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숙은 한심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지만 구연정은 구승훈이 불쌍해 보였다.“아빠 너무 불쌍해.”순간 구승훈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더니 냉큼 구연정을 안고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그러자 그녀는 한참 동안 고민해 보더니 빠르게 외쳤다.“아빠가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해요.”구승훈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럼 아빠가 오늘 소파에서 자야 하는데, 괜찮겠어?”그의 말에 구연정이 냉큼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아빠가 소파에서 자는 건 싫어요.”“그럼 빨리 가서 말해.”구승훈은 말을 마치자마자 재빨리 구연정을 강하리의 침실 앞에 내려주고는 그녀에게 눈빛을 보냈다.그러자 구연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그녀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엄마, 들어갈래요.”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 강하리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도 문 앞에 있어?”구승훈은 다시 한번 구연정에게 윙크했다.“아빠는 서재.”말이 끝나기 바쁘게 거실 문이 열렸다.그러나 강하리가 문을 열자마자 입구에 서 있던 구승훈과 눈이 딱 마주쳤다.순간 구연정을 냉큼 안아 올리고 문을 닫으려는데 구승훈이 빠르게 손을 문틈 사이로 끼워 넣는 바람에 그대로 쾅 하고 부딪히게 되었다.구승훈은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울상을 지으며 강하리에게 말했다.“여보, 나 진심으로 반성했어. 그리고 다시는 안 그럴게. 용서해 주라, 응?”그러자 강하리가 그를 힐끔 바라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승훈 씨, 많이 아파?”구승훈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응.”그의 대답에 강하리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아프면 됐어. 아니면 또 잊어버리겠지!”말을 마치자마자 거칠게 문을 닫았다.순간 문 앞에 서 있던 오영숙과 구승훈은 할 말을 잃은 채 가만히 서 있다가 오영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대표님, 불쌍한 연기도 이제는 안 먹히네요.”그러자 구승훈이 차갑게 그녀를 힐끔 보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이번 달 보너스는 받고 싶지 않은가 봐요?”“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을 본 조시욱은 재빨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외부에는 이번 강가에서 벌어진 사고가 그저 가벼운 사건 사고로 알려졌다.그러나 이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가슴 위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불안하고 답답했다.조시욱의 처벌 결과도 곧 나왔다. 그의 말대로 직위는 유지되었지만 실권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구승훈은 전화상으로 조시욱의 말을 듣자마자 가볍게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이때, 강하리가 생강차 한 잔을 구승훈에게 건네줬다.“이제 어떡할 거야?”구승훈은 차를 건네받자마자 한 번에 입으로 털어 넣더니 다시 컵을 그녀에게 건네주며 답했다.“어떡하긴, 할거해야지.”강하리는 잠시 멍해 있다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컵 씻으러 주방에 가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갑자기 구승훈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잠시만 안고 있자.”그리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한참 후에야 다시 말을 이었다.“사실 안 괜찮아. 내가 죽더라도 그 여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야 했는데.”그러자 강하리가 그를 매섭게 째려봤다.“죽는다는 말은 좀 안 하면 안돼?”구승훈은 계속 그녀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가 부스스 웃는 바람에 열기가 그대로 어깨에 전해졌다.“아까 다른 남자한테 다시 시집가겠다며? 내가 죽으면 바로 다른 사람 찾아 떠나가면 되겠네.”순간 강하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죽는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심장을 바늘로 콕콕 찌르듯이 아팠다.“승훈 씨, 가라면 내가 못 갈 것 같아?”구승훈이 고개를 살짝 돌리고 그녀의 목에 턱수염을 문지르다가 갑자기 혈관이 튀어나온 부분에 입을 가져갔다.“그러기만 해!”남자의 목소리에는 독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그리고 마치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겠다고 말하기만 하면 당장에라도 그곳을 물어뜯을 기세였다.