 맏딸입니다. 그런 사람을 여우니 뭐니 부르는 석 여사님은 남의 가정 깨고 들어온 입장인데... 여사님 같은 사람이야말로 여우가 아닌가요? 주제 파악은 하셔야죠.”그 말은 단 한 치의 여지도 없이 날카롭고 무례했다.원래 석미연은 구승훈과 적당히 말 섞으며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조시욱이 강하리 곁에 있는 건 그냥 잠시 눈먼 남자의 실수라 여겼다.하지만 만약 자신이 심연청을 구승훈에게 시집보낼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강하리가 갖지 못한 남자, 강하리를 버린 남자가 결국은 심연청과 결혼하는 거라면 그보다 통쾌한 복수는 없을 터였다.그런데 뜻밖에도 구승훈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녀를 뼈도 못 추릴 정도로 심한 말을 뱉었다.“구승훈,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그녀가 이를 악물며 소리치자 구승훈은 더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냉정한 눈빛을 드러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석 여사님이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건가요? 제가 다시 기억나게 해드릴까요? 과거에 당신들과 당신 동생들이 벌인 짓들... 제 손에는 아직도 증거들이 수두룩하죠.”그렇게 말하고 그는 더는 미련 없이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석연란은 그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7화

    천아름은 강하리의 휠체어를 밀며 복도를 따라나섰다.그런데 하필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위층에서 내려오는 구승훈과 준봉을 마주쳤다.이번엔 강하리도 굳이 피하려 들진 않았다.에비뉴 대표실이 이곳에 있는 이상 앞으로 구승훈과는 자주 마주치게 될 터였다.자꾸 피하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울 뿐이었다.엘리베이터 안은 고요했고 기계 소리만이 낮게 울릴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강하리는 내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조시욱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고 구승훈은 묵묵히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핸드폰 화면 안, 조시욱과의 채팅창은 대화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그걸 보는 순간 구승훈은 입안부터 가슴까지 다 쓰려왔다.‘매일 같이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걸까?’그는 참다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속은 좀 괜찮아졌어?”강하리는 문자를 입력하던 손끝을 멈칫하더니 대꾸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짧게 웃음을 흘렸다.“조시욱이랑 있으면... 토할 일은 없나 보네?”그 말에 강하리는 피식 웃었다.“구승훈 씨, 원하는 대답이 뭔데요? 말해봐요. 제가 맞춰줄게요.”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말해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천아름이 먼저 휠체어를 밀고 나섰고 밖에서는 이미 조시욱이 기다리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봉은 구승훈을 흘끗 보더니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그러자 구승훈이 문득 입을 열었다.“점심 약속 취소해.”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조시욱의 차를 따라나섰다.차 안.조시욱은 조심스럽게 달콤한 디저트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이거 좀 먹어. 깁스 풀고 나서 맛있는 거 사줄게.”디저트를 바라보던 강하리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시욱 선배, 난... 나 오늘 오후에 F 국으로 출장 가요.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사 올게요.”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듯 웃으며 말했다.강하리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디저트도 받지 않았다. “제가 지금 무슨 얘기 하려는지 알겠죠.”조시욱은 웃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6화

    천아름은 눈을 깜빡이며 말없이 웃었고 그 반응만으로도 이미 모든 걸 인정한 셈이었다.하지만 곧 그녀는 덧붙였다.“먼저 말해두지만 나도 미리 알았던 건 아니야. 그 사진들은 우리가 올라온 직후에 구승훈이 보낸 거야.”강하리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천아름을 바라봤다.그 시선에 살짝 기가 죽으려던 찰나 강하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왜 미리 말 안 했어?”천아름은 입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말했으면... 네가 그 사진들을 제대로 썼을까?”강하리는 천천히 창밖을 바라봤다.이 각도에서 에비뉴와 정안 타워를 잇는 공중 회랑을 보는 건 그녀도 처음이었다.다섯 개의 회랑은 같은 위치에 놓인 게 아니라 높낮이와 간격이 제각각이었고 그 불규칙한 배치가 위에서 보면 iw라는 문양을 이루고 있었다.이미 회랑에 심어졌던 꽃들은 시들어 있었지만 강하리는 그곳에 자란 꽃들이 전부 리시안셔스였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강하리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이젠 더 이상 구승훈과 어떤 연결고리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로의 감정이 남아 있는 듯 없는 듯 얽히고설킨 관계... 그녀는 그런 관계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말을 마친 그녀는 조용히 휠체어를 돌려 자료를 보러 이동했다.천아름은 커피잔을 들고 그녀 옆으로 와 책상에 걸터앉았고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솔직히 너희 둘 일에 내가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번 일은 구승훈 잘못이 맞고... 난 내 친구가 또 상처받는 꼴 못 보니까 절대 너한테 구승훈의 편을 들 생각 없어. 근데 말이야...”그녀는 말을 잠시 멈췄다.“이번처럼 구승훈이 뭔가 너한테 건넸다면... 넌 받을 건 받아. 그건 걔가 너한테 진짜로 빚진 거니까.”강하리는 작게 웃었다.“그 사람 도움 없이도 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야. 왜 굳이 기대야 해?”이야기를 끝낸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근데 이것 말고도 있지? 송지은이 회의에서 그렇게 된 것도... 구승훈이 일부러 남겨둔 거지? 내가 송지은을 이용해서 회사에서 위신을 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75화

    에비뉴 그룹이 결국 강하리 손에 들어가자 송지은의 속엔 쌓여 있던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그는 몇몇 임원들과 은밀히 손을 잡고 이번 회의 자리에서 강하리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강하리는 미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봤다.“송 부장님, 진심으로 의견을 내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면... 직권 남용하고 싶은 건가요?”그러자 송지은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강 대표님, 지금 무슨 뜻이죠?”강하리는 옆에 앉아 있던 비서실장에게 눈빛을 보냈다.비서실장은 곧바로 자료를 띄웠고 화면에 나타난 건 한 프라이빗 레스토랑에서 찍힌 사진이었다.송지은이 막 추천했다던 신인 여배우와 다정하게 식사하고 있는 장면이었다.그 여배우는 거의 그의 무릎 위에 앉을 듯 그에게 바짝 기대 있었다.송지은은 이마에 핏대가 서며 말했다.“업무 미팅하면서 밥 한 끼 먹는 게 무슨 문제죠?”강하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다음 사진이 화면에 떠오르자 회의실 분위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사진 속 송지은은 그 신인 여배우의 허리를 감싸안고 호텔로 들어가고 있었다.“식사 후엔 호텔 코스로 이어지셨군요. 송 부장님?”강하리의 그 한마디에 누군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천아름은 다리를 꼬고 앉아 회의실 전면을 향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그 웃음소리가 송지은에게 더없이 굴욕적이었다.강하리는 더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회의실 안의 다른 인물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여유로웠지만 시선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또 누구였죠? 추천한 연예인들 리스트... 누구 누구있었죠”말이 떨어지자 회의실 안 사람들 사이로 묘한 침묵이 흘렀고 서로 눈치를 보던 그들은 이내 입을 닫았다.오늘 강하리는 확실히 준비하고 왔다.이번 판에서 잘 되면 본때 보여주는 걸로 끝이지만 잘못 건드리면 누군가는 직장을 잃게 될 게 뻔했다.방금 송지은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모두가 생생히 봤으니 더 이상 나설 사람은 없었다.회의실은 고요했다.강하리는 시선을 천천히 회의실을 훑다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