그러나 강하리는 단번에 그를 밀쳐내더니 어두운 얼굴로 주방에 갔다.그러자 구승훈은 뻘쭘한 듯 자기 턱수염을 만지며 재빨리 강하리를 따라갔다.“화났어?” 강하리는 아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초연 씨가 이미 우리한테 여러 번 잡혔던 사림이니까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 아들이라는 사람만 손에 넣으면 여초연 씨는 금방 돌아올 테니까.”“아들이라...”“제가 반드시 찾아낼 거예요.”구승훈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조시욱은 막 뭐라고 하려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그러자 구승훈이 그를 힐끔 바라보며 답했다.“지금 가장 중요한 게 당신이 입고 있는 이 제복을 지키는 일입니다. 만약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한테도 많은 불편이 있을 테니까요.”그의 말에 조시욱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구승훈이 여전히 믿지 못하는 얼굴로 빤히 바라보자 조시욱이 다시 말을 이었다.“진짜예요. 저희 부모님들이 예전에 모두 열사셔서 조직에서도 많이 도와주고 있거든요.”그제야 구승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조시욱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처벌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 수고 해줘요.”그의 말에 조시욱은 또다시 놀란 눈치였다.“혹시 약을 잘못 먹은 건가요, 아니면 아직 안 먹은 건가요?”그러자 구승훈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문득 당신이 없으면 앞으로 제 인생에서 재미가 많이 줄어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그의 말에 조시욱이 단번에 구승훈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젠장, 양심 좀 챙기시죠?”구승훈은 빠르게 그를 피해 곧장 의료진 쪽으로 갔는데 옆에 있던 의사들이 그를 치료해 주기 위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강하리는 차에서 담요를 꺼내 왔다.요 며칠 기온이 약간 올라가긴 했어도 아직 겨울이었고 차가운 강물에 상처 난 몸을 반나절이나 담그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구승훈의 상태가 매우 걱정되었다.그리고 그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자마자 냉큼 달려가 담요를 그의 몸에 둘러줬다.“안아 줘.”구승훈이 팔을 벌리자 강하리는 재빨리 피했다.“냄새나.”순간 구승훈은 할 말을 잃었다.
구승훈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더니 잡고 있던 강하리의 손을 힘껏 물어버렸다.“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그리고 말을 마치자마자 물속으로 사라졌는데 강하리는 또다시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그녀는 강 옆에 멍하니 서 있다가 한참 후에야 마구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그렇게 구조 및 추적 작업은 저녁부터 달이 휘영청 떠오를 때까지 진행되었다.구승훈은 중간에 몇 번이나 숨 쉬러 올라왔고 손과 어깨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이때, 조시욱이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차갑게 말했다.“철수.”현재 여초연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부상자만 점점 늘고 있었기에 이대로 계속 강행해 봤자 무의미했다.솔직하게 말하면 이 모든 게 다 그가 방심한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는 명서현이 이런 수법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다.조시욱이 철수 명령을 내리자 그가 데려온 사람들은 전부 육지로 올라왔고 수색 구조대원들만 남게 되었다.구승훈이 수면 위로 올라와 보니 조시욱이 풀이 죽은 채 강 옆에 서 있었다.그리고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이리 와봐요.”그러나 조시욱은 그를 힐끔 바라볼뿐 움직이지 않았다.“나중에 다시 얘기해요.”“이쪽으로 오란 소리가 안 들려요?”구승훈이 더는 못 참고 버럭 화를 냈다.그 모습에 오히려 조시욱의 옆에 있던 사람들이 냉큼 달려오더니 당장에라도 구승훈과 싸울 듯이 덤벼들었다.그러자 조시욱이 빠르게 말렸다.“다들 수색 대원들이나 도와주고 난 신경 쓰지 마.”사람들은 비록 구승훈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지만 명령은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모든 사람이 떠나간 뒤에야 조시욱이 입을 열었다.“무슨 일인지 말해요.”그러자 구승훈이 미간을 찌푸리고 한마디를 했다.“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요.”순간 조시욱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원래 구승훈의 성격에 당장 그를 죽이지는 못해도 분명 주먹이라도 휘두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사람이 갑자
강하리는 문득 눈 앞의 남자가 조시욱의 부관, 한민철이라는 사실이 기억났다.“구승훈 씨는요?”그녀는 한민철의 팔을 부여잡고 다급히 물었다.“혹시 물속에서 구승훈 씨를 못 봤어요? 지금 상황이 어때요?”한민철은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저, 저는 구승훈 씨를 보지 못했는데요? 지금 아래에는 다친 사람도 있고 아예 바닥에 가라앉은 사람도 있어서 전 지금 구조 요청하러 올라온 겁니다. 구승훈 씨는 언제 빠졌어요?”순간 강하리는 심장이 그대로 멎어버린 것처럼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그 사람이 맨 처음으로... 뛰어내렸어요.”그녀의 말에 깜짝 놀란 한민철은 순간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랐다.가장 먼저 뛰어내린 사람은 아마 상대방 쪽에서 매복해 있는 모든 인력과 맞서 싸워야 했을 것이다.그리고 진짜로 한민철은 방금 물속에서 그를 보지 못했는데 설마... 보아하니 상황이 매우 안 좋은 것 같았다.한민철은 비록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이때, 강하리가 아랫입술을 물어뜯다가 갑자기 소리쳤다.“절대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절대!”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강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비록 강가에는 사람이 적었지만 수면 위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색깔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그리고 얼마간 가다가 강하리는 마치 모든 기력을 잃은 듯 강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숨도 가빠지고 안색도 점점 핏기를 잃어갔는데 두 눈만이 여전히 빨개져 있었다.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는 수면 위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강 쪽을 향해 외쳤다.“승훈 씨, 당장 나와!”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전부 그녀한테 쏠렸지만 강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쳤다.“두 번 다시는 내 손을 놓지 않겠다고 했잖아!”“구승훈...”강하리는 눈을 꼭 감았다.“연정이랑 나만 두고 가기만 해. 그랬다가는 내가...”이때, 강하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수면 위에 파도가 일렁거
강하리가 다리 쪽으로 달려갔을 때 구승훈은 이미 수면 아래로 사라져 있었고 그녀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꺼내 119에 신고려 했다.바로 이때, 여러 그림자가 또다시 드리워지더니 몇 사람이 잇따라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그러다가 문득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선배!”강하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그러자 조시욱은 어두운 얼굴로 힘껏 다리 난간을 내리쳤다.순간 그의 손이 다 까진 모습을 보고 강하리가 다시 눈살을 찌푸리고 되물었다.“무슨 일인데요?”조시욱이 절망적인 얼굴로 답했다.“여초연 씨를 호송하던 차량 경로가 누설되었어. 내가 경로를 다시 바꾸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조시욱의 말뜻을 이해하자마자 강하리는 순간 온몸에 한기가 돌더니 이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그럼 저 차 안에 있던 사람이 여초연 씨란 말인가요?”조시욱은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그 모습에 강하리는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더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서 차 쪽으로 걸어갔다.그러자 조시욱이 뒤에서 그녀를 다급하게 불렀다.“어디가? 하리야, 지금 분명 그쪽 사람들이 곳곳에 널려있을 거야. 넌 내 곁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해.”강하리가 단번에 그의 손을 뿌리쳤다.“그럼 여초연 씨가 이대로 도망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요?”“네가 가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그의 말에 강하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알아요. 그렇다고 해도 전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래요. 선배, 승훈 씨가 여초연 씨를 잡으려고 여태껏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아요? 그 여자 때문에 승훈 씨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아냐고요!”“그토록 어렵게 잡은 사람을 선배가 기어코 넘기라고 했잖아요. 넘겨주고 난 뒤에도 그 사람은 매번 협조적으로 선배 일을 도왔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여초연 씨가 도망쳤다고 하면 승훈 씨가 얼마나 절망적일